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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4월의 크리스마스 (측쿠시)


<잉집장 주> 작년 크리스마스 때 가졌던 모임 후기글을 늦게나마 올려본다. 벚꽃이 피는 4월 중순이지만늦었다고 생각할 때는 정말 늦을 때(feat.박명수)라지만.



1225일 오후 430. 손이 시려서 휴대폰을 꺼내 장소 검색조차 할 수 없는 혹한의 날씨에 30분 째 모임 장소를 못 찾아 서교동 일대를 빙빙 돌던 우리는 급기야 이런 대화를 하기에 이르렀다.

 


측쿠시 : 이렇게 추울 줄 몰랐어요. 얼른 집에 가서 몸이나 지졌으면 좋겠네.

잉집장 : 그러게여. 크리스마스 파티를 왜 하겠다고 했는지. 월잉 마감이나 할 걸.

측쿠시/잉집장/진수 님 : …….

 


일순간의 정적. 우리는 모두 후회하고 있었다. 크리스마스의 홍대는 연인들로 북적였다. 그리고 우리는 너무 추웠다. 양손에 든 장바구니는 왜 이렇게 무거운 건지. 어쩌다 우리는 크리스마스 모임 같은 걸 기획하게 됐을까. 추석모임이 발단이었다. 행사 준비는 대부분 청년당이 도맡아 했고, 눈치 없는 두 여자 - 잉집장과 나 -는 이름만 걸어놓고 놀기에 바빴다. 그래서 즐거웠다. 크리스마스 모임도 그렇게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마침 청년연대은행에서 비용 없이 흔쾌히 장소를 대여해주겠다고 했다. 12월 독자위원회 모임에서 30분 정도 잡담을 하며 헐겁게 계획을 짰다. 기획안까지 마련해서 세 번이나 준비모임을 가졌던 추석 모임에 비하면 상당히 나이브한 준비였다. 막상 행사 당일이 되자 두려움이 엄습했다. 과연 행사를 잘 마무리 할 수 있을까? 날씨는 또 왜 이렇게 추워! 기우에 불과한 고민이었다. 비록 촘촘히 짜인 일정은 없었지만 이 날도 잉여롭게 잘 놀았다는 그런 흔해빠진 후일담 얘기를 하려고 한다. 이게 다 알아서 준비하고, 알아서 놀아준 월잉인들 덕분이다.




크리스마스 모임 공지



530. 월잉인들이 모두 도착했다. 만잉또를 정하고 어색한 자기소개를 마친 뒤, 첫인상 게임을 했다. 첫인상 게임이란 각자 등 뒤에 A4용지를 붙이고, 거기에 해당사람에 대한 첫인상을 짤막하게 쓰는 것이다. 이 게임의 묘미는 남의 등에 쓰인 글을 보고 히죽댈 수 있지만 내 등에 써진 글은 알 수 없다는 데 있다. 훈훈한 칭찬부터 강렬한 디스까지 그 내용도 다양했다. 개인적으로, 이지성 님의 다크서클을 보며 왠지 힘내셔야 할 것 같아요. 힘내세요!’ 라며 위로를 가장한 디스 문구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오고가는 칭찬과 디스 속에 분위기가 서서히 풀리고 있었다.






한창 게임 중인 모습




뭐니뭐니해도 크리스마스 모임의 일등 공신은 월간잉여 독자위원장 양인모 님이었다. ‘월잉배 퀴즈를 위해 새벽 세시까지 PPT를 만드시더니 과연 깨알 같은 퀴즈를 준비해오셨다. 월간 잉여에 지금까지 기고한 사람들의 숫자를 묻는 문제나(정답 : 78. 새벽에 이걸 세고 앉아 있었다니!), 잉집장과 주고받은 카톡을 토대로 다음 중 잉집장의 말투가 아닌 것은?’을 묻는 문제에는 그의 엄청난 잉여력이 묻어있었다. (인모 님 존경스러움) 김불쏠 님과 윤성이 님의 활약으로 막판까지 4:4 접전을 이룬 가운데, 월간 잉여의 창간일(22)을 맞춘 김불쏠 님이 1등을 차지하셨다. 승부욕 돋는 불쏠 님께는 잉집장 3세트(잉집장이 사주는 밥, 캐리커처, 창간호)가 상품으로 주어졌다. 23등에게는 측쿠시표 야매타로카드 점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타로카드를 해설한 책을 보지 않고서는 점괘를 봐줄 수가 없는 쌩 야매인데도 사람들은 좋아라 했다. 덕분에 괜히 으쓱했다.



