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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제 1회 월간잉여 신춘문예



월간잉여 신춘문예다웠습니다. 출품작이 두 편 신춘문예계의 잉여…. 출품해주신 두 분께 감사드립니다.
이번 2013년 월간잉여 신춘문예 당선작은 없습니다. 월간잉여 신춘문예 당선작 혜택이 책마루 출판사를 통한 단행본 출간이었던 만큼 책마루 편집부의 결정을 우선으로 했습니다. 다음은 책마루 편집부의 의견입니다.

흔 히 뉴스의 성질은 보도 주체의 보도가치 판단과 그것을 수용하는 대중의 보도가치 판단 사이의 차이와 관계에 따라 규정된다고 할 수 있다. 좋은 뉴스는 그 관계의 간극이 적거나 혹은 크지만 이상적(異常的)인 현실을 보여준다. 소설도 그 성질을 갖는 것일까. 2013년 월간잉여 신춘문예 응모작들은 설정한 구조 속에 그 현실을 드러냈다. 짐송의 [스터디 앤더 하우스]는 '28세 무직' 네 인물을 통해, 송재훈의 [힐링. 그 역전극]은 주인공의 심리 변화를 통해 현실을 주목한다. 두 작품 모두 '집'이라는 공간이 하나의 상징으로 표현된 점이 흥미롭다. 안전한 보금자리이면서 동시에 저 문턱을 넘어야 한다는 생각에 골몰하는 공간. 두 작품 다 현실 속 많은 청년들의 공감을 일으킬 수 있는 작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선작이 없는 이유는 심사에서 가장 중점을 둔 점이 '실험성'이기 때문이다. 두 작품이 보여준 가능성은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신춘문예 응모에 감사드리며, 두 작가님의 앞으로의 행보를 기대합니다.
- 책마루 편집부 (editor@bookmaru.org)


제 의견은 다음과 같습니다. [스터디 앤 더 하우스]는 시대적 상처에 시름하는 인간군상을 정갈한 문체로 담담히 보여준 점이 좋았습니다. 월간잉여 독자들도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을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소설이라는 장르라기보다는 수필이라는 장르에 더 가까워보였던 것이 당선작으로 선정되지 못한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힐링. 그 역전극]에서 주인공의 심리변화가 급작스러웠던 점, 중국인 여자 직원 캐릭터가 현실적이지 않은 점이 아쉬웠습니다. 중국인 여직원의 말투도 어색했고 (진짜 중국인을 만나보고 쓴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진짜 중국인을 만나보고 취재해 썼다면 더 생생한 캐릭터 구축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그녀가 천사처럼 착한 인물인 것에 대해 설득력을 부여하지 않은 점도 아쉬웠습니다. 제게는 그녀가 작가의 판타지가 투영된, 현실적 질감을 갖지 못한 평면적인 인물로 느껴졌습니다.

당선이 되지 않은 작품을 소개하는 것은 도리에 어긋나나 월간잉여 독자 분들이 많은 공감을 하실 글이라 여겨지고,  또한 글을 쓰신 짐송 님께서 양해해 주셨기에 [스터디 앤 더 하우스]를 월간잉여 3월호 지면을 통해 공개합니다.










스터디 앤 더 하우스

~Study and the House~






1.

서울역에 처음 도착하던 날을 기억한다. 미드 섹스 앤 더 시티에서 시티에 해당하는 거대한 도시에 입성하던 날, 나는 모든 중심부, 오매불망 바라던 곳에 마침내 이르렀으며 내 힘으로 그걸 성취했다는 과도한 자기애에 들떠 있었다. 그러니까 공기 중에 희망과 가능성의 입자가 반짝이는 헛것을 봐도 무방한 상태였다는 뜻이다. 캐리어를 끌고 서울역을 빠져나왔을 오자마자 흔한 시골뜨기는 길을 잘못 들었다. 모퉁이를 돌았을 뿐인데 풍경이 뒤바뀌었다. 아홉시 뉴스에서나 가끔 보던, 그러니까 노숙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이었다. 점심시간이었는지 모두가 한 방향을 향해 줄을 서 있었고 식판을 든 사람들이 오갔다. 희망과 가능성의 입자 대신 남루하고 허기진 눈빛들이 총총했다. 나는 뒤돌아 달아나기 시작했다.

