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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스포츠

양 웬리가 최고시다? (한윤형)

이런 잉여짓도 있다

중학생 시절 다나카 요시키의 <은하영웅전설>은 김용의 <영웅문>(<사조영웅전>, <신조협려>, <의천도룡기> 세편을 고려원에서 이와 같은 이름으로 묶어서 냈다)과 함께 우리들의 고전(古典)이었다. 국어선생들은 <삼국지>를 추천했으나 나는 사실 <삼국지>와 엇비슷한 형식의 이 소설들은 어째서 탄압받아야 하는지 궁금했다.


특히 나는 이 소설의 양대 주인공 중 한명인 양 웬리의 신도였다. 다이어리 같은 곳에 양 웬리 어록같은 것을 빼곡이 채워넣을 정도였다. 소설 배경상 서력 3600년 경에야 발생하는 사건인 그의 죽음은 서력 1990년대 한국이란 시공간을 살던 어린 나에게 커다란 충격이었다. 존재하지도 않지만 설령 존재한다 하더라도 1600년 후에야 발생하는 그 사건이 크나큰 슬픔을 준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일본의 양 웬리 팬들은 그의 기일에 함께 모여 제사도 지낸단 말을 듣고 그 심정을 납득했다. 지금은 잊었지만 나도 오랫동안 그의 기일을 기억했다(아마도 4월 하순경이었다).





양웬리 (출처: 엔하위키)





다나카 요시키의 그 소설은 김용의 무협소설처럼 즉각적인 반응을 이끌어내지는 못했던 터라, 나는 이 소설을 널리 보급하여 친구들과 함께 떠들기 위해 인기투표를 기획하기도 했다. 좀 짜증스러웠던 것은 본편 10권 외전 4(당시)에 달하는 시리즈의 초반 두 세권을 읽다만 친구들이 키르히아이스에게 표를 던졌다는 것이다. 취향의 영역과 민주주의 원칙은 충돌한다는 것을 내게 가르친 최초의 사례였다.


나는 그 사실을 묵과할 수 없어 투표의 영향력을 차등화했다. ‘좋아하는 캐릭터1위부터 5위까지 쓰게 하고 1위는 5*(그가 읽은 책 권수)로 갔고 순위마다 점수가 낮아지며 5위는 1*(그가 읽은 책 권수)가 되게 했다. 말하자면 14권을 다 읽은 내가 양 웬리를 1위를 택하면 양은 70점을 얻게 되지만 2권만 읽은 친구가 키르히아이스를 1위를 택하면 그는 10점만 얻게 되는 식이었다. 하지만 이런 꼼수를 써도 인기투표에서 1위를 차지하는 것은 키르히아이스였고 양 웬리는 근소한 차로 2위로 밀렸다. 훗날 찾아본 바에 의하면, 일본 쪽 팬덤에서의 투표결과도 당시 한 중학교에서 내가 실시했던 인기투표 순위의 양상과 큰 차이가 없었다.

 




한국의 독자들에게 정치를 가르쳐준 양 웬리

그런데 당시 나는 스스로를 굉장히 특이한 양 웬리의 팬이라 여겼던 것 같다. 물론 인기투표에서 2위를 차지하는 양의 팬이 그 중학교에서도 드물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대체로 양 웬리의 선택에 불만을 표했다. ‘은영전팬덤은 크게 은하제국자유행성동맹이 대립하는 그 소설의 특성상 제국빠동맹빠로 나뉜다. ‘동맹빠들은 대체로 양 웬리의 팬을 겸한다.


하지만 민주주의 국가인 자유행성동맹을 응원하는 팬이라 하더라도 민주주의 원칙에 충실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대체로 양 웬리의 선택을 아쉬워했다. 말하자면 그들은 양 웬리가 어느 순간 자유행성동맹의 지도자(사실상 독재자)가 되어 제국의 라인하르트와 건곤일척의 승부를 버리길 바랐다. 이런 관점은 양 웬리의 어록을 적으며 그의 사상’(?)을 흠모하던 내게는 지지받을 수 없는 것이었다.


