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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잉은 불안하다 (박혜민)


얼마 전 국민 건강보험공단에서 건강 보험증이 우편으로 왔다. 지난 학기, 중학교 기간제 교사로 일하면서 떨어져 나갔던 건강보험이 다시 부모님 밑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기간제 교사로 혹은 프리랜서 웹디자이너 등의 일로 생활하고 있으나, 4대 보험을 보장해 주는 곳에서 6개월 이상 지속적으로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의 건강보험은 부모님께 떨어졌다 붙었다를 반복하는 실정이다. 독립되었다가 다시 붙었다를 반복하는 내 건강 보험증이 내가 처한 사회적 현실일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일까? '나는 과연 불안한가?' 라는 질문에 '나는 불안하다' 보다 '나는 불안해야지만 마땅하다' 로 답하려 한다. 나는 다른 사회 구성원들이 보기에 사회에서 제시한 내 나이 또래의 기준에 도달하지 못했다. 천성적으로 긍정적인 성격에 나름 웹디자인도 할 수 있겠다 교직이수도 했겠다 일이야 하면 되고 마음 먹고 일하면 요즘 세상에 굶어 죽지는 않는다며 '작업'이라는 것을 하고 있지만, 나의 이러한 태평함은 내 주변 사람들을 더욱 불안하게 만든다. 나는 아직 사회가 나에게 기대하는 적정량을 성취하지 못했기에 당연히 불안해야 마땅하며, 만약 불안해하고 있지 않는 다는 사실을 드러냈을 때 사회에서 소외되고 마는 '예술가' 라는 위치에 있는 것이다.



경제적인 요인과 사회에서 예술가를 대하는 인식
20대 후반으로 당연히 성취해야 하는 사회적이고 경제적인 요구들이 있다. 얼마 전, 동창들과 만나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모두들 적금에 주택청약 예금 등 머지 않아 다가 올 크고 작은 이벤트와 미래를 대비해 많은 것들을 준비하고 있었다. 현재 경제적으로 먹고 살만하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내 나이 또래가 마땅히 준비해야 할 것들... 즉 현재 생활이 아닌 +α 을 준비하고 있지 않으니 나는 불안해야만 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다. 사회에서 예술가를 대하는 인식 또한 내게 불안을 강요한다. 아는 윤모 작가가 우스갯소리로 자주 말하는 일화가 있다. 본인이 무슨 일이 있어 경찰서에 갔는데 경찰아저씨가 직업에 대해서 물었다고


"아저씨 직업이 뭐예요?"

"저요? 저 미술가인데요. 화가요."

"아니 그러니깐 그것 말고 직업. 직업이 뭐냐니깐"


사전에서 '직업'의 정의를 찾아보니 직업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따라 일정한 기간 동안 계속하여 종사하는 일'이라고 한다. 현재 나는 예술가로서 경제적인 활동을 전혀 하고 있지 않으니 나의 직업은 예술가가 아니며, 상황에 따라 시시각각 바뀌는 기간제 교사, 비정규직 프리랜서 디자이너, 미술관 관광 안내자 알바생, 때로는 백수가 나의 직업이다. 얼마나 불안해야만 하는 상황인가! 한 학기 동안 미술 선생님으로 일했던 중학교 마지막 회식 때, 많은 동료선생님들께서 나의 불확실한 장래에 대한 걱정을 대신 해 주셨다. "다음 학기에는 뭐해요?" " 저 우선은 미술 작업을 하려고요." "아이고. 다른 학교 아직 안 알아봤어요? 좋은 일이 있어야 하는데 큰일이네." 등등.




알랭 드 보통 <불안>(2011)




얼마 전 서점에 가 보았더니 알랭드보통의 '불안'이라는 책이 베스트 셀러로 올라와 있다. 이 책은 철학적 사회적 참조들과 함께 우리 사회에서 '행복'하게 사는 법, '불안하지 않는 법'에 대해 분석하고 해법을 제시한다. 그런데 알랭드보통이 불안을 대처하는 해법으로 '예술'과 '보헤미안'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널드의 말에 따르면 위대한 예술은 구름 잡는 이야기이기는커녕, 삶의 가장 깊은 긴장과 불안에 해법을 제공하는 매체이다. 예술이 아무리 비실용적으로 보일지 몰라도, 예술은 무엇보다도 존재의 부족한 부분을 해석하고 그 해법을 제시할 수 있다. 자신이 하찮은 존재라는 생각 때문에 느끼는 불안의 좋은 치유책은 세계라는 거대한 공간을 여행하는 것,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예술 작품을 통하여 세상을 여행하는 것이다.




얼마나 아이러니 한 이야기인가? 우리 현대 사회에서 불안을 감소시키는 해법은 예술이지만 예술가들은 불안해야 마땅하다고 이야기하고 있으니 말이다.


















※ 월간잉여 1월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