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잉여논단

교대 나온 잉여(교잉)

나는 교대 나온 잉여다. 나는 교사도 되지 못하고 잉여가 되었다. 흔히들 교육대학교를 나오면 교사가 되는 길이 더 쉽다고 한다. 하지만 최근 5년간의 상황은 그리 녹록치가 않다.


전국의 교대는 초등학교 교사를 수급하는 특수 목적대지만 교사 TO(table of organization, 일정한 규정에 의하여 정한 인원)가 교대 졸업생 수를 현저하게 밑돌며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서울 및 경기 지역은 그래도 졸업생 수보다 100명 넘게 뽑아주거나 100명 적게 뽑아주거나를 반복하지만 다른 지역에는 500명 졸업생 중 10분의 1만 합격이 가능한 TO가 나기도 한다. 예비 졸업생이 전부 임용고시에 합격했을 경우라 하더라도 450명은 고스란히 내년을 기약하게 되는 것이다.


TO문제뿐 아니라 지역별 초등학교 상황도 교대 졸업생들의 잉여화에 큰 도움을 준다. 수도권이나 광역시가 아닌 지역에서는 이촌향도가 진행되어 한 학교당 학급수가 많지 않다. 그럼 진짜 교육을 실현할 수 있지 않느냐고? 학교가 크건 작건 교육지원청에서 떨어지는 공문은 거의 차이가 없고 학교 잡무도 마찬가지다. 같은 일을 10명이 하는 것과 60명이 하는 것 어느 쪽이 힘들까? 2년차 혹은 6개월 차 교사가 부장 교사를 맡는 일이 드물지 않다. 교대 졸업생끼리 경쟁해도 힘든데 일에 지친 현직 교사들이 임용고시 대열에 다시 참여한다. 결혼을 위해서라거나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으면서 자녀 교육을 위해 대도시로 오고 싶어하는 것도 임용고시 재응시의 이유다. 수도권이 타 지역보다 수급 상황이 조금 더 좋다고 해도 늘 병목 현상을 피하기 어려운 이유다.





영화 [선생 김봉두] (2003) 중




작년 전국 평균 임용고시 경쟁률은 2.6:1 재작년은 2.4:1이었다. 서울 지역은 3과 소수점 후반 수준이니 반올림해서 4:1이다. 전에 모 잡지에서 기자 넷을 뽑는데 1600명이 몰리고 일반 공무원 시험 경쟁률은 20:1, 50:1이라는 걸 본 적 있다. 이에 비하면 적은 수로 느껴질지 모르겠다. 문제는 4명이 누가 교사가 되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허수가 없다는 것이다. 교대생 시절 나는 내가 듣고 싶은 과목을 선택해본 기억이 거의 없다. 학기당 2과목 정도만 선택권이 있는데 그것도 1,2교시에 들을 건지, 3,4교시에 들을 건지 정도다. 한 학기 이수 학점은 21학점 정도. 하지만 3학점인 과목은 일 년에 한 개 꼴이다. 나머지는 죄다 1학점이나 2학점이다. 들어야 될 과목이 많다는 얘기다. 그래서 교대는 점심시간이 존재한다. 안 그러면 점심을 먹을 시간을 뺄 수가 없다. 500명이 같은 커리큘럼으로 한 과에 40명이 같은 수업을 듣고 같은 공부를 한다. 그리고 교사가 되기 위한 시험도 같이 치른다. 누가 직장이 걸린 시험 앞에서 진지하지 않을 수 있을까. 우린 모두 진지하고 1:1이 아닌 시험에서 탈락자는 누구라도 될 수 있다.


전국적으로 한 해 초등교사 TO6천 명 정도니 불합격자 만 명 정도는 꼬박꼬박 잉여가 된다. 적금도 아닌데 일정하기까지 하다. 게다가 교대는 나와서 다른 직업을 가지기 굉장히 어렵다. 지구과학부터 서예에 철학까지 배우는 중구난방 커리큘럼 탓도 있고 애초에 특수 목적으로 설립한 학교다보니 교육이라는 테두리에 속하지 않은 직업은 갖기가 까다롭다. 아예 고졸로 취급받기도 한다. 고시 공부라는 것이 철저한 목적성 공부라 붙지 못하면 투자한 시간은 그대로 날아간다. 졸업생들은 초등정교사 2급 자격증이 있어 일선 학교에 기간제 교사나 영어회화전문강사로 취직이 가능하긴 하다. 그리고 나는 경험했다. 공무원이 아닌 사람들에게 학교는 매몰찬 곳이라는 것도. 계약직이라는 직업 형태의 불안정함도. 결국 다시 임용고시라는 원점으로 돌아왔다.


임용고시라는 시험이 변별력과 공정성이 있는 지도 모르겠다. 내가 떨어져서 하는 이야기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렇다. 떨어져서 하는 소리다. 떨어졌는데 왜 떨어졌는지 모르겠다. 붙은 사람들도 왜 붙었는지 모르겠단다. 1차 객관식은 답안 공개를 하는데 2차 서답형(書答型)은 전체 점수만 공개할 뿐 과목별 점수와 정답표를 공개하지 않는다. 교수들은 자신들의 수업 듣는 학생들이나 본교 학생들에게 힌트를 주고 출제하러 간다. 2010년 시험에는 이 문제가 공론화되어 수학 문제 2번이 전부 정답처리가 되기도 했다. 객관식은 그래도 정답이 있어 비교적 나으나 서답형 시험은 과목당 한 문제. 5과목씩 두 번을(초등 교과목은 생활 시리즈 빼면 10) 100분 안에 400자 답안지에 원고 작성까지 마쳐야 한다. 답안지에 다 옮겨 쓰지 못해 시험을 망친 응시자가 서답형 시험이 생긴 이래로 늘 있었다.