한 중학교에서 나는 다른 동맹빠와 자신을 비교하며 스스로를 매우 특이한 이라 여겼지만, ‘은영전을 즐겼던 내 또래 세대 전체를 보자면 이런 반응 역시 하나의 보편성이었다. 사실 은영전이란 소설의 배경설정이 그렇게 훌륭하다고는 볼 수 없다. SF의 하위장르인 스페이스 오페라라 보기에 과학기술의 묘사가 지나치게 소략하다는 점을 넘어, 정치극이란 측면에서도 그렇다.


이는 다나카 요시키가 근대와 전근대의 차이에 무심하거나 무지한 중국 역사 덕후였다는 사실에 기인하는 것 같다. 그가 가상으로 만들어낸 은하연방의 역사에서 루돌프가 민주주의 국가의 권력을 찬탈하고 스스로 황제로 올라서는 것은 실제의 역사에선 히틀러가 바이마르 공화국의 권력을 찬탈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하지만 민주주의에서 퇴행한 파시즘이 근대의 현상이라면, 다나카 요시키는 이러한 권력찬탈의 결과 사회가 왕정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처럼 묘사한다.


이런 착오의 결과 발생하는 묘사의 비현실성을 지적하자면 한도 끝도 없다. 가령 소설에서 묘사되는 은하제국은 거의 농노제 국가에 가까운데 이런 체제로 자본주의 국가인 자유행성동맹과 어떻게 경쟁할 수 있었는지를 설명할 수 없다. 은하연방의 역사에서 전성기 시절 3천억에 달했던 인류 인구가 전란의 시기를 거쳐 400억으로 줄어든다는 서술은 근대 이후 역사에서 가능했던 것이라기 보다는 중국사에서 전한시기 인구가 위오촉 삼국시대에 극적으로 줄어드는 상황을 모방한 것에 가깝다. 하지만 중국사에서의 인구의 요동은 사람이 정말로 죽은 탓도 있겠지만 행정력의 약화로 인구 파악이 힘들어진 상황 탓도 있을 것이다. ‘우주시대역사 서술에서 참고할 수 있는 격변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극으로서의 은영전의 설정과 양 웬리의 사상이란 것이 어떤 현실적인 것으로 우리에게 다가온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시사in 만화에서 굽시니스트가 설명했듯이, 일본의 독자에게 수용된 것과도 다른 문맥이었다. 대한민국사의 맥락을 참조했을 때, 가령 우리는 라인하르트를 농노제 봉건국가를 혁신하는 전제군주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무의식중에 우리는 그를 민주주의보다 효율적이라 주장하는, ‘지주계급을 일소하는 제3세계의 군부독재 세력으로 이해했다.


라인하르트냐 양 웬리냐는 질문은 다나카 요시키의 허술한 설정에 한국 현대사의 문맥을 채워넣었을 때 박정희냐 김대중이냐라는 질문으로 변환될 수 있었다. “효율적인 전제군주정이냐, 비효율적인 민주정이냐라는 질문은 그 자체로는 별로 현명한 것이 아니었고 일본 독자들에게는 사소한 사유실험이었겠으나 우리에겐 다른 메시지로 도달했다. 사실 우리는 박정희도 김대중도 잘 몰랐고 관심도 없었지만 만일 정치에 대해 관심을 가진다 했을 때 이 사회의 정치적 토론은 그런 맥락을 공기처럼 품고 있었다.


을지문고에서 해적판으로 나온 이 소설이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중반 사이에 태어나 1990년대에 사춘기를 보낸 독자들에게 미친 영향은 그런 것이었다. ‘은영전이 한국 청년들에게 미친 영향을 논한다는 건 양 웬리가 그들에게 미친 영향을 말한다는 것과 동일했다. 이는 양 웬리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제국빠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양 웬리는 은영전에서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 해주는 캐릭터였기 때문이다. 수많은 캐릭터와 대사가 나오는 소설이지만 양 웬리처럼 잠언의 형태로 자신의 사상(?)을 독자들에게 주입하려는 캐릭터는 없다. 작가가 양 웬리의 시시콜콜한 말도 다 복습하려는 (양 웬리의 양자인) 율리안 민츠라는 캐릭터를 만들어낸 덕분에 독자들은 양 웬리의 잠언(?)조차 소설적으로 무리없이 전해 듣게 된다. 내가 다이어리에 그의 어록을 빼곡이 채워넣을 수 있었던 것도 그때문이었다.


