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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배움카드도 발급 받았는데 내 일은 어디에(가오리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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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여름, 나는 ‘내일배움카드제’를 알았다. 회사를 그만두고 3개월에 접어들면서 슬슬 잉여짓에 지쳐갈 때의 일이다. 나는 전에 하던 일만 아니면 뭐든 상관 없으니 그냥 새로운 일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던 중에 만난 지인은 “하지 않겠는가?”라며 내일배움카드제를 말해주었다. 자기 아는 사람도 이런 식으로 새로운 분야에 취직을 했고 나름 잘 지내고 있으니 너도 한번 해봐라, 뭐 그런 식으로 말이다. 이때 나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대로 굶어 죽느니 속는 셈치고 일단 뭐라도 해야만 했다.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니 내일배움카드를 발급 받는 조건은 어렵지 않았다. 의지만 있다면 누구나 발급 받을 수 있었다. 여태껏 이런 게 존재하는지도 모르고 있었다니 괜히 자신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HRD-Net(www.hrd.go.kr)을 뒤져보니 마침 강남에 있는 ‘ㅇ’ 학원의 프로그래머 양성 과정에서 수강생을 모집 중이었다. 직접 학원 가서 받은 상담은 멘탈이 약해진 나에게 무한 신뢰감을 들게 할 정도로 매력적이었고 금방이라도 취직이 될 것 같은 희망마저 들게 했다. 게다가 커리큘럼마저 내게 딱 맞게 다양한 코스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상보다 카드 발급 받는 과정이 좀 빠듯했지만 무사히 수강등록을 마칠 수 있었다.





http://www.hrd.go.kr의 첫화면




내일배움카드를 발급 받으면 1인당 1년간 200만원 한도 내에서 훈련비의 60~80%를 국가에서 지원하고 나머지 20~40%는 훈련생이 부담하게 된다. 내가 등록한 과정은 원래 350만 원짜리 강의인데 내일배움카드제 덕분에 200만원은 정부의 보조를 받고 150만원만 자비 부담하면 되었다. 150만원도 적지 않은 돈이었지만 이렇게 해서라도 취직을 할 수 있다면 결과적으로 투자 비슷한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별로 깊게 고민하지 않고 내린 결론이었다. 나는 시작이 반이라는 말을 굳게 믿었다. 내가 얼마나 안일함에 빠져 있었던가는 그리 멀지 않은 시일에 알게 된다. 그렇게 나는 5개월 동안 프로그래밍을 배우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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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이 잘 풀리란 법은 어디에도 없는 법. 강의가 시작하고부터 따라가기 급급했다. 나는 비전공자였고 단 한번도 IT와 관련이 없었다. 심지어 컴퓨터하고 친하지도 않아서 포맷도 스스로 못하는 사람이다. 한마디로 컴퓨터의 하나부터 열까지 배워야 하는 사람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 너무 힘들었다. 이건 완전히 중고등학교 시절의 재현이었다. 배움에 배려와 이해가 있으리라고 생각한 자신이 어리석었다. 


중간에 그만둘 타이밍은 몇 번 있었다. 그러나 내일배움카드를 어렵게 받았다는 것, 마치 자기 가 국민의 세금 덕분에 이런 기회를 얻었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더 주변사람들의 기대에 부흥해야만 한다는 것, 아니면 다른 선택을 해야 하는데 그게 두렵다는 것, 그런 복합적인 관념과 의식 속에 나는 하루하루 찌들어버렸다. 결국 나는 아무 선택도 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글을 쓰는 지금도 자신이 한심하고 부끄럽기 짝이 없다. 그 뒤에 나는 나와 비슷한 입장인 친구들을 학원에서 사귀게 된다. 그들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서로에게 격려와 위로를 아끼지 않았다. 그나마 그때부터 학원 다니는 게 나아졌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마저도 학창시절의 연장선 같았다.


학원의 강의는 모든 수강생의 눈높이에 맞추기 보다 단순히 진도를 빼는 것에 더 신경을 썼다. 당연한 얘기지만 같은 강의를 들어도 듣는 사람이 사람인지라 이해도가 다를 수 있다. 학원은 초반에 잘하는 학생과 못하는 학생을 나누지 않을 테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여러 번 우리를 안심시켰다. 그러나 그것은 말뿐이었다. 게다가 실기 연습시간을 충분히 줘서 다 같이 진도를 나갈 수 있도록 배려하겠다는 말도 어느 순간부터 나오지 않았다. 나중에는 모르는 부분에 대해 질문을 하는 것조차 눈치를 보게 되었다. 이해가 빠른 수강생들은 강의가 못 따라오니까 애가 타고, 이해가 느린 수강생들은 못 따라가서 걱정 하느라 애가 타는 상황의 연속이었다. 그 중간을 강사와 학원이 잘 관리해줘야 하는데 정작 그들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강의를 들은 지 중반이 지날 무렵, 우리는 강사와 학원에게 강의 이해도와 진행에 대해서 어떤 합의점을 찾으려는 시도를 했다. 그러나 지금의 강의 방식을 바꿀 수 없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이미 정해진 과정에 정해진 시간이 있다. 그러니 너희 중에 잘 하는 사람은 강의에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들을 데리고 가야 하고,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은 잘하는 사람을 충실히 따라가야 서로 편하다는 소리였다. 이건 뭐 갑자기 뜬금없는 연대의식이라도 가지란 말인가? 이상했다. 국가 예산을 보조 받는 재취업학원이 국가의 지원을 받는 수강생들에게 큰소리 치는 상황이 무척 아이러니했다. 학원이 맡아야 할 책임을 오히려 수강생한테 전가한다는 느낌? 즉, “우리는 일단 너네 돈을 받았으니 너네는 우리 하라는 대로 해야만 한다. 그러지 않으면 너네는 취업할 수 없다”는 식의 뉘앙스처럼 들렸다. 뭔가 잘못돼도 한참은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처음부터 시간이 걸리더라도 수강생들의 수준을 나눠 그에 걸맞은 재취업강의를 진행되어야만 했다. 그게 재취업교육의 의의가 아닌가? 그러나 내가 알아본 바로는 그런 바람직한 재취업강의는 이쪽 분야에서는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다양해 보였던 강의 커리큘럼, 두껍기만 하지 내용이 전무한 교제, 겉보기와 달리 실제로는 노후한 학원설비 등에 대해 여러 번 이의를 제기했다. 그러나 고쳐지는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취업 연계라는 말도 사실과는 달랐다. 학원은 기업에서 구인 의뢰를 받으면 강의를 수료한 수강생 중에 골라서 기업에 면접 시켜주는 수준의 일을 하고 있었다. 처음 상담 받을 때와 교육 중간, 그리고 수료 후에 학원에서 하는 말은 전부 어딘가 조금씩 달라져 있었다. 사기 당한 기분이 들었다. 나와 몇 명은 이런 부분에 대해서 노동부에 여러 번 문의를 하긴 했다. 그러나 노동부는 제대로 잘 알아보지 못한 수강생 탓을 할 뿐이었다. 


