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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의소리

8월호 리뷰(양인모, 김진수, 측쿠시)

새로운 관계의 길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발행인인 세르주 알리미가 지난달 쓴 긴 칼럼을 보고 여기도 저런 고민을 하는구나 싶었다. 그는 요즘 사람들이 종종 더 이상 시간이 없다는 식의 자기변명 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다면서, 그들은 한 권의 책에 너무 오랫동안몰입하거나, 길거리나 박물관을 한가롭게 산책할 시간도 없다고 꼬집었다. 통신 속도가 빨라지고 정보에 대한 접근 비용이 지나치게 싸지면서 사람들은 항상 무언가에 접속돼 있다. 정보나 새로운 소식을 소비하는데 익숙해진 것이다. 반면 신문 구독은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은 현실이다. 프랑스에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는 말보로 담배 한 값보다 싸지만, 구독자와 광고가 점점 줄어 재정 상황이 심각하다고 한다. 독립적 잡지로 살아남는 것의 어려움, 프랑스도 매한가진가 보다.

두 달 동안의 휴간은 월간잉여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추진력을 얻은 볼트맨 형님은 과연 어디로 날아갔는지 모르지만, 월간잉여는 약속을 했다. 독자와의 약속. ‘END가 아닌 AND, 죽지 않고 돌아오겠습니다라는 말. 창간 1주년 호까지는 어떻게라도 내겠다라는 기개. 독립잡지로 존재하는 것. 그것은 하루하루가 다짐인듯하다. 휴간을 하는 동안 가진 두 번의 독자위원회 모임에선 그런 다짐들로 채워졌다. 방심하다 일격 맞는 각종 드립과 잔소리가 난무했지만, 가끔 진지했고 많이 웃었다. 구구킴 님을 불러 난데없는 표지 디자인 청문회를 하고 정치적 성향에 대한 커밍아웃을 서로에게 강요하기도 하며 더 좋은 사회를 상상했다.

월간잉여가 쌓은 네트워크는 참 특별하다. 필진들이 글을 기고하고, 독자들은 300잉클럽에 가입하고 모두가 자발적으로 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으니 말이다(물론 잉집장의 검은 눈빛에 약해져 본인도 모르게 글을 쓰고 있는 분들도..). 감사하다. ‘더 이상 시간이 없는이 시절에 불나방처럼 신촌에 모여 존댓말로 드립과 본인의 개그를 시험하는 독자위원회 위원들에게도 감사하다. 견고하고 전문적인 네트워크가 아니더라도, 공감하고 편하게 이야기할 순 있지 않을까.

글을 쓰고 있는 시점, 300잉클럽은 97명을 기록하고 있다. 놀랍다. 어디서 저 사람들이 나왔지? 헌데 아직 멀었다. 주변에 뭔가를 찾아다니느라 뭘 찾는지를 잊어버린 사람들에게 친절하지만 도도하게 월간잉여를 소개하자. 그럼 창간 1주년 호를 넘어 그 후에도 계속 볼 수 있지 않을까? 혹시 시간은 없겠지만 월간잉여를 함께 읽고 이야기 하고 싶은 분은 자유롭고 평화롭게 독자위원회 문을 두드렸으면 한다. 신입이 들어오면 국토대장정을 하겠아니 밥을 사겠다.

르몽드와 월간잉여. 알리미는 독립적 신문의 생존을 위한 방법으로 통계와 온라인 기반의 여러 가지 서비스들을 제시했지만 결국 그래도 우리의 네트워크는 독자 여러분이라는 아름다운 결론을 내리며, 필요로 하는 시간을 충분히 갖자는 단서를 달았다. 뒷걸음질하고 체념하는 이 시대에 사회적, 경제적 그리고 생태적 새로운 관계의 길을 열어주는 일. 저게 르몽드가 생각하는 독립적 신문의 역할이라고 한다. 월간잉여와 르몽드 어딘지 닮았다.고 말하고 싶다.는 것을 밝힌다. 월간잉여 역시 새로운 관계의 길을 열고 있지 않은가. 현재 우주는 초속 71km로 팽창하고 있으며, 평균온도는 영하 723도이다.

-양인모(독자위원회 위원장)

 


 

8월호 베스트

 

‘PiFan 영화제에서 불청객을 떠올리다’(정태영)

불청객이란 영화를 유쾌하고 그리고 적당히 진지하게 소개한 글이다. 주말에 하는 영화 소개 프로그램을 보듯 영화를 상상하며 텍스트에 빠졌다. ‘넌 내 인생의 불청객일 뿐이야’ - 양인모

 

정규직이 쉬는 사이에’ (잉지, 여경)

테마 기사 중 마지막에 배치되어 가장 기억에 남는다. 휴가 글 중 가장 무거웠지만. 생생함이 살아있었다. 가슴을 울렸다. 휴식은 누군가에게 아픔이 될 수도 있다. - 김진수

 

‘PiFan 영화제에서 불청객을 떠올리다’(정태영)

무엇보다도 월간잉여에 꼭 맞는 콘텐츠를 소개했다는 점에서 베스트로 꼽았다. B급 정서 뒤에 숨겨진 신자유주의 비판까지. 이 영화 꼭 보고 싶다. 앞으로 이렇게 좋은 영화가 있으면, 미리 알려줬으면 좋겠다. 잉여들이 다 같이 손 잡고 단체관람이라도 할 수 있도록. - 측쿠시




8월호에 대한 독자위원회의 세부 의견

 

휴식이라는 타이틀의 8월호는 여러 가지 시각과 상황이 돋보였다. 다양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이 휴식에 대해 이야기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호였다. 휴식의 제안, 고찰 그리고 솔직한 생각들. ‘무인도에서 잉여짓’, ‘무인도고 나발이고 미드나 보는 걸로’, ‘독서실도 좋습니다컷들이 묘하게 대화하는 것 같아 웃었다. 무인도부터 피로사회까지. 8월호는 전반적으로 원고들이 안정감 있고 서로가 보기 좋게 리듬을 타고 있다.

