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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잉각색

이웃에게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가난하기 (김송희)


지금은 새벽 3시입니다. 지옥의 한철처럼 뜨거운 여름이 안녕을 고하려는지 꽤 선선해졌지만, 저는 여전히 덥습니다. 워낙 참을성이 없기도 하는 성미 덕분이기도 하지만 제가 사는 곳은 바람 길이 막혀있는 주거밀집지역이라 한낮의 열기가 밤까지도 유지되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제 방에는 4평형의 소형 벽걸이 에어컨이 달려있고 언제든 리모콘의 주황색 ON/OFF 버튼만 누르면 좁은 방은 금세 시원해집니다.  그런데 저는 에어컨을 틀지 못하거나, 틀고 나서도 10분후에 가슴이 방망이질칩니다. 가난한 살림에 폭탄처럼 투여될 전기세 때문? 아니면, 국가의 전기 절약 정책에 동참하지 못하는 것이 찔려서? 아니오. 아랫집 사는 여자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사건은 2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작년 여름 저는 진지하게 지구 멸망을 의심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더울 리가 없는데지구 속 마그마가 터졌거나 멘틀이 붕괴된 걸 정부가 숨기고 있을지도 몰라, 지구온난화 때문에 성층권이 아예 사라졌나? 에어컨이 없는 방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냉수목욕을 하고, 밤에는 집 앞 골목에 박스를 깔고 누워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올해에는 여름이 시작되자마자 부지런하게 중고 에어컨을 하나 장만했습니다. 설치비가 워낙 비싸서 신형보다 더 비싸게 산 결과를 초래했지만, 에어컨을 튼 방에서 살포시 잠이 드는 극락이란… 지구온난화고 뭐고 에어컨 짱짱맨을 외치게 했습니다.

그런데 에어컨을 설치한 그날 새벽. 누군가가 제 자취집 문을 미친 듯이 발로 차기 시작했습니다. 살기가 느껴질 정도로 폭력적인 소리였습니다. 거세게 문을 걷어차는 소리는 새벽 5시까지 끊기지 않았습니다. 고양이 3마리와 룸메이트와 함께 살지만, 그날은 하필 고양이와 저 밖에 없었습니다. 고양이 집사족들은 다들 아시겠지만, 고양이란 족속들은 귀여움이 깡패수준이지만 집에 침입자가 등장했을 때에는 빛의 속도로 싱크대 밑으로 사라지니 도움이 될 리 없지요. 잔뜩 화가 난 발에게 문은 밤새 두들겨 맞았습니다. 이제 그쳤나? 싶으면 다시 시작됐고 저는 오돌오돌 떨다가 아침을 맞았습니다. 도대체 누구였을까, 위에 사는 주인집 아저씨가 술을 마시셨나? 할머니 혼자 사는 걸로 알고 있는데….

범인은 오후에 밝혀졌습니다. “그쪽이 설치한 실외기 때문에 밤에 한숨도 못잤어요.”라는 짜증 섞인 여자의 전화. 네, 범인은 바로 아랫집 여자였던 겁니다. 발끈해서 “저도 그 쪽이 밤새 문을 두드려서 한 숨도 못잤어요”라고 화냈…을 리가 없지요. 저는 소심하니까요. 이 무서운 여자는 “제가 문을 두드렸는데 왜 나와보지도 않으셨죠?”라며 화를 내더군요.






그림: 박지연





새벽 3시부터 5시까지 남의 집 문을 미친 듯이 발로 차는 여자의 뇌구조가 무서웠던 저는 그냥 원하시는 대로 다 해드리겠다고 달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저희 집은 1.5층입니다. 무슨 해리포터의 9와 3/4 승강장도 아니고 세상에 1.5층이라는 게 존재한다는 것을 자취를 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형태의 집들이 존재하더군요. 제가 1.5층에 살고 있으니 아랫집 여자는 반지하에 살고 있고, 에어컨 기사 아저씨가 실외기를 놓은 곳이 그 여자의 창 근처였던 것입니다. 제 문을 두드린 침입자(이것은 충분한 침입의 공포였습니다)가 술 취한 남자가 아닌 여자였다는 게 놀라웠습니다. 에어컨을 샀다는 것 자체도 저에게는 큰 지출이었는데, 또 재설치비를 지불할 생각을 하니 식은땀이 흘렀습니다. 더군다나 에어컨 설치 아저씨는 ‘그 정도 금액으로 요즘같이 바쁜 때에 재설치만 하기 위해 갈 순 없다’며 20만원을 요구하더군요. 게다가 지금 신청을 해도 한 달안에 갈 수 있을지 모른다면서. 어쨌든 최대한 빨리 와달라고 부탁을 하고 끊었습니다.

