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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500만원을 바친 전직 다단계업자의 고백 上 (김호진)


다단계를 '잠깐' 체험했던 사람들의 후기 같은 건 여러 커뮤니티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으니 비록 자랑은 아니지만 두 달 이상 다단계를 하며 BD(Blue Distributor)라는 직급까지 올라갔던 내 경험을 토대로 하여 대략 다단계네 사람들은 어떤 생활을 하는지와 어떻게 호구를 끌어들여 벗겨먹는지에 대한 얘기를 해보려 한다.


2004년 5월에 전역한 이후 헤비타트를 하니, 운전면허를 따니, 시민운동에 투신을 하니 어쩌구 했던 한창 혈기어린 김호진 예비역 병장은 불미스런 일로 손이 부러지는 바람에 모든 계획을 철수하고 고향인 통영에 내려가야만 했었다. 활활 타올랐던 만큼 꺼지는 것도 순식간이었기에 하루하루 상심의 나날을 보내던 중 자퇴했던 고딩 동창에게서 연락이 와 마침 자기가 일하는 곳에 결원이 생겨 인원을 보충해야 하는데 혹시 일해 볼 생각이 없냐는 질문을 받았었다. 손이 부러진 마당에 일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어 그 이유를 대며 못하겠다― 라고 했지만 친구, 아니 그 ㅆㅂㅅㄲ 는 “손이 부러져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며 악마의 유혹을 시전했다. 나로서는 돈을 벌어야겠다는 마음만 급했던지라 깊이 생각할 것도 없이 그ㅅㄲ의 말을 쫓아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상경해 그 놈이 일한다는 송파구의 모 회사를 찾아가 그놈을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이후엔 세계가 멸망… 아니,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아무튼 친구를 만나 다단계 업체에 들어선 이후 일주일의 기간 동안 강의를 들으며 다단계를 하겠다는 결심을 굳혔고 그 다음 주부터 역시 일주일동안 마치 S사의 신입사원OT 같이 강한 정신무장과 내가 하는 일에 대한 끝 모를 자부심을 심어주는 연수를 거쳐 당당히 거마대학생으로써의 라이프를 시작하게 되었다. (당시 다단계 업체들이 거여, 마천 쪽에 몰려 있어 이를 일컬어 '거마대학교' 라 불렀었다.)


거마대학생이라면 누구나 직급을 가지게 되는데 'Distributor' 로 시작하고 이후 올리는 매출에 따라 AD(Agent Distributor), MD(Medium Distributor…맞나?), BD(Blue Distributor) RD(Red Distributor), SD(Silver Distributor), GD(Gold Distributor), ED(그 유명한 에메럴드!!)가 있고 그 이후 더블ED및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 최상위의 직급들이 있는데 BD부터 옷에 직급을 표하는 배지를 달게 되어 "나 다단계하는 사람이오~" 하는 자랑을 할 수 있다. '성공의 척도'는  GD부터라고 할 수 있다. GD의 월 페이가 천만 원 이라고 소문이 났기 때문.


SD를 필두로 한 대략 20여명 이상, 이내의 혼성 인원이 한 팀을 꾸리게 된다. 같은 팀은 한 집에서 같이 살고, 먹고, 자고, 싸고 하는 합숙생활을 하게 되는데 이 팀마다 별도의 이름을 짓게 되어 있었다. 내가 머무른 팀은 '리더스클럽'이란 곳으로 리더와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20여명의 호구가 뭉친 집단이었는데 그 외에 부자마을, 청풍명월, 웰빙 클럽 등의 유아 수준의 작명센스를 자랑하는 팀들이 더 있었다. 보통 4팀을 묶어 그걸 '통상'이라 칭했고 그 통상들이 여럿 뭉쳐 하나의 다단계업체를 지탱하는 식의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었다. 거마대학교의 평일 일정은 대체로 3~4번 이상의 골드나 에메럴드 등 성공한 사람들의 강의와 졸업앨범 등을 통한 호구(...)조사, 시나리오 교육 및 연락 등으로 이어졌는데 이 커리큘럼(?)을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이렇다.




영화 Pay It Forward (2000) 중

*Pay It Forward에서의 다단계 는 훈훈한 다단계임. 영화 보면 앎.


1)골드 또는 에메럴드 강의:  요즘 유행하는 '힐링 토크' 처럼 본인들의 인생스토리와 많은 역경을 어떻게 다단계를 통해 극복해 나갔냐는 것에 대해 얘기하는 것으로써 진부해 보이지만 다단계의 의구심을 품는 사람, 생각대로 일이 잘 안 풀리는 사람들의 생각을 "아프니까 다단계다”식으로 문제 자체를 합리화시켜 정신무장을 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실제 이 강의로 인해 다단계를 시작하는 사람들, 중간에 그만두려 하다가도 시련은 있으나 실패는 없다 하여 남게 되는 사람이 많이 생긴다. 사실 이미 발을 들여놓는 순간부터 실패인데 본인들은 그걸 자각 못하고 있다는 게 문제.


