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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터뷰

투표충은 아닙니다 - 강준만

변화에 유연하다. 목소리가 크다. 표정이 다양하다. 강준만이다.

10월 중순, 그가 교수로 재직 중인 전북대에 찾아갔다. 인터뷰, 사진 잉집장

 

 


 

잉집장: 예전에는 인터뷰를 정말 안 하셨다. 요즘에는 인터뷰 기사를 좀 더 많이 접할 수 있어서 좋다.

강준만: 내가? 인터뷰 안 한 것은 아주 옛날인데.

 

그래도 TV 출연은 여전히 안 하신다.

막 거부하고 그러는 것은 아닌데. 얼마 전에도 TV에 한 번 나갔다. 근데 또 나와 달라고 얘기는 안 하더라고(웃음). 막 요청이 쇄도하는데 내가 거부하고 그러는 것은 아니다. 비디오형 인물은 아닌 것 같다. 그래도 하나 장점이 있다. 목소리가 크다.

 

자기 자신이 화제의 중심에 있고 싶다는 욕망은 적은 편 같다. 자기 자신보다 의견을 알리고픈 욕망이 더 큰 느낌? 조지오웰이 네 가지로 분류한 글쓰기 동기 중, 님은 역사적인 충동과 정치적인 동기가 큰 것 같다고 느꼈다.

그렇게 말하면 너무 거창하다. 그것은 나중에 갖다 붙이는 명분이지, 이렇게 말하면 모양이 안 나는데(웃음) 그냥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쓰다 보니 그렇게 된 거다. 내 생각이 주류가 아니라고 느낄 때가 많았다. 사람들이 왜 그것에 대해 말하지 않는지 답답했다. 그래서 썼다.

 

그런데 SNS는 안 하시고?

너무 바쁜 피드백을 해야 하는 매체는 나와 안 맞는다. SNS는 부지런해야 한다. 개인의 취향에 따라 어떤 일에 부지런하고 어떤 일에 게으르냐가 갈린다. 나는 글을 쓰는 것에 부지런하고 그밖에 일에는 무지무지하게 게으르다. 교수라는 것이 글쓰기 유리한 요건 같다. 글 쓸 시간도 있고, 책 사볼 수 있는 경제적 능력이 있다. 만약 직업이 프리랜서였다면 나도 주목경쟁에 뛰어들 수 있겠으나 교수라는 조건이 주는 여유 때문인지 그런 압박은 없는 것 같다.

 

자랑하시는 건가.

내가 지방대 정교수 하려고 했던 시절은 지방에서 정교수 자리가 미달 나던 때였다. 지금과는 상황이 달랐다. 내가 잘나서 된 것이 아니다.

 

그 당시 비주류적인 선택을 하셨다는 말씀 같다. 남과 다른 선택을 하고, 그 선택에 만족하며 평화롭게 사는 것은 자존감과도 연관이 있는 것 같다. 자존감이 높아 보인다는 말이다. 혹 잘생겨서 자존감이 높은 것은 아닐까? 젊은 시절 인기 많으셨을 듯.

(말없이 웃기만 함)

 

흥미로운 용어를 만들어 쓰신다. 강남좌파, 홍수 민주주의, 싸가지 없는 진보 등. 언어 감각이 뛰어나신 것 같다.

구어체로 글을 써서 그렇다. (글쓰기에 있어) 스타일리스트가 되지 못한다는 콤플렉스가 있다. 그래서 독자가 한정됐다. 글 자체의 분위기를 즐기는 독자들과 가닿을 기회가 없는 느낌이다. 근데 그런 생각을 하다가도 그런 류의 글을 쓰면 또 내가 아닐 것 같아서 지금에 만족한다.

 

최근에는 <청년들이여 정당으로 쳐들어가라>를 내셨다.

청년유니온, 민달팽이유니온의 활동 내용을 접하고 너무 내 생각과 같아서 기뻤다. 작은 것에서부터 현실을 바꾸어나가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반면 한국 정치판에는 거대담론 좋아하고 작은 일에 몰두하면 큰일은 언제 하냐는 발상들이 만연하다. 개인적으로 박근혜 정부 어쩌고이런 것에 이제 질렸다. 그런 것 때문에 야당 지지율이 반토막난 것 아닌가?

