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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우리는 행복해집니다 (김경민)


 

잉집장 주: 1월호 주제는 '예언'이었습니다. 다음은 자칭 '귀여운 잉여' 김경민 님이 남긴 예언입니다.

<해리포터: 불사조 기사단>에서의 볼드모트





1. 김경민은 글쟁이가 됩니다

김경민은 귀여운 어린이 시절부터 천진한 표정으로 많은 어른들에게 거짓말을 치고는 했습니다. 가끔 사기 수준의 심각한 거짓말도 있었지만 대부분 들키지 않았습니다. 타고난 연기력과 말 재주 때문입니다. 그런 재주들은 결국 어른이 되어서 글쓰기로 발현이 됩니다. 삶의 대부분을 컴퓨터 프로그래머를 꿈꾸고 공대를 졸업하며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느라 보냈던, 그러니까 글과는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살았던 김경민은 월간 잉여에 글을 싣는 것을 계기로 각종 출판사들에게 출판 제의를 받습니다.


수많은 제의 속에 우쭐해진 김경민은 청춘과 멘토, 위로 그리고 힐링, 각종 돈이 되겠다 싶은 키워드들을 각종 거짓말과 당연하고 뻔한 말들과 함께 갖다 붙이며 최고의 글을, 아니 최고의 구라를 써냅니다. 그리고 그 책은 이 시대 사람들의 필독서가 되고 또 엄청나게 팔립니다. 김경민은 부자가 됩니다. 출판업계가 망했든 말든 어쨌든 김경민은 책을 엄청나게 팔아먹고 부자가 됩니다.


또 혜민스님과 김난도를 뛰어넘는 훌륭한 멘토가 되어 전국을 싸돌아다니며 강연도 하게 됩니다. 강연의 끝은 언제나 이게 다 월간 잉여 때문입니다. 제 부족한 글을 매달 실어주셨던, 또 마감일이 지나도 화 한번 내지 않으셨던, 위대한 잉집장님께 감사드립니다이었습니다.


김경민이 누구냐고요. 접니다. 그때는 따로 월간 잉여에 글을 기고하지 않아도 되겠죠. 매달 제 인터뷰와 대담이 실릴 테니까.




2. 대한민국은 행복해집니다

국민의 51.6%가 독재자의 딸에게 투표하는 일이 있었지만 사람이 먼저인 세상은 물론이고 기본소득도 실현되지 않겠지만 각종 공공요금들은 새 대통령 당선과 함께 인상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은 행복해집니다.

박근혜 당선 후로 뭘 먹어도 소화가 잘 되지 않고 불면증은 더 심해지고 어제는 눈길에 미끄러져 트리플 악셀과 트리플 러츠를 연속으로 구사할 뻔도 했지만 그런 제 상태와는 별개로 대한민국은 꼭 행복해 질 것입니다.


특별한 이유는 없습니다. 혹시라도 뭔가 이유가 있다면 굳이 이유 하나를 찾아내야 한다면, 그냥 이런 막연하고 허무맹랑하고 터무니없는 희망이라도 있어야 이 깊은 절망 속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뭐 어쨌든 우리는 행복해집니다. 그래야 합니다.




3. 그러면 김경민도 행복해질까요?

예언을 해야 되는데 질문이 하고 싶습니다. 제가 유명 작가가 되고, 시대의 멘토가 되고, 부자가 되면 또 대한민국도 행복해지면 결국 김경민도 행복해 질 수 있을까요. 개인의 행복과 나라의 행복은 서로 영합할 수 있는 것일까요.


며칠 전 또 한 명의 노동자가 세상을 등졌습니다. 노동자들은 오늘도 위태롭습니다. 그건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마 내일도 위태로울 것입니다. 누군가는 또 철탑에 올라가 싸워야 할 것입니다. 궁금합니다. 거의 대부분이 사람들은 노동자일 텐데 말입니다. 우린 왜 그들을 외면하고 있을까요.

얼마나 더 노동자의 희생이 필요한지 저는 예언할 수 없습니다.




사진 양태훈




죄송합니다. 밝고 희망에 가득 찬 글을 써야 하는데 쓰는 글마다 절망이 가득 차있습니다. 진심으로 죄송한 마음을 전합니다. 하지만 저 뿐만 아니라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아니 이 글을 평생 읽지 않을 당신도, 우리 모두가 사과해야 합니다. 우리는 다음 세대들에게 사과해야 합니다. 다음 세대들의 대부분도 노동자가 될 테니까요.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우리가 만들어낸 세상이니까요. 우리는 큰 빚을 졌습니다. 우리들의 미래에게 말입니다.




4. 그러니까 우리는 행복해져야 합니다

자본주의 사회는 경쟁을 필요로 하고, 경쟁은 누군가의 희생을 강요합니다. 그러니까 누군가 행복하다면 반드시 누군가는 불행하다는 이야기 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행복해 질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혁명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니 멸망을 바라면 될까요? 세상도 리셋이 되나요?


우리는 계속 싸우고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논의해야 합니다. 거악에 맞서는 방법, 경쟁에 뒤쳐져도 행복할 수 있는 정서적인 토대 등을 끊임없이 이야기해야 합니다. 그렇게 행복해 질 수 있는 방법을 찾으면서 행복해지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시대를 방관하거나 관조하지 않고 깨시민 어쩌고 하면서 조롱하지도 않아야 합니다.

우리는 행복해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야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행복해져야 합니다.

 




 




※ 월간잉여 1월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