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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스포츠

레슬링여 2편: 올랜도 조던 (김호진)


태초에 S본부에 웃찾사 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리즈 시절엔 K본부의 개그콘서트를 쌈 싸먹을 정도로 화려한 전성기를 구축했지만 지금은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무리한 유행어의 남발과 방송 외의 활동에서 애드립, 개드립, 패드립, 섹드립을 적극 적절히 버무리다 대중들에게 조소와 비웃음을 산 채 종영된 프로그램으로 남아있다. (심지어 종영 당일 날 녹화를 하던 개그맨들도 그게 마지막 촬영인지 몰랐다 ‘카더라’.) 이 웃찾사가 반짝 인기를 구가할 무렵 '혼자가 아니야' 라는 히트 코너가 있었는데 이렇게 말해봤자 사람들은 잘 모를 듯싶다. '동수야' 라고 하면 아!하고 무릎을 탁 치며 알아 챌 것이다.


(하와이를 가려다 못 간 그 친구를 제외하곤) 동수 자체가 워낙에 절대명사 같은 존재라 따로 설명할 필요는 없지만 굳이 관 뚜껑 닫고 못질 까지 단디한 프로그램과 코너를 언급하며 스타워즈 시리즈의 인트로 마냥 장황하게 서두를 꺼낸 이유가 다 있는데, 한때 디시인사이드 프로레슬링 갤러리(이하 프갤)에서 존재감 없음으로 존재감을 어필하여 이윽고 '동수' 라는 작위(…)까지 주어지고 WWE에서도 잉여, 관객들에게도 잉여, 심지어 잉여 중에서도 상잉여인 디씨인들에게도 잉여 취급을 받아 잉여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올랜도 동수… 아니, 올랜도 조던을 이야기하기 위함이었다.






사진 출처: bleacherreport.com





90년대 NBA팬이라면 애수를 느낄 두 단어, '올랜도' 와 '조던' 이라는 상징적 언어를 이름으로 지니고 태어난 올랜도 조던 씨는 그 이름이 무색하게 농구와는 전혀 관계없는 삶을 산다. 그가 프로레슬링을 하게 된 계기는 어릴 때 자폐증을 앓고 있었고 이것을 치유하기 위해 서라고 한다. 한마디로 레슬링이 그에게 힐링 캠프가 된 셈인데 어찌됐든 열심히 노력한 덕분인지 프로레슬링 업계의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삼성이라고 할 수 있는 WWE와 계약하게 된다. 데뷔 후 그닥 큰 임팩트를 보여주진 못했는데 그도 그럴 것이 흑형들의 필수 요소인 평범한 대머리에 사무엘 잭슨을 닮을까 말까하다 어중간하게 포기한 것 같은 외모, 90년대 한국의 발랄한 초딩들에겐 오줌 묻었다고 놀림받았을 법한 황금색 빤쓰를 입고 경기에 나섰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흑인 특유의 유연성이나 운동 능력이 돋보였던 것도 아니라 경기는 찔끔찔끔 나온다. 결국 각본 하나 없는 잉여 세월을 몇 년간 보내고 나니 관객들이나 시청자들 역시 그가 경기에 나올 때면 항상 갓 데뷔한 신인 보는 마음으로 별 기대와 환호와 야유도 없이 그의 무존재감을 부각되게 해주게 된다.

그렇게 하루하루 뭐 싸는 뭐 마냥 지내다 큰 기회가 주어진다. 당시 WWE챔피언을 지내던 JBL의 수석참모(래봤자 꼬붕1)로 발탁되어 하루하루 걸레짝이 되도록 얻어터지기만 했지만 어쨌든 유명 선수들과 대립하면서 매번 TV에 얼굴을 비추게 된 것이다. 그러다 2005년 3월, 조던은 데스노트의 류크처럼 머리스타일도 바꾸고 예나 지금이나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존 시나의 US타이틀(WWE타이틀보다 약간 격이 떨어지는 타이틀)을 뺏어 US챔피언에 등극했다. 그러나 최고의 악역을 맡았음에도 불구하고 관객들로부터 응당 받아야 될 야유 한 톨 받지 못하는데 난 아직도 그것을 존 시나에 꺾은 데 대해 관객들의 분노에 찬 ‘함성 보이콧’ 이라 믿고 있…아니 믿고 싶다.