지금 가장 문제는 시민 없는 민주주의라는 것이다. 정치인들이 침 퉤퉤 뱉어놓고 시민들은 정치에 발 디디지 못하게 막는다. 하지만 시민들이 지역 정치인 말 한마디에 이의제기하고 의정평가에 당원들이 활발히 참여한다면? 예컨대 오픈프라이머리에 대한 반대 논리도 튼실하지만, 청년과 지역주민 반 이상이 (오픈프라이머리를 통해) 정당을 감시한다면 해볼 만하지 않겠는가.

 

곧 총선과 대선이 다가온다. 투표를 강조하는 사람들을 투표충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어봤는가? 나는 우파꼰대는 노력충이고 좌파꼰대는 투표충이라는 말을 접한 적 있다. 혹시 이 책은 투표충의 입장에서 쓴 글인가? 청년들의 총선과 대선 참여를 독려하기 위한.

투표충재밌는 말이다.(웃음) ‘이라는 언어를 쓰는 사람들의 문제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문제라고 본다. ‘어렵겠지만 오래 걸리더라도 나아지겠네라는 희망이 있어야 하는데 출구가 없어 보이니 답답하고 성질나는 마음에 유머코드를 넣어 그런 말을 쓰는 것 같다. 나도 지방문제 얘기하면 빡친다’. 그래도 여유를 가지려고 애를 쓴다. 그래야 내 에너지를 지킬 수 있으니까. 이번 책도 당장 한국 사회가 바뀔 거라는 기대로 쓴 책은 아니다. 몇 십 년을 바라볼 일이다.

(그런 맥락에서) 나는 다음 총선이나 대선에 큰 관심이 없다. 우리나라 정당은 평소에 개판 치다가 시험 전에 벼락치기 공부한다. 예를 들어, 내년 총선이 아니면 민주당 혁신위가 들어섰을까? 유권자도 이상하고 언론도 웃기다. 무대 위에 세워놓고 장기자랑 하는 것 구경하고 있다. 매번 난항이네 어떠네 보도하는 것도 웃기다.

정권 달라져도 상관없는 구조를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고 본다. 노무현 정권 때 그런 글을 썼다. 공영방송 선임권을 시민사회에 주자는 글. 방송위에 수천 명의 시민이 참여한다면 로비가 안 통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노무현 정권 때는 방송 공정성에 대해 얘기하는 진보적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이명박 정권 들어서야 방송의 권력성을 얘기했다. 진보 보수 상관없이 정치적 중립 영역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가 잡았으니 우리 맘대로 끌고 갈래같은 식으로 매사 중요 이슈 처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지방문제 생각하면 빡친다고 하셨다. 나는 부동산 문제 때문에 빡친다. 서울에서 먹고 살기 너무 힘들다. 탈서울에 대해 많이 생각한다. 전주로 삶의 터전을 옮기는 것은 어떨까? 추천하심?

하지만 지금 전주에 일자리가 없다.

 

일무룩.

 

그래서 지방 출신들이 서울로 올라가 버는 돈을 원룸에 다 꼴아박는것이다. 상당수는 수도권 빈민층으로 전락한다. 서울 달동네에 지방에서 올라와서 힘들게 사시는 분들을 취재해보라. 서울의 빈민층은 이익단체에 목소리 내기도 힘들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니 목소리 낼 여력도 힘든 것이다. 지금 전라북도의 인구는 계속 줄고 있다. 예전에 252만 명이었는데 지금은 내가 계산해보니 186만 명쯤 된다. 인구증가율을 반영하면 400만 넘어야 하는데, 지방에 일자리가 없어서 인구수가 그렇다.