다른 시험도 다 힘들다고 타박하는 사람도 있겠다. 그럴 수 있다. 다만 중요한 건 이 시험이 초등교사를 뽑는 임용고시라는 사실이다. 우리 중 누구도 교육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나도 내 엄마도 내 동생도 옆집도 지나가는 아이도 모두 언젠가는 초등학생이었거나 그렇게 될 예정이거나 초등학생의 학부모거나 친척이거나 어쨌든 모든 국민은 초등교육과 연관된다. 그리고 그 교육을 잘 받기 위해 교사를 양성하는 교대에 세금이 들어가고 커리큘 럼의 독자적 운영은 허용되지 않는다.


교사가 덜 필요하면 교대생을 덜 뽑았어야 한다. 국가에서 관리하는 학교다보니 교대 입학 정원도 국가에서 관리한다. 헌데 교육과학기술부는 4년 전부터 교사 수급 상황을 어떻게 예측 하냐는 말로 책임을 회피한다. 적확하게 예상하지 못할지는 몰라도 몇 년간 교사 TO100명 부근으로 냈을 정도면 매년 500명의 입학생이 필요치는 않을 것 아닌가.


그런데, 정말 교사가 덜 필요한가? 교육과학기술부는 신규 교사 임용이 적어진 이유를 저출산 탓으로 돌린다. 실제로 출산율은 줄었다. 하지만 아직도 한 학급은 30명 이상이다. OECD 수준을 들먹이지 않아도 우리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으리라. 실제 교실에 가서 30명을 대면해봤다. 모두를 데리고 40분 내에 수업 목표에 도달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교육과정은 창의성, 문제 해결 능력을 길러주고 수준별 학습을 하라고 도배가 되어 있다. 교과의 수준은 어떤가. 10년 전이었으면 중등교육과정에서 배울 내용이 초등으로 많이들 내려왔다. 학생 모두가 알 때까지 가르치고 싶지만 학생들의 수준은 모두 다르다. 학생 입장에서는 한 두 시간 그냥 흘려보내면 그걸 사교육에서 보충해야한다. 그러지 못하면 그대로 그 부분은 구멍이 난다.


교사에게 요구하는 것은 또 얼마나 많은가. 시대가 변했으니 애들 앞에서는 수업의 신이 되어야 하고 학부모 앞에서는 상담의 신이, 업무에서는 효율의 신이 되어야 한다. 학교가 가르치는 공간만이 아니라 지역 내 공공기관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교사는 어떤 날에는 동사무소 직원이 또 다른 날에는 경찰로 분한다. 인프라 없이 교사를 들들 볶으면서 학교는 점차 교육이 아닌 보육의 역할 밖에 담당하지 못하게 되었다.


학교에 인력이 부족한 걸 땜질해야겠으니 계약직 인력으로 메꾼다. 그런 와중에 학교를 위해 마련해두었던 4년이나 시간과 돈을 들여 이것저것 다 교육시켜둔 인력은 얘들 써도 됨자격증하나 달랑 준채로 잉여로 팽개친다. 결국 세금은 23중으로 든다. 교육은 꾸준함이 중요한데 계약직은 그때그때 정책 따라 매번 바뀌니 일관성도 없다.


지금 이 시간에도 아이들은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소외당할까 두려워하고 성적 때문에 목숨을 버린다. 예비 교사들은 시험 스트레스로 우울증과 무기력에 시달린다.


예비 교사들에게 필요한 것은 객관식 주관식과 형식적인 15분 수업으로 평가받는 것이 아니라 현장 경험이다. 의사들에게 인턴, 레지던트 제도가 있듯 미성년자를 다루는 교사들에게도 비슷한 교육 기간이 필요하다. 1월 말에 합격 통지를 받고 2월 중순에 연수, 32일부터 바로 아이들 앞에 서게 되는 현재 상황은 신규 교사들에게는 첫 해의 절망감을 주고 아이들도 설익은 교사를 만나는 상호 좋지 않은 시스템이다. 교육대학교를 이왕 특수목적대로 설립했으면 입학 시부터 철저하게 인적성 검사를 거친 학생들을 체계화된 커리큘럼으로 교육하고 졸업 후엔 일정 학점 이상 학생들을 수련 교사로 각 학교에 파견하는 방식이 적합할 것이다. 이들에게 행정이나 학교 행사를 맡기면 담임교사는 훨씬 수업에 집중할 수 있다. 혹은 교육대학교를 대학원화해서 전공에 상관없이 학부를 졸업하고 초등교사가 되고 싶은 사람들에게 지식과 기능적인 부분을 전달할 수도 있겠다. 현 제도로는 아이들의 돌아올 수 없는 시간들을 교사의 시행착오로 흘려버리거나, 획일화된 시험에 길들여진 교사만 양산되는 일들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열정으로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다고들 하지만 교육이라는 국가 대사를 개인들의 열정에만 기댄다면 공교육의 수준은 더욱 참혹해질 것이다.


나는 소망한다. 잉여 예비 교사들이 교사가 되기를.





영화 [고백] (2010) 중










※ 월간잉여 11월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