갈수록 원고가 풍년이다. 무엇부터 이야기해야할지. 잉지, 여경 님이 쓴 정규직이 쉬는 사이에’. 솔직하다는 자의적 평가는 그렇더라도,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공간의 마련이 중요한 지점이 아닐까 한다. 이 공간, 더 넓어졌으면 한다. 이현석 님이 연재하는 잉여 건축물8월호에서 한국의 골프장들에 대해 다뤘다. 추적하고, 분석하고,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흥미롭고 참 좋은 글이다. 항상 글 읽으며 토건에 우리 사회 모습이 저렇게 압축돼 있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진공의 피로사회 읽은 척하기’, 정태영의 PiFan 영화제에서 불청객을 떠올리다는 월간잉여의 문화적 심성을 높여주는 읽을거리다.

처음으로 만화가 등장했다. 고일권 님의 내려놓기’. 기대했던 유머는 덜해 아쉽긴 했지만, 텍스트 중심인 월간잉여에 이렇게 만화가 나오니 참 반가웠다. 생각에 연재만화나 연재소설이 있으면 독자들이 월간잉여를 좀 더 기대할 수 있을 것 같다. 다음호가 기다려지고 뭐 그런. 이 점 천천히 고려해봤으면 한다. 월간잉여 주최 신춘문예는 어떨까?

_양인모

 

 

우선 2개월 만에 돌아온 잉집장에게 환영의 박수를 보낸다. (짝짝짝) 8월호는 우선 환한 표지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해수욕장에서 월잉을 읽는 느낌이랄까. 표지를 제작해 준 구구킴님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월잉 8월호 테마는 휴가였다. 무인도, 미드, 템플스테이, 독서실까지 홀로 즐기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역시 잉여인가.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독서실이었다. 뜨거운 여름, 남극이 눈물을 흘릴 만큼 춥고 좁은 그 어두운 공간에서 재수생은 잉생을 고찰하고 독자들에게는 휴가를 권유하다니. 내년여름에는 독서실에 가야겠다. 재수생님 화이트 초콜릿이 내리길 바랄게요.

 

참고로 나는 이현석님의 연재 잉여 건축물의 팬이다. 건축물을 사회문제와 결합시켜 쉽게 이해시킨다. 덕분에 글이 길어도 지루하지 않고, 항상 흥미 유발이다. 하이킥님의 한국어가 잉여어는 아니잖아요buy를 버이라고 읽어 뻐이가 별명이 됐다는 부분에서 웃펐다. 내가 Channel을 꿋꿋하게 채널이라고 읽어서 그런가. 아무튼 한국어 스릉흔드!

 

, 잉터뷰 기사가 많아지면 좋겠다. 기고가 대부분인 월잉에게 신선함을 가져다주지 않을까. 잉여가 잉여를 만나는 잉터뷰면 어떨까. 이번 측쿠시님의 잉여, 잉여를 만나다는 간단 인터뷰라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더 깊은 잉터뷰 글을 기대해 본다.

_김진수

 

 

겉에서 보기에는 분명 잉여인데 본인은 아니라고 우기는 사람들이 있다. 울 오빠가 그렇다. 얼마 전, 공무원 시험에 낙방해 매일 일드의 세계로 도피하는 그에게 월간잉여를 권했다. “너나 보라는 말이 돌아왔다. 잉여를 인생의 패배자쯤으로 여기는 뉘앙스였다. 그런 게 아니라고, 자본주의 시스템에서는 누구나 잉여가 될 수 있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삼켰다. 왠지 그가 안쓰러웠다.

 

반면 겉에서 보기에는 잉여가 아닌데 본인은 잉여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편의상 이들을 주체적 잉여라고 부르자. 8월호에는 주체적 잉여의 참여가 돋보였다. 첫 번째 주인공은 파견직 근로자다. 잉지님과 여경님이 써준 정규직이 쉬는 사이에잘 읽었다. 분명 사무실에 앉아있는데 잉여라고 느끼는 데는 이유가 있다. 계약연장을 기대하며 희망고문에 시달린다는 잉지님, 파견 마루타로 무력하게 하루를 보낸다는 여경님의 글을 읽고 마음이 쓰렸다. 두 번째 주인공은 재수생. 파릇파릇한 18세님께서 피서지로 독서실을 추천하셨다. 내 귀에는 독서실에서 고독을 함께 씹을 동지를 구한다는 말로 들렸지만. 주체적인 잉여님들, 반갑다. 당신들이 기꺼이 잉여라고 나서준 덕분에, 월간잉여의 연대의 폭은 더 넓어질 것이다.

 

주체적 잉여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여기저기서 나도 잉여! 너도 잉여! 위 아 더 잉여!라고 외쳐대면, 이 세계가 지극히 말 잘 듣는 산업(예비)일꾼으로 채워져 있다고 믿는 사람들도 조금은 긴장하지 않을까. 수많은 잉여들이 커밍아웃을 하는 그 날까지, 월잉은 계속돼야 한다. -!!

_측쿠시




※ 월간잉여 11월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