2년을 채우고 대학교 기숙사에서 방출 당할 때, 공용 샤워실에서 샤워를 하던 나는 오래 전 스쳤던 그 냄새를 맡았다. 서울이 건넸던 첫인사가 어제였던 것처럼 솟아올랐다. 그건, 집 없는 몸뚱이들이 뒤엉킨 냄새였고 내 갈비뼈 아래에서 조용히 피어오르는 중이었다. 하숙과 원룸과 고시원을 돌아다니며 월세와 삶의 질과 여자 혼자 살 수 있는 환경의 균형을 맞추느라 머리가 깨질 것 같은 날들의 끝물이었다.

대학 입학 후 2년 동안의 시간이, 대도시에서의 삶이 섹스 앤 더 시티와 같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포석이었다면 그 냄새가 확인 사살을 한 셈이다. 너는 사만다도 아니고 캐리도 아니라고. 빵야빵야.

사실은 그 드라마를 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들의 삶이 어떤지 전혀 모른다.

다만 나와 그녀들, 캐리도 사만다도 아닌 귤과 팥빵과 나다에 대해서 말할 수 있을 뿐이다.





 

2.

나 삼천 원만 잠깐 빌려줘 봐.”

귤이 옆구리를 꾹 찔렀다.

또 통장에 칠천 원 남았구나.”

, 하고 파라락 펼쳐지는 두 손 위에 나는 천원짜리 세 장을 올려놓았다. 귤이 뽀르르 ATM기 앞으로 달려갔다. 그 앞에서 삼천원을 입금한 뒤, 만 원을 뽑는 귤의 모습은, 좀 신성성이 부족하지만(기다리면서 엉덩이도 긁적거렸다) 하여튼 신탁을 기다리는 사제 같았다. 특히 굽신거리는 듯한 저 어깨가.

망할, 받을 때는 천 원도 받으면서 뱉어낼 땐 무조건 만 원부터야.”

귤이 툴툴거리면서 편의점에서 돈을 깨서 내게 삼천 원을 돌려주었다. 귤은 제주도 출신이라서 귤이다. 그 성의 없는 별명을 완강히 거부하던 그 애는 조랑말조랑한라봉라봉을 두고 고민한 끝에 그래도 귀엽다는 의견에 따라 을 받아들였다.

팥빵이랑 나다는 언제 와.”

나다 오늘 안 와. 폰 꺼져 있어.”

?”

어제 발표였거든.”

나는 거기까지만 말하고 커피를 홀짝였다. 잠깐 입을 벌리고 멍하니 있던 귤이 아아말 끝을 흐렸다. 어제는 중등교사 임용고시의 1차 합격자 발표가 있었다.

밥 먹고 나다 보러 가자.”

.”

나 이번에 떨어지면 죽을 거야. 죽으면 너희가 제일 먼저 발견해줘야 돼. 며칠 전 새벽에 술에 잔뜩 취해 전화한 나다가 그렇게 말했다. 나는 한참 듣다가 속삭였다. 죽고 싶어질 때면, 우리가 니 외장하드를 장례식장에서 공개하는 장면을 생각해. 지옥의 문턱에서도 기어서 돌아오게 될 거야. 나다가 푸큭,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알았어, 벽에 똥칠할 때까지 살게.

설마설마했는데 또 떨어질 줄은 몰랐다. 웃으며 전화를 끊었다고 해도 연락이 안 되는 시점에서 불안한 건 어쩔 수 없다. 초조해 죽겠는데 뒤늦게 팥빵이 어슬렁어슬렁 걸어온다.

! 늦은 주제에 어딜 걸어와, 안 날라와?!”