그때부터 ‘에어컨을 틀고 싶은 나’와 ‘아랫집 여자를 무서워 하는 나’와의 사투가 시작됐습니다. 원래 집순이라 주말에도 거의 집에만 있었지만, 에어컨을 틀 수 없으니 집 근처 카페로 피신하는 일을 반복해야했습니다. 10분만 에어컨을 틀어도 아랫집 여자가 쫓아올 까봐 두려웠거든요. 검색을 해보니 ‘실외기 층간 소음’ 문제가 엄청 심각하긴 하더군요. 우리나라처럼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나라에서는 그런 스트레스가 사회적 문제가 될 수밖에 없을 듯도 싶었습니다. 재설치를 빨리 할 수 없다면 최대한 실외기를 멀리 옮겨봐야겠다 싶어서 집에 친구 여러 명을 불러서 실외기를 결국 2층까지 올려서 옮겨놨습니다. 자, 이정도면 되겠지. 그때부터 저는 에어컨을 열심히 사용했습니다. 그동안 못 썼으니 본전 뽑아야지. 룰루랄라… 해피엔딩




























이면 좋았겠지만, 저는 주말에 그 여자의 집으로 끌려 내려갔습니다. 처음으로 대면한 아랫집 여자의 외모는…예상했던 것과 너무나 달랐습니다. 모르겠습니다. 설명하기 어려운...마치 ‘가난’이라는 것을 실체화하면 저런 외모를 하고 있지 않을까 싶은 어둠. ‘우리 집에 와서 소리 한 번 들어보세요. 얼마나 시끄럽나’ 라는 그여자에게 끌려간 그 집은 더 놀라웠습니다.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오는 결벽증 걸린 할머니 집처럼 집에는 세간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불 하나와 작은 상자에 쌓여있는 옷. 신발장에는 운동화 하나가 전부였습니다. 너무 단출해서 충격적이었습니다. 그 집에는 정말이지… 가난 말고는 아무것도 없어 보였습니다. 개조한 일반 주택의 1.5층에 월세 들어 살고 있으니, 저 역시 가난하기는 마찬가지였지만 단언컨대, 아랫집 여자의 집은 제가 태어나서 본 어떤 집보다 휑하고 슬퍼보였습니다. 집 안에서 어두운 기운과 신경질적 성질이 묻어났다고 하면 너무 자의적 해석일까요.  그녀는 말했습니다.



“집주인 할머니에게 들으니까 가난해서 에어컨 재설치비가 부담이라고 들었어요. 저도 가난해 봐서 잘 알죠. 많이 시끄럽긴 하지만 제가 봐드릴게요. 대신 밤에는 틀지 마시고, 하루에 1시간 이상 틀지 마세요. 운 좋은지 아세요. 제가 가난해봐서 이해해드리는 거예요. 여유 있는 사람 만났으면 국물도 없는 거 아시죠?”



응? 이건 무슨 소리일까요. 네, 매일 전화해서 실외기 문제 해결하라고 귀찮게 하는 그 여자 때문에 할머니가 제 편을 든답시고 ‘가난’을 운운했던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끼리 이해하고 살아야죠…라는 식의 훈훈한 이야기로 마무리된 것 같았지만, 그 여자는 그러고도 30분이나 더 훈계를 늘어놨습니다.

파김치가 돼서 집으로 돌아와 냉동실에 있던 비비빅을 와그작 와그작 씹었습니다. 분노가 목 끝까지 차올랐고 왠지 모르게 서러워서 눈물이 났습니다. 엄마가 있었으면 목소리 높여 싸워줬을 텐데 하는 생각부터 시작해서 ‘아니, 그렇게 예민하면 이런 데 살지 말고 어디 시골에 내려가서 별장 짓고 사시지’ ‘나는 왜 이런데 살면서 나보다 더 가난한 여자한테까지 업신여김을 당하고 있는 걸까’ 싶은 생각까지 들더군요. 저 같은 가난뱅이가 분수에 안 맞게 무리해서 에어컨 같은 걸 사니까 이런 사달이 나나 싶었습니다.

그 이후로도 그 여자는 몇 번 정도 밤에 우리 집 문을 걷어차곤 했습니다. 그 날 에어컨을 좀 오래 틀었다 싶으면 밤중에 올라와 분노의 표시로 그렇게 하는 것이지요. 그럼 저는 또 며칠은 에어컨을 틀지 않고 더위를 참았습니다. 서로 눈치보고, 문을 발로 차고, 저는 또 화들짝 놀라고… 여름 내내 이 싸움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제 머리 속도 시끄럽습니다. ‘가난함’을 운운하는 그 여자의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습니다. 지나치게 예민해 보이는 성정의 아랫집 여자도 앞 건물과의 거리가 20M도 안 되는 이런 밀집 지역에 살고 싶지는 않았겠지요. 저 역시 1.5층에 10평도 안 되는 집을 룸메이트와 고양이 3마리와 나누어 쓰면서 집 앞 골목의 소음까지 온전히 흡수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습니다. 누군들 이렇게 살고 싶었을까요. 그리고 아랫집 여자가 밤마다 우리 집 문을 두드리는 공포에 시달린 후로는 저는 집 안에서도 항시 노출되어 있는듯한 느낌이 듭니다. 집 안에서도 안전하지가 않다. 나는 노출되어 있다는 공포.

