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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터뷰

고캔디 트리비아(쌀)

20148월 모일, 뉴욕의 한인타운 근처에서 고캔디를 만나 인터뷰를 했다. 어떻게 하다 보니 인터뷰를 하게 됐는데, 사전에 기획된 것은 아니었다. 나와 캔디는 초면이었고, 예정에 없던 만남이라 선물을 준비하지 못했는데 마침 가방에 월잉이 두 권 있었다. 그 중 하나를 선물로 건네고 대화를 나누다가 문득 월잉에 인터뷰를 싫으면 어떨까 하는 이야기가 나왔다.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캔디도 같은 생각이었다. 이 인터뷰는 그 결과물이다. 대화는 한국어로 진행됐다. 형식은 인터뷰지만, 사실은 그냥 수다를 옮긴 것에 불과하다. 심지어 녹취를 하지 않고 메모한 것에 기초해 내용을 정리하고 다듬었다. 그러므로 이 글을 옮겨실을 언론은 없을 것으로 기대한다. , 이 글의 최종 원고는 캔디의 확인을 거쳤음을 밝힌다. 잉터뷰

 







캔디, 누구냐 넌?

: 뭐하는 분인가?

캔디 : 그쪽이야말로? 왜 인터뷰를 하려고 하나? 기자인가?

: 기자는 아니고...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고 좋아요 갯수를 확인하면서 근근히 먹고 사는 백수다.

캔디 : 이상한 사람인 것 같다.

: 부정하진 않겠다. 인터뷰에 응한 이유는?

캔디 : 글쎄, 재밌을 것 같아서? 월잉에 싣는다고 하지 않았나? 읽어봤는데 맘에 드는 잡지였다.

 

캔디를 만나게 된 사연을 설명하면, 이 수다를 정리한 나는 8월부터 넉 달간 미국에서 체류할 일이 생겼다. 미국 온 김에 여행을 다니다가 뉴욕을 들르게 되었는데, 캔디가 뉴욕에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물론 아는 사이가 아니었다. 혹시나 해서, 한번 만나고 싶다고 페이스북 메시지를 보냈다. 놀랍게도 답신이 왔다. 그러자고.

 

: 자기 소개를 부탁한다.

캔디 : 지금(20148월 인터뷰 당시)은 공식적으로는 하는 일이 없다. 뉴욕에 살고 이름은 고캔디. 한국계 미국인이다.

: '캔디'는 주민등록상 이름인가?

캔디 : 한국 주민등록은 말소된 걸로 안다. 한국에서는 고희경이라는 이름을 쓰긴 했다. 캔디가 본명이다. 성은 Koh, 이름은 Candy.

 

캔디는 한겨레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캔디라는 이름은 어머니가 만화 들장미 소녀 캔디’(들장 미소녀 아님)에서 보고 따 온 것이라고 밝힌 적이 있다. 참고로 이 애니메이션의 일본판 원제는 キャンディキャンディ, 1975년부터 1979년까지 연재한 만화책을 원작으로 한다.

 

: 엄마가 지어준 것이라고 하던데 진짜 딸 이름을 사탕이라고 지었나?

캔디 : 퀴즈를 하나 내지. 만화 캔디에서 캔디는 캔디의 풀네임이 아니다. 그럼 캔디의 풀네임은 뭘까?

: , 캔디 풀네임이 님 미국 주민등록상 풀네임임여?

캔디 : 노코멘트.


캔디, 능력

: 학위가 두 개라고 들었다.

캔디 : 학부는 문학하고 조형예술 복수전공했고, 석사는 미술비평을 전공했다.

: 뉴욕에서 대학 다니는 게 쉬운 일은 아닐것 같은데. 머리가 좋은 편인가?

캔디 : 여러 일을 했지만 어쨌든 공부가 제일 쉽더라. 피는 못 속이는 거 같다.

: 피라고 하면.

캔디 : 그러니까 그 사람(고승덕 변호사) 쪽 피 말이다. 생긴 것도 많이 닮지 않았나? 엄마보다는.

 

이야기를 하는 캔디는 담담하게 웃었다. 캔디는 고승덕 변호사를 그 사람'이라고 불렀다. 캔디 자신에게는 부녀관계라고 할 만한 기억도 느낌도 없는, 타인에 가까운 존재이므로.

 

: 생각보다 한국말을 잘하는데? 아니, 그런 말조차 필요없을 정도로 말하는 것만 보면 사실상 한국사람인데? 그냥 이중언어 사용자라고 보면 되나?