아무튼 각본이 있을 때나 없을 때나 그놈의 미칠듯한 무존재감으로 적극 어필한 결과 프갤에선 올랜도 조던을 투명인간, 즉 '동수' 로 취급하기 시작해 이윽고 '올랜도 동수' 라는 별명이 생겨 그가 WWE에 등장해 마이크웍(경기 외에 마이크를 잡고 떠드는 것)을 할 때면 "마이크가 둥둥 떠 있네요?" 라던지 그가 챔피언벨트를 차고 나오면 "챔피언벨트가 공중부양 중이네요?와 신기해라~" 등의 조소가 깃든 각종 드립을 쳐댔다.






마이크가 둥둥 떠다니는 것처럼 보인다면 사실입니다



벤와와의 경기를 위해 멋지게 등장하는 올랜도 조던

(두  사진 출처 모두 디씨 프로레슬링 갤러리)





그렇게 무존재감으로 전성기를 달리던 그에게도나락의 기회가 떨어지는데 그의 오야붕이었던 JBL이 존 시나에게 알차게 얻어터진 끝에 챔피언자리를 빼앗기고 메인 각본에서 물러나게 되어 자연히 그 떨거지인 조던 역시 챔피언이긴 한데 챔피언을 챔피언이라 부를 수 없는, 아무튼 총체적 난국에 빠지게 된 것이다. 그래도 이름이나마 일단은 ‘US챔피언 *** **’ 이었기에 WWE각본진이 봤을 땐 일단 이 잉여놈이 가진 챔피언자리를 토해내게 할 필요가 있었고 그리하여 새로이 챔피언감으로 지목된 故크리스 벤와와 함께 짧지만 굵고 재미까지 더해진 대립을 시작하게 된다.

크리스 벤와와의 대립은 그가 그나마 WWE에서 마지막으로 제대로 된(것이라고 생각하기 어렵지만) 각본을 부여받았던 시기였다. 하지만 그마저도 개그로 점철되어 있었는데 대립 내용인즉슨, 1)벤와와 조던이 붙는다. 벤와가 등장 시 관객들은 환호를, 조던이 등장 시 관객들은 2012년 최고의 핫이슈였던 모 여자아이돌 그룹에게 보인 반응처럼 침묵으로 일관한다. 2)경기가 시작되고 벤와가 기술을 건다. 28초(!!)만에 조던이 항복해 챔피언 자리를 뺏긴다. 의심스러울까봐 미리 말하지만 28분을 잘못 표기한게 아니다.  3)챔피언자리에 재도전한다, 역시 벤와가 기술을 걸고 이번엔 18초 만에 항복한다. 4)다시 재경기를 가진다. 이번엔 10초 만에 항복한다. 그렇게 조던은 자신의 기록을 앞당기기 시작한다(….)


이 웃기다 못해 씁쓸한 대립도 결국 끝이 나고 조던은 씹던 껌 마냥 질근질근 씹히다 버려진 신세가 되어 결국 WWE에서 방출되어버리고 만다. 이후엔 NWE라는 이탈리아 단체에서 챔피언을 차지하기도 하고 얼티밋 워리어(언더테이커에게 생매장 당해 죽었다던 그 워리어 맞다)와 대립하는 등 나름대로 괜찮은 선수 생활을 하다 2위 단체인 TNA에 데뷔해 본인의 실제 성 정체성인 양성애자 캐릭터로 데뷔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특유의 어린이 수영장같이 얕은 존재감은 어찌할 길이 없어 결국 TNA에서도 방출이 되어버렸고 이후엔 별다른 소식은 없이 어디서 삼시세끼 잘 먹고 사는지 궁금할 리 없지만 경기력, 마이크웍, 외모, 개성 등 무엇 하나 돋보이는 것 없이 무존재감으로 사람들의 뇌리에 존재감을 각인시켰던 그를 잉여로 규정하며 ‘레슬잉여’의 전당에 올리기로 한다.











※ 월간잉여 11호(창간 1주년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