지방대학이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핵심이다. 대학 중심으로 하이테크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실리콘벨리처럼. 그런데 지방에서 지방대를 더 죽인다. 지방대를 지원해서 지역발전을 시키는 것보다는 지역에서 서울 명문대 진학하는 사람들을 보내는 공약을 내세운다. ‘학숙(지방자치단체가 지역 예산으로 서울에 짓는 기숙사)’ 짓겠다는 공약 같은 거다. 지역 인재의 서울 유출을 장려하는 것이다. 문제는 그렇게 지역에서 나간 인재는 돌아오지도 않는다는 거다. 소수가 금의환향 케이스로 돌아오지. 국회의원 금뱃지 달거나, 시장이나 군수 하겠다고 오거나, 아니면 늘그막에 고향에 대한 향수로 오거나. 아주 수가 적다.

 

사회적으로 상위 10%에 속하지 못하는 사람이 나머지 90%도 인간답게 고루 잘사는 세상을 만들자!’고 주장하기보다 노력해서 나도 10% 안에 들어가 갑질해야지!’라는 마음을 갖는 것을 보면 답답함을 느낀다. 그런 이상한 제도를 지지하는 지역 사람들도 그런 마음 아닐까?

한국은 집단주의, 공동체주의도 아니고 가족주의다. 내 가족의 안위가 최우선이다. 집단이나 공동체가 잘되게 하려는 게 아니라 집단을 통해 사익을 뽑아먹으려고 한다. 그리고 그런 모습들이 더 잘나오는 것은 지방이다. 서울 명문대에 많이 보내는 게 이 지역 발전에 도움이 되는 건가? 지방인재육성이 인재를 서울로 보내는 건가? 자녀를 서울의 대학에 보낸 가족의 행복도는 올라가지만 전북의 발전에는 도움 되지 않는다. 가족 개개인의 행복의 합산이 공동체의 이익과 같지 않다는 것이다. 경제학에서 구성의 모순이라고 불리는 오류다.

 

아직 서울과 지방간에 정책적 차별과 그에 따른 경제적 격차는 심하지만, 문화적 격차나 편견 및 혐오정서는 누그러진 것 같다. 우등/열등의 존재가 아닌 그냥 다름을 인정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느낌? 적어도 온라인에서는 그래 보인다. 특히 몇 년 전만해도 지역차별 및 혐오 발언을 온라인에서 많이 봤는데, 요즘에는 눈에 잘 안 띈다. 대신 성 갈등 내용이 온라인에 많아졌다. 그래서 메갈리아가 미러링 전술을 가지고 등장한 것일 테다.

어느 나라에서든 경제가 약해지면 이민자 등 가장 약한 존재를 괴롭힌다. 그게 비집고 나온 것이 너무 웃기니까 더 웃기는 것을 하겠다고 하는 것 같다. 메갈리아에 대해 제한적으로 지지한다. 못된 놈들에게는 비슷한 방식으로 그렇게 돌려주는 게 재밌지. 그러나 그게 대안은 아니다,

문제의 근원은 청년문제, 서열문제와 닿아 있다. 사실 청년문제는 청년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을 끌어왔던 시스템이 다 끝나서 무너졌다. 그걸 바뀌어야하는데 바꾸지도 않고 질질 끌고 넘어가다보니 그게 가장 약한 고리, 민감한 고리를 통해서 터져 나온 거다. 청년들을 잠수함 토끼나 탄광 속 카나리아에 비유할 수 있으려나? 사회에 구조적 문제가 있는데 나이 많은 사람들이 그런 얘기하기엔 지켜야 할 게 많아 입을 다물고, 청년은 가장 절박해서 그런 얘기를 막 하니까 그게 청년문제로 보이는 것 같다. 하지만 세대문제, 계급문제보다는 더 큰 문제는 개천에서 용 나는 모델이라고 생각한다. 박정희 개발독재 패러다임을 아직까지 끌고 가고 있다. 위에서 아래로, 대기업에서 중소기업으로. 이런 낙수효과 모델 말이다. 진보 역시 경제영역에서만 그것을 부정하지 정치, 사회 문제에서는 낙수효과를 지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회구조의 문제점을 개선하는 방안으로 기본소득제도가 요새 힙하다.

