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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잉각색

잉여에게 노동법이란?(글_측쿠시)

 

지금부터 나의 노래방 18번 한 곡과 노동법이 구제해주지 못했던 나의 노동 수난사를 소개하려고 한다.

이왕이면 그 노래를 들으면서 글을 읽을 것을 권한다. 글쓴이의 분노 게이지를 327% 리얼 공감하게 될 거다.



옛날에 착한 늑대가 한 마리 살고 있었어. 배고프고 가난했지만 성실하게 살았어.

어느 날 세 마리의 돼지형제가 늑대를 찾아왔어. "우리 집을 지어주면 식량주지"

그 날부터 착한 늑대는 열심히 집을 지었어. 욕심많고 돈 많은 돼지 삼형제를 위해서,

서로다른 돼지들의 취향을 맞추기 위해서, 볏단, 나무 그리고 벽돌로 집을 지었어.

삼 개월이 지났어. 공사가 다 끝났어. 착한 늑대는 돼지들에게 집을 나눠줬어.

식량을 달라고 했어. 돼지 문 잠궜어. 나오지 않았어. 집은 튼튼했어.

 

- 거리의 시인들, <착한 늑대와 나쁜 돼지 새끼 세 마리>


 

에피소드 No.1 - 팀장님께 드립니다, 빅엿!

 

"사무직 월 120만원, 5일 근무, 대학생 방학 근무 가능"

 

, 바로 이 거다! 며칠 동안 벼룩시장과 알바몬을 뒤지던 중에 마침내 내가 원하는 알바를 찾았다. 사무실은 우리집에서 걸어서 15분 거리에 있었다. 두 달 빡세게 일하면, 다음 학기는 순조롭게 등록할 수 있을 듯하다. 전화했더니 바로 면접 보러 오란다. 내일부터 출근하라고 했다. 그야말로 운수좋은 날이다.

 

출근 첫 날. 이상하다. 내 책상에는 달랑 전화기만 한 대 덩그러니 놓여있다. 팀장이 사무직 자리는 다른 사람이 하게 돼서, 나를 텔레마케팅 팀으로 넣게 됐다며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 아무렴 상관없다. 한 달 뒤에는 월 120만원이 통장에서 다소곳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테니 ㅎㅎ. 게다가 이 부서에는 인센티브도 있다. 계약 한 건당 5%에 해당하는 금액이 인센티브로 지급된단다. 솔깃하다. 최소 계약 금액이 5천만 원부터 시작하는데, 5천만 원5%250만원 아닌가. 그런데 계약이 쉽지는 않아보였다. 내가 하는 일은 당시 신림 사거리에 짓고 있던 C&백화점에 투자하라고 꼬드기는 일이었다. 내가 그토록 싫어하던 부동산 전화를 돌리게 되다니. 어쨌든 계약을 못 따내도 밑지는 장사는 아니니까 한번 해보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하루에 낯모르는 150명의 사람들과 통화를 하게 됐다.

출근 일주일 째. 옆 팀의 꾀죄죄하게 다니던 남자의 옷차림이 달라졌다. 헤어스타일부터 구두까지 모든 게 새 거였다. 심지어 차까지 뽑았다. 뭐야, 로또라도 맞았나? 알고 보, 그 남자는 10억짜리 약국 자리 계약을 성사시켰다고 한다. 이는 그가 5천만 원의 인센티브를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 대박.

나는 이때부터 눈이 뒤집혀서 일했다. 하루 전화 건수가 300통으로 늘었다. 사모님, 어머님, 아버님, 기타 등등 - 세일즈맨 특유의 각종 호칭과 아부가 내 입에서 다양하게 구사되고 있었다. 누가 모델 하우스에 오기로 약속이라도 한 날이면 내 미래는 희망으로 부풀어 올랐다. 내가 받을 인센티브는 등록금이 되었다가, 해외여행 자금이 되었다가, 내 명의로 된 전셋집 계약금이 되기도 했다. 다단계 판매에 빠지는 대학생의 심정이 이런 것일까. 목이 쉬어 터져라 전화를 해도, 나는 통증을 느끼지 못했다.

 

출근 보름째 되는 날, 수상한 종이를 발견했다. 전화번호부 목록 뒷면에 누군가의 근로계약서가 인쇄돼있었다. 기본급이 없이 100% 인센티브로 돈이 지급되는 조건이었다. 설마, 나는 아닐거야. 내 자신을 납득시키려 애썼지만, 하루종일 마음이 불안했다. 그러고보니 이상한 점이 한 둘이 아니었다. 월급을 줄 건데, 팀장은 왜 내 밥값을 모조리 계산하고, 회식도 안했는데 차비를 내 손에 쥐어줬을까? 아무래도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은 게 마음에 걸렸다. 결국 나는 팀장과 일대일 면담을 신청했다. 팀장은 이렇게 말했다.

