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잉터뷰

서민 기생충학 교수 잉터뷰

서민 교수를 만난다고 했을 때 주변의 미녀들은 하나같이 그에 대한 호감을 표했다.

서민교수님이 귀엽고 재밌다고 했다.

미녀는 석류만 좋아하는 게 아닌가봉가? 미녀는 유머도 좋아해. 







그는 유년기의 소외와 학대에 대해 얘기 할 때도, 기생충학을 공부하게 된 계기를 밝힐 때도
‘자학개그’를 빼놓지 않는다. 기생충도 유년기의 자신처럼 “못생겨서” 미움 받는 것 같았다는 그는 기생충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덜고 싶어 기생충학의 길을 밟았다고 말한다. 얼마 전엔 기생충을 주제로 한 대중서도 냈다. 서민의 <기생충 열전>이 그것이다.



서민 교수가 안타까워하는 기생충에 대한 편견 중 하나가 “모든 기생충이 인간에게 해롭다”는 미신이다. 인간을 중간숙주로 삼는 기생충이 아닌 종숙주(계속 살아갈 숙주)로 삼는 기생충, 특히 회충은 인간에게 큰 피해를 주지 않고 얌전히 살아간다. 대표적인 예는 광절열두조충이다. 키도 큰 애가 장기 내에 조용히 있으면서 밥도 조금만 먹는다. 광절열두조충을 지니고 있어도 인간에게는 별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한다. 나는 부모님 집에 얹혀사는데, 광절열두조충처럼 최대한 얌전히 지내야겠다고 다짐했다.








8월 26일 대전의 한 조각공원 카페에서 서민 교수를 만났다.




ⓒ 월간잉여


주변에 있는 조각들 중 가장 기생충스러운 조각을 골라달라 부탁드렸다.

교수님이 고른 조각은 기생충 ‘간질’을 닮은 조각이다.

“기생충 중 아주 잘생긴 놈입니다. 하지만 무서운 놈입니다. 소간, 물냉이, 미나리를 조심하시길...”




잉: 많이 바쁘신 것 같다. 어떻게 지내시는지?
서민: 대전에서 지내며 연구하고 글 쓴다. 올해는  논문 13편을 쓰는 게 목표다. 7편까지 썼다. 방송 있을 때는 가끔 서울 올라간다. 바쁜 생활 때문에 좋아하던 테니스와 가정을 포기했다. 부인에게는 “조만간 다 정리하겠다”고 매일같이 빈다. 출연료로 달래고 있다.



애처가로 유명하시던데.
우리 집사람은 굉장한 미인이다. 게다가 귀엽다. ‘오죽하면’ 결혼을 했겠나, 잘 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그래서 집사람이 원하는 대로 하려고 한다. 2010년 조기 위암 발견 뒤 술을 못 먹게 하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지금은 완쾌됐는데…. 집사람이 <월간잉여>와의 인터뷰를 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다. 나는 평소에 한윤형 씨를 존경했는데, 마침 월간잉여가 한윤형 씨와 인터뷰 한 걸 알고 반가웠다. 그걸 보여주며 “봐라! 이렇게 훌륭한 사람도 인터뷰한 잡지다!”라고 설득했다.



한윤형 씨를 많이 좋아하시나봉가?
그는 우리 사회가 보호해야할 자산이다. 글발만으로도 사람을 설득시킬 수 있는 대단한 글쟁이다. 그가 지치지 않고 글쟁이 활동을 해야 우리사회가 좋아질 텐데…  <섹스 앤 더 시티>보면 주인공 캐리 브래드쇼가 칼럼리스트이다. 칼럼리스트인데 화려한 생활을 한다. 우리나라 같이 원고료가 인색하고 절대 오르지 않는 나라에서는 불가능한 풍경이다. 우리나라의 척박한 출판, 언론 환경이 한윤형을 지치게 할까봐 걱정이 크다. 그가 책을 내면 사서 보는 것으로 그를 응원하고 있다. 



