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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고양이와 산다는 것 (김송희)

서울에 올라온 지 10년째다.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와 월세 방을 전전하는 다수의 사람들처럼 나 역시 남산에 갈 때마다 생각한다. ‘, 저 많은 집 중에 내 집 한 칸 없구나서울에 집을 사겠다는 불가능한 꿈을 꾸는 것은 아니다. 지금 내 벌이로는 400년을 살아도 집을 갖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여전히 고향에서 올라오는 고속버스 안에서 서울특별시의 톨게이트를 지나며, 그 옆의 캐슬, 팰리스, 로얄*** 아파트 숲을 보며 생각하긴 한다. ‘, 저 집들에는 누가 살까?’


기숙사, 누가 재밌댔어?

서울에서 처음 살았던 공간은 기숙사였다. 5평도 안 되는 공간에 4명이 같이 살았다. 일본식 가옥구조를 참고했는지 그 좁은 공간에 2층 침대 2, 책상 4개가 아등바등 붙어있었다. 거기에서 내 공간은 왼쪽 2층 침대의 2, 딱 그만큼이었다. 그때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읽으며 공감지수 별 100’개 정도 눌렀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학교도 재미없는 마당에 기숙사는 더 노잼이었다. 혼자 뒹굴거리면서 TV도 볼 수 없었고, 같은 방 친구들과도 잘 맞지 않았다. 시트콤 <논스톱>에서는 기숙사가 그렇게 재밌어 보이더니...‘대학 가면 살 빠져’ ‘대학 가면 연애 할 수 있어와 함께 대학 기숙사는 즐겁다는 대학관련 3대 사기였다. <논스톱> 제작진은 지금이라도 우리에게 고딩들에게 사과해야만 한다.





<논스톱3> 출연진들




나는 아침, 점심 값을 포함해서 한 학기 기숙사 비를 다 지불하고도 일주일에 3일도 기숙사에 들어가지 않았다. ,,일은 고향에 내려가서 잤고, 나머지 날들도 서울에 있는 친구집을 전전했다. 어려서 그랬나보다. 분리되지 않은, 남들과 공유하는 공간은 나를 더 외롭게 만들었다. 2학기 때에는 부모님 몰래 고시원방을 얻었다. 창이 있는 방은 25만원, 창이 없는 방은 20만원, 나무합판으로 방을 한 칸씩 분리한 고시원이었다. 중앙 난방에 밤 9시 고시원 할아버지가 퇴근하면서 냉난방기를 다 꺼버리면 추위에 떨면서 자야했다. 대학가에 있는 고시원이었지만 대학생보다는 일용직노동자와 외국인노동자가 더 많았다. 옆방에서 새벽에 전화라도 하면 부스스 잠이 깼다.



그런데도 고시원 방에 누웠던 첫 날 밤, ‘, 서울에 나만의 공간이 생겼다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관에 누으면 이런 기분이 들까 싶을 정도로 작은 방이었지만, 그래도 나만의 공간이 생겼다는 게 행복했다. 그리고 고시원 생활 6개월 후 처음 서울에 내 방을 얻었다. 보증금 500에 월세 35만원의 원룸이었다. 처음 이사를 한 날, 부모님을 고향으로 내려보내고(?) 방을 대충 쓸고 몇 명이 거쳐 갔을지 모를 원룸 침대에 누웠다. 불을 껐더니 전에 살던 사람이 붙여놓은 야광별이 천장에 반짝였다. ‘, 여기는 나만의 우주구나’...도민준 씨도 없는 주제에 천송이처럼 완벽하게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남의 고양이와 산다는 것

지금은 룸메이트와 고양이 3마리와 산다. 그 사이에 2개의 원룸, 1개의 반지하 방을 거쳤고, 여전히 보증금 500만원에 맞춰 방을 옮긴다. 직장을 5년이나 다녀놓고 모은 돈이 이다지도 없다니, 스스로도 감복할 지경이다. 지금 룸메이트 언니와는 전혀 모르는 사이였다. 같이 살던 친구와 헤어지게 되면서 그 유명한 피터팬 카페에서 만났다. ‘고양이와 살고 있는데 괜찮을까요?’ 언니는 물었는데, 아니, 고양이라고 하면 요즘 2030 여성들의 핫 아이템 반려 동물 아닌가! 고양이와 한번 살아보고 싶은 로망이 있었던 나는 네넨, 좋아욤 ^^’이라고 야심차게 대답했다. 언니는 고양이 세 마리와 함께 이사왔다. 두 개의 방을 언니와 하나씩 나눠 쓰고, 아이들(고양이)은 거실에서 주로 기거를 했다. 생각해 보니 반려동물과 집 안에서 같이 사는 것은 처음이었다. 온 가족이 비염과 털 알레르기가 있어서 마당이 아닌 집 안에서 동물을 키워본 적이 없었다. 고양이는 듣던 대로 신통방통 요물이었다. 세 마리 모두 성격도 하는 짓도 달랐고 제각각 다 사랑스럽고 예뻤다.