제대로 역할을 못 하는 사람에게 취직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도 좀 웃기는 얘기긴 하다. 물론, 이 과정을 들었다고 모든 수강생이 전부 기술을 습득하고 모두 취업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재취업교육과정이라고 불릴 만큼의 기회와 기술습득을 제공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강의 막바지에는 다들 걱정과 한숨이 늘어나 있었다. 나는 다시 실업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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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내일배움카드제는 조금이나마 실업자들의 재취업을 돕기 위한 목적에서 기분 좋게 출발했을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아직도 정착되지 못한 채 무리하게 시행되고 있었다. 훈련 기관에 대한 심사 비용 부담과 심사탈락에 따른 불이익이 없어서 심사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은 이미 여러 차례 있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행정적으로도 현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여 구직자에게 말뿐인 취업 연계와 헛된 희망을 주입 시키고 있는 상황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교육과정이 고용시장에 한계가 있는 직업군(IT, 제과제빵, 바리스타, 미용 등)쪽에 편중되어 있는 것과 서울에 교육기관이 집중되어 있는 현 실태도 문제라면 문제겠다.


‘내일배움카드제’는 2010년 10월에 명칭이 바뀌기 전에, 지난 2008년 7월부터 ‘직업능력개발계좌제’로 시범 운영했었다고 한다. 그 기간 동안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을 거라고 본다. 하지만 이 제도가 시행되고 있음에도 실업률 감소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해 정부는 무슨 의구심도 들지 않는 것일까? 이런 방식으로 지난 몇 년간 교육기관들은 자기들 배만 잔뜩 불리고 있다. 반면 정부는 실업자들에게 크게 한 턱을 쏘았다고 자뻑에 빠져있었을 뿐이며 정작 민원이 들어오면 책임회피를 하고 제대로 된 대책은 아직이다. 그럼 다시 잉여가 된 실업자들은 대체 어디에다 하소연을 한단 말인가? 


아무튼 5개월은 눈 깜짝할 사이에 흘렀다. 그 사이 계절은 가을에서 겨울로 흘렀고, 18대 대통령이 당선되었고, 지구는 망하지 않았고, 절대 안 올 것 같던 2013년이 되었고, 빌어먹을 내 나이는 한 살이 늘었다. Oh, my god이다. 


완전 생초보였던 사람 입장에서 말하자면 강의 덕분에 프로그래밍에 대해 흥미가 생기기는 했다. 개인적으로 더 공부도 하고 싶고 이쪽 계열로 갈 생각도 들었으니까. 그러나 그 결과로 보기에는 금전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희생이 컸다. 딱 까놓고 말해서 강의 그 자체만 놓고 보자면 100점 만점에 50점도 아깝다. 취업을 연계해주는 학원이라는 말에 울며 겨자 먹기로 마지막까지 버텼던 시간을 추억으로 미화시키기에는 내 나이가 너무 먹었다. 그래서 결론은 내일배움카드제와 취업연계를 믿느니 그냥 나 혼자 취직하는 게 훨씬 낫다는 거다. 


처음부터 이런 식인 것을 알았다면, 내일배움카드제를 통해 국가 예산을 지원받아도 실업자가 될 것을 알았다면, 나는 신청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일배움카드제라는 이름은 참 좋다. 근데 대체 누구의 돈으로, 누구 좋으라고 시행되는 걸까? 과연 이렇게 허무하게 날려 보내도 될 정도로 적은 돈인가? 정부와 교육기관들은 다같이 머리를 처박고 반성문부터 써야 할 것이다. 


혹여 이 글을 읽고 내일배움카드제를 신청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정말 말리고 싶다. 하지만 모든 행동은 자기 의지를 거스를 때도 있는 법. 아무리 말려도 말릴 수 없는 짱구 같은 사람이 분명 잉여人 중에 있을 지도 모르겠다.




짱구는 못말려




다만 본인처럼 피똥 싸지 않으려면 하나하나 조목조목 따져 가며 자기가 필요한 기술을 반드시 습득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남을 믿기 보다 우선 자신을 믿어야 할 것이다. 말로는 이렇게 쉬운데 현실은 시궁창이다.


이 땅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일과 생활을 가지며 마음 편히 살았으면 좋겠다. 다시 잉여가 된 1人은 그런 바람을 품고 한자한자 타이핑해가며 이 글을 마무리 짓는다.








(격)월간잉여 12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