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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호갱님은 무엇을 사는 건가요? feat.LOL (조은상)

대리게임 시장의 형성
지난 7월말이었을까, 한 사건이 게임, 이스포츠 판을 뒤흔들었다. 몇몇 일간지에서는 아마 사회면쯤 스쳐 지나가는 뉴스로 언급되었을 것이다. ‘몬스터 게이밍’이라는 <리그 오브 레전드>(이하 LOL) 프로지망 아마추어 게임단에서 감독을 비롯한 ‘어른들’이, 소속 선수들(거의 10대후반에서 20세 정도다)에게 연습을 빙자해 ‘대리게임’이라는 강제노동을 시켰다는 사실이 소속 선수의 내부고발을 통해 드러난 것이다.

이 판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사건의 맥락을 파악하기 쉽지 않을 텐데 다른 용어야 그렇다 쳐도 ‘대리게임’이란 개념부터가 만만치 않은 문제다. 간단히 말해 게임 계정의 주인(사실 약관상, 계정이나 아이템 등은 개발사 법인의 소유물을 이용자에게 사용하게 허가해주는 개념이므로, 주인이라는 표현은 부적합하다)이 아닌 다른 사람이 그 계정으로 대신 게임을 해주는 것으로, 계정 주인의 본래 실력 이상의 성취를 얻게 하는 행위다.

그 옛날 포트리스에 별, 메달, 관이 있었듯, LOL 또한 이용자들을 점수에 따라 등급(Tier)을 매긴다. 국내 단 50명 한정의 실력자들인 챌린저에서부터 다이아몬드, 플래티넘, 골드, 실버, 브론즈 순으로 내려간다. 승리를 거듭하면 점수가 쌓여 등급이 올라가는 구조다. 그런데 LOL이 폭넓은 인기를 끌면서 기묘하게도 이 등급을 둘러싸고 (암)시장이 형성되었다. 일부 최고등급에 있는 실력자들이 금전을 대가로 대신 게임을 해 등급을 끌어올려주는 영리행위를 하는 것이다. 몬스터 게이밍 사건은, 이런 현상을 배경으로 성립한 일이다.

대리 게임은 적용법률이야 어찌되었든, 게임가입 시의 약관을 위반하는 것이기에 불법일뿐더러, ‘게임 생태계’ 전체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결코 고운 시선을 받지 못하는 행위다. 적발될 경우 계정정지는 기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십 만원씩 지불해 등급을 억지로 끌어올리고 싶어하는 수요가 존재한다. 아래에서 자세히 이야기하겠지만, LOL의 등급은 게임 내에서도 자랑질 이외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기호’일 뿐인데도 말이다. LOL을 하지 않는 외부인은 물론, LOL을 하는 많은 유저들도 납득하기 어려운 이러한 새로운 형태의 호구적 소비가 유래 없이 전면에 등장한 것이 작금의 LOL판이다.




대략 이런 인구비로 게임플레이어들이 분류되어 있다.(2013년 8월 기준)





플레이어와 캐릭터
모든 게임(놀이)는 두 가지 주체에 의해 성립한다. 플레이어와 캐릭터다. 플레이어는 게임의 참여와 이탈을 결정하는 주인이다. 그러나 정작 플레이어는 게임을 ‘즐기는’ 사람이므로 결국은 외부인이다. 외부인이기 때문에 게임을 현실이 아닌 놀이로 즐길 수 있다. 이런 이유로 플레이어를 대신하는 게임 내부의 주체, 캐릭터가 요구된다.

주체의 층위가 플레이어와 캐릭터 둘로 나뉘어 있다면, ‘실력’을 측정하는 방향도 둘이 될 것이다. 즉 캐릭터가 강한 것인지, 플레이어가 강한 것인지의 문제다. 캐릭터의 실력은 최대한 공평하도록 설계된다. 요컨대 RPG의 레벨이나 능력치, 아이템처럼 게임에 대개 투자한 시간에 비례하든지, 아예 그런 개념이 없이 항상 동등하게 고정시키는 식이다. 반면 플레이어의 실력은 말 그대로 천차만별이고 완전히 열려있는 문제일뿐더러, 본래 눈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인간에게 능력치나 레벨과 같은 기호는 달려있지 않다.

다시 LOL로 돌아가보자. 방금 언급한 것처럼, LOL 또한 캐릭터의 차원에서 기본적으로 공평하게 게임하도록 구성되어 있다. 문제가 되는 것은 플레이어의 실력뿐이다. 그런데 실력이 천차만별인 플레이어들이 무작위로 묶여 경쟁하게 된다면 일방적인 경기만이 남발되기 쉽다. 그렇기 때문에 승패의 누적에 따라 대략적 플레이어의 실력을 측정하고 비슷한 수준의 플레이어끼리 묶어줄 시스템이 필요하다. 그것이 위에서 언급한, 챌린저에서 브론즈에 이르는 등급시스템이다. 이 시스템 이전에는 점수 시스템이 있었지만 근본적인 목적은 같다.



기호가치로서의 플레이어 등급
LOL은 현금거래로 캐릭터 자체를 강화하는 게 불가능하지만, 많은 온라인 게임에서 현금거래가 횡행하는 이유는 그 돈을 투자해 캐릭터를 분명히 강화하는 게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캐릭터의 수치 차이가 실제로 게임 내에서 영향을 발휘하는 것과 달리, 플레이어의 등급은 철저히 도구적이고 간접적으로만 기능한다. 플레이어들이 비슷비슷한 수준에서 게임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지표이며, 플레이어들이 성취, 목표 대상이다. 비슷하게 대리게임이 존재했던 ‘와우 투기장’은 투기장 점수를 통해 게임내의 아이템을 얻을 수 있는 구조였지만, LOL은 그런 이득도 전혀 없다.

