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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터뷰

<잉여사회>의 최태섭

작년 9월, 잉여학 개론서라고 할 수 있는 <잉여사회>가 발간됐다.
발간 뒤 얼마 되지 않아 저자는 군대로 끌려갔다….
그의 군 입대를 며칠 앞둔 화창한 날, 홍대의 한 찻집에서 <잉여사회>의 저자 최태섭을 만났다.






최태섭 <잉여사회>




늦게 군대가는 거에 대해 친구들이 애잔해하죠? 만나면 친구들이 많이 쏘겠어요.
친구들이 많이 불쌍해하죠. 그러면서도 놀려요. 입영 날짜가 빨리 나왔어요. 2013년 1월. 입영 날짜 받자마자 트위터에 올려서 1월부터 지금까지 계속 놀림 받았어요. 조용히 있을 걸 그랬어요.
말씀하시는 내용이 슬퍼서 그런지 말씀하시는 눈망울이 <슈렉> 고양이 눈 같아요. 뭔가 처량해보인달까? 예쁘기도 하고요!
ㄱㅅ











2013년에 '잉여'라는 키워드 관련 책이 많이 나왔어요.
사실 잉여라는 말은 오히려 요즘 인터넷에서는 잘 안 쓰는 추세죠. 제 책은 예정대로면 2년 정도 더 빨리 나왔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어요. 2010년에 경향신문 칼럼에서 잉여에 대해 썼고,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를 쓸 때부터 생각했던 주제에요. 3년 전부터 구상은 했었는데 몰아쳐서 한 건 최근 1년이에요. 올해 영장이 나와서 군대 가기 전에 책을 내야겠다 싶었죠. 학교를 한 학기 더 다니면 수료인데, 학교도 휴학하고 작업실 얻어서 글 청탁 제안도 거절하면서 겨우겨우 썼어요. 스트레스로 10kg이 쪘습니다.(웃음) 


이 시기에 이렇게 관련 책이 많이 나오는 것에 대해 어떤 해석이 가능할까요?
크게 두 가지에요. 하나는 이미 서구와 한국의 모든 문제의 포커스가 잉여라는 위치로 모아지고 있다는 것. 두 번째는 한국에서 스스로 잉여를 칭하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나타났다는 것. 저는 한국 사회가 참 재밌는 케이스로 보여요. 굳이 어려운 이론을 갖다 대지 않고도 인내심을 가지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보면 보편적인 것을 찾아낼 수 있고, 그걸 잘 엮기만 하면 되는 거죠. 책 내면서 ‘아직도 이런 소리하냐’ 그런 반응 예상했는데 생각보단 반응이 괜찮네요. 흩어져 있던 걸 정리했다는 데 제 책이 의의가 있는 것 같아요. 


책을 보니 스스로도 잉여라고 하셨던데.
학벌, 재산, 직업 등의 기준으로 봤을 때 전 잉여죠. 엄청난 스펙 쌓은 사람들도 미끄러지고 있는데, 제 스펙으로 취직을 하겠냐는 거죠. 저는 이 사회에서 요구하는 기준에 안 맞죠. 


대기업 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나요?
그런 건 옛날에 포기한 것 같아요. 사실 저는 대학 올 생각도 없었어요. 원래 10대 꿈은 게임 제작자가 되는 거였어요. 게임을 좋아했거든요. 게임제작 학원도 다녔어요. 그런데 낚인 거였어요. 2000년에 한국에서 게임 관련 학과가 막 생기기 시작했는데 그때 저는 고등학생이었어요. 고등학교 때 신촌에 있던 게임학원을 갔는데, 사실 게임 제작 가르칠 수 있는 학원이 아니었는데 그게 뜨는 것 같으니까 그냥 걸어뒀던 거였어요. 요즘은 그래픽이 대세다, 그림 못 그려도 된다고 해서 적지 않은 돈을 내서 학원을 다니다가 소송 걸었어요, 사기라고…. 합의하고 돈을 일부 돌려받아서 진짜 게임스쿨을 갔는데, 그림 못 그리면 그래픽 쪽을 하면 안 된다는 걸 그때 안 거예요. 저 그림 진짜 잘 못 그리거든요. 글씨도 잘 못써요. 그러다 홍역에 걸려서 학원 두 달 쉬었더니 같은 기수 형들은 졸업해 버리고… 계속 그러다가 고등학교 3학년이 됐어요. 다들 수능 공부하는데 저는 게임개발자 한다고 공부도 잘 안했어요. 반에서 15-20등 사이였는데 수능은 일단 봤어요. 그런데 수능 대박이 터진 거죠.(웃음) 친하게 지내던 세계사 선생님께서 성공회대 신방과 가라고 추천해주셔서 성공회대에 갔죠. 그러다 이렇게 된 거죠. (웃음) 글 쓰는 삶을 살게 됐고, 달리 갈 데는 없고, 친한 교수님이 생겨서 대학원까지 진학하며 가방끈이 길어졌죠. 