그러자 팥빵이 얼른 푸드득거리며 날아오는 시늉을 했다. 두 팔을 휘저으면서 발은 깡충거리고, 입으로는 우르륵 꽥꽥 삐약삐약. 지나가던 사람들의 얼굴이 대번에 창백해졌다. 우리는 뒤도 안 돌아보고 달렸지만 곧 뒷덜미를 잡혔고, 고깃집으로 끌려갔다.

대패 삼겹살은 그새 값이 또 올라 있었다. 언제나처럼 텔레비전이 가장 잘 보이는 자리를 잡고 고기보다 더 많은 김치와 콩나물 무침을 불판에 올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식당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눈이 한쪽으로 돌아간다.

지금부터 제 530회 로또 추첨 시작하겠습니다.

사회자는 오늘도 아웃 사이더 뺨치는 속사포로 똑같은 멘트를 처리한다. 당첨은순서와관계없이번호만맞으면됩니다,로또발행을위해조성된기금은저소득층,장애인등소외계층을위한공익사업등에사용됩니다, 됐고 빨리 공이나 뽑으라고 씁씁후후. 투명한 볼 안에서 45개의 공이 미친 듯이 색색깔 뺑뺑이를 돈다. 식당 안의 사람들의 눈알도, 우리 셋의 눈알도 공을 따라 돌고 돈다. 하나, , , 공이 튀어나올수록 점점 텔레비전에서 시선을 떼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공이 모두 나왔을 때 누군가가 에이 씨발, 고기 탔잖아! 하고 짜증을 냈다. 우리로 말할 것 같으면 세 개쯤 튀어나왔을 때 이미 고기를 굽고 먹는 데 열중하는 중이었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이번에도 꽝이다.

너 근데 지난달에 입금 안 했어. 이번 달에 두 달치 한꺼번에 해.”

귤이 말했다. 귤은 우리의 계주다. 사실 계주가 뭘 하는 감투인지는 모르겠다. 그냥 돈을 모아서 로또를 사는 귀찮은 일을 맡아 하고 있다. 드라마 같은 데서 계주가 튀었어 아이고!’하면서 주저앉는 아줌마들을 많이 본 우리는, 튀어도 물 건너는 데 시간이 걸리니까 곧바로 쫓아가 머리끄덩이를 잡을 수 있을 거라는 합의 하에 귤을 계주로 추천했다. 그게 2년 전이었나 3년 전이었나. 그때부터 우리는 한 사람당 한 달에 만원 씩 걷어서 매주 로또를 산다.

“4등이라도 됐으면 나다한테 종합비타민이라도 사줄 수 있을 텐데.”

팥빵이 중얼거렸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그렇게 모았던 돈을 그냥 두기만 했어도 종합비타민을 열 개는 샀을 거다.

비타민보다, 걘 니가 사온 빵 제일 좋아하잖아.”

그러게. 언제 한 번 다녀와야지.”

팥빵이 한숨을 쉬며 다 타버린 고기를 뒤집었다. 팥빵은 전북 군산 출신인데, 그곳에는 전국에 소문이 자자한 빵집이 있었다. 그래서 팥빵은 고향에 내려갈 때마다 우리의 빵셔틀을 해야 했고 종내는 얼굴이 곰보빵처럼 변했다, 고 말하면 엄청나게 화를 낸다. 어쨌든 우리는 팥빵 덕에 토실토실 빵살이 올랐는데, 그마저도 팥빵이 대학원에 진학한 이후로 힘들게 되었다. 팥빵은 명절 때만 겨우 집에 내려갔고 매일같이 실험실에 갇혀서 쪼그라드는 중이었다. 딱 쉬어 터진 단팥빵처럼.

우리는 온몸에서 고기 냄새를 풍기며 지하철을 탔다. 부우웅. 우우웅. 내 옷 속에서 핸드폰이 진동하기 시작했지만 사람들이 칸칸마다 밥알처럼 들어찬 탓에 손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사실은 뻥이다. 지도교수님 전화라면 손잡이에 거꾸로 매달려서라도 받았을 것이다.

