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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여논단

김앤장과 잉변들(글_김짱구)

필자는 언론사에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회부 기자다. 지난달 경찰서와 길거리를 방황하던 수습기자에서 간신히 '수습'이란 글자를 떼고 정식 기자로서 법원에 출입하고 있다. '월간잉여의 7월호 주제가 '잉여와 법'이라는데 법원 출입기자로서 기고를 안 할 수가 없지.' 자신 있게 잉집장에게 "7월호 마감이 언제지?"라고 카톡을 보냈다.

 

...항상 법원 얘기를 다루다 보니 잉여와 법에 관한 '그까짓 글 한 편' 후딱 써서 보낼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쓸 게 없다. 뭘 써야 할지 영 감이 안 온다. 잉여와 법이라...사실 법원에서 잉여들은 좀처럼 찾기가 어렵다. 재판을 받는 사람들이나 재판을 하는 사람들이나 하나같이 바쁘다. 판사들은 밀려오는 사건을 처리하느라 온종일 책상에서 법전과 씨름하기 일쑤고 법원 직원들은 산더미 같은 서류뭉치들을 수레에 싣고는 바쁘게 오간다. 쓸건 없지, 잉집장의 불같은 독촉 카톡은 날아오지, 고민의 고민을 거듭하다 얼마 전 기획을 했다가 우리 부장에게 킬 된 아이템을 살려 보기로 했다. 바로 법률사무소 김앤장에 관한 얘기다.

 









요즘 법조계엔 '잉여 변호사'들이 참 많다. 1기 로스쿨 졸업생들이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법률시장에 뛰어들었고 외국계 로펌들도 FTA 협정에 따라 올해부터 정식으로 우리 법률시장에서 영역을 넓히고 있다. 시장은 한정돼 있는데 변호사가 늘어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놀고먹는 '잉변'들은 늘어난다. 특히 검사나 판사를 그만두고 변호사 사무실을 차린 사람들 중에서 뜻밖에도 잉변들이 많다. 판검사로 대접받으며 살아온 사람들이 어느 날부터 갑자기 자신을 낮추며 '사건 좀 나한테 맡겨줍쇼 굽신굽신' 해야 되는데 이런 '영업'을 뛰기를 영 껄끄러워 하는 것이다. 서울 서부지검장을 지냈던 남기춘 검사라고 있다. 최고의 칼잡이 검사로 검사 시절 기업 비리와 관련해 엄격하게 수사했던 것으로 유명했다. 그러나 한화태광그룹 비자금 사건을 수사하던 중 과잉 수사 논란이 일어 1년 전 사표를 내고 논현동에 개인 법률사무소를 차렸었다. 그런 그도 사건 수임을 거의 못하며 곤궁한 생활을 지내던 잉변이란 얘기가 돌았다. 김앤장은 높은 연봉으로 그를 유혹했고 남 검사는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 재밌는 건 남 검사를 옷 벗게 한 당시 한화태광그룹의 변호인단이 김앤장이었다는 것이다.

 

변호사 업계가 불황이고 잉변들은 늘어난다고 하지만 김앤장 법률사무소는 광화문 일대의 빌딩 사무실들을 독식하고 있다. 열심히 취재한 결과(사실 김앤장 홈페이지에 다 나와 있다 ㅋㅋㅋ)현재 광화문에서 김앤장이 사용하는 빌딩은 모두 5개다. 그런데 이유는 모르겠지만, 김앤장 법률 사무소에는 간판이 없다. 법률 사무소라는 게 영업을 위해 '000 변호사'라는 간판을 덕지덕지 붙여놓게 마련인데 김앤장 건물에는 하나같이 간판이 없다. 김앤장이라고 이름을 써 붙이지 않으니 사람들은 건물을 보면서도 저게 뭐하는 건물인지 모른다.