글 쓰는 삶을 살게 된 계기가 따로 있었나요?
2006년에 여자친구랑 헤어지고 할 일도 없고, 하던 보드카페 알바도 그만두고 글을 써보자, 하는 생각을 하다가 딴지일보에서 남로당에서 게임에 대한 글을 썼어요. 샘플 보냈더니 연재하자고 해서 게임에 대한 글 1년 썼죠. 그 뒤로는 페미니즘에 대한 글, 만화에 대한 글 등 치기어린 글을 쓰다가 사람이 필요하다고 딴지에서 연락 와서 했어요. 한창 딴지가 꿀 빨던 시절이라 저도 같이 꿀 빨았죠. 딴지일보에서 월급루팡짓 하고, 남로당 때도 회당 5만원 받고.


여자친구랑 헤어진 것을 인생에 중요한 분기점으로 삼은 걸 보니 사랑꾼이신가봉가? 연애를 인생의 중요한 축으로 두시나요?
연애, 중요하죠. 연애하며 찌질한 짓도 많이 했지만 결국 그런 연애 때문에 제가 많이 성장한 것 같아요. 요즘 사람들 집착이 심하잖아요. 배신당하는 거 못 참고. 네이트판 같은데 보면 연애상대를 끊임없이 옭아매고, 손익 계산하는 관계가 많이 보여요. “호구가 돼야한다”고 말하는 건 아닌데, 소통 자체가 오염돼 있는 것 같아요. 곧이곧대로 못 듣고 항상 그 저의가 뭘까 의심하잖아요. 이런 세태는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책 결말부에 생존, 성장, 만남이라는 키워드를 이야기 하셨어요. 좀 추상적인 해결책으로 느껴졌는데….
다른 사람들도 해결책이 추상적이라는 얘기 많이 해요. 결국은 저도 답이 없어서 그렇게 쓴 건데, 그렇다고 막 쓴 건 아니고 고민을 많이 했어요. 저는 ‘가능성’을 말하고 싶어요. 잘못 보면 긍정적인 뉘앙스로만 해석될 수도 있는데 그건 아니구요, 중립적으로 쓴 말이에요 뭐가 될지 알 수 없는 상태가 가능성이라는 거죠. 사람은 남아돌죠. 남아도는 사람들도 나름의 역량은 있을 텐데, 그게 가능성이죠. 가능성은 한 쪽에선 즐겁게 노는 쪽으로 발산되고, 다른 쪽으론 신상을 털든지 일베를 하든지 이런 식으로 발산되죠. ‘그렇다면 가능성을 두고 어떻게 할까’ 라는 문제가 남는데요, 일단 저는 개개인이 자신의 존재에 대해 생각해보는 게 선행돼야 한다고 봐요. 현재의 내 위치에 생각해보고 지금보다 조금씩 더 나은 사람이 되자는 거죠. 이를 위해선 자신의 객관적인 위치를 아는 게 도움이 돼요. 저는 푸코를 좋아하는데, 푸코가 그런 작업을 많이 한 것 같아서입니다.


아즈마 히로키(일본의 문화비평가, 소설가)로부터도 크게 영향 받으신 것 같아 보여요.
네. 아즈마 히로키 이후 국내 논문 ‘87년 이후 스노비즘의 계보학’(심보선, 김흥중)이 나왔고, 제 석사논문은 이들에 영향을 받았죠. <잉여사회>는 제 석사논문을 기반을 두고 썼고요. 제 논문에서 “역사가 파편화된 지금 우리는 뭐가 되느냐, 세 가지가 나온다, 속물 오타쿠 잉여다” 라고 말했는데 <잉여사회>에서는 이를 재편해 속물과 잉여로 풀어냈죠.


자존감을 지키며 살기 쉽지 않은 세상이에요. 자존감을 지키고 살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뭘 해도 안되니까 하고 싶은 걸 하라’고 말해요. 하다가 망하면 후회라도 없는데 다들 후회가 너무 많아요. 타협은 어느 정도 필요하지만 타협만 하다 끝나면 비참하니까요. 그런데 저도 사실 자유롭지 않아요. 저도 가끔 남 보고 배 아플 때 있거든요. 근데 노력해야 하는 거에요. 어쨌든 내가 발 디딜 곳은 내가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게 맞는 거고, 크고 작은 상처는 누구나 받는 거예요. 또, 조바심을 덜 내야 할 것 같아요. 지젝이 한국 왔을 때 열었던 컨퍼런스 주제가 “멈춰라, 생각하라”였어요. 그게 정말 필요해요. 파편 사이에서만 왔다갔다 하지 않기 위해서 잠시 멈추고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조망하는 시간을 가지는 게 좋겠어요. 


제대 후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이제 와서 취직할 것도 아니고…. 계속해서 글 쓰며 살아남는 게 목표에요. 위에서 하는 어려운 이야기 잘 풀어서 대중적인 방식의 글쓰기를 하고 싶어요. 학계에서는 개념 하나에 엄청 많은 주석을 달아야 하는 데 저는 학계의 스타일과는 잘 안 맞는 것 같아요, ‘중간 필자’로 살아갈 겁니다. 무엇보다 글 쓰는 것과 사는 것을 일치하면서 살기 위해 노력할 거에요. 쓰는 글을 배신하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 전에 일단 무사히 제대부터 하셔야… 건강하세요….
네….






(격)월간잉여 15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