전화는 집요하게 한 번 더 왔고 겨우 끊어졌다. 이 시간에 오는 전화는 열에 아홉은 엄마다. 저녁을 먹고, 드라마를 보다가, 문득 나이 꽉 찬 딸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엄습하면 게보린처럼 전화기를 찾아 쥐는 것이다. 너이번에는논문통과하니, 석사끝나면뭐할거니, 박사까지할거니, 여자석사가결혼하기그렇게힘들다던데취직은할수있는거니. 4년 간 빠짐없이 학부 등록금을 내주었고, 대학원에 가면 으레 교수가 되는 줄 아는 순진하고 선량한 믿음을, 아직도 날짜 지난 쿠폰처럼 끌어안고 있는 사람들. 철학과 석사 학위로는 가방끈에 목 졸려 굶어죽기 딱 좋은 현실에 대해서 입 딱 다물고, 나는 등골만 빼먹고 있다. 인간의 탈을 썼다면 전화라도 싹싹하게 받아야 할 터인데 나는 해가 갈수록 몰염치해질 뿐이다.

노량진에 내렸을 때도 나다의 핸드폰은 꺼져 있었다. 예고도 없이 내리는 진눈깨비를 맞으며 우리는 잠시 길을 헤맸다. 몇 번을 와도 헷갈리는 건 어쩔 수 없다. 얼마 전 대대적으로 벌어진 철거 때문에 표지판 역할을 하던 컵밥 노점이 없어져서 더 알쏭달쏭하다. 노점들이 들어섰던 자리에는 미처 치우지 못한 쓰레기들만 나뒹굴었다. 몇 번 엉뚱한 곳에 들어선 끝에 우리는 드림 고시원앞에 도착했다. 고시원 총무를 통해서 전화를 넣고 기다리는 동안 추리닝을 입고 슬리퍼를 끌며 비슷비슷한 사람들이 비슷비슷한 걸음걸이로 스쳐 지나갔다. 누가 누군지 도통 구분할 수가 없었다. 그 바람에 나다를 놓쳤고, 뒤늦게 우리를 발견한 그 애가 맥 빠지게 U턴을 했다. 울어서 눈이 퉁퉁 부었을 줄 알았는데 얼굴이 약간 창백할 뿐 의외로 멀쩡했다. 픽 웃으며 우리를 보고 먼저 말을 걸기까지 한다.

표정 보니까 이번 주 로또도 나가리네.”

, 국어 선생님 되실 몸이 나가리가 뭐냐 나가리가.”

될 수는 있겠니, 내가.”

나다가 중얼거리면서 호주머니를 뒤져 담배를 한 개비 꺼냈다. 담배 연기를 그렇게 싫어하더니 작년에 떨어지고부터는 종종 피운다. 그래봤자 금붕어 담배지만. 그 사이 또 몇몇의, 좀비 같은 사람들이 스쳐 지나갔다. 여기 고시 낭인들이 되게 많아, 내가 그렇게 될까봐 무서워. 두 번째 임용에 도전하면서 처음 노량진에 입성했던 나다는 그런 사람들이라는 말을 썼다. 가능한 모든 공포와 혐오를 차곡차곡 눌러 담은 말투였다.

지금은, 어떨까.

한데 뒤섞여 흐르는 듯 걸어갈 때 우리조차 그 애를 알아보지 못하는 지금은.

로또 되면 임용이고 뭐고 다 때려 치는 건데.”

, 우리 로또 계는 집 사려고 하는 거야. 집에서 손가락만 빨고 있을 순 없어, 다 일해야 돼.”

이번 겨울이 지나면 또 졸업생들이 여기로 밀려올 텐데, TO는 또 줄어든다더라. 꽉 막힌 수챗구멍에 고인 물이 된 기분이야. 맑은 물이 쏟아져 들어오면같이 푹푹 썩는 수밖에 없는.”

