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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2012 추석 잉여 모임 토론 내용

2012년 추석은 특별했습니다. 월간잉여와 청년당 재건위 사람들이 남산 아래 카페에 모여 색다른 모임을 가졌습니다. 언젠가부터 명절은 잉여청년들에게 괴로운 행사가 되었어요. 친지들이 모이면 취직은 했냐’ , ‘결혼은 언제할 거냐등의 질문 공세를 던지기 때문이지요.

 

청년들의 명절 스트레스가 단순히 친지들의 질문 공세에 있는 것만은 아닙니다. 근본적으로는 취업과 결혼이 어려운 과제가 돼버린 현실에서 기인하는 것이죠, 내 집 마련이나 장래에 대한 설계는 고사하고, 기본적인 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조건도 충족하는 것이 어려운 시대. 취업, 연애, 결혼에 고민하는 잉여 청춘들이 친척들의 질문 공세에 시달리기 보다는 청년들이 같이 모여 이러한 문화와 관행을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자는 취지로 함께 모여 노가리 까기로 했습니다.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는 시간을 갖자는 것이었죠.

 

930일 추석당일 15시에 시작되기로 했던 추석 잉여 모임이지만 오후 3, 모임장소는 한산했어요. 조금 불안해졌습니다.



 






그러나 다들 코리안 타임을 체득한 코리안들이었습니다. 4시가 되자 참가자들이 우수수 몰려왔어요. 늦은 이들의 장기자랑을 보는 시간과 레크레이션시간을 가진 뒤 토론시간이 이어졌습니다. 청년팀과 잉여팀으로 나눠서 열띤 토론을 벌였는데, 주옥같은 멘트와 톡톡 튀는 문제의식이 있었습니다. 다음은 그날의 토론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잉여, 정체가 뭐냐?!

청년팀 : 잉여를 실패로 규정짓는 것이 타당한가? 사회의 잘못된 인식일 수도 있다. 잉여가 있었기 때문에 사회는 발전 가능한 것이라 생각한다. 막스의 논리를 보자. 잉여생산이 산업과 사회의 핵심발전 동력이었다. 그래서 잉여는 매우 바람직하다. 잉여로운 생활과 형태가 보장이 되는 사회가 건강하고 발전 가능성이 높다


잉여팀1 : 잉여는 사회에서 낙인을 찍는 데 쓰이고 있다. 스스로 잉여라고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사회가 필요로 하는 걸 안하고 있을 때 잉여라고 느낀다. 사회가 정해주는 테크트리에서 벗어날 때도 그렇다. 원래 잉여인간이라는 개념은 무언가를 하려는 의지 자체가 없는 사람을 뜻했다.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의지과잉이 문제다. 사회가 개인에게 할 수 있다는 의지를 강요하고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발전해야겠다는 감정에서 스스로 벗어나기가 어렵다. 자기 발전을 하겠다는 의지도 사회구조가 만드는 건지 내 내부의 목소리를 따르는 건지 분명하지 않다.


잉여팀2 : 잉여가 잉여를 거부하는 시선이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남들과 자신을 비교하는 시선을 의식하기 때문에 스스로 잉여인 것을 거부하기도 한다.

 


우리에게 복지가 필요한 이유

청년팀1 : 기본적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차이가 너무 심하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차별의 문제는 단순히 연봉 2천만 원 차이의 문제가 아니다. 처음에 어디에서 시작하는 것에 따라 향후 40~50년 인생이 결정되어 버리는 곳이 우리나라이다. 게다가 반드시 88%는 중소기업에 갈 수 밖에 없다. 이런 구조를 만들어 놓고 싸움을 붙인다. 그래서 국가가 개입해서 차이를 줄여주고 공정하게 심판을 봐야한다. 중소기업 종사자에 대한 안전망을 만들어줘야 한다.


잉여팀1 : 콘텐츠가 중시되는 시대인데, 잉여로움에서 나오는 창조력이 있다.


청년팀2 : 오페라 같은 예술 작품을 보자. 우리나라에선 세계적인 대작이 나오지 않는다. 선진국의 유명한 오페라 작품은 연 매출이 몇 십조에 달한다. 이런 대작은 개인의 역량이 아닌 그 나라의 시스템이 만드는 것이다. 한국에도 조앤 롤링같은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시스템에서는 굶어죽을 수밖에 없다. 국가시스템이 사회의 발전 가능성을 좀 먹고 있다.

청년팀3 : 보편적 복지는 동의하지만 단순히 물질적 지원에 대한 것에 초점이 맞추어 지는 것은 우려된다. 사람들은 단순히 물질적 이익으로만 살지 않는다. 프랑스의 중산층에 대한 인식을 들어봤을 때 정말 새로웠다. 우리나라의 중산층은 몇 평짜리 집을 소유하고 있는가?’, ‘연봉이 얼마인가이런 척도로 정의하지만 프랑스는 매주 받아보는 비평지가 있는가?’, ‘일주일에 몇 편의 공연을 보는가?’ 등으로 정의한다. 복지 패러다임이 최소한 물질적 제공을 밑바탕으로 하되 인간 위주, 문화 위주로 바뀌었으면 한다.







잉여팀2 : 어느 정도 먹고 사는 것이 해결이 돼야 하는데, 지금은 입 하나 책임지는 것도 너무 힘들다. 사람들이 밥만 먹고 살 생각만 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꿈을 가지고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승리감’ ‘우월감이 들 때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미디어, 정책 등을 통해 보여주는 행복이란 것이 다 그런 것 아닌가. 좋은 학벌, 좋은 직장을 가진 사람들의 반짝이는 모습만 보여준다. 대학 안가고 직장이 없는  사람들은 사회, 미디어에서 배제당하고 소외당한다. 어쩌면 우리는 소외당하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불안감에 허덕이는 것이다. 적어도 국가공동체는 경쟁을 유도해 1등을 뽑는 시스템을 갖지 않아야한다고 생각한다. 국민들에게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줘야 한다.

잉여팀3 : 10대 후반~20대 후반만이 공유하는 감성이 있을 것 같다. 우리끼리 공유하는 감성을 바탕으로 잉여를 놀이문화로 만들고, 잉여라는 감각이 주는 공포를 덜어내는 것 같다. 온라인 커뮤니티 활성화도 잉여 연대를 위한 또 다른 방법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청년팀4 : 실업/저소득층에 국한된 복지제도를 보면 실패를 해야만 구제 받는 것 같다. 이것을 누가 달가워하겠는가? 보편적 복지가 필요하다.






위 토론 내용은 월간잉여 8호에도 실렸습니다.



 

이 외에 통일과 북한에 대한 인식, 우리나라 ODA문제 등에 관한 얘기들이 있었습니다. 처음 만난 사람들끼리 국가와 사회에 대해 토론을 할 수 있다는 게 참 신기했어요. 이 날, 우리 모두는 조금씩 불효자가 되었지만, 그 만큼 각자 외로움과 괴로움을 덜어낸 말간 얼굴이 됐던 것 같습니다.


올해 추석에는 안 모이냐고요? 작년에 모임 준비하느라 잉여가 잉여 답지 못하고 바빴습니다. 올해는 그냥 추석 때 번개나 해서 영화나 한 편 보고 날씨도 좋은데 공원이나 한강에 가서 술이나 마실까해요. 님들은 추석 때 어떻게 보내실 예정이신지요?








작년 추석 모임 홍보 포스터.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