캔디 : 보스턴에서 태어났고 미국에서 한동안 살다가 몇 해 뒤에 한국으로 들어갔다. 그 뒤로 98년까지, 초등학교 4학년 될때까지 한국에서 살았고 엄마도 한국사람이니까. 못할 까닭은 없다.

 

: 그렇다면 언론 인터뷰를 굳이 영어로 한 이유는? 처음 올린 글부터 모든 서면 인터뷰를 영어로 했다. 남조선테레비...가 아니고 TV조선과의 육성 인터뷰도 영어였고. 그 인터뷰에서 저음의, 아주 쉬크하면서 뉴요커스러운 목소리가 의외였다.

캔디 : 그게 왜 의외인가.

 

: 나는 들장미 소녀 캔디밖에 모르니까.

캔디 : 뭐 이런 목소리도 괜찮지 않나? (웃음) 한국어가 모어이긴 하지만, 그래도 영어가 내겐 1언어니까 더 편하고 정확하다. 한국어로 하면 말실수할까봐 영어로 한 거다. 지금도 한국 영화나 드라마는 영어자막 없이는 잘 못 알아듣는다. 원래 잘 안 보기도 하고. 비슷한 맥락에서 정서적으로 불편한 사람과 한국어로 대화를 나누는 경우도 잘 안 들린다. 마찬가지로 한국어로 긴 글을 못 쓴다. 영어로는 문제가 없지만.

 

: 영어로 얼마나 잘 쓰나?

캔디 : 전공이 미술비평이니까. 사람들을 만나면 줄곧 스스로를 작가라고 소개해왔다. 그 말이 부끄럽지 않게 잘 쓴다고 자부하는 편이기도 하고.

 

: 그렇다면 글 쓰는 일을 할 생각은 안 했나?

캔디 : 당연히 했다. 그래서 실제로 이곳저곳 자리를 알아봤다. 여기는 자기소개서 쓰고 면접보고 이러는 것보다, ‘피치라고 해서 글의 도입이나 요약을 미리 써서 잡지사 같은 곳에 먼저 보낸다. 그러면 에디터가 그걸 읽고 나머지 원고를 청탁하는 식이다. 그렇게 업계에 발을 들이는 거지. 그런데 몇 번이나 글을 보냈지만 답장을 하나도 못 받았다.

 

: 하나도? 뉴욕은 예술의 쓰레기통이자 화수분 아닌가. 기회가 많을 것 같은데.

캔디 : 기회는 많다. 하지만 그 기회를 노리는 사람도 많다. 관련 일을 하는 사람은 비교적 쉽게 만날 수 있지만, 일을 구하기는 어렵다. 계속 거절을 당하면서, 더 정확히는 아예 답장도 못 받으면서 좀 멘붕이 왔었다.

 

: 그럼 석사과정으로 미술비평 전공을 선택한 건 그런 직업적 고려 없이 한 건가?

캔디 : 학부 때 프로젝트로 만든 작품이 있다. 아는 지인이 그걸 놓고 얄짤없는 비평을 해줬는데, 거기에 상처를 크게 받았다. 꽤 셌다. 그 사람은 프로 비평가였는데, 하나도 안 봐주고 무지막지하게 깐 거다. 나중에는 날 생각해줘서 그렇게 한 것이라는 걸 알았지만, 그때 너따위, 나도 공부해서 이겨주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미술비평 대학원과정에 등록했다.

 

: 오호. 그래서 어떻게 됐나.

캔디 : 말한 것처럼, 과정 마치고 프로가 되려고 노력은 했지만 잘 안 됐다. 물론 단순히 그 사람의 비평이 미술비평을 전공하게 된 전부는 아니다. 오래 전부터 글쓰기는 나한테 중요한 일이었고, 마찬가지로 미술도 중요했다.

 

: 그래서 학부 전공을 문학하고 조형예술로 한 건가.

캔디 : 지금도 사람들한테 작가라고 소개한다고 앞에서 얘기했지만, 이미 어렸을 때부터 사람들이 장래희망을 물으면 화가 아니면 작가가 되겠다고 해 왔었다. 미술비평은 그 두 가지가 만나는 지점이랄 수 있으니까.

 

: 그럼 평소에 글은 자주 쓰나?

캔디 : 매일 빠뜨리지 않고 쓴다. 초등학교 때 매일 일기 쓰라고 숙제를 내 주지 않나. 나는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매일 글을 쓴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줄 생각으로 그랬던 건 아니다. 미술비평을 하기 전에는 전엔 다른 사람들한테 내가 쓴 글을 보여준 적이 거의 없다.

 

: 설마.