담배 연기를 길게 뿜으며 나다가 중얼거렸다. 귤이 몹시 심란한 표정으로 땅을 툭툭 찼다. 결국 이번에도 취업에 실패한 귤은 그저께부터 대기업의 인턴으로 나가고 있다. 나도 그냥 엄마 말대로 사범대나 갈걸 그랬어, 하고 울먹거렸던 귤이 말없이 나다의 손을 잡았다 놓았다. 추웠고 어디든 들어가고 싶었지만 선뜻 말을 꺼내지 못했다. 커피값은 비쌌고 우리 중의 누구 하나, 제대로 돈을 버는 사람이 없었다.




 

3.

보증금을 좀 더 올릴 수는 없나요?”

, . 요새 누가 보증금을 많이 받나. 은행 이자가 형편 없는데. 아무리 공부하는 학생이라지만 이렇게 세상 물정을 몰라서야.”

부동산 중개업자의 훈계는 어딜 가든 변함이 없다. 죽는다 죽는다 소리를 해가면서 무조건 이만한 집 어디서도 못 구한다고 우겨대는 데에는 나도 이골이 나서 눈 하나 깜짝 하지 않는다. 저런 말에 속아서 급하게 집을 구하면 꼭 후회하게 되어 있다.

화장실 바닥에 물도 쏟아보고 창문 틈새도 들여다보는 동안, 집주인 아니 세입자는 맨발을 포갠 채 구석에 가만히 서 있었다. 얼핏 보아도 이제 갓 스무 살이 넘은 여자애는 꾸중이라도 듣는 아이처럼 고개를 푹 숙였다. 집을 내놓은 이상 이런 식의 방문은 피할 수 없는데, 그 몇 분 안 되는 시간들은 나 역시 겪을 때마다 몹시 난감하다. 빨랫대에 걸린 옷이라든가 포개놓은 밥그릇, 미처 내다버리지 못한 쓰레기 봉지처럼 후줄근한 생활의 단면을 누군가가 속속들이 들여다보는 순간이면 불빛 아래서 생식기를 감별 받는 병아리가 된 기분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애의 얼굴을 보지 않으려고 계속 고개를 삐딱하게 꺾고 있었다. 생판 남인데도 그 얼굴 위로 자꾸만 내 얼굴이 비쳤다. 남의 방을 전전하며 산다는 점에서 우리는 아마 피할 수 없이 닮았을 것이다.

결국 계약을 하지 않기로 한 나는 구시렁거리는 부동산 주인의 욕설을 등 뒤에 맞으면서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왔다. 지난밤 내렸던 진눈깨비가 얼어서 길이 몹시 미끄러웠다. 지금 사는 집은 월세가 조금 싼 대신 비탈길 끝에 있었다. 넘어지지 않으려고 온몸에 힘을 바짝 주니 그저께 된통 넘어지는 바람에 멍이 든 엉덩이가 쿡쿡 쑤셨다. 집을 구하는 동안 슬그머니 고개를 쳐든 귀찮음 때문에 그냥 이사하지 말고 계속 여기서 살까, 했던 마음이 급격하게 수그러들었다. 집주인이 또 월세를 올리는 데 당해낼 재간이 없다. 괘씸해서라도 나가고 말 것이다. 그건 세입자가 부릴 수 있는 유일한 객기였다. 그래봐야 내 방을 포함해 도합 일곱 개의 월세를 놓고 있는 그에게 솜털만큼의 타격도 가하지 못하겠지만.

201211월에 수도권의 미분양 주택은 34,385호였다. 미분양주택은 5월부터 계속해서 늘어났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이 늘어난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방값은 계속 오른다. 하루 종일 아르바이트를 하면 월세든 등록금이든 쥐꼬리만큼은 보탤 수 있겠지만 그렇게 하면 또 공부가 무너진다. 이게 고학력 잉여의 딜레마였다. 공부할 시간과 노동 시간을 적절히 분배하기. 그러면서도 굶어죽지 않고 공부하면서 살기. 그것이 모든 과정생들의, 학문 연구보다 중요한 미션이었다. 그렇다고 바짝 일하면 일이년 마음놓고 공부할 수 있냐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취직해서 자금을 마련한 후 돌아오겠다고 대학원을 떠난 친구들의 행방은 거의 다 꿩 구워먹은 자리처럼 묘연하기만 했다.

