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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렌 소리와 콘돔을 파는 사회적기업(인시)

언젠가 김훈 작가가 쓴 바다의 기별이란 에세이집을 보다, 한동안 그가 쓴 한 텍스트에 고개를 떨군채 문득 그를 아저씨라 부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소방차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김훈은 다급하고도 간절한 소방차 사이렌 소리와 질주하는 소방차의 대열에서 안도감을 느낀다고 했다. 재난에 처한 인간을 향해 달려가는 건장한 젊은이들. 인간의 인간다움이 아직 남아 있고, 인간만이 인간을 위로할 수 있다는 단순명료한 진실을 그는 질주하는 소방차를 바라보면서 확인한다고 말했다.

 

요근래 사회적이란 말이 많이 쓰인다. ‘사회적이라고 하는 것은 사회에 관계되거나 그런 성격을 가진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라고 누구나 알고 있다. 사회적책임, 사회적자본, 사회적경제. 레드컴플렉스가 있는 나라에서 저게 다 뭔가하겠지만 2000년대 들어 형성된 신자유주의체제. 그것에 이은 경제 불황에서 나온 자연스러운 흐름이 아닌가 한다. 그 옛날 개혁이니 저항이니 하며 사회라는 말을 붙였다면, 지금 사람들은 어떤 대안을 찾거나 잊어버린 무언가를 찾고 있는지 모른다.

 

사회적기업 역시 그 흐름의 하나일까. 사회적기업은 사회적 목적을 우선적으로 추구하면서 영업활동을 하는 기업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예시는 별로지만, 빵을 만들어 이윤을 남기기 위해 고용을 하는 것이 아니라, 고용을 위해 빵을 만드는 기업. 보통 그렇게 설명한다. 무하마드 유누스란 사람이 방글라데시에서 만든 그라민은행이 사회적기업의 대표적인 사례다. 그라민은행은 빈곤층이 자립할 수 있도록, 예를 들어 중고 재봉틀을 산다든지 송아지 한 마리를 산다든지 하는 것을 담보 없이 소액을 대출해준다. 원금 상환이 98%라고 한다. ‘빈곤층의 자립’. 그것을 추구하는 것이다. 경제학자 유누스는 2006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한국에도 잘 소개된 탐스슈즈 역시 사회적기업이다. 여기서 신발 하나를 사면, 3세계 어린이들이 같은 신발을 받는다. 또 빅이슈. 역근처에서 부쩍 많이들 봤을 것이다. 홈리스들의 자립을 위해 잡지를 만드는 기업이다. 3,000원짜리 빅이슈를 팔면 판매원에게 1,600원이 돌아간다. , 영화 원스에서 둘이 만남은 음악도 음악이지만 여자가 남자에게 저 잡지를 팔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가슴에 잡지를 두 손으로 움켜지고 이렇게 말했다. “빅이슈?”




영화 ONCE(2006)



정부는 지난 2007사회적기업 육성법을 제정한다. 저 좋은 것을 가만히 나둘 한국인이 아니지 않은가. 근데 수입을 하는 과정에서 조급함이 있었던 것 같다. 한국 특유의 정부 주도역시 한몫했다. 법 이름이 육성법. 어떤 결과라는 것의 패러다임. 사회적기업 숫자 늘리기 경쟁은 여기서 시작된다. 물론 정부가 나서서 사회적기업을 발굴하고 육성하는 것은 권장해야할 일은 맞다. 하지만 사회적기업 정책에 지원금이 쏠리면서 사회적기업 해볼까정부 지원 받아볼까라는 말로 바뀌었다. 각 자치단체들 역시도 지역의 사회적기업 발굴을 위해 예산을 편성하고 있다. 또 우려되는 것은 바로 사회적기업 인증이란 것이다.

 

정부에게 팔리는 사회적기업 아이템. 이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특별함이다. 사회적기업 육성법 8조를 보면 사회적 목적 실현’ - ‘당해조직의 주된 목적이 취약계층에게 일자리나 사회서비스를 제공하여 지역 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등 사회적 목적을 실현하는 것일 것이라고 명시돼 있다. 정부가 원하는 사회적기업상이 있는 것이다. 지원금이 있으니 사람들은 그것에 맞춰 아이템을 만든다. 유누스가 방글라데시의 빈곤을 보고, 탐스슈즈가 제 3세계 아이들의 발, 빅이슈가 홈리스들의 종이 박스를 봤다면, 한국에서 사회적기업을 준비 하는 사람들은 일단 저 인증법을 보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가만 보면 참 신기한 아이템들이 많다. 아귀가 맞고 정부가 좋아할 만한 것이 쏟아진다. 지난 여름에 열린 사회적기업 관련 심포지엄에선 누군가 정부의 사회적기업 정책에 대해 한마디 했던 기억이 있다. ‘다 뻘짓이라는 것. 근데, 일리가 있다.