글발은 교수님도 좋지 아니한가! 딴지일보에서 ‘마태우스’로 활동할 때부터 경향블로그에서 활동하는 지금까지 교수님의 글을 읽고 좋아하는 사람이 많은 것으로 아는데...
우리나라 상황이 좋아지는데 도움 되는 글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 편을 향해 말하는 글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설득하는 글을 써야지.



‘우리 편’이라 함은, 이명박 전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비판적인 이들을 말씀하시는 건가? 개인적으로 이명박 대통령을 비판한 ‘떡’에 관한 추억*, 윤창중 성추행 사건에 대해 반어적으로 쓴 ‘윤창중은 그럴 사람이 아니다’*,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의 청문회와 관련해 쓴 ‘윤진숙, 당신은 제 스승입니다’*를 재밌게 읽었다. 낄낄 대며 글을 읽고 나니 답답했던 속이 좀 풀리는 것 같았고, 조금 정화된 것 같았다. 그런 것도 좋은 글이 하는 기능 아닐까?
대충 쓴 건데 반응이 좋았던 글들이다.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잘 쓴 것 같은 글은  딱 하나다. ‘좌변기의 꿈’이 다. 그런데 그 글이 신문에 발표된 뒤 별 반응 없고 그저 평온했다. 시무룩했다. 윤창중 글이나 윤진숙 글 같은 경우는 그 때의 상황이 그 글의 반응을 좋게 만들었던 것 같다. 그때 워낙 그런 얘기 관련해 사람들의 관심이 많았으니까. 그 글들은 반어법으로 쓴 글들인데, 집사람은 내가 반어법으로 글 쓰는 게 지겹다고 그만 좀 (반어법을) 쓰라고 한다. 



유머를 구사할 때 주로 반어법과 ‘셀프디스’를 활용하시는 것 같다.
제일 만만하게 깔 수 있는 게 자기 자신 아닌가. 이런 면 때문에 <인간실격>의 주인공이랑 비슷하다는 얘기를 들은 적 있다. 그래서 읽어봤다. <인간실격>의 주인공도 자기 존재를 숨기며 익살을 떠는 점은 비슷했지만 잘생긴 얼굴이라고 묘사가 돼있었다. 읽다가 때려쳤다. 


아버지가 하는 것은 반대로 하고자 했던 것도 영향을 미친 것 같다. 아버지가 폭력을 휘두르는 것, 담배 피는 것, 남 까는 걸로 웃기는 것을 보고 그러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아버지가 반면교사의 모델이 됐다.


내가 바닥을 쳤던 시기를 잊지 않으려는 마음도 있다. 지금도 매일 “나는 쓰레기다”라고 외친다. 1999년부터 2006년까지가 그 시기다. 논문을 쓰는 게 너무 어려웠다. 그래서 서울대 가서 허드렛일하고 논문에 이름 끼여서 넣는 것으로 겨우겨우 연구실적을 채웠다. 논문, 학회를 가도 발표를 안 하고, 엔터테이너 취급 받고 소외감을 느꼈다. 다행인 건 내가 대인관계가 좋았다는 거다. 2006년 인생의 귀인을 만났다. 미이라 연구할 때였는데, 내가 만만하니까 나를 막 대해도 된다고 생각해서 나를 선택했던 것 같다. 논문쓸 때 1 저자, 주저자 문제로 마음 상하기가 쉽거든. 나는 그런 거 상관 없다. 그냥 시키는 대로 열심히 했다. 미이라 연구 때 해외학술지에 많이 실리기 시작하며 학회에서 나를 사랑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2007년에는 논문을 6편 썼다. 이후 일이 잘 풀리며 2009년부터는 연구적인 부분을 묻는 사람이 생기기 시작하더니 2011년에는 연구업적상도 받게 됐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상이다. 하지만 지금도 연구실적 때문에 전전긍긍하며 힘들어했던 것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나는 쓰레기다!



※잉터뷰 전문은 격월간잉여 14호를 통해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