그렇게 한 세대의 남성 집단은 양 웬리를 통해 일종의 정치성을 획득하게 된다. 이 또래 남성을 만나면 진보정당에 입당한 이들에게도, 노무현을 사랑했던 이들에게도, 쿨게이를 자칭하는 이들에게도, 정치에 관심이 없다 가끔 정치인과 여성을 욕하는데 동참하는 이들에게도 내면에 하나의 양 웬리가 숨쉬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양 웬리는 이들 또래의 어떤 이들에게 386세대 운동권에게 레닌이 실존했던 인물이었던 것만큼이나 실존했던 인물이었다. 나 역시 고등학생이 되어 진중권의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를 보았을 때 저자의 생각이 양 웬리의 것과 완전히 동일하다고 생각하였고, 웹에서 처음 그를 만났을 때 혹시 <은하영웅전설>을 보셨나요?”라고 묻는 흑역사를 만들었던 것이다. 진중권이 그 소설의 존재도 몰랐던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고, 한편으로 너무나 다행스러운 일이었다고 하겠다.

 






사진 한윤형

(잉집장 주: 은영전 박스세트를 구매하고 성취감을 느꼈던 글쓴이는 얼마 후 50% 세일 소식을 듣게 되는데....)







양 웬리의 정치성의 문제, 군사적 에로티시즘

하지만 우리끼리만 알던그 양 웬리를 이제 더 많은 사람들이 얘기하게 되었다. 물론 이는 은영전을 소비하던 그 세대의 머리가 굵어졌고, 하위문화의 취향을 횡단하며 정치적 접근을 하는 굽시니스트의 시사in 만화의 단골 소재 중 하나가 그것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이상의 무언가도 있다. 가령 지난 대선 막판까지 영향력을 유지하던 무소속 안철수 후보의 측근으로 알려진 금태섭 변호사가 칼럼에서 <은하영웅전설>을 인용하는 세태는 십 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세대투표가 일상화된 세상에서, 사회주의를 막 청산한 70년대 학번과 80년대 학번에게 환멸의 대상이었던 저 90년대 대중문화에 대한 언급은 이제 그들이 후세대에게 접근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 되었다.


하지만 우리에게 영향을 미쳤던 그 양 웬리의 사상은 정치적인 것이었다기 보다는 탈정치적이었단 것이 내 생각이다. 그것은 크게 보아 두 가지 측면에서 드러나는데, 하나는 전쟁과 군대를 비판해온 양 웬리가 사실상 정치보다 군사를 우선시하는 군사적 에로티시즘에 빠져 있었다는 것이고, 둘은 타인의 신념을 혐오하는 그의 사상이 정치보다는 탈정치에 가까웠다는 것이다.


군사적 에로티시즘이란 말은 소설 내에서도 후세 사가의 입을 빌려 나오는데, 사실 자유행성동맹의 말기를 혼자 버텨낸 양 웬리의 군사적 업적에 대한 찬탄의 감정을 구성하는 정서다. 양 웬리는 정치하수구에 비유하면서 꼭 필요하지만 나는 가까이 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런데 이는 쿠데타를 일으켜 직접 동맹을 혁신하십시오라는 부하 장교인 발터 폰 쇤코프의 말에 대한 반응이다.


그런데 군부가 정치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과는 별도로 양 웬리가 정치에 개입할 길은 얼마든지 있었다. 군복을 벗은 후 정치인이 되어 정치세력을 형성하는 길이다. 양 웬리는 자유행성동맹 멸망 이후 시민들이 반제국시위를 할 때 민주주의 만세자유행성동맹 만세와 함께 양 제독 만세를 외칠 정도로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던 인물이다.

