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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여논단

잉녀의 현실과 미래(박잉여)

잉여의 상당수는 그 상태를 간절히 벗어나고 싶어 하며, 벗어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필자 역시 20대 중후반의 여성이면서 대학 졸업한 지 8개월째에 접어든 무직자. 부모님 눈총 탓에 오래 지체하긴 어렵다.


문제는 취업을 하거나 일거리가 많아진다고 해서 우리 인생의 문제가 모두 해결되는 건 아니란 점이다. 준비 없이 맞는 위기상황에 어리둥절해하다 오히려 “잉여 때가 좋았어”라며 그리워하게 될 수도 있다. 계획과 준비가 필요한 이유다.


그래서 바친다. 잉여의 미래에 관한 소고. 필자가 여성이므로 여성 청년백수 잉여의 미래에 집중하고자 한다. 잉여가 잉여를 위해 바치는 '유비무환가(歌)' 정도로 이해해주시면 좋겠다. 우리에게 닥쳐올 미래 선택지를 상상해보자. 그리고 그중에 무엇을 선택하는 것이 좋을지도 가늠해보자.



Part 1. 결혼
자존심 강한 알파걸 잉여는 기분이 나쁠지도 모르겠다. 왜 첫 번째 선택지가 결혼인가. 남성 독자 역시 '취집'을 당연시하는 거냐며 분노할지 모른다. 그러나 솔직하게 인정하자. 필자도 검색해 봤다. '남자 취집'. 나오는 게 없었다… 있더라도 소심하게 “나도 취집하고 싶다…ㅋㅋㅋㅋㅠㅠ”라며 소심하게 토로하고는 마는 내용이었다. 아직까지 한국은 주부 아빠를 찾아보기 어려운 나라다. 가장이 돼 가정을 부양해야 한다는 책임 때문에, 남성이 '결혼'을 잉여 탈출의 선택지로 고려하게 될 가능성이 매우 적다는 말이다. 이것이 여성에겐 반대로 적용된다. 결혼으로써 취업을 대체하는 경우도 현실적으로 많이 생긴다.



영화 [체인지업] 2011



필자의 친구 중엔 20대 초반에 남자친구를 만나 꽃다운 연애를 하다 결혼에 골인, 남편의 유학길을 따라 미국으로 건너간 잉녀가 있다. 그 친구도 처음부터 그런 삶을 계획한 건 아니었을 거다. 미국에서도 이것저것 배울거리를 찾아봤다고 한다. 그러나 아이를 가지면서 자연스럽게 공부를 비롯한 여타 자아실현 수단을 모두 접은 채 태교에 전념하게 됐다. 사실 예견된 상황이었다. 한국 대학을 졸업한 그 친구에겐, 미국으로 건너간 것부터가 자신의 선택지를 상당부분 포기한 셈이었기 때문이다. 이 친구에게 '왜 취업부터 하지 않고 결혼부터 했냐'고 따지긴 어렵잖은가. 아직까지 잔존하는 가부장 문화 때문이다. '어' 하는 사이 시집이 취집 되는 경우는 생각보다 흔하다.


문제는 그것이 좋은 선택이냐다. 내 주변엔 자신의 잉여로움을 결혼으로 구제한 여성이 꽤 된다. 올해 시집 간 동창만 4명이다. 조혼하는 친구들의 공통점은 무직, 독립이 가능하지 않은 임시직, 혹은 자원봉사에 가까운 직업을 가졌다는 거였다. 아, 일찍 취업해서 입사동기와 1년 만에 결혼한 스물다섯 살 친구도 보긴 했지만 예외다. 아무튼 잉여로운 상태에서 결혼한 내 친구들은 '비자발적 실업자'에서 '비경제활동인구'로 경제적 지위를 전환함으로써 한국의 실업률을 낮추었으니 국가에 기여한 셈이고, 이는 개인적으로 보나 국가적으로 보나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그러나 결혼, 그것은 보수도 제대로 받기 힘든 노동을 의미한다. 물론 신혼은 행복하다.  문제는 애를 낳은 다음이다. 갓난아이는 어쨌든 말하고 생각할 수 있게 되기 전까진 손이 많이 가는 존재다. 두 시간마다 밥을 달라 우는 건 차라리 축복이다. 아기에 따라 1시간 간격으로 밥을 줘야 하는 경우도 있다. 똥오줌 때문에 우는 횟수를 더하면 엄마가 쉴 시간은 더 줄어든다. 30분 낮잠 재우는 것도 힘들다. 원치 않은 때 소음으로 일찍 깨기라도 하면 자지러지는 통곡이 시작되고, 엄마는 눈 좀 붙이다 헐레벌떡 일어나 아이를 달랜다. 문제는 이것이 밤낮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최소 2시간마다 밤잠 자다 일어나서 아이를 달래야 한다. 이런 생활이 100일 넘게 지속된다. 중요한 건 '에라 모르겠다' 하고 결혼한 그들이 나중에 겪는 혹독한 육아 가사 노동이 자발적이냐는 거다. 대개는 상상만 하다가, 겪어보고는 장난 아니구나 하다가, 나중엔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며 자식에게 모든 영혼을 바치게 된다. 