 

"잉녀씨, 계약을 따면 다 해결되는 문제야. 나라고 별 거 있는 줄 알아? 계약 못 따면 나도 한 푼도 못 받아. 다 하청의 하청이야. 나도 지금 내 돈 꼴아박아가며 잉녀씨 밥 사주고 있는거라구.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우리 좀 돕고 살자."


 

그림 Slump




사과의 말 따위는 없었다. 맙소사, 명색이 사회학과 다니는 인간이 취업사기를 당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부랴부랴 노동청에 전화하고, 관련법을 찾아봤다. 상황은 내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았으니 취업사기 당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가 어려웠다. 일단, 매일매일의 근로일지 등을 통해 내가 일정시간 동안 이 회사에서 일했다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해야 했다. 그 이후에는 노동청의 판결을 받아 회사에 지급권고가 떨어지기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러나 나는 C&백화점 시공사에 소속된 게 아니라 하청업체에 소속된 거라서, 나를 고용한 하청업체 책임자 - , 팀장이 임금을 지불할 능력이 없는 걸로 판명되면, 그 인간이 돈이 생길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노동법은 내 편이 아니었다. 이런 시베리안개장수발쌈싸먹는 경우를 봤나. 법에 기대지 않고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나도 거짓말을 하기로 했다. 한 달에 두 명의 사람을 모델하우스로 이끈 나는 우리팀에서 에이스로 인정받고 있었다. 그 상황을 이용하기로 했다. 팀장이 설날 전까지 약속한 월급의 일부분이라도 정산해준다면, 복학하지 않고 계속 그 일을 하겠다고 제안했다. 설 전날, 결국 팀장은 현금 서비스까지 받아가며 내게 현금60만원을 쥐어줬다. 난 그 날부로 잠수를 탔다. 우리팀의 핵심서류였던 투자처를 찾고 있는 잠재적인 고객명단과 함께. 그렇게 나는 팀장님께 설 선물로 빅엿을 드렸다.

 

착한늑대가 돼지에게 복수하는 방법은 그것뿐이었다. 법은 내겐 너무 먼 당신이었으니까.

 





에피소드 No.2 - 이제 나는 더 이상은 못 참겠다?!

 

팀장에게 빅엿을 먹이고 복학한 나는 무사히 학교를 졸업한 후에, 조교로 취직하게 된다. 2년짜리 계약직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당하고도 또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았다. 학교 측에서 말을 꺼낸 적은 없지만, 나도 굳이 근로계약서를 요구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사회적 지위가 있는 대학교에서 노동법에 어긋나는 일을 할 리는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따지는 일 자체가 귀찮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순진한 믿음과 귀차니즘 때문에 나는 한 번 더 정신적, 물질적 피해를 감수하게 된다.

 

조교를 시작한지 3개월째, 친하게 지내던 조교 오빠가 어느 날부턴가 밥도 안 먹고, 미드만 주구장창 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저 조교의 특권인 방학 시즌의 잉여 라이프를 충실히 즐기려는 줄 알고 내버려뒀. 그런데 그게 일주일, 이주일을 갔다. 걱정이 돼서 캐 보니, 그는 밥숟갈을 놓게 될 처지에 처해있었다. 계약기간이 6개월이나 남았는데 학과장 교수가 조교를 그만두라고 일방적으로 통보를 했던 것. 여름방학이 끝나기 전에 조교 자리를 누군가에게 넘겨줘야 하는 상황이었다. 우리는 이럴 수가 있냐고 분노했지만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조교를 임명하는 것도 전적으로 학과장 권한이고, 해고하는 것도 학과장 고유의 권한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짤리면 실업급여가 있다며 그를 위로했지만, 부질없는 짓이었다. 총무팀에서 "조교는 노동법이 아니라 사립학교법 적용을 받기 때문에, 4대보험 중 고용보험에 가입돼있지 않다"고 친절히 설명해줬다. 노동법에 의하면, 실업급여는 고용보험에 가입자 중 해고된 사람만이 3개월 동안 받을 수 있도록 돼 있다. 그런데 사립학교교직원은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않기 때문에, 짤려도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다는 거다. 난 그 때서야 처음으로 내 근로조건을 정확하게 알게 됐다. 하지만 내 일이 아니므로, 침묵하기로 했다. 수많은 뉴스에서 봐왔듯, 법이 보장하지 않는 권리를 주장하려면 밥 숟가락 놓을 각오를 하고 싸워야 한다. 난 그럴 용기는 없었다. 어차피 1년만 버티고 그만둘 건데, 긁어부스럼 만들 필요가 있나 싶었던 거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위로주를 건네며 미래를 걱정하는 척하며, 그를 순순히 보내 줬다.