캔디 : 그런 글을 쓸 때는 아주 심하게 자기검열을 한다. 친구들한테만 공개되는 평범한 거라도 몇번이고 다시 쓰고 올린다.

 

: 재미있다. 나는 보통 글을 쓰면 대부분 다른 사람들이 볼 것이라는 전제로 쓰는데. 글 말고 다른 분야에는 관심이 없었나?

캔디 : 서전(Surgeon)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다.

 

: 서전이면외과의사? 수술하는?

캔디 : 손으로 하는 일을 좋아한다. 수술이 고도의 예술과도 닿아 있다고 생각했고. 실은 학부 때 영문학하고 조형예술 외에 프리메드(의예과)까지 전공을 세 개 했었다. 그런데 너무 힘들기도 하고 학년이 높아지니까 수업 안 겹치게 시간표 짜는 게 불가능해져서 프리메드는 포기했다.

 

 

캔디, 20145월 말일

: 사람들에게 자기 글을 잘 보여주지 않는 편이라고 했는데, 5월의 그 글은 어떻게 쓰게 된 건가? 수많은 사람들이 보게 될 글이라면 처음부터 쓰는 것 자체가 망설여졌을 것 같은데.

캔디 : 원래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기자회견을 보고 써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기자회견이란 교육감 선거 닷새 전인 530일 고승덕 후보가 아들 문제는 건드리지 말아 달라. 법을 위반했으면 책임을 지겠다고 말한 뒤 울먹거린 일을 말한다. 당시 선거전이 치열해지면서 조희연 후보 측에서 고 후보의 아들, 즉 캔디의 남동생 이 한국과 미국 이중 국적을 갖고 있으면서 병역 기피를 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고승덕 후보는 아픈데 건들지 마셈. 나 삐짐여 ㅠㅠ이러면서 답변을 거부하고 회견장을 나가버렸다.

 

: 특히 어떤 부분 때문이었나?

캔디 : 사람들은 가족에 대한 것을 이야기해서 내가 그런 글을 썼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가 한 행동을 보면 그는 교육감으로 부적격이다. 단순히 개인적인 감정이 아니었다. 무언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 그냥 무시할 수는 없었나.

캔디 : 그럴 수가 없었다. 그가 만약 국회의원에 출마한다면 그러거나 말거나 상관이 없다. 그러나 내가 그 글에서 언급했듯이, 교육감은 국회의원과 달리 교육을 책임지는 사람이다. 상황이 다르다. 자식에게 아무 것도 안 한 사람이 뭔가를 했다고 거짓 주장을 한다. 그런 사람이 교육감에 당선이 된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 뭐 학생들하고 학부모들 위해서 잔뜩 하겠다고 말 하고 아무 것도 안 하거나, 아니면 쓸데없는 짓만 하고 뭔가 그럴듯한 일들을 했다고 허풍 떨겠지.

캔디 : 진실을 알려야 된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내가 개인적인 감정으로 그 사람을 공격했다고 날 비난했는데, 그런 사람들은 오히려 내 글을 읽지 않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직접 인용을 하면, 캔디는 531일의 글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번역본이 있지만 원본을 읽고 손수 번역했다. "그러나, 고승덕의 교육감 출마는 도를 넘은 것입니다. 여기서 제가 침묵하는 건 서울 시민들을 속이는 것과 같은 일이 될 것이구요. (줄바꿈) 제가 어렸을 때 그는 저를 교육시키지도 않았고 심지어 대화도 거의 나누지 않은 사람으로, 저는 서울 시민들께 그가 교육감직에 부적합하다는 것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교육감직이 한 지역의 교육 정책과 제도를 다루는 역할이라면, 고승덕 씨는 그에 관한 한 문외한입니다. 자신의 혈육조차 가르칠 생각이 없는 사람이 어찌 한 도시의 교육 수장이 될 수 있겠습니까?"

 

: 한글로도 읽고 영어로도 읽었는데, 멋진 글이었다. 미학과 논리를 어긋남 없이, 거침없이 내지르는 것이 느껴지는... 그 글이 화제가 될 줄은 알았나?

캔디 : 조금은?

 

: 공개적인 글을 써 본 적도 별로 없고, 게다가 한국인 독자를 상정하고도 영어로(...) 썼는데 화제가 될 거라고 예상했다니 의외다.

캔디 : 그 정도로 커질 줄은 몰랐다고 하는 게 맞겠지. 어느 정도 이슈가 될 것이라고는 짐작했다. 그래서 생각을 많이 했다. 글에서도 밝혔지만 굳이 로스쿨 입학을 앞두고 있다고 한 건, 글 자체의 공신력을 높이기 위해서였다. 미술 전공했다고 썼으면, 사람들이 그걸 어떻게 생각했을까?