또 하나 특이한 건 그곳 건물 모두 안으로 들어가지를 못하게 한다. 건물 안에 몇 개의 사무실이 있는지 한번 들어가서 취재 좀 해 보려는데 하나같이 출입구를 지키는 '형님'들이 기자를 막아섰다. 이러니 이거 뭐 안에서 뭘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김짱구가 직접 그린 김앤장 장악도



 


어쩔 수 없이 정식적인 루트로 접근했다. 김앤장의 홍보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실장님, 김앤장에 몇 명의 변호사가 있고, 한 해에 몇 명을 채용하는지 좀 알려주세요~요즘 잉변들이 많아서 문 닫는 변호사 사무실이 많다던데 김앤장은 광화문의 빌딩 5개를 전부 사용하고 이것도 모자라서 건물을 더 알아보고 있다고 하던데 그게 맞나요?" 신입 기자의 패기 있는 질문에 홍보실장은 당황해 했다. 그리고는 원하는 답변은 안 해주고 그날부터 기자에게 '밥 한번 먹자', '번개 하자' 등의 문자와 전화세례를 퍼부으며 다른 대형 로펌에 대한 정보가 있다며 이메일로 다른 대형 로펌들의 건물 현황을 보내줬다. 아니, 김앤장을 취재하겠다는데 왜 다른 로펌 자료를 보내주느냐고. 참 친절한 김앤장이다.

 

결국, 아는 사람들을 수소문해 판사 출신의 한 김앤장 변호사를 만났다. 그는 "김앤장은 해마다 변호사와 직원들을 100여 명씩 늘리며 몸집을 불리고 있다""직원들이 늘어나 사무공간이 계속 부족한 상태다"고 말했다. 또 그는 "앞으로도 김앤장의 사무공간이 계속 필요한 상황이라 현재 세종문화회관 뒤편에서 공사 중인 30층짜리 빌딩이 오는 20131월에 완공하면 김앤장이 임대해서 쓸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정부중앙청사가 세종시로 이전하면 김앤장이 그 빈 사무실을 쓸 수도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김앤장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고도 말했다.

 

김앤장의 이와 같은 몸집 불리기는 변호사 업계의 양극화가 심화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놀고먹는 잉변들이 늘어나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사무실이 모자랄 정도로 영업이 잘된다. 법률 시장이 어렵다지만 김앤장에게는 다른 세상 얘기다.

 

서울지방변호사 회장을 지냈던 한 변호사는 이런 대형 로펌의 몸집 불리기가 법률 시장이 개방되고 로스쿨이 확대되며 나타나기 시작한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대형 로펌은 법률 개방에 대비해 몸집을 키우고 있고 개인이나 중소 로펌은 변호사 숫자가 확 늘어나니 그 세가 자연히 위축될 수밖에 없다""앞으로도 그런 추세가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을 했다. 분명 바람직한 모습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형 로펌의 고객들은 대부분 돈 많은 갑부들이다. 법률 시장도 골고루 발달이 되는 것이 필요한데 대형 로펌들만이 몸집을 불린다면, 돈 없는 자들이 양질의 법률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기회는 상대적으로 줄어들 수 있다. 개인 법률사무소들이 참 많은 법원이 있는 서초동 인근. 최근엔 개인 변호사가 사무실을 개업하는 모습을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개인 변호사들이 어려워짐에 따라 잉변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변호사 윤리강령에는 "기본적 인권의 옹호와 사회정의의 실현을 사명으로 한다"는 구절이 있다. 잉변들에게는 참 꿈같은 얘기다.

 

PS 김앤장에 대해 더 알고 싶은 잉여들은 임종인 장화식이 쓴 <법률사무소 김앤장>이란 책을 읽어보기를 권한다. 모든 것이 폐쇄된 김앤장이지만 이 책만큼 김앤장에 대해 정확히 지적한 책이 없다고 한다. 김앤장 내부의 한 변호사도 어떻게 이렇게 정확히 쓸 수가 있냐며 놀라움을 자아냈다는 후문이...



















※잉여논단의 글은 본지의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

※기자님들하 데스크에서 잘린 잉여기사 월간잉여에 투척해주심이 어떠신지요
※ 월간잉여 7월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