2)시나리오 교육: 주로 Silver들이 본인들의 팀원을 모아놓고 교육하는 것으로, ‘시나리오'는 사람을 불러모을 때 어떻게 할 건지에 대한 전체적인 내용을 짜는 것인데 세부적으로 전화통화 시 인삿말이나 상대의 반응에 따른 대응말, 호기심을 자극하는 말, 그리고 상대방이 현재 어떤 상황에 있는지에 대한 상황파악(줄여서 상파. 영어로 S.P라 했다.), 전화를 언제 걸 것인가에 대한 타이밍 및 실제 누군가 유혹에 혹해서 회사 근처까지 왔을 때 어떤 행동을 취하고 어떤 말을 할 것인지에 대해 교육한다.


3)호구조사: 위에서도 적었다시피 호구조사에 가장 도움이 되는 자료는 졸업앨범이다. 내가 거마대학교를 다니던 2004년도엔 아직 많은 집 전화들이 남아있었고 서울과 달리 한 집에서 꾸준히 사는 사람들이 많았던지라 초등학교 졸업앨범을 보고 전화를 걸어도 대체적으로 그 동창의 집이 맞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4)연락: 자, 이제 호구조사를 바탕으로 연락을 할 차례다. 보통 친한 친구들에게 전화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일단 통화하고 나면 따로 통화한 내용이나 반응, 상황, 그리고 전화한 날짜와 시간까지 기록해 둔다. 그리고 통화한 상대의 반응이나 상황에 따라 언제 전화를 걸 건지 타이밍을 체크한다. 많은 사람을 끌여들여야하는 다단계니 만큼 친구들 뿐만 아니라 연락처를 아는 사람에게 무조건적으로 전화를 돌리고 인원을 충분히 확보해놓는게 좋은데 심지어 내 경우엔 지하철역에서 본 여학생에게 "저기 휴대폰을 잃어버려서 그러는데 잠시 전화 좀 쓸 수 있을까요?" 라고 말해 그녀의 전화로 내게 전화를 한 다음 연락처를 확보하는 수법을 쓰기도 했었다.


보통 이런 일정들로 평일 10시간 이상을 소화하는데 요일별로 특이사항이 있다면 각 업자(?)들이 꼬드긴 사람이 오는 월, 화요일의 경우 그들에 대한 열렬한 환호 및 대화 걸기도 일정에 포함된다. 금요일은 그렇게 온 사람들이 다단계의 결정여부를 가리는 날이기 때문에 교육 같은 건 일찍 마치고 남기로 결정하기로 한 호구들에 대한 환영식을 가지게 된다. 토요일엔 새로 사업을 시작하게 된 호구와 몇몇이 정장을 사러 나가고 나머지 사람들은 회식준비, 그리고 저녁엔 회식을 가진다. 물론 회식이라 봤자 형편없지만 그나마 '배불리' 먹을 수 있는 때라서 모두가 일주일 중 가장 좋아하는 날이다.


일요일은 ‘월계’ 및 ‘일계’라는 걸 작성하는데 이것은 ‘월간 계획’과 ‘일주일 계획’의 준말이다. 대략 누구누구한테 전화할거다, 라는 걸 적어놓는 일이다. (말 줄이기 좋아하는 것도 다단계의 특성이다.) 이후 팀들이 모여 회의를 하는데 합숙생활에서 서로가 지켜야 할 점 같은 걸 안건으로 내세우고 월, 화요일에 방문할 각자의 호구…를 말해 그 사람을 누가 맡을 것인지에 대한 의견을 나눈다. 그러니까 겪어 본 사람은 알겠지만 다단계 업체에 들어갔을 때 우리를 반겨주는 예쁘거나 말빨이 좋으면서 내내 붙어 다니는 그 사람들은 주말의 회의를 통해 정해진 사람들 이라는 거다!


회의가 끝난 뒤엔 근처 PC방에 가서 사람들이 혹할 만한 회사에 대한 데이터를 수집하는데 주로 컴퓨터 쪽이나 요식업 쪽으로 이름난 회사들을 많이 꼽는데 이 데이터라는 게 단순히 회사 이름만 파악하는 게 아니라 규모나 위치, 대표나 조직도까지 모조리 체크해둔다. 이 모든 자료조사가 결국 상대방을 설득력 있게 끌어들이기 위한 거라는 건 따로 말할 필요조차 없지. 거기에 ㅅㅇ클럽 같은 채팅사이트를 이용해 새로운 지인을 끌어들이는 것도 한다. 내 경우에도 그렇게 알게 된 사람이 7~8명 정도. 물론 이 사람들이 모두 나를 찾아온다! 라고는 못하겠지만 누군가를 새로이 알게 되고 연락처를 확보하게 됐다는 거 자체가 중요하다.
 

