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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스포츠

1월의 잉반 (설까치)





9와 숫자들 [유예] (2012)

9와 숫자들의 첫 앨범이었던 [9와 숫자들](2009)은 묘한 가요 앨범이었다. 9(송재경)가 만들어낸 슬픔과 낭만은 신스 팝을 만나면서 우리를 '울면서 춤추'게 했다. 이번에 나온 [유예]는 신스 팝이란 외피 대신 가장 기본적인 편성의 포크 록을 통해 특유의 말간 정서를 드러낸다. 복고란 열쇳말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첫 앨범에서 우리를 춤추게 했던 전자음은 사라졌고 그 자리는 '' 대신 '슬픔'을 더 잘 드러낼 수 있는 수수하고 정갈한 연주가 대신하고 있다. 그 연주 안에서 음반 제목 '유예'란 낱말에서 연상할 수 있는 망설임과 후회, 상처, 위로의 조각들이 음반 곳곳에 박혀있다. 귀 기울여 들으면 굉장히 슬픈 동요들이 있다. 노랫말부터 곡, 그리고 노래가 갖고 있는 정서 모두가 그렇다. 9와 숫자들의 새 노래들은 마치 그런 슬픈 동요들처럼 들린다. 그 노래들은 포크 록이기도 하면서 어른들을 위한 동요이기도 하다. 동요 <과수원 길>을 동기 삼아 만든 <아카시아꽃>은 그래서 상징적이다. [유예]에는 "이 다음에 어른이 되어도 사랑은 안 할 거야"라고 말하는, 여전히 소년이고 싶은 어른의 모습이 담겨있다. [유예]는 그런 어른아이들을 위한 성장기의 기록이고, 따뜻한 성장소설이다. 그리움에 아련함을 더한 눈물과 위로의 숲이다.

 





Bill Evans [You Must Believe In Spring] (1977)

겨울이 되면 늘 찾아 듣는 음반들이 있다. 요 몇 년 가장 자주 손이 가는 건 빌 에반스 트리오의 [You Must Believe In Spring]이다. '재즈계의 쇼팽'이라 불리던 빌 에반스의 만년의 작품이다. 지적인 외모와 달리 젊은 시절 그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만큼 마약에 탐닉하며 방황했고, 최고의 음악 파트너이자 베이스 연주자인 스캇 라파로를 만나 전성기를 열어갈 때 교통사고로 지음(知音)을 잃는 슬픔을 경험하기도 했다. 그런 방황, 회한, 허무의 시간을 모두 보낸 늘그막의 그는 [You Must Believe In Spring]에 그 경험들을 바탕으로 한 인생의 깊이와 사색을 담아냈다. '재즈계의 쇼팽'이라는 수식어가 빈말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듯 빌 에반스는 서정적이며 탐미적인 세계를 펼쳐 보이고, 에디 고메즈(베이스)와 엘리엇 지그먼드(드럼)는 치열한 인터플레이보다는 그런 빌 에반스의 세계를 보조하는데 중점을 둔다. 빌 에반스의 연주는 여전히 아름답고, 피아노와 베이스, 드럼 연주 사이로 전해지는 공간감 또한 기가 막히다. '당신은 봄을 믿어야 해요'라는 앨범 제목은 지금 계절에, 그리고 지금의 현실에 꼭 들어맞는다. 난 이 음악을 들으며, 새로운 봄이 올 것을 믿으며, 이 겨울을 견딜 것이다.














※ 월간잉여 1월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