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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 가능한 전쟁 속에서(글_지세준)

0.

아주 화창한 5월의 목요일이었고, 시침과 분침이 시계 맨 위쪽의 12를 때리고 있었다.

 

1.

"The war is not meant to be won. It is meant to be continuous." (이 전쟁의 목적은 이기는 것이 아니라 끝나지 않는 것이다.) 위 문장은 조지 오웰의 <1984> 중반부에 나오는, 전쟁의 가장 근본적인 속성을 역설한 문장이다. 작중에서 윈스턴 스미스와 '오세아니아'의 절대다수가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 빅 브라더의 철두철미한 감시가 가능해지고 정당화되는 이유, 그럼에도 감히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가 위 문장으로 요약될 수 있다. 인류의 자유는 잉여재화와 함께 시작되었다고 해도 모자라지 않는데, 계속되는 전쟁은 잉여재화를 증발시키고 인간을 문명 이전의 공포에 바들바들 떠는 원숭이로 전락시키기 때문이다. 윈스턴 스미스는 오브라이언이 건네준 책에서 위 문장을 읽고 '2 더하기 24라고 쓸 자유가 주어진 세상'을 꿈꾸다가, 오브라이언에게 뒤통수를 맞고 인간개조를 당한 뒤 2 더하기 25라고 적는 신세로 전락한다.

 


영화 1984(1984)의 한 장면


2.

<1984>와 같은 극단적인 감시 체제까지는 아니더라도, 문명 안에서 벌어지는 '계속되는' 전쟁 속에서 인간성과 희망을 잃어버리는 장면(scene)은 얼마든지 열거할 수 있다. 먼저 우리 잉여들에게 가장 먼저 와닿을 취업전쟁이 있겠다. 잉여가 취업 앞에 전전긍긍하는 이유는 취업을 선택하지 않는 것이 생계를 위협하기 때문이고, 더 근본적으로는 우리 모두의 사고에서 취업하지 않는 것을 사상범죄라고 여기는 공포심이 가득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한국은 <1984>와는 달리 국가 차원에서 이 '미친놈'들을 사상범죄자로 총살하지 않을 뿐, 민간신앙의 차원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빅 브라더 이즈 와칭 유'를 아주 훌륭히 실천하고 있다. "대체 취직은 언제 할래?"부터 시작해서, "결혼은 할 거니?", 결혼하면 "(애는) 낳을래?", "그래서 어머니는 언제 모실래?" 등등, 잉여를 기다리는 끝없는 전쟁은 끝도 없다. 마지막으로 애인이 나지막하게 말하는 "자기 나 살쪘어?". 솔로 잉여에게는 미안한 소리지만, 언제부턴가 연애도 전쟁이더라.

 

잉여에게는 좀 덜 중요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우리의 전쟁 문제도 있다. 휴전선이야말로 끝나지 않는 전쟁의 상징과도 같은 것이고, 그로 인해 수많은 군인이 철조망을 흔들며 수없는 계단을 올라갔다 내려왔고, 전쟁의 실제적 위협과는 상관없이 혈기왕성한 할아버지들이 김씨 삼대의 얼굴을 불태우고 성조기를 흔들곤 했다. 매년 국방예산이 집행되고 사병 월급과 휴가비가 나오고, 빨갱이와 종북좌파가 아직도 무슨 위협이나 되듯이 지껄여지고 있고, 국가보안법은 당신에게 관심이 있고(박정근 사건을 보자), 얼마 전에는 로동신문인가 하는 곳에서 '혐오동물 쥐명박을 죽탕쳐버리자'라며 비난수위를 높이고끝나지 않는 전쟁은 어디에나 있다. "우리들의 싸움은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 차 있다"(김수영, <…… 그림자가 없다> )는 구절이 무척이나 벅차다. 우리의 걱정과 인생과는 아무런 관계없이, 또는 지워지지 않는 망령처럼 시간이 계속 흘러간다.

 

3.

따지고 보면 우리야말로 비겁했다. "이것을 하고 저것을 하고 저것을 하고 이것을/하고 피를 안 흘리려고/피를 흘리되 조금 쉽게 흘리려고/저것을 하고 이짓을 하고 저짓을 하고/이것을 하고"(김수영, <이혼 취소> ) 살아왔던 것은 과연 딴사람인가. 관계가 없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또는 자기는 죄 없는 인간이기에 '저 여인에게 돌을 던질 수 있'겠느냐하는 문제다. 인간이기에, 아프니까, 당연히 피를 안 흘리려고 했겠지만, 피를 흘리지 않는 인간이 과연 존재할까. 피를 흘리지 않는 인간을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김수영은 앞서 인용한 시 말미에 스스로 주()를 달고 "상대방이 원수같이 보일 때 비로소 자신이 선()의 입구에 와 있는 줄 알아라."라는 말을 남겼는데, 이를 다시 풀어 말하자면 '원수를 사랑하려면 원수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 말은 선을 실천하려면 악이 있어야 한다는 단순한 말장난보다는 우리가 비겁해지지 않으려면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중요한 힌트다.

 

끝나지 않는 전쟁을 끝내려면, 끝나지 않는 것에 초점이 맞춰진 전쟁 속에서 사상범죄자로 증발되지 않으려면, (대한민국 헌법 제 10조대로라면) 존엄하기 그지없는 인간이 공포에 바들바들 떠는 미친 원숭이의 신세가 되지 않으려면, 피를 안 흘리려고또는 조금 쉽게 흘리려고 이것저것 하지는 말았어야 할 일이었다. 사회에서는 잉여, 스스로는 무능력함을 느끼는 나 자신조차 반성했어야 할 일이었다. 2010년 기준으로 10만 명당 31.2명이 자살로 죽는 대한민국에서,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냉소했던 윌리엄 블레이크 대신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한 예수 그리스도는 도대체 어디 있는가.

 

4.

내가 조지 오웰의 <1984>를 통해 가장 많이 고민하는 것은 '세계의 병적인 순간에 직면하는 고독한 인간의 고통'이다. "'2분간 증오'의 가장 공포스러운 점은 그것을 의무적으로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집단적 광기에 휩싸이지 않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 우리 모두는 끝나지 않는 고통의 바다[苦海]에서 허우적거리다 익사할 위험성을 언제나 안고 살아가야 한다. 이 인식이 '죽지 못해 살아간다'는 비겁함에서 끝나지 않으려면 우리는 무엇을 생각하고 또 고민해야 하는가. 또는, (이 지면의 독자들이 가진 인식에 따르면) 잉여라는 낱말로 스스로를 정의하는 가운데 아주 사소한 것 하나라도 자신의 '잉여물'로 남기려는 시도와 실험이 '잉여인간'이 표상하는 패배주의를 뛰어넘어 존재하는가다.



 

마지막은 내가 좋아하는 맹자로 끝내겠다.

"()은 사람의 마음이요, ()는 사람의 길이다. 그 길을 백 리고 따라가지 않고, 마음을 놓아 버리고 찾아들일 줄 모르니 슬프다. 사람들은 닭이나 개를 놓치면 찾아들일 줄은 알면서도 마음을 놓치고는 찾아들일 줄 모른다. 학문하는 길은 다른 것이 아니다. 그 놓친 마음을 찾는 것일 뿐이다."






※ 월간잉여 6월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