이렇게 스케쥴이나 업무적인 것 외에 생활적인 부분에선 많은 사람들이 알다시피 같은 팀원들이 남여를 막론하고 (돈이 없으니) 한 집에서 합숙을 하게 되는데 혼숙은 아니고 각자 다른 방에서 잔다. 여럿이 좁은 방에 부대끼여 있는 탓에 다리 쭉 펴고 자는 건 거의 상상도 할 수 없다. 방장이자 감시역이라 할 수 있는 SD만 거실에서 그나마 좀 편하게 자는 편인데 가끔 짬밥이 좀 되는 사람들도 거실에서 잘 때가 있긴 하다.

 

많은 인원들이 한 집에서 모여살기 때문에 편안함이나 쾌적함 이런 건 전혀 바랄수도 없는데 그 정도가 얼마나 심하냐면 우선 개인의 생활이 없고 항상 모두가 모여있기 때문에 옷을 갈아입든 화장실에 가든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약간이나마 깨끗하거나 편안하려는 태도 자체가 "실패할 사람'으로 인식되는 탓에 최소한의 청결 유지나 대소변활동조차 어려운 판국이긴 하나 열정 = 페이 만큼이나 고생 = 성공 이라는 굉장한 착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모두가 인내하며 잘들 살아간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굴락 같은 데 살면서 잘도 그런 걸 성공을 위한 지름길이라 착각들을 하고 있는거다.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은 보통 새벽6시지만 나의 경우엔 좀 더 씻을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 5시40분쯤에 일어났고 그렇게 일어나고 나면 남자들은 우선 옷이 모여 있는 방에 가 마음에 드는 정장을 아무거나 골라 입고 여자의 경우 각자의 옷을 입긴 하나 화장품은 공유했다. 그렇게 이리 저리 신변을 정리하고 나면 기다리던 조식 타임이 오는데, 이게 전혀 반갑지 않은 것이… 공기의 반의 반 정도 되는 밥에 올리버 트위스트의 고아원에 나올법한 조악한 반찬 등이 어우러진 화려한 식단을 밥이랍시고 먹어야 한다는 거다.


영화 Oliver Twist (2005) 중



그 밥 같지도 않은 밥을 먹고 나선 양치질 할 시간도 없이 서둘러 숙소 밖을 나가 새벽공기를 가르며 마시고 사치스럽게도 택시를 타고 이동, 회사로 출근하게 된다. 점심때는 4~5명 정도가 근처 분식집에서 떡볶이 1인분, 튀김 3인분 정도를 시켜놓고 먹는데 내 경우엔 그렇게 먹는 것도 돈이 아까워 근처 편의점에서 뽀그리를 이용했고 그게 더 싸다는 것을 알게 된 많은 이들이 그 행렬에 동참을 해 많은 이들에게 ‘기아 익스프레스’에 탑승시킬 수 있었다. 석식 또한 조식과 사정이 다르지 않아 부실하기 짝이 없었는데 이 '끼니'가 얼마나 형편없는가 하면 내가 다단계 생활을 했던 두 달여의 시간 동안 무려 17kg의 몸무게가 감량됐다.



아무튼 이런 생활 속에서도 “나는 옳다!”라는 참 쓸데없는 의지를 가지고 활동한 덕분에 어렵사리 어머니로부터 사채를 끌어 500만원을 빌려 BD로 진급하기에 이르렀고 일이 잘 안되어 힘들어하는 팀원 또는 타 팀의 친한 사람들에게 조언을 해주는 등, 예나 지금이나 쓸데없는 오지랖을 부려 많은 사람들을 좀 더 깊은 손해의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치사하게도 그런 와중에 나 혼자 쏙 빠져 나가게 되었는데, 나가는 그 순간까지 그 “다단계회사엔 잘못이 없고 시련을 못 견딘 나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식의 자책을 했고, 그 자책은 이후 몇 달간이나 지속됐더랬다.


그렇게 세뇌를 당한 건 다단계 내부에서 지속적으로 했던 강의의 힘이 컸는데 이후엔 이 강의를 통해 이들이 사람을 선동하고 세뇌하는 치밀한 기술 및 전략으로 상대방을 꼬드겨 결국 다단계를 하도록 이끄는 것에 대한 얘기, 곧 내가 다단계를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와 그들의 소름 끼칠 정도의 사람 분석 능력 등에 대해서 좀 더 심도 있게 얘기하려 하니 하편을 기대해주시길. 요즘이야 다단계 업체들이 많이 사그라졌다지만 그 사그라진 녀석들이 온라인으로 진출해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하고 그 수법이나 사람을 꼬드기는 기술이 예전과 동일하다기에 혹시나 가슴 안에 활활 타오르는 열정(만)이 있는 (호구가 될 가능성이 높은) 젊은잉들에게 유익한 참고 자료가 되길 바란다.











※ 월간잉여 11월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