자꾸 편한 길을 택하는 것 같다. 물론 그것을 실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내 말은, 기본소득제도를 슬로건으로 쓰는 것에 대해 말하는 거다. 복지를 어떻게할지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유권자가 있는데 무엇만 얘기하는 느낌이랄까? 복지 주장하는 분이 정교하게 설계하고 입안하고 그런 걸 안하고 슬로건을 우선시하는 것은 무책임하다고 느껴진다. 작은 것이라도 승리, 성공을 해야 신뢰가 쌓이는데 자꾸 실패를 거듭하며 자꾸 큰 싸움, 새로운 것만 끌고 오는 것은 유권자들의 정치 혐오를 더 크게 만들 것 같다.

 

노동 개혁에 대한 생각도 궁금하다.

핵심은 임금격차다. 진보 쪽은 임금 격차에 대해 말하는 것은 금기로 한다. 불만 있는 사람들을 모아놓고 솔직하게 얘기해보자는 거다. 학벌, 학력, 돈 문제 어떻게 해결하나? 두 배 넘게 차이 나는데. 노동문제 해결을 위해 정규직이 어느 정도 양보할 부분도 있다. 하지만 야당은 자기들 표밭이라고 생각하는 쪽 건드리기 싫으니까 재벌만 건드린다. 그런데 그렇게 재벌만 비난하고 구체적 대안은 안 말한다. 이거 레퍼토리다. 이게 사람들이 신물 나는 지점인 거다. 갈등 없는 정치는 말이 안 된다. 그러나 갈등을 하면서 좀 더 진전된 안을 보여줘야 한다. 과거에 끌어왔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하는데 거기에 대한 답을 내리는 사람이 없다.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어떻게 만들 건가? 구체적인 일정과 전략도 없고 이전에 익숙해진 구호만 외치고 있다. 모든 싸움을 자본과 노동으로 이분화 하면서. 무조건 노동은 우리 편, 자본은 적, 이게 아니라 장기적으로 가자는 거다.

세월호 문제도 그렇다. 이것이 재발하지 않도록 무엇을 바꾸자는 구체적인 백서가 나와야 하는데 책임론만 지속적으로 얘기됐다. 지금까지도 박근혜의 7시간만 집중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게 핵심이 아닌 것 같다. 과잉정치화 됐다. 더 나아가, 안전을 위해서는 비용도 시간도 많이 든다. 우리 모두가 그것을 지불할 마음이 있는지 돌아봐야 할 것이다.

 

얘기 나누다 보니 너무 답답하다. 문제는 많은데 한국사회가 나아질 거란 전망은 안 보인다.

감성이 사회를 움직이는 부분이 크다는 것을 느낀다. 민주당 분당 건이 대표적인 사건이다. 열린우리당 창당을 반성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 감성의 흐름대로 간 것이었다. 그 때의 시대적 분위기로 가는 것이다. 그래서 행동경제학에 흥미를 느끼게 됐다. 베블렌이 행동경제학 원조다. 과시적 소비가 인정욕구 때문이라는 주장을 했다. 이성적 소비가 아니라는 거다. 정치도 마찬가지다. 사회를 개혁하기위해, 일단 사람들이 감성으로 움직인다는 것을 인정하자. 그런데 진보 세력은 유권자의 감성에 너무 무지하다. 무슨 말만 하면 모욕주고, 진보인 것으로 도덕적 우월감 갖고. 그런 데서 자기 존재를 증명하는 것 같다. ‘나 잘났어, 나 우월해라고 생각하며 겸손하지 않은 인간이 진보라고 할 수 있을까? 진보라면 약자에 대한 애정을 갖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고, 타협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행동경제학을 광고 분야에서 활용하는 사람이 많다보니 행동경제학이 욕을 먹는다. 우파적이라는 거다. 말의 기원을 따져서 보수면 안 본다는 이데올로기가 없어야만 개혁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학부 때 경영학을 전공했다. 그 사실이 인생에 어느 정도 영향을 주고 있다고 생각하나? 행동경제학을 기반에 둔,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는 전술· 전략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는 것이 경영학 베이스에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닐까 추측해봤다.