로또나 맞아라.”

귤이 자기 소개서를 한 학기에 80장씩 쓸 때, 그 애는 연봉 희망금액을 책정하느라 골머리를 앓았다. 어쨌든 확실한 건 취업 전선에서 을에 불과한 구직자들이 요구할 수 있는 연봉은 정해져 있고, 그걸로는 하루 종일 삼각김밥만 먹고 버텨도 한동안 그럴 듯한 전세 하나 마련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나다가 꼽아본 교사의 초봉도 절망적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로또를 하기로 했다. 현실성 없는 걸로 치자면 따박따박 넣는 적금으로 집을 살 수 있다는 믿음이나, 언젠가는 로또가 맞겠거니 하는 허황된 꿈이나 우리에게는 도찐개찐이었던 것이다. 점심 메뉴 하나 정하는 데도 피터지게 싸우는 것치고 우리는 로또가 되면 집을 사자는 데 처음으로 만장일치를 보았다. 다들 월세 살이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대학 기숙사에서 처음 만났다. 서로 눈치 보며 자기소개를 했고 제주도에서 온 이지영은 귤, 군산에서 온 양혜수는 팥빵으로 둔갑시키며 나는 낄낄 웃었다. 아무리 낯선 지명이라도 특산물로 부르면 입에 짝짝 붙었다. 게다가 제법 콧대가 높아 보이는 룸메이트들을 이나 팥빵으로 부르면 그 애들이 막 십년 사귄 동네 친구 같고 그랬다. 게다가 생전 처음 보는 지역의 인상은 거기에서 온 사람의 영향을 받으니까, 우리는 특산물이나 다름없는 그 지역의 얼굴이었다. 나는 실컷 까불었다. 진해출신인 나를 설마 벚꽃이라든가 하는 낯간지러운 이름으로 부르진 않겠지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복병은 있었다.

진해엔 그것도 유명하지 않나?”

?”

해군!”

귤은 진짜 나쁜 년이었다. 아니 팥빵이었나? 어쨌든 둘 중에 누구든 상관없으니 밟아서 터뜨려버려. 나는 그날부터 팔자에도 없는 구닌이 되었다. 김구닌. 6.25는 방심해서 일어났다더니 한 번의 방심으로 팔자에도 없는 군인이 될 줄이야. 마지막으로 고개를 돌리자 나다는 조금 황망한 얼굴로 눈을 깜박이다가 말했다.

서울인데?”

? 서울인데 왜 기숙사 들어왔어?”

사정이 좀 있어서. 지금 부모님은 지방에 계셔.”

나중에 알고 보니 나다가 고 3이 될 때 아버지의 사업이 크게 기울었다고 한다. 부모님은 지방으로 갔지만 뜨거운 학구열만은 꺾이지 않아 나다는 고시원에서 혼자 생활하며 수능을 치렀다. 독문학과에 가서 번역을 하고 싶었던 나다는 사범대에 원서를 써야 했다.

서울의 특산물은 뭔데?”

갓 껍질을 벗긴 삶은 달걀처럼 매끈한 말투가 마음에 들지 않아 부러 공격적으로 묻자 그 애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서울의 특산물? 연예인인가? 옆에서 그새 친해진 팥빵과 귤이 킬킬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때 갑자기 입술을 앙 다물며 나다가 한 말은,

나다! 내가 서울의 특산물이다!”

이거였다. 우리는 결연하게 반짝이는 나다의 눈빛을 보며 일제히 같은 생각을 했다.

대도시에는 미친년들이 많다더니!