Part 2. 그렇담 취직은?
미국의 독설 칼럼니스트 바버라 에런라이크는 <긍정의 배신>에서 이렇게 말했다. '안 되고 있는 네 처지를 무작정 긍정하지 말고 현실을 봐!' 좀 암울하긴 하지만 취업을 선택한 내 앞에, 결혼을 한 친구보다 나은 길이 기다리는 것도 아니라는 거다. 죽어라 일해 봐야 하우스푸어, 에듀푸어, 심지어 실버푸어도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긍정의 배신] (2011)




대졸 여성 잉여 상당수가 왜 기를 쓰고 구직하는지부터 생각해보자. 새마을 운동이 벌어지던 때처럼 '(무작정) 잘 살아보세'는 아니다. 내가 번 돈 자유롭게 쓰며 살고 싶다. 즉 보보스(BOBOS)에 가깝다. 부르주아와 보헤미안의 합성어다. 자유로운 영혼이면서 잘 먹고사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거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그게 아주 힘들어졌다.


얼마 전 통계가 나왔다. 우리나라가 OECD 국가 중 근로시간은 제일 긴데, 근속기간은 제일 짧다는 거다. 정년이 이른 탓도 있다. 대기업 정년퇴직 연령이 평균 53세다. 국민연금은 베이비부머 기준으로 63세부터 받을 수 있다. 한국인 평균 수명은 여성 84세, 남성 77세다. 국민연금이 충분하면 죽을 때까지 25~30년 동안 일 안 해도 된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자식의 부양이 없으면 사실상 힘든 게 노인의 현실이다. 일단 연금을 젊을 때 낸 만큼만 주니 당연하다. 어떤 이유로든 저임금을 받으며 일했던 노인은 연금을 조금 냈으니 조금 받을 수밖에 없다. 오죽하면 노인 중 45%가 빈곤을 호소할까. 갑부가 아닌 이상 퇴직 후 긴긴 잉여생활을 이어 가려면 소싯적부터 모아야 된다. 젊은 시절 돈을 허투루 쓸 수 없다는 거다.


그런데, 우리가 돈을 모을 만한 형편이 되던가? 특히 집을 생각하면 암담해진다. 한국 인구의 5분의 1은 서울에 산다. 난 서울에서 났으니 서울에서 일하고 서울에 살고 싶다. 애초에 고소득 직업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므로 처음부터 강남, 목동이나 노원, 분당 같은 '좋은 동네'는 꿈꾸지 않기로 한다. 친구가 사는 이문동 삼성래미안 아파트 시세를 검색해 봤다. 부동산뱅크에 따르면 24평짜리 집의 평균 시세가 3억 3천만 원. 전세는 2억 3천만 원이다. 정직하게 벌어서 낸다면 한 달에 200만 원을 저축한다 해도 1년에 2천 4백만 원, 그렇게 꼬박 10년을 모아야 겨우 전셋집에 살 수 있다


워킹맘은 더 고생한다. 앞서 육아의 고역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출산휴가 90일? 턱도 없이 모자란다. 출산휴가 끝나자마자 육아휴직을 쓰고 곧바로 남편 육아휴직 정도는 써야 똥오줌 가리지 못하는 생명체를 최소한 의사소통이 가능한 자유의지의 인간으로 무리 없이 성장시킬 수 있다. 물론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보낸 후에는 새로운 전쟁이 시작된다. 그건 이미 수많은 신문에서 조지고 있는 사회 문제이므로 패스. 게다가 자녀 교육비까지….


아무리 생각해도 답은, 취업도 하고 결혼도 한 다음 자식을 안 낳는 길뿐이다. 두 사람이 아담한 집에서 2배의 월급으로 교육비 안 들이고 넉넉하게 살 수 있으니, 내 인생만을 위한다면 최선의 선택이다. 딩크족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참고로 한국의 출산율은 부부당 1.24명이다. 취업도 안 한 나 같은 스물 남짓의 여성 잉여가 '무자식이 상팔자'란 생각을 벌써 하고 있는 까닭에서다. 우리나라 인구는 쪼그라들 거다.




Part 3. 그래도 일이다
지금까지 여성 청년백수 잉여의 미래를 살폈다. 물론 여성 잉여 중에도 사업이나 자영업을 하는 사람이 있을 테지만, 사업 결과에 따라 인생이 천차만별로 갈릴 것이므로 일반화 및 고찰이 어려워 잠정적으로 제외했다. 하지만 그들을 포함시킨다 해도 결론은 마찬가지일 거다. 여성 탈(脫)잉여자는 뭘 하든 개고생하게 돼 있다. 정체성의 위기까지 온다. 결혼을 하면 자기 자신을 버려야 하고, 일을 하면 자식을 버려야 내가 산다.