 

그가 정계에 입문하여 주류 정치세력에 대립하는 반전운동의 상징이 되었다면 파급력이 있었을 것이다. 정치의 길을 택한 제시카 에드워즈가 죽기 전, 혹은 죽은 이후라도 그가 그런 길을 택했다면 국가에 대해 훨씬 더 큰 영향력을 미칠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소설 속에서 양 웬리가 활동한 시간은 29살 때부터 33살 때까지 만 4년여의 기간에 불과하다. 그에겐 그런 길을 택할 적절한 기회가 없었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소설상에서 그가 이런 선택에 대한 고민을 거의 하지 않고, “쿠데타를 일으켜 독재자가 되느냐, 아니면 민주주의 국가의 군인으로 남느냐는 이상한 양자택일의 선택지 안에서만 생각한다는 것은 좀 이상하다. 나는 다나카 요시키가 이런 문제에 대한 고려가 별로 없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물론 조용한 곳에서 혼자 책이나 읽는 역사학도가 취향에 맞는 양 웬리에게 정치는 몸에 맞는 옷’(양 웬리 자신의 표현)이 아니었겠지만, 쇤코프의 말대로 각하는 전쟁도 싫어하지만 전쟁은 잘하시지 않습니까라고 반문할 수 있는 상황이다. 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고민이 그렇게 깊고 국가의 운명을 진심으로 걱정했던 양 웬리가 3의 길을 고민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은 이 소설이 부지불식간에 정치의 삶에 대한 통제력보다는 군사적 재능과 전쟁만이 역사를 바꿀 수 있다는 전제를 믿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하긴 이 소설은 정치극이기 이전에 전쟁소설이기도 하니 말이다.


양 웬리와 다나카 요시키의 군사적 에로티시즘의 일단을 보여주는 것이 테러리즘에 대한 그의 태도다. 양 웬리는 테러리즘은 한 번도 역사를 건설적인 방향으로 이끈 적이 없다며 그것을 완곡하게 거부한다. 하지만 이는 정치평론가의 말이라 생각하면 그럴듯도 하지만, 전쟁을 이끄는 현역 군인의 발언으로는 어색하다.


좀 더 심도있게 생각해보면 도대체 국가라는 수단을 매개한 폭력인 전쟁은 용인되는데 그런 매개가 없는 폭력인 테러는 비난받는 이유를 찾을 수 없다. 물론 양 웬리는 전쟁 역시 거부하면서도 전쟁에 참여하는 모순적인 존재였다. 하지만 그렇다면 그는 남들이 테러라는 수단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도 관용적인 태도를 취했어야 옳다. 우리는 김구와 윤봉길을 테러리스트로 묘사하는 뉴라이트의 역사서술에 발끈하지만, 더 근본적인 질문은 전쟁과 테러를 구분하며 전자만을 정당화하는 그 시선의 정치적 포지션이다.


양 웬리의 양자인 율리안 민츠는 페잔에서 양의 발언을 되새기며 라인하르트에 대한 저격을 포기한다. 그러나 만일 그 저격이 성공할 수 있었다면 그 파급효과는 양 웬리가 전쟁터에서 라인하르트를 꺾은 것과 동일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양 웬리는 고도의 정치적인 판단으로, 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라인하르트 개인의 죽음이라 결론내렸기 때문이다. 미혼이며 아이가 없는 카이저 라인하르트가 죽는다면, 제국군의 여타 장수들은 후계 다툼을 위해 퇴각할 수밖에 없다. 그런 상황이라면 라인하르트가 전쟁을 통해 죽든 테러를 통해 죽든 그 파급효과는 동일하다. 물론 나는 율리안이 그 상황에서 저격을 포기한 것은 다행한 일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그런 상황에서의 저격이 성공할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이지 테러리즘이 나쁜 것이기 때문은 아니다. 내 생각에 테러리즘은 민간인을 그 대상으로 삼지 않는 한 딱 전쟁만큼 나쁜 것이며, 전쟁이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그것을 비난할 근거는 없다. 테러리즘에 대한 그의 부적절한 비판은 바로 군사적 에로티시즘의 증거라고 할 만하다.

