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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잉각색

위로도 거래가 되나요(웬디신데렐라)

학원을 다니고 있어요. 외국어 자격증을 위한 학원이에요. 한 달만 다니고 시험 치고 끝낼 생각이었는데, 공부 한 김에 끝장을 보겠다며 한 달을 더 듣기로 하고 방금 엄마 카드를 긁었어요.

처음 학원에 도착해서는 굉장히 의아했어요. 유명한 강사라는 말만 듣고 갔는데 작은 교실에 사람들은 빽빽하고, 덥고… 지금 생각하니 마치 <설국열차>의 꼬리칸 같네요, 단지 돌진하지 않을 뿐. 앞 칸으로 가기 위해서 우리는 제자리에 붙박혀 있었어요.


이게 내가 갈 길을 노리는 경쟁자라는 생각도 들고 열심히 해야겠다는 의지를 불태운 것도 잠시.  조교라는 사람이 영상을 틀어주더라고요. 수업에서 사용하는 기호를 알려주는 영상인데, 그 유명한 강사분이 녹화하신 화면이었어요. 이삼분 짜리 영상이 계속 반복되어서 나오는데 굉장히 뻘쭘했어요. 이걸 받아 적어야하나 말아야하나. 다들 받아 적기에 저도 적었어요.

수업 체계가 혼란스러웠지만 점점 익숙해졌어요. 수업 끝나고 강사님이 전날 숙제를 했는지, 어떻게 공부를 하고 있는지 짧게 체크를 해주는데 오랜만에 받는 관심이라 그런지 그런 게 좋더라구요. 열심히 해, 잘 될 거야. 그런 무의미한 위로는 숱하게 들어와서 질렸다고 생각했는데 온전한 타인에게 받는 위로는 달콤하더라고요. 그러면서도 문을 나서면 슬펐어요. 저는 이 관심을 돈을 주고 산 거란 생각이 들어서요. 물론 실력은 향상됐죠. 괜히 유명한 게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강의 질도 좋고, 체계적이고…  근데 뭐하는 짓인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내가 이 자격증을 얻고 나면 그 다음은? 좀 막막하기도 하구요.

매일 수업 시작 전에 강사님이 명언을 외워주세요. 들으면 참 좋아요. 뭐든 될 것 같거든요. 근데 집에 가는 길에는 씁쓸해져요. 지금도 강사님이 학원 홈페이지에 있는 명사들 강연을 추천해주셔서 보다가 왔어요. 대부분의 명사들은 이것만 하면 된다, 항상 그렇게 말하는데 잘 모르겠어요. 제 주위에 그렇게 해서 학원과 스터디에 돈을 쏟아 붓는 친구들이 한둘이 아닌데 왜 걔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으며 명사들은 왜 늘 똑같은 말만 반복하는 걸까요.

"기업들은 인재가 없다고 말한다" "요즘 학생들은 도전심이 끈기가 부족하다" 제 생각에도 제가 끈기나 도전심이 부족한 것 같기도 해요. 근데 일단 시작하는 것 자체가 무서워 지는, 출발선이 다르다고 느껴 아예 시도조차 못하게 만드는 이 사회도 바뀔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건 아무도 말을 안 하니까 혼자 서운해지더라고요. 이런 강의가 나한테 무슨 소용이 있나 회의도  들구요. 저도 그런 자리에 있으면 그런 달콤하게 남 위로하는 척 하면서 한 번씩 쏘는 말 잘 할 자신 있거든요. 그런 말은 아무것도 몰라도 할 수 있는 거 아닌가요. 자리가, 그 대단찮은 말을 와, 하게 만드는 게 좀 그랬어요. 제가 꼬였나 봐요.


그래도 저는 또 내일 아침 일어나서 강의를 들으러 가겠죠. 그게 대단한 의지가 있거나 목표가 있어서가 아니라 단지 혼자 있는 게 무서워서 누구 손이라도 잡으러 가는 기분이에요. 돈 주고 산 관심이 좋아서 끊지 못하다니 저도 어지간히 ‘관심종자’인가 봐여. 슬프게…. 이 관심 계속 받으려면 돈을 벌어야겠죠. 무슨 뫼비우스띠도 아니고 참 뭐 같은 싸이클….








강의실에서도 강의실을 바깥에서도 모두들 외롭고 쓸쓸해 보여요. 그래서인지 삼성경제연구소에서도 한국 서비스산업의 블루오션으로 ‘힐링 산업’을 꼽더군요.(창조경제 돋네!) 상처를 받은 사람들이 그저 상품수요로 전락하는 세상에 입맛이 씁니다.

지난 2년 동안 월간잉여를 통해 많이 위로 받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월간잉여도 돈 주고 샀….
그래도 월간잉여나 여잉추를 통해 만난 사람들과의 관계와 ‘친목질’은 돈 주고도 못 살 것들이니, 앞으로도 열심히 친목질 하렵니다.

돈 주고도 못사는 걸 더 많이 찾고 싶어요. 그런데 이 세상에 그런 거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느끼는 요즈음입니다.








(격)월간잉여 15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