그런 건 나중에 전기를 쓸 때 남이 진단을 해주는 거지 본인은 의식하기 어려운 것 같다. 경영학이 영향을 미쳤다면 나로서는 우쭐하다. 얼렁뚱땅 배운 건데 영향을 받았단 말야?

생각해보자면 학부 때 했던 것에 별 흥미가 없었다는 얘기는 정통파들이 할 수 없는 얘기를 할 수 있다는 거다. 아웃사이더의 도발이랄까? 이런 것에 대단히 유리하다. 나는 학연, 학맥이 없다. 학부, 석사, 박사 모두 전공이 다르고 대학이 다르다. 학맥을 만들려면 계속 동대학원의 같은 과를 가야 한다. 그러고 나면 거기서 얻는 무엇인가가 있는 대신 자율규제, 자기 검열을 하게 된다. 스승이 있고 선배가 있으니까. 나는 그게 없다. 그런 점에서 다르다는 게 미치는 영역이 있다. 김동춘, 김창남 교수 좋아하는데 이 분들도 학부 전공과 석사 전공이 다르다. ‘좀 새롭게 보네?’ 싶은 사람들은 학부 전공과 다른 소속이라는 게 재밌다. 어쩌면 다음 책이나 논문으로 이에 대한 것을 쓸 수도 있다.

 

하루 일과가 궁금하다.

아침에 집에서 종이 신문 네 개를 본다. 조선, 중앙, 한겨레, 경향. 읽다가 궁금한 게 있으면 검색해본다. 주제 키워드를 만들어서 정보를 수집하고 분리한다. 뭐 검색하다가 흥미로운 거 생기면 가지를 뻗어 검색해보고. 그 작업으로 하루에 두 세 시간은 쓴다. 줄이고 싶은데 잘 안 된다. TV 프로그램은 프로야구를 즐겨본다. 그것도 거의 세 시간씩 매일 본다. 사실 야구를 정말 좋아하는 분들이 들으면 화가 나시겠지만, 야구 중계 TV를 틀어놓고 책보다가 아나운서 목소리가 높아지면 TV를 보는 식이다.


영화는 안 보나?

베테랑과 암살을 봤다. 괜찮게 봤다.

 

나도 둘 다 재밌게 봤지만, 베테랑은 저항을 상품화 한다는 비판도 있었다.

그런 비판을 보며 우리가 미디어 수용자로서 비판을 많이 하는구나, 싶었다. 영화 한 편으로 무슨 남는 걸 기대하나. 재밌게 봤으면 그것으로 성공이지. 소비하고 그냥 일상으로 넘어가면 되지 뭘 바로 뛰쳐나가?(웃음)

자본이 체 게바라를 상품화해서 팔아먹었다는 비판이 있지만 그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체 게바라를 알고, 좋아한다. 나로서는 저항의 상품화를 어떻게 잘 이용할 수 있을지가 더 고민되는 주제다.

 

이번 월간잉여는 흑역사를 키워드로 글을 모집했다. 인터뷰이들에게도 공통으로 질문하고 있다. 강준만의 흑역사는 무엇인가?

너무 많아서 하나를 꼽기가 어려운데. 연예인들의 흑역사는 이미지와 관련될 것이다. 나가지 말아야 할 프로그램에 나갔다든지. 글쟁이들은 글이 흑역사가 될 것이다. 그 당시 문제의식을 가졌던 것이 시간이 지나서 보니 좀 민망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민망해졌지만 실망하는 부분이 있더라도 당시의 문제의식이 유효하다면 좀 뻔뻔해질 수도 있다고 본다. 내가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그렇게 접근하다보니 이제는 다른 사람말도 인정하게 된다. 이렇게 중립충이 되는 건가.

20-30년 전 하는 말을 지금 그대로 하는 것은, 일관성 있다고 할 수도 있지만 발전이 없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일관성이 아름다운 걸까? <월간잉여>도 어떤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강박을 갖지 않았으면 좋겠다. 욕먹는 것을 괘념치 말고 위악도 부리고 사람들 기대도 저버리며 막 나갔으면 좋겠다.






(격)월간잉여 18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