 





율리안 (출처: 엔하위키)






라인하르트 (출처: 엔하위키)







다원주의는 형이상학인가?

또 하나 양 웬리의 사상에서 문제가 되는 지점은 그의 신념에 대한 혐오에서 드러나는 형이상학으로서의 다원주의. 양 웬리는 신념을 위해 사람을 죽이는 것은 돈을 위해 사람을 죽이는 것보다 더 나쁘다. 돈은 모든 이에게 가치를 지니지만 신념은 그 자신에게만 가치를 지니기 때문이다라고 말하곤 했다. 물론 이 문맥에서 신념이란 것은 신념 일반이 아닌 사람을 죽이는 극단적인 선택을 내리게 될 정도의 광신적인 상태를 의미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양 웬리와 다나카 요시키가 신념을 사실상 광신같은 것으로 보았고 비슷한 문맥에서 일신교를 대단히 혐오했다는 것도 사실이다. 이는 <은하영웅전설>에서 뿐만 아니라 <아루스란 전기><창룡전> 등 다나카 요시키의 기타 소설에서도 드러나는 바다. 그는 다신교가 일신교보다 형이상학적으로 우월한 체제라 생각하는 듯하고, 일신교보다는 다신교를 믿는 사람들, 신념이 확고한 이들보다는 특정한 신념을 믿지 않는 이들이 민주주의에 더 적합하다고 믿는 듯하다.


물론 다나카 요시키처럼 생각할 수도 있다. 그의 생각을 정치철학의 영역에서 가장 세련되게 풀어본다면 리처드 로티가 제시한 아이러니스트의 개념에 이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의 생각이 기본적으로는 무리한 구석이 많았다고 본다. 가령 그런 식이라면 도대체 왜 일신교적 사유가 가장 굳건했던 서구에서 민주주의가 발달했는지를 설명할 수 없다.


오히려 진실은 정반대다. 정치철학에서 말하는 바는, ‘종교전쟁이후 구교와 신교가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게 되면서, 정치철학의 문제가 생겨났다는 것이다. 전근대시기 사회 구성원들은 같은 세계관을 공유했다. 이때에 다신교는 외래의 신을 자신의 신화체계 안에 흡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가령 부처가 오면 부처도 판테온의 일원이 되었다. 반면 일신교는 서로간에 건곤일척의 승부를 펼칠 수밖에 없었다. 다나카 요시키가 매우 싫어한 그 현상이다.


그러나 바로 그랬기에, 종교전쟁 이후 힘의 균형상태에서 유럽사회는 세계관이 전혀 다른 사회구성원들이 서로를 용인하며 살아야 하는 문제라는 인류사회가 일찍이 경험해 보지 못했던 새로운 문제에 봉착했다. 그리고 아직 시민들이 정치적 권리를 획득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하더라도, 이것이야말로 민주주의의 문제였다. 민주주의는 형이상학적으로 다신교와 다원주의를 체화한 이들이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제각각의 일신교를 믿는 사람들, 제각각의 확고한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서로를 인정하고 협력할 수 있느냐는 문제에서 시작된다. 즉 민주주의는 형이상학으로서의 다원주의(혹은 관용‘)’가 아니라 형이상학끼리의 다원주의(혹은 관용‘)’의 문제인 것이다. 양 웬리의 발언에서 거듭 드러나는 것은 그가 이 지점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비록 양 웬리를 통해 정치적 관심을 키운 것이 우리 세대라 하더라도, 정치에 대한 이해를 더 깊게 하려면 양 웬리를 벗어나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정치평론 영역에서 양 웬리란 이름이 거듭 호출되는 것이 반갑지만은 않은 이유다.














(격)월간잉여 12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