 

시간을 순조롭게 흘러, 나도 어느덧 조교 생활을 마무리할 때가 다가오고 있었다. 취직을 준비하기 위해 토익학원을 알아보던 차에 유용한 정보를 발견했다. 직장인에게는 학원비를 50% 감면해준다는 것. 그런데 웬 걸, 나는 적용이 안 된다는 거다. 망할, 또 그 놈의 고용보험이 문제였다. 고용보험에서 직업훈련비로 나오는 거라서 사립학교 교직원인 나는 해당이 안 된다는 거다. 뭔가 이상했다. 슬슬 나를 위한 진짜 분노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사립학교법과 학교 정관을 뒤졌다. 노동청과 노무사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 상담을 요청했다. 사립학교와 노동으로 키워드로 검색하면 걸리는 모든 기사를 스크린했다. 이틀에 걸쳐 조사해본 결과, 계약직인 조교는 사립학교 교직원으로 분류돼서는 안 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립학교들이 약간의 이윤을 더 남기기 위해 편법으로 조교를 교직원으로 분류하고 있었다. 그 해 감사원에서 이런 사실을 밝혀내 해당 학교에 시정할 것을 명령한 상태였다. 그런데 우리 학교는 여전히 감감 무소식. 총무팀은 여전히 태연하게 조교는 고용보험에 가입 대상자가 아니라고 말해줬다.

 

고용보험으로 학원비 까는 거? 그거 얼마 안 된다. 3개월 치 실업수당? 다 해봤자 200만원 겨우 넘는다. 문제는 그 돈의 액수가 아니라, 세상이 나를 자꾸 속이려 든다는 거다. 왜 나에 관한 얘기를 나만 빼고 다들 알고 있는 거? 시키는 대로 열심히 일한 것 밖에 없는데. 억울하고 분했다. 도대체 내가 뭘 잘못했길래 자꾸 속아야 되는 거냐고~!! 씨발.

 


착한 늑대는 주저앉아 곰곰이 생각했다. 무슨 이유로 돼지들은 나를 속였을까.

내가 너무 만만해보여 그랬던 것이었을까. 누가 나를 이용하려고 머릴 굴리고 있을까

.........

이제 나는 더 이상은 못 참겠다. 괴롭힘 당하면서 더 이상은 못 살겠어.

세상은 왜 이렇게 나쁜 놈들 많은 건지, 이렇게 살아가느니 차라리 싸워보겠어.

왜 나를 가만두지 않는 건지, 어째서 너희들의 개가 되길 원하는지

나는 하고싶은 말 하면서 살고 싶어. 너희들 무리속에 들어가서 살 수는 없어.

- 거리의 시인들, <착한 늑대와 나쁜 돼지 새끼 세 마리>

 






그 때부터 내 머릿속은 온통 학교와 맞짱 뜰 생각으로 가득 찼. 하루에도 몇 번씩 시나리오를 그렸다가 지웠다가를 반복했다. 하지만 분노는 허무하게 사라졌다. 학교에서 내년 1월부터 조교를 4대보험 가입자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나는 철 지난 정보를 쥐고 가상의 적과 싸우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나는 더 이상은 못 참겠다!!'며 분연히 일어났다면, 나만 병신될 뻔 했다. 앞으로 분노를 표현하기가 더 조심스러워질 것 같다.

 

생각해보면 참 우스운 일이다. 내가 다니는 사회학과에서는 늘 노동자의 권리에 대해 가르쳤다. 근로계약서 쓰는 건 기본 중의 기본이라고 배웠고, 교수님과 선배들은 노동 3권이 보장되지 않는 현실에 대해 개탄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이러한 교과서적인 분노를 발판 삼아, 집회에도 몇 번 나갔다. 그 때마다 "비정규직 차별철폐" 혹은 "해고는 살인이다" 는 구호를 외치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따라 불렀. 그런데 그 때 나는 누구의 깃발 뒤의 서 있었던가? 정규직 중심으로 탄탄하고 조직된 금속노조 아저씨들 뒤에서 구경꾼처럼 서있지 않았던가? 그 늠름한 어깨를 지닌 이들이 과연 내 사연에 털끝만한 관심이라도 가져줄까? 내 밥그릇도 제대로 못 챙기면서, 남의 밥그릇 챙기겠다고 뛰어다닌 내 자신이 한심하다. 이론과 현실의 괴리 속에서 헤매고 있을 때 법은 도대체 어디서 뭘 하고 있었나. 노동법은 저 멀리서 도도하게 돌아앉아 내 멘붕을 부채질 할 뿐이었다. 노동법, 그게 뭐임? 먹는 건가?

 

올해 2. 조교 임기를 마치고 같은 학부 후배에게 조교 자리를 물려줬다. 그녀 역시 근로 계약서를 쓰지 않았다고 한다. 10년 만에 조교 임금이 인상됐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그래봤자 월급에서 1오천 원 오른 건데. 이걸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 후배를 볼 때마다 어쩐지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건 왜일까.






※ 월간잉여 7월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