슬라보예 지젝은 ‘부자들은 가난한 이들과 완벽히 분류된 자기들만의 개인적인 공간을 만들어 외딴 공동체를 건설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새로운 세계적 계급이 출현하고 있다. (중략) 빠다고니아에서 트래킹을 하든, 자기가 소유한 섬에서 수영을 하든 문을 걸어 잠근 이 갑부들의 태도에 근본적인 한 가지 특징은 두려움이다. 이 분화를 잘 구현하고 있는 도시는 룰라 집권기 브라질의 쌍빠울루인데 이 시의 도심지에는 헬리콥터 이착륙장이 이백 오십 개나 있다. 보통사람들과 뒤섞일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 쌍빠울루 부자들은 헬리콥터 이용을 선호한다. 그들은 스카이라인을 둘러보면서 <블레이드 러너>나 <제5원소> 같은 영화에 등장하는 미래주의적 거대도시에 와 있는 듯한 느낌에 사로잡힌다. 보통 사람들이 저 아래 위험천만한 거리를 득실대며 몰려다니는 동안 부자들은 하늘 위 높은 곳을 유유히 떠도는 그런.

-슬라보예 지젝, <처음에는 비극으로, 나중에는 희극으로> 중에서











처음으로 제가 사는 홍대 부근의 원룸촌이 ‘슬럼가’처럼 느껴졌습니다. 비둘기집처럽 복닥복닥 붙어있는 집에서 이웃의 각종 생활소음(부부싸움 소리 등)까지 감내해가며 서로의 고통까지 흡수하며 살아야 하는 슬럼가. 앞 빌라 2층에 사는 아저씨의 런닝 차림에 화들짝 놀라 커튼을 치지 않아도 되고 에어컨 실외기 소리가 시끄럽다며 밤마다 문을 걷어차는 이웃이 없는. 집집마다 간격이 떨어진 한가로운 동네에서 살고 싶어졌습니다. <시크릿 가든>의 주원처럼 한 동네 크기의 집을 소유한 사람은 이런 분란을 상상도 못하겠지요. 처음 주원의 집을 방문한 길라임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집’인지를 궁금해 하고 <신사의 품격>의 박민숙이 건물이 아닌 스트리트를 가진 여자인 것처럼. 더 많은 것을 가진 사람만이 타인과 자신의 삶을 완전히 분리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네요.

알렉산더 폰 쇤부르크는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법>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들과 다르게 ‘비둘기처럼 다정하게’ 서로를 배려하며 ‘한 지붕 세 가족’적 삶을 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제게는 그것이 가난뱅이의 자위 혹은 귀족들의 바람에 불과하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알렉산더 폰 쉰부르크 역시 몰락하긴 했지만 귀족 가문 출신이니 저런 한가로운 소리도 할 수 있는 건 아닐까요. ‘우아하다’는 형용이 과연 가난이라는 실체와 맞닿을 수 있을까요? 영화 <코스모폴리스>의 에릭 패커는  고급리무진에서 섹스와 업무까지 모든 것을 해결합니다. 월스트리트의 점거로부터 완전히 분리된 리무진에서 창문 너머로 파산을 지켜보는 그 역시 결국은 가난과 질병, 폭력으로부터 노출된 위험을 원천봉쇄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요.

실외기 소음 분쟁 이야기가 왜 지젝이나 폰 쇤부르크까지 왔는지 모르겠습니다. 분명 아랫집 여자도 저 때문에 힘들었을 겁니다. 안 그래도 살인적으로 더운데 실외기 소리에 더운 열기까지 견디기 힘들었겠지요. 제가 20만원을 들여서라도 더 멀리 실외기를 옮기면 해결될 문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새삼 가난이라는 것은 그 자체로 얼마나 이웃에게 방해가 되는 것인지…. 이 집이 반지하와 1.5층이 아니었다면, 이 동네가 주거 밀집지역이라 바람길이 차단돼 다른 지역보다 온도가 몇도나 높지 않았다면, 천장이 낮지 않았다면, 제가 실외기 재설치하는 데 드는 비용을 아끼지 않아도 되었다면… 이 모든 스트레스와 강박은 없었을 텐데요. 가난함이 안겨준 예민함과 구질구질한 궁상, 서로의 편의를 배려하기 어려운 속좁은 성정까지 겹쳐지니 우아함, 평화로움은 처음부터 이 동네에는 없을 것 같습니다.

아직도 저는 새벽만 되면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작은 제 방이 이 동네 사람들에게 다 실중계 되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서 더워도 커튼을 꽁꽁 치고 잠이 듭니다. 발소리만 쿵쿵 들려도 아랫집 여자가 또 항의하러 올라오는 건 아닌지 가슴이 뜁니다. 앞집도, 윗집도, 아랫집도 이렇게 가까이 살고 있는 것, 가장 따뜻하고 안전해야 할 내 집에서의 생활을 타인으로부터 완전히 분리하지 못하고 언제든지 침입 가능한 상태로 열어둔 채 살아야 하는 것. 이것이 올 여름 저를 찾아온 최고의 공포스릴러입니다.

아, 여름이 갔네요. 이제 가을이 되면 창문을 꽉꽉 닫고 온 집안의 문을 열지 않을 겁니다. 가난한 사람이 타인과 나를 분리할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내 집’ 문을 닫는 것 밖에 없으니까요. 











(격)월간잉여 14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