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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잉각색

잘생긴 스님을 찾습니다 (에디터 최)

나는 잉여 편집자다.
출판계에 발을 들여 놓은 지도 어언 5년이다. 책이 좋아 겁도 없이 이 일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는데 지금은 슬슬 겁이 난다. 그렇다. 나는 출판계의 잉여인지도 모른다. 


나는 편집자다. 내가 편집자라고 하면 사람들은 편집자가 무슨 일을 하냐고 묻는다.
대략적으로 편집자는 이런 일들을 한다. 어떤 책을 만들지 기획을 하고 그 기획에 맞는 저자를 섭외하고 마감일을 지키지 않는 저자를 계속 쪼아서 원고를 받아내고, 원고를 검토하고 저자가 주려는 메시지를 잘 뽑아서 편집을 한다. 책 안의 내용을 독자들이 잘 읽을 수 있도록 디자인을 이끌고 나가고, 완성된 표지 디자인이 잘 나올 수 있게 디자이너에게 여러 가지 아이디어와 이미지를 제공한다. 뭐, 때때로 외서들도 검토를 하고··· 하지만 이렇게 말해봤자 사람들은 잘 못 알아듣는다. 그래, 됐다. 사실 알아주길 바라는 것도 아니다. 내가 이 책을 만들었어, 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너가 이 책을 쓴 거야? 라고 묻는다. 아니 그게 아니라, 내가 이 책을 책임 편집했다고. 역시 이것이 무슨 말인지 사람들은 모른다. 됐다. 그만하자. 말을 하면 할수록 비참해질 뿐이다. 


내가 잉여 편집자라고 느끼는 순간은 내가 만든 책이 교보문고 어디에 찌그러져 있어 잘 보이지도 않을 때다. 그래, 심지어 재고가 없는 경우도 있다. 보통 평균적으로 편집자들은 1년에 5-7권의 책을 만든다. 한 권을 만드는데 약 두세 달이 걸린다고 보면 된다. 그렇게 두세 달 동안 ‘나의 저자’와 미운 정 고운 정 쌓아가며 열심히 책을 만든다. 그리고 인쇄가 되어 서점에 들어가고 온라인 서점에 내가 쓴 보도자료와 함께 책 제목이 등록이 되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그러나 아무도 책을 사지 않고 심지어 교보문고에 재고 없음 이라고 뜰 때는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책을 만드나, 나는 여기서 무얼하고 있는가··· 라는 자괴감에 빠진다. 


그래, 고백하겠다. 교보문고에 나가 내 책이 있는 매대가 구석에 있는 매대면, 나는 내가 만든 책을 교보문고 중앙 매대에 몰래 진열했던 적도 있다. 내 책을 다른 책 위에 여러 권 쌓은 적도 있다. 그리고 친구랑 가서 일부러 이 책 정말 재밌어, 라고 연기를 한 적도 있다. 내가 만든 책을 독자들이 선택해주기를 바라면서 말이다.(지금 생각해도 오글거린다.) 하지만 사람들은 베스트셀러 코너에 진열된 책에만 관심을 가진다. 그 코너에 가면 순위권에 있는 책들이 위풍당당하게 조명을 받으며 진열이 되어있다. 1위부터 20위까지··· 내가 만든 책은 언제 저기에 진열이 될까? 그런 생각을 5년 내내 하며 나는 잉여 편집자로 살아왔다. 


그래, 솔직하게 말하면 판재지수를 높이려고 온라인 서점에서 내가 만든 책을 산 적도 있다. 친구에게 보내기도 하고 내가 몇 권 소장하기도 했다. 판매지수라는 건 책이 얼마나 많이 팔렸는지에 따라 그 지수가 올라가는 포인트인데, 그 포인트가 5000 정도는 되어야 1쇄 정도는 팔렸다고 볼 수가 있다. 판매지수가 134··· 이렇게 세 자리일 경우는 정말이지 비참하다. 이렇게 세 자리 숫자의 판매지수는 거의 책이 안 팔렸다고 본다. 정말 보기가 싫다.  하지만 이렇게 세 자리수의 판매지수를 가진 책들 중에는 정말 좋은 책이 많다. 기획도 좋고 문장도 좋고, 내용도 좋고.



그래도 안 생… 아니, 안 팔려요….
안 팔리는 책을 사람들은 기억해주지 않는다. 많이 팔리면 좋은 책이라고 편집자들은 농담처럼 말한다. 그러다 생각한다. 1년에 서점이라는 곳에 사람들은 얼마나 자주 갈까? 온라인 서점에 로그인하는 사람들 역시 출판 업계 사람들 아니고는 거의 로그인을 안 할 것이다.
아, 어쩌면 출판이라는 것 자체가 세상에서 점점 잉여가 되는 것은 아닌가 싶다.



멈추면 비로소 보일까?
요즘 나는 내가 요즘 우리 회사에서 잉여라고 느낀다.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을 만드는, 아무도 지갑에서 돈을 꺼내지 않는 책을 만드는, 미미하고도 소소한 존재. 그렇다. 나는 베스트셀러도 만들지 못했고, 엄청난 파워 저자를 섭외하지도 못한 그냥 잉여 편집자일 뿐이다. 하지만 내가 만든 책… 정말 좋은 책인데··· 표현할 길이 없다.
언젠가는 나도 멈추면 비로소 보일까나 말까한 책을 만들어 베스트셀러 코너에 조명을 받으며 자리하는 책을 만드는 그런 날…이 과연 올려나 말려나. 전국 각지의 절을 돌아다니면서 잘생긴 스님이 어디 없나 섭외를 하러 다녀야겠다. 그러면 잉여 편집자에서 베스트셀러를 만드는 편집자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SNL KOREA에 나온 동엽스님








(격)월간잉여 12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