퀴즈를 끝내고 치맥을 했다. 이 날 술자리의 핫이슈는 단연 대선이었다. 대선 이후 멘붕을 겪으신 분들이 많았다. 다들 소통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박근혜 당선인에게 표를 몰아준 50대 이상과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던 20~40대 간의 세대 갈등을 걱정했다. 이번 대선을 민주화가 최고다, 아니다 산업화가 최고다부르짖다가 목이 타는 어른들에게 젊은이들이 물을 갖다 바치는 상황으로 묘사한 장도리 만화에 동의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그 만큼 젊은이들이 정치적 영향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노인이 젊은이의 미래를 결정하는 시대에 투표로 세상을 바꾼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김불쏠 님은 돈 되는 것만 바람직한 활동으로 여기는 부모님 세대가 문제라며 10만원 짜리 키보드를 구입했다가 부모님께 쩌리 취급을 받은 일을 떠올리며 분개하셨다. 잉집장은 여기에 격하게 동의했다. 우리가 하고 있는 잉여짓도 결국은 문화 콘텐츠를 풍성하게 하는 일인데, 부모님 세대는 이를 돈이 안 된다고 무시하고, 좋아서 하는 일이므로 노동이 아니라고 규정짓는 세태를 한탄했다.


윤성이 님은 부모님 세대는 먹고 사는 문제가 중요했으니까 그런 것 아니겠냐고 반문했다. 50대의 세계관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우리 세대의 가치관을 끊임없이 알리는 작업이 필요한 것 같다고 이야기가 마무리 되려는 찰나, 강다은 님은 부모님보다도 친구들이랑 얘기가 안 통하는 게 더 속상하다고 말했다. 네이버 뉴스를 메인 미디어로 삼으면서 지상파 뉴스와 종편을 취미로 보는 친구들과는 정치적인 공감대를 형성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진보는 진보대로, 보수는 보수대로 뭉쳐서 얘기를 하는 시대에 진정한 소통은 참으로 일인 듯하다. 서로를 이해하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고 있었다.




잘 안 보이겠지만 치맥 중임. 어두운 상황에서 폰카로 찍다보니 사진이 이모양.(사진 잉집장)




한 잔 두 잔 들이키다 보니 대화의 주제는 어느덧 연애로 옮겨갔다. 이 날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 대부분이 솔로였다. 짝사랑 중인 사람만 대여섯은 되는 것 같다. 이들은 야매 타로카드에서 연애운을 확인하려 들었다. 안타깝게도 K군 한 명만 빼고 모두 좋은 카드를 집어들지 않았다. K군은 계획대로만 실행하면 지금 마음에 품고 있는 분과 부농부농한 세월을 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점괘가 나왔다. 다들 그의 연애를 응원하며, 잘 되면 다음번 모임 때 꼭 커플로 나오라는 얘기도 해주었다. 하아. 진심으로 바라건대 나 포함 그 자리에 있었던 모든 분들이 커플로 모임에 나올 수 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만잉또를 밝히며 선물을 공개했다. 소설, 동화책, 수필, 만화책 등 각종 서적과 달달한 노래를 담은 CD, 그리고 향초와 직접 만든 책갈피 등의 선물이 오갔다. 단돈 1만원의 회비와 소소한 선물로 웃을 수 있었던 이번 크리스마스를 잊지 못할 것 같다.




선물 교환식. 잉권보호를 위해 최대한 얼굴이 안 보이게 사진 줄였음.(사진 잉집장)





10. 자리를 정리하고 청년연대은행을 나섰다. 양인모 님은 오늘 모임에서 새로운 관계를 얻었다며 흐뭇해했고, 김진수 님은 날 구제해줬다며 기쁜 마음을 드러냈다. 잉집장은 별 거 한 건 없지만 어떻게 다 진행이 됐네요라며 마지막까지 여유로운 마인드를 보여줬다. 그리고 사생대회 다시 보자는 제안을 했다. 잉집장 어떻게 책임지려고 이러심? 준비하면서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음? 에라, 난 모르겠다. 하지만 알아서 준비하고 알아서 노는 월잉인들과 함께라면 별 어려울 것도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 월간잉여 1월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