 

: “예술하는 애들은 꼭 저렇게 튀려고 하더라.” 그렇게 말하면서 달이 아니라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주목하는 식이었을 것 같다. 실제로 언론이 프레임을 그렇게 몰고 가기도 했고. 가문 간의 불화라는 식으로.

캔디 : 글 쓰는 중간에 조희연 후보의 아들이 쓴 글도 읽었다. 좋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 글이 대비가 될 거란 것도 예상할 수 있었다.

 

너무 이야기가 무거워져서 주제를 좀 바꾸어보았다

 

: 혹시 애비메탈은 봤나?

캔디 : (웃음) 당연히 봤다. 심지어 핸드폰에 저장해놓고 가끔 듣는다. 만든 분께 고맙다는 메시지도 보냈다.

 




오랜만에 다시 보는 애비메탈



: 불편하진 않은지?

캔디 : 뭐가?

 

: 어쨌든 아버지 아닌가. 희화화되는 거 불편할 수도 있을텐데.

캔디 : 말했지만 그런 것을 느낄 관계가 아니다.

 

: 그렇군. 혹시 다른 합성 짤들은 봤나?

캔디 : (폭소) 당연히 봤다. 그것만 따로 모아놓은 걸 봤는데, 특히 춘리가 웃겼다. 마이콜 합성사진도 진짜 좋아하는데 특히 구석에 조그맣게 둘리가 있어서 더 웃기다.

 

: 취향이 있는 것 같다. (웃음)

캔디 : 그때 협박 메시지 비슷한 게 한참 많이 들어올 때였다. 며칠 동안 그거 보면서 힘이 많이 났다.

 

: 캔디, 전망

: 곧 로스쿨 입학을 앞두고 있다고 했는데. 지금까지 이야기에 비추어 보면 법률 공부를 한다는 게 조금 의외라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선택하게 됐나.

캔디 : 내가 서점 가는 걸 좋아한다. 반스 앤 노블에 책 사러 갔다가 엘에스에이티 코너가 눈에 들어와서 꺼내 읽었다. 재밌어 보이길래 하나 사서 풀어봤다. 꽤 재미있었다. 그러던 중에 친한 이모, 그러니까 엄마 친구지, 그 분이 이야길 듣더니 기왕 그럴 거면 로스쿨 시험 준비해보라고 해서 지원했다.

 

뉴욕도 엄마 친구가 중요하구나... 참고로 반스 앤 노블은 한국으로 치면 교보문고...지만 아마존에 밀려 맥을 못 추는 서점 체인.

 

: 그래서 붙었다고?

캔디 : 장학금도 받았다.

 

: 이모의 권유 외에 다른 계기는 없는 건가? 자기소개서를 썼다면 지원 동기에 엄마 친구가 입학을 권해서...라고 쓸 수는 없었을텐데?

캔디 : 내가 붙은 학교는 동부 쪽 로스쿨 중엔 괜찮은 편이다. 특이한 점이 학교에 패션 인스티튜션이 있어서 본인이 마음 먹으면 그쪽으로 특화시켜나갈 수 있다. 개인적으로 법률 전공을 예술 분야와 접목시키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얼마 전까지 갤러리에서 일을 했는데, 그때 소송이나 계약 관련 업무가 너무 허술하게 진행되는 걸 느꼈다. 그런 쪽에서 일을 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 정말 로스쿨에 가고 싶은 건가?

캔디 : 이것저것 이야기를 했지만 사실은 아직도 고민이 된다. 그럼에도 가야 된다고 생각한 건... 뭐랄까, 안정적인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 신기하다. 안정적인 걸 찾는 건 전형적인 한국에 사는 사람들한테만 해당되는 이야긴 줄 알았는데. 왜 한국에서 초등학생이 장래희망에 공무원 쓰고 왜 썼냐고 물으면 안정적이어서요라고 대답할 정도니까.

캔디 : (웃음) 그런가. 전문직이 가지는 장점을 나도 알고 있다. 그렇지만 여기도 변호사가 된다고 해서 무조건 잘 되는 건 아니다. 저어기 시골, 예를 들면 롱 아일랜드 같은 데 가서 일해야 될지도 모른다.

 

롱 아일랜드는 한국으로 치면월미도? 월미 아일랜드 자문 변호사.

 

: 하긴 미국은 오래 전부터 로스쿨 시스템이었으니까, 요즘 한국에서 나오는 이야기처럼 돈 못 버는 변호사도 많을 것 같다.