물론 나다는 미친년이 아니었다. 다만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강했고 서울 토박이들이 으레 그렇듯 자신이 나고 자란 도시에 대해 타인에게 설명할 필요가 없었던 경험이 싸지른 망언이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나다의 말이 맞았다. 그 애는 서울을 대표하는 특산물이었다. 강남 8학군에 어릴 때부터 사교육으로 다져진 잔근육을 뽐냈고 다른 도시의 이름을 들으면 그게 어디든 간에 시골의 카테고리로 분류하는 무심함이 특히 그랬다. 다 같이 미팅에 나갔을 때 상대편 남자애들이 자기소개 도중 뜬금없이 자기들이 사는 동네를 이야기했는데, 그들이 원한 리액션을 보인 것도 나다 뿐이었다. 우리로서는, 그때까지만 해도 한강을 기준으로 아래위로 동네가 나뉘고 특정 구가 언급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파악하지 못한 채 멀뚱멀뚱 쳐다볼 뿐이었다.

2층 침대가 두 개, 책상이 네 개, 창문이 하나인 방에 누워서 우리는 매일같이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불을 끄고 누우면 좁은 방안의 천장이 도화지처럼 펼쳐졌고 패기 넘치는 신입생이었던 우리는 입에서 단내가 날 때까지 떠들었다. 그러다가 수 틀리면 이층 침대를 걷어찼고 그러면 이층에서 귤이나 팥빵이 머리를 거꾸로 내밀곤 했다.

8년이 지난 지금, 그때 이야기했던 것은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정말이지 하나도.

명문대의 신입생으로, 출신 고등학교의 간판으로, 집안의 자랑거리로 지냈던 나날이 남긴 것은 과외 아르바이트를 구할 때나 조금 위력을 발휘할 뿐인, 어떤 때는 그조차도 고용주의 눈에 차지 않는 대학 졸업장뿐이었다. 그거라도 없는 인간들이 수두룩한데 무슨 배부른 투정이냐는 소리가 듣기 싫어 필사적으로 발버둥 쳤다. 나는 내가 진짜 사랑한다고 믿는 공부를 하기 위해서 대학원의 철학과에 진학했고 생명공학과였던 팥빵은 좀 더 나은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역시 대학원에 진학했다. 팥빵이 실험실에서 토막잠을 자는 동안 귤은 어학연수를 다녀왔고 해외 인턴을 뛰었다. 조금 독특한 경력이 필요하다는 조언에 따라 아프리카로 장기봉사활동까지 다녀왔다.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성공한 인생을 추첨하는 뽑기에서 괜찮은 패를 골랐다고 믿었는데, 딸려오는 그물은 불길할 만큼 텅 비어 있었던 것이다. 이거 이상해, 하고 말하려고 고개를 들었지만 모두들 이를 악물고 줄을 당기는 중이었다. 그 모습을 보자 이러다 뒤처질까봐 불안해졌다. 다시 기를 쓰고 매달렸다. 조교 일을, 그나마 자리가 없어서, 전전긍긍하며 지원했고 나다는 임용고시에서 4번 떨어졌다. 누구 하나 빈둥거리는 사람이 없었는데, 어기어차, 있는 힘을 다해 끌어올려도 올려도 그물에는 도통 걸리는 게 없었다. 보물선이 있다고, 끌어올리기만 하면 다 너희 거라고 노래를 부르던 목소리들이 킬킬거리면서 멀어졌다. 미안, 여기가 아닌가봐? 시뻘겋게 쓸린 손바닥만이 우리의 현 위치를 네비게이션의 좌표처럼 찍었다.





28, 무직.

전공도 하고 싶은 것도 다 달라서 한동안 흩어져 있던 우리는 결국 그 말 안에서 만났다.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서로를 마주 보았을 때, 가진 거라고는 목을 조르는 긴 가방끈과 지하 암반수로 쓸 수 있을 만큼 바닥을 뚫고 내려간 자존감이 전부였다.




















※짐송의 출품작 전문은 월간잉여 12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