결국 여성에게 자의식은 포기해야만 하는 무엇인가. 혹은 여성으로서 자의식을 지킨다는 건 이기적으로 살며 자식 키우는 보람을 포기하고, 한 국가의 출산율을 저하시켜야만 가능한 것인가. 복잡한 의문이 남는다. 유명한 정치가이자 내조의 여왕(연설 잘하는 영부인)이었던 힐러리 클린턴도 이 문제는 잘 해결 못했다. 그녀도 아이는 하나밖에 못 낳았으니까. 인구 감소에 기여했다.


수많은 뉴스에서 내놓는 대책은 '정부가 잘하라'는 거다. 출산휴가를 늘려라, 육아휴직을 마음껏 쓸 수 있게 하라, 무상보육을 확대하라…. 그러나 행정과 현실의 괴리는 늘 존재한다. 대기업 S전자에 다니는 친구의 말이다. “나는 육휴(육아휴직) 땜빵하러 이 회사에 들어왔나….” 이 회사는 육아휴직을 적극 권장한다. 젊은 여직원은 임신하는 순간부터 갑(甲)이 된단다. 제도는 좋다. 문제는 주변의 따가운 시선이다. 육아휴직을 하면 당장 동료들이 엄청난 짐을 떠안는다. 그래서 내 친구는 같은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불만을 터뜨린다. 하긴, 이 회사는 평소에도 무지막지한 업무량으로 친구를 만성두통에 시달리게 만들곤 했다. 감사기간 땐 2달 넘게 새벽 5시에 일어나 출근하고 밤 12시에 퇴근하는 것도 봤다. 이런 것들이, 지금 신입사원이자 결혼적령기인 내 친구들이 불평한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해결될까? 정부에서 이런 현실을 인식한다고 해도, 국회에서 벌어질 싸움판이나 기업에서 터져 나올 볼멘소리를 생각하면 실제로 나아지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들 거다. 사원을 늘리고, 노동 강도를 낮추고, 육아휴직이 원만하게 돌아가기까지 5년이 걸릴까, 10년이 걸릴까. 그러고 나면 우리는 결혼 적령기를 지난다. 결혼을 하더라도 자식 낳기를 피할 거고, 출산율은… 아, 하나만 잘 낳아도 감지덕지다.



2012 년에 백수 잉여를 사는 여성들 앞에도 이런 현실이 기다린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방법은 끈덕지게 일하고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자신도, 우리 미래의 자식도 버려지기엔 너무 아까운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보다 90년 먼저 졸업하고 결혼하고 가열차게 일했던 여류문학가 펄벅의 말을 인용한다.



방자하고 속이 좁으며 침착성이 없는데다가 나태해진 그녀들은 국가가 낭비하고 있는 최대의 자원이다-우수한 두뇌는 트럼프 놀이와 영화, 강연회나 재미있지도 않은 일로 낭비되고 있다. (그러나) 일하는 여성은-그 수가 늘었으면 하고 바란다!-여성을 위해 싸우려고는 하지 않을 것이지만, 그녀 가까이에 있는 오류를 바로잡기 위해 싸울 것이며, 적어도 여성은 일을 함으로써 여성 전체를 사회생활 속으로 적극적으로 인도할 것이다.
 즉 여성이 진보하는 길은, 남성이 그렇게 해왔듯이-일하느냐 굶느냐, 일하느냐 굴욕을 당하느냐의 길밖에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좋건 싫건 간에 많은 여성들이 그러한 길을 걸어왔다. 그녀들은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을 입수하고 일하는 것을 배웠으며 심한 경쟁에서도 참아왔다. 그녀들은 실패를 과거의 일로 돌리고 새로운 일에 나섰으며 입을 굳게 다물고, 쓸데없는 말을 지껄이거나 어린애스런 비명을 몇 번이나 지르지는 않았다-다시 말해서 그녀들은 자기 자신의 힘으로 한 인간으로서 현명하게 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펄벅,「여자란」중








         펄 벅(사진 출처 Library of Congress)






분명한 건 어떤 미래가 오든 우리가 잘 해야 우리 다음 세대도 잘 된다는 거다. 인생 한 번뿐이라고 막 살 것 아니잖은가? 탈잉여할 생각만 하기보다, 닥쳐올 문제를 구체화하고 계획을 하나라도 더 세우는 게 낫다. (물론 행정 차원의 노력도 병행돼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자기 자신뿐 아니라 나중과 타인도 생각하며, 견디고 극복하여 제대로 된 '인간'으로 거듭나자. 21세기 잉녀들의 위대한 미래를 위하여.











※ 월간잉여 11월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