: 나도 그런 케이스가 될 수 있다는 거다. (웃음) 다만 여러가지 경험을 하면서, 또 공부가 적성에 맞으니까 해 볼만하다는 생각은 갖고 있다. 그런 생각도 했다. 변호사가 되면 법정에서 퍼포먼스를 하는 거다. 물론 법원에서 요구하는 부분은 다 지켜가면서 할 거다. 움직일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창조적으로.

 

: 파격적인, 센세이션 일으키는 그런 걸 말하는 건가?

캔디 : 아니. 퍼포먼스를 단순한 쇼나 지나치게 비장한 의식 같은 걸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내가 생각하는 건 그런 게 아니다. 무대에서 연기를 하듯이 어떤 주어진 과정을 밟으면서, 사람들에게 인상을 남기고 동시에 의미도 발굴해내는, 제대로 된 걸 하고 싶다.

 

: 기대가 되는데.

캔디 : 그치만 일단 로스쿨에 들어가면 내 인생에서 3년이 없어진다는 게 문제다. 엄청 바쁠 테니까. 지금 이야기하는 부분은 어쨌든 나중 일이다.

 

: 그래도 입학하면 공부는 잘 할 것 같은데.

캔디 : 내가 하는 것과 상관없이 로스쿨은 어쨌든 경쟁하는 곳이지 않나. 혼자 공부하는 거면 잘 할 수 있다. 그런데 경쟁이 주는 스트레스는 별개다. 내가 그런 걸 좋아하지 않아서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긴 하다.

 

맨첨 캔디를 직접 만났을 때, 나는 그의 단단한 중저음 목소리에 놀랐다. 세련된, 동시에 결코 만만해보이지 않는 느낌을 주지 않는, 그런 소리였다. 또 하나 예상밖의 사실은, 캔디는 생각했던 것보다 체구가 작았다는 점. 부상과 교통사고로 그만두기 전까지는 배구와 복싱을 했다는데 흔히 배구선수나 권투선수라고 하면 떠오르는 모습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보통 체구였다. 중저음과 보통의 체구, 이 두 가지 것들은 미안하닼-과 애비메탈로 수렴되는 일련의 사건들의 중심에 서 있었던 인물에 대해 한국의 대중들이 갖고 있었던 것과는 분명 대비되는 요소들이었다.

 

자기 영역에 대한 확고한 가치관이 캔디의 한 면모라면, 자기 이야기를 솔직하게 또 한편으로 유머러스하게 풀어내는 담백함은 캔디의 다른 면모였다. 공부하는 걸 좋아하지만 경쟁은 싫어한다는 이야기는 왠지 내 얘기 같기도 해서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실상은 나였다면 경쟁 없이는 아예 공부 따위 안 하고 말았겠지만.

 

: 마지막으로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캔디 : 전에 한겨레 인터뷰에서도 쓴 얘기지만 한국 가서 맛있는 거 먹고 싶다. 확실히 당분간은 못 갈 것 같아 슬프다.

 

: 뉴욕에 어지간한 식당은 다 있지 않나?

캔디 : 한국에 없는 게 훨씬 많다. 가격도 비싼 편이다. 한국 목욕탕도 가고 싶다. 때도 밀고...

 

: 때를 민다고? 뉴요커가?

캔디 : 이상한가? 여기서도 한달에 한두 번 꼭 가는데. 여기 사람들도 많이 온다. 흑인 아줌마들 와서 소금으로 각질 제거한다고 소금 문지르고 그러는 것도 봤는데 그냥 때 미는 게 최고다.(웃음)


: 뉴욕에 사는 한인들이 이거 읽고 사우나에서 알아볼지도 모른다. 조심해야겠는데.

캔디 : 그럼 이 이야긴 빼줘요ㅋㅋㅋ

 

때 미는 이야기(...)를 하는 대목에서 캔디는 웃었다. 물론 나는 이 이야길 빼지 않았다. 그거야말로 캔디가 어떤 사람인지를 잘 보여주는 부분이었으니까. 인터뷰가 끝나고 우리는 기회가 되면 다시 만나자는 조금은 뻔한 인삿말로 작별을 했다. 다시 만나지 못할지라도 그걸로 좋은 만남이었다고 생각하면서. 요컨대 한가지는 명확하다. 이 기나긴 수다는 나에게, 그리고 이 글을 읽을 모든 이들에게 하나의 선명한 인상으로 남으리라는 것. 마치 캔디가 지난 531일에 쓴 그 글이 우리에게 강렬한 인상을 선사했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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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월간잉여 17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