고양이와 함께 사는 삶은 참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집에 들어왔을 때 뒤뚱거리며 나를 반겨주는 생명체가 있다는 게, 밤이면 밥달라고 울거나 뛰어다니고 보드라운 털을 다리에 부비부비하는 귀요미와 사는 건 꽤 행복했다. 게다가 내가 주인이 아니니 똥을 치운다거나, 밥을 챙겨주는 등귀찮은 건 다 주인인 언니가 하도 나는 예뻐하기만 되는 고양이 라이프’!! 우왕!! 신난다!!



그런데 문제는 피부병과 비염이 재발했다는 것이었다. 아침이면 코를 푸는 상쾌한 소리와 하루를 시작했고, 방은 코푼 휴지로 수북했다. 피부병이 생겨서 벅벅 긁다보니 온 몸에 울긋불긋 상처가 생겨서 목욕탕에 가면 같은 탕에 들어가 있던 사람들이 나를 슬슬 피했다. , 내가 유리겅쥬님인지 몰랐넹.

 


집에는 고양이 오줌냄새가 진동을 했고, 하루 종일 코를 팽팽 풀고, 온 몸을 벅벅 긁으면서도...나는 2년 째 남의고양이와 그 주인은 룸메이트 언니와 같이 살고 있다. 내가 워낙 무던하고 게으른 덕분이기도 하고, ‘우다, 불이, 펫시고양이 세 마리와 너무 정이 들어서이기도 하다. 눈이 빨개지고 기침을 하고 코를 풀면서도 이 녀석들이 너무 예뻐서 주체를 못하겠다. 매일 껴안고 뽀뽀하느라 바쁘다. 그리고 무엇보다....나는 이사가 지겹고, 가난하다.

 


가난뱅이의 동거방식

이사 한번 하려면 돈이 많이 든다. 부동산 복비도 들어가고, 이삿짐센터 비용도 들어간다. 오래 써서 낡은 집기들을 버리고 새로 장만을 해야 하고, 가스도, 케이블도 다 새로 설치해야 한다. 여윳돈이 없는 사람에게는 이사하는 것 자체가 엄청난 출혈이다. 모은 돈으로 평수를 늘려서 이사 하거나, 내 집을 사서 가는 것도 아니고...계약기간이 만료된 것도 아닌데, 고양이 알레르기 때문에 이사를 나가기에는 그냥 참고 말지싶어진다.

 

여전히 나에게는 이라는 공간이 중요하다. 나만 있을 수 있는 공간이 꼭 필요하다. 집 밖에서 아무리 힘들고 괴로웠어도 문을 닫고 나만의 우주에 들어오면 안심된다. 주말에는 밖에 나가기도 싫다. 털이 날리기는 하지만 내 방에는 내가 좋아하는 모든 것이 있으니까, 아무도 내 마음을 침범하지 않으니까..안심할 수 있으니까...



오픈된 공간에서 4명의 룸메이트와는 못살겠다던 내가 3마리의 고양이, 룸메이트와 2년을 살고 있다. 이 차이가 무엇일까. 이 아이들은 내 마음을 침범하지 않는다. 완벽하게 타인으로 만난 룸메이트 역시 마찬가지다. 그리고 나만의 방이 따로 있다. 고양이와 함께 사는 것은 상상했던 로망과는 전혀 다르다. 아이들은 예쁘고 사랑스럽지만 털도 많이 날렸고, 똥도 많이 쌌고, 집 곳곳에 구토(헤어볼이라고 해서 그루밍한 것을 토해내는 것)도 많이 했다. 빨래와 구두에 오줌을 싸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이 애들과 함께 살고 있다. 남의 고양이 세 마리와...“우다야, 누나 왔다, 아이구 내 새끼...” 내 새끼도 아닌 남의 고양이는 집으로 들어오는 나를 향해 뒤뚱뒤뚱 걸어온다.


 

에필로그

고양이 얘기로 훈훈하게 글을 마무리한지 며칠 뒤, 병원에 갔다. 의느님이 무슨 아가씨가 이렇게 될 때까지 병원도 안 왔냐고, 상처는 이제 남을 수밖에 없고 앞으로 병원도 1년 정도 다녀야된다고 했다. ‘양진이라는 피부병이고, 원인은 고양이털로 추정된다. 지금 있는 상처는 다 남아버려서 어쩔 수 없고, 이대로 방치하면 온몸 전체에 더 퍼진다고 의사 양반은 겁을 줬다. 난 평생 고양이 못 키울 팔자였나봉가. 이 사실을 안 엄마는 얼른 이사 가라고 노발대발. 엄마의 도움을 받아 결국 이사를 가기로.






김송희 flymoon6@naver.com

박리다매로 글씁니다. 알바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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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월간잉여 16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