따라서 똑같은 ‘현질’ 즉 현실의 자원인 현금을 게임에 직접 투자하는 행위일지라도, 투자의 대상이 캐릭터의 차원인지 플레이어의 차원인지에 따라 그 성격이 전혀 달라진다. 캐릭터에 대한 현질은, 말하자면 (게임 내의) ‘사용가치’를 사는 것과 같다. 그런데 플레이어의 등급을 구입하는 행위는 의미가 전혀 다르다. 플레이어의 실력은 결코 양도되거나, 교환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변화하는 것은 플레이어 본인이 아닌 플레이어의 계정에 기록된 글자뿐이다. 이때 현금으로 구입하는 것은 (게임 내의) ‘기호가치’인 것이다.

사용가치는 다른 것을 고려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성립하며 의미를 갖는다. 아무런 조건이 없어도 물을 마시면 갈증이 사라지고, 좋은 무기를 장비하면 강한 공격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기호가치는 그것이 기호인 이상 홀로 존재할 수 없다. 샤넬백의 가치가 그것을 둘러싼 가방과 명품의 고유한 기호체계가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처럼, 다이아몬드 등급의 가치는 LOL이라는 게임과 별개로 여러 등급의 만족감이 제공하는 차별적인 기호체계로부터 주어진다. LOL에서(다른 많은 게임들도 비슷하다) 플레이어의 등급을 표현하는 단어가 다이아몬드, 플래티넘(백금), 금, 은, 동 등 귀금속의 이름인 것은 이런 기호가치적인 성격을 드러내고 있는 게 아닐까?



허구의 허구, 초호갱님?
그런데 게임이 현실로부터 떨어져 나온 독립적인 기호체계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게임을 통해 얻어지는 만족은 현실의 규칙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 게임만이 갖고 있는 고유한 규칙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게임에 대한 시선이 언제나 극단으로 갈리는 것도, 기호체계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에는 충실히 의미를 생산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정말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캐릭터에 대한 현질, 즉 사용가치를 사는 행위 또한 게임의 외부에서 관찰한다면 결국은 기호가치를 사는 행위로 환원된다. 게임이 기호체계인 이상 그 안에서 아무리 사용가치를 강조해도 결국은 기호가치만이 남는다.


‘게임 내의 사용가치’가 게임을 벗어나는 순간 기호가치로 환원되는 것이라면, ‘게임 내의 기호가치’는 그보다 한층 더 먼 곳에 있는 셈이다. 게임의 세계는 물론 ‘허구’지만, 그보다 한층 더 깊은 곳에 있는 ‘허구를 실재로 삼아 만들어진 더 깊은 허구’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외부인의 관점에서, 호갱님은 실재하지 않는 것 그러니까 허구에 매달려 자원을 쏟아붓는 사람을 뜻한다. 반면 호갱님 본인의 관점에서, 현질을 한다는 것은 허구에 현실의 자원을 투자할 만큼 그것이 현실이상의 만족을 준다는 의미다. 그런데 이제는 그냥 허구를 넘어서서, 허구를 통해 나온 ‘허구의 허구’에까지 수요가 생겨나고 있다. ‘초 호갱님’이라고 불러야 할까? 그렇다면 허구의 허구가 현실이상의 만족을 준다는 것인데, 이것이 의미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일 것이다. 그것이 정말 대단한 재미를 주는 게임시스템인 것이든지, 현실이 허구의 허구만도 못한 시궁창처럼 재미없는 것이든지. 어느 쪽도 정말 충격적인 이야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원을 쏟아붓는 사람들은 계속 존재하겠지...








*League of Legends. 라이엇 게임즈(Riot Games)라는 게임개발사가 개발/출시한 온라인 AOS 게임이다. 흔히 영문 약칭인 LOL, 혹은 롤이라고 불린다. AOS는 Aeon of Strife의 약자로 게임명 자체가 장르로 정착된 것으로, 2003년 미국의 대학생 Eul이 제작한 워크래프트3의 유즈맵 도타에서 시작된 게임 장르다. 플레이어가 1명의 영웅 캐릭터를 선택하여 제한된 맵 안에서 빠른 시간내에 레벨과 스킬을 올리고 아이템을 갖춰 영웅을 강화시켜 상대편과 전투를 벌여, 상대방 진영을 파괴하는 공성전 형태의 실시간 전략/액션 게임의 장르. RTS와 공성전, 그리고 RPG가 적절히 융합한 새로운 장르이다. AOS 게임의 특성상 팀플레이가 정말 정말 정말로 중요하다고 한다. 팀플레이가 중요하다는 점 때문에 북미서버에서도 한국서버에서도 욕설이 난무한다. 신고 기능이 있고 대체적으로 잘 처리해주는 편이긴 하지만 신고를 해도 줄지를 않는다. 팀플레이가 중요한 게임임에도 팀원 서로가 기분상하고, 즐겁자고 시작한 게임이 (안좋은 쪽으로) 서로의 부모님 안부를 물어주는 게임이 된다고.(엔하위키 참고)










(격)월간잉여 14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