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연재

500만원을 바친 전직 다단계업자의 고백下 (김호진)


다단계는 사기일까? 대부분이 "사기다" 라고 답하겠지만 엄밀히 말하면 '다단계' 그 자체가 사기는 아니다. 다단계 업체지만 '직접판매공제조합' 이른바 직판이라는 나름 합법적인 조합에 가입되어 있는 다단계업체들도 많고 암웨이나 허벌라이프 등 우리나라에서 드러내놓고 당당히 영업을 하는 외국계 다단계 업체들도 존재한다. 그렇기에 '다단계 업체' '다단계를 한다' 는 것만으로 부정적인 시선을 보내거나 우려 섞인 말을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어느 시스템이나 부작용은 있고 사람 사는 곳에 늘 사기꾼이 있는 법. 해외에서 좋은 건 안 배워오고 나쁜 것만 받아들이는 꾼들의 습성 상, 한국형 다단계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듯 검증되지 않은 고가의 물건을 암묵적으로 강매시키고 거기서 수익을 만들어 나가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제2, 3의 피해자가 생겨나고 사회에 부정적인 인식이 자리 잡게 된다. 그럼 숱한 피해사례와 영 좋지 않은 사회적 인식이 보편화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다단계에 피땀을 바치고 돈을 잃는 이유는 대체 왜 일까?


우리는 흔히 사이비종교 등에 빠져있는 사람들을 보며 어리석다” “대체 왜 저러는지 이해가 안된다라며 손가락질을 하지만 현혹될 수 있는 어떤 계기가 생기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너무도 단순하게 넘어가 버리고 만다. "나는 안 그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사회의 시스템에 순응해 가며 생기는 편견이나 고정관념(대표적으로 잉여는 쓸모 없다는 인식)부터 어떤 특정인에 대한 맹신 등을 1g도 가지고 있지 않은가? 편견이나 고정관념, 맹신 등도 모두 그 형태가 다를 뿐, 근본은 똑같다고 생각 된다.


다단계는 맹신으로 시야의 맹인화를 가져오는 부류들의 수법처럼 사람의 가장 기본적인 욕심과 욕망을 자극해 생각의 틀을 좁혀버리는 것에 주력하는데, 놀랍게도 매번 똑같은 패턴과 시나리오로 각기 다른 성향의 수많은 사람들을 낚는다.


다단계업자들, 즉 사기꾼들은 심리전에 능하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자극이 되는 얘기와 거기에 이른바 명분이라는 자기합리화를 심어주는 말을 많이 한다. 업자들이 주로 쓰는 말의 패턴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다단계를 하는 사람 중에 실패한 사람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상위 몇 프로만 성공하는 건 굳이 다단계뿐만이 아니라 모든 업종이 그렇다.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에게 큰 댓가가 주어지는 건 당연한 거 아니겠는가.”

그런데 대부분의 업종은 상위 몇 프로가 못 되더라도 일단 돈을 벌지 돈을 잃지는 않는다.



다단계는 개인 사업이다. 개인 사업이기 때문에 돈을 벌 수도, 잃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열심히 하면 그만큼 대가가 따라온다.”

나는 잃기만 했다. 그것도 500만 원.



처음에는 빚만 졌지만 시련을 극복하고 나니 월마다 1,000만원이 꽂힌다.”

이 때 통장내역을 보여주는 경우도 흔하다. 물론 합성이지만 대부분 여기서 혹 하게 된다.



다단계의 부정적 인식 때문에 꺼려하는 사람이 많지만 그런 업체들은 예전에 없어졌다. 다단계를 많이 하지 않는 지금이 기회다!”

너가 바로 그런 업체다!



유명인들도 다단계를 하고 있다

강의 때 어떤 연예인이 다단계를 한다고 언급하는 데 어차피 여기서 나오는 말들이 밖에 샐 리는 없다는 걸 믿고 명예훼손이고 나발이고 막 지르는 듯?


명문대 나온 사람들도 다단계를 한다!”


명문대학을 나온 업자 모씨를 내세우며 이런 사람들도 다단계를 하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스님들이 태어날 때부터 스님이 아니었듯 다단계업자들도 처음부터 업자는 아니라서 멀쩡히 학교 다니다가, 또는 사회생활 하다가 온 사람도 많다. 그 중에 소위 명문대학이라 부르는 In Seoul 대학 출신들도 있는데 그 사람들이 그렇게 학벌을 내세우며 사업선전을 한다. 어떻게 보면 재수 없게 비춰지지만 학벌의 중요성이라는 고정관념이 뿌리 깊게 박혀있는 한국사회에선 명문대학 출신이 다단계를 한다!는 것만큼 설득력 있는 것도 없을 것이다.

 

 


물론 이런 것들로 넘어가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지만 최소한 매우 부정적인 시선은 거두게 할 수 있고 심지어 사업 결정에 대한 고민까지 하게 만들 수도 있다. 그리고 저렇게 포석을 깔아놓은 뒤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가는데 그 때 쓰이는 것이 예나 지금이나 훌륭한 '정치적 기법'으로 쓰이는 '감성마케팅'과 자기합리화를 위한 명분 만들어주기.


저번에도 언급했던 성공한 사람들의 인간극장이 여기서 나오는데 돈을 얼마 벌었느냐에 대한 얘기는 아예 하질 않고 인생을 살아오며 내가 얼마나 어리석은 놈이었고 부모님께 나쁜 자식이었으나 그걸 다단계를 하며 극복해나가 지금은 나를 손가락질하던 부모님이나 친구들에게서 인정받는 존재가 되었다는 말을 함으로써 내가 굳이 돈 때문에 이걸 하는 게 아냐!” 라는 자기합리화를 각인시키게 된다. 심지어 이 얘기를 듣다가 우는 사람도 생길 정도다. 거의 매주 매 시간마다 이런 강의가 이어지게 되고 중간중간 멘붕을 겪는 사람들도 마음을 다잡아 다단계를 지속할 추진력을 얻게 됨으로써 빚만 늘어가게 되는 거다.


결국 다단계가 사람을 꼬드길 땐 누구나 알고 있는 상투적인 수법을 쓰는 거지만 상투적이라는 건 결국 그만큼 효과가 있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써먹는다는 것과 똑같은 의미니 이 땅에 다단계를 위해 체력과 정신과 땀, 그리고 돈까지 바치는 사람들은 사라지지 않고 그들을 등쳐먹는 사기꾼들 역시 바퀴벌레처럼 질긴 목숨을 연명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도 N사의 지식in을 비롯한 여러 커뮤니티에선 온라인으로 캠퍼스를 확장한 거마대학교의 허상만 있는 성공담이 실시간으로 넘쳐흐르고 K구나 S구 등 거마대학교들이 판을 치는 곳에선 정장을 갖춰 입고 점심때마다 뽀그리를 잡숫는 청년들을 볼 수 있다. 이들을 마주할 때마다 전직 다단계업자로서 씁쓸함이 저며온다.

 


 

사기는 테크닉이 아니다. 심리전이다. 그 사람이 뭘 원하는지,

그 사람이 뭘 두려워하는지 알면, 게임 끝이다.”-영화 범죄의 재구성 -











※ 월간잉여 12월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