콘돔을 파는 사회적기업은 한국에선 상상할 수 없다. 미국의 사회적기업 ‘SIR RICHARDS’는 소비자가 콘돔을 사면 다른 콘돔을 개발도상국으로 보낸다. 탐스슈즈의 모델과 비슷한데, 이 사회적기업은 콘돔의 생산 및 공급량의 부족때문에 세계의 많은 인구가 질병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에서 출발했다. 캐나다의 ‘Club des petits déjeuners du Québec’는 잠재력이 무궁무진한 아이들의 평등한 기회를 위해 다른 것보다 아침식사를 제공한다. 미국 ‘VisionSpring’4$에 안경을 판매하고, 인도 아라빈드 병원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무료로 수술을 해준다. 전체 수술의 약 75%가 무료로 한 수술이란다. 최근 가장 관심이 가는 ‘uncharted play’15분동안 축구를 하면 3시간 빛을 내는 축구공을 개발했다. 축구공을 차면 전기가 생산되는 것이다. 이 축구공은 하루의 대부분을 축구를 하며 시간을 보내는 남미의 아이들에게 보내지며, 그들은 낮에 축구를 하고 밤에는 그 전기로 책을 보거나 난로에 사용한다.




출처: unchartedplay.com



숨이 차지만 나열한 위의 해외 사회적기업 사례는 국내에선 드물다. 물론 환경이 달라 그럴수도 있지만, 세계 사회적기업들이 공유하는 그것이 없다. 사회적 목적 즉 어떤 사회 문제를 보고 그것을 해결해보자고 출발한 사람들보단, 인증을 받고 지원금을 받아보려는 사람들이 물을 흐리기 때문이다. 취약계층 몇몇 고용해 일자리 조금 채우고, 사회 서비스란 명목으로 지역에서 행사 한 번 하면 정부가 사회적기업이다고 인증을 해주는데 뭘 더 하겠나 말이다. 실제로 국내 사회적기업은 일부 업종이 이미 포화 상태이며 경연대회, 경진대회, 육성사업에서도 같은 것들이 쏟아진다. ‘정부에 팔리는 아이템경쟁이다.

 

물론 국내에도 좋은 사회적기업이 없는 것은 아니다. 또 정부의 정책이 부정적이지만은 않다. 단지 일자리만을 위해서라면, 그건 차라리 공무원 몇 명 더 뽑는 것만 못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또 누가 어떤 것을 사회 문제라고 했을 때, ‘그것을 어떻게 해결해볼까라고 대답하며 한 테이블에 앉아 논의하는 게 맞지, ‘그게 왜 사회문제인가라고 반문하며 사회문제를 평가하는 우스운 일은 그만했으면 한다. 많은 사람들이 사회적기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하는 건 좋지만, 사회적기업에 대한 진정한 이해가 더 먼저다. 사람들이 선명한 사회적 목적 없이 이곳에 뛰어드는 건 크게 우려할 일이다.


분명 우리에겐 사회적기업가가 필요하다. 사회적 목적은 추상적일 순 있지만, 바라보는 것은 선명해야 한다. 3세계 아이들의 발, 홈리스의 종이 박스, 아이들의 아침식사, 빈곤층의 눈, 남미 아이들의 축구공 그리고 콘돔. 선명하지 않은가? 사회문제라는 건 주관적이다. 지역의 현안부터 어떤 큰 체제까지. 사회적기업가 자신에게 가장 크게 다가오는 것이 사회문제이다. 이들은 누구나 보고 있는 것에 뛰어든다.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한다. 그 해결점이 기업의 조직을 가지고 영업활동을 통해 지속가능해진다면 그건 혁신이다. 탐스슈즈가 만든 ‘1+1 모델은 참 간단한 것이지만 저렇게 적용한 것은 혁신이다. 잡지를 만드는 것 역시 누구나 하는 생각인데, 홈리스를 통해 유통을 하고 판매원에게 50%이상의 대금을 주는 것은 혁신이다. 또 저렴한 안경을 만드는 것, 맥도날드 시스템을 병원에 도입해 빈곤층의 수술을 돕는 것, 전기를 생산하는 축구공을 만드는 것. 생각과 기술의 혁신은 사회적 기업을 지속가능하게 만든다.



출처: www.tomsshoes.co.kr




사이렌소리는 오늘도 들린다. 반면 사회적기업가들은 조용하지만 세계 곳곳에서 불을 끄고 있는지 모른다. (재난의 현장으로 달려가는 소방대원과 비교해서 ㅈㅅ….) 결국 남는 건 사람이 아닌가 한다. 한국의 사회적기업이 아직 시작 단계라는 건, 어쩌면 더 많은 사람들이 그 자리를 채울 수 있다는 말이 된다. 김훈이 소방대원을 보고 안도한 것처럼, 인간의 인간다움이 아직 남아 있고 인간만이 인간을 위로할 수 있다는 단순명료한 진실을 사회적기업가를 보고 확인한다. 세계 곳곳에서 활약하고 있는 동료 사회적기업가들에게 고맙다.

 






※ 월간잉여 12월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