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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터뷰

안녕하지 않다보니 질문맨이 된 주현우

작년 12월 10일, '경영 08 현우'라는 이는 직접 손으로 쓴 대자보를 소속 대학인 고려대 후문에 붙였다. “안녕들하십니까?”라고 묻는 이 대자보는 많은 대학생들이 “안녕하지 못하다”고 화답하게 만들었다. 전국 각지에서 붙인 대자보의 내용을 공유하는 페이스북 페이지 ‘안녕들하십니까’는  2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좋아하고 있다.  첫 손자보(손으로 쓴 대자보)의 주인공 주현우 씨를 만났다.








님이 대자보 붙인 뒤 다른 대학생들도 대자보를 쓰고 있다. 14일에 있었던 철도 파업지지 행진에도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다. 식상한 질문이지만, 예상했던 일이었나?
 전혀 못했다.(웃음) 처음에 대자보 쓰고 페이스북에 올렸을 때 댓글로 “별로다”라고 한 사람도 있었다.지금은 “안녕들 하십니까” 페이스북 페이지를 좋아해주시는 분, 대자보 등록하시는 분, 메시지 보내시는 분들이 넘쳐서 페이지 관리가 벅차다. 처음에는 혼자 했고 지금은 6명 정도가 돕고 있는데 그런데도 벅찬 상황이다.


이렇게까지 반응이 좋을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여태까지의 언로를 신뢰할 수 없었다는 방증아닐까? "네이버에서 기사 안 보고 댓글만 본다, 정리가 잘 돼있고 재밌다"는 말도 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인터넷 공간에서 개진된 의견은 익명성에 가려져 있고 피드백도 산발적이고 피상적이다. ‘손자보’는 대부분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고 있고 손으로 쓴 글씨를 통해 쓴 사람의 감정도 더 느낄 수 있다. 그렇기에 “빡치냐, 나도 빡친다.”같은 반응이 나왔다고 생각한다.


'익명성'에 신물 나셨나봉가?
익명성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익명성이 악용되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한다. 국정원 댓글도 그런 문제 아닌가? 트위터의 유령계정들은 어떠한가. 직접 자기 이름을 걸고 손으로 쓴 대자보는 그래서 소중하다.
대자보에 철도민영화 반대 파업에 대한 얘기도 나와 있다. 그냥 철도노동자를 지지하자고 하면 사람들 반응이 이렇게까지 나오진 않았을 것 같은데, 감정을 건드릴 수 있었던 점이 주효했던 것 같다.
여러 번 생각해서 나온 글이다. 분명 안녕치 않은 상황인데 “안녕하세요” 라고 상투적으로 인사하는 상황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운동권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하고 싶었다.


님이 '운동권'이라고 지칭하는 이들은 어떤 사람들임?
정당(노동당)에 소속된 적 있던 나도 누가 보면 운동권으로 볼 수 있겠지만, 내가 말하는 운동권은 개인의 특성을 누르고 조직을 강조하며 무언가를 하는데, 그게 반대를 위한 반대나 선언에 그치는 행동인 것? 무언가에 반대할 때 그게 '나로부터 나온 질문에 의한 반대'여야 한다는 걸 강조하고 싶다. 


조선일보는 노동당의 기획이라는 말도 하던데.

나는 이미 수개월 전에 노동당과 불화를 가지고 ‘독고다이’가 된 상황이다. 당의 기획은 아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동안 언론이 역할을 하지 못했기에 이런 상황이 온 것이라는 거다. 주어진 현실과 언론의 하는 말에 괴리를 느꼈던 사람들이 스스로 말하고자 대자보에 반응하고, 직접 쓴 것이다. 대자보에 반응했던 사람들이라면 이제까지의 패턴처럼 또 호도하는 언론의 행태에 그냥 넘어가지는 않을 것 같다. 난 자발성을 중시한다. 앞으로의 활동도 많은 사람들의 자발성이 중요하다고 본다. 물론 그 자발성에 내가 안 들어가는 건 아닐 것이다. 나도 자발성에 들어가 얘기할 것이다. 나의 실천엔 너의 실천으로, 나의 말엔 너의 말로. 뭐 그런 거. 개인적으로는 누가 "순수하지 않은 거 아닌가?"라고 질문하면 반문할 거다. 뭐가 순수고, 비순수냐? 정치와 비정치를 가르는 건 무엇인가? 계속 되물을 거다.













제일 기억에 남는 자보는 뭔가?
그런 질문은 뭔가 하나를 골라야 한다는 건데 그건 좀… (잠시 생각하다) 13학번 새내기가 자보를 쓴 게 기억이 난다. 운동권에 연결이 있거나 내 지인이거나가 아니라 전혀 그쪽과 끈이 없는 13학번 학생이 내가 자보 붙인지 얼마 안 된 날에 직접 써서 붙였다. 무언가를 말하는 게 터부시되는 상황을 지적했다. “이런 걸 말하는 게 빨갱이라면 빨갱이가 되겠고, 종북이라면 종북이 되겠다”라는 내용이었다. 말하는 게 막히고 글의 내용은 사라지고 글쓴이만 두들겨 맞게 되는 상황에 대한 인식과 그걸 극복하려는 개인적 실천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비유를 생각해봤다. 조용한 독서실이 있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공부하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불이 나서 누구는 실신하고 난리가 난다. 누군가 “불이야”라고 외치고, 다른 사람도 따라 외친다. 그랬더니 관리자가 와서 묻는다. “제일 먼저 불이야 한 놈 누구야? 넌 혼나야해. 넌 원래 불만 많은 이상한 놈이었지?” 라고 하는 느낌. 다른 사람들 보고는 불 안 났으니 제자리로 가라고 한다. 우리 사회에서는, 몇몇 언론은 이런 관리자의 태도를 보여왔다. 하지만 이미 타는 냄새를 맡은 사람들이 있다. 타는 냄새를 이미 맡은 사람들은 관리자가 불 안 났다고 말하는 것에 호응할 수 없다. 









‘일베’나 우익세력은 자보를 찢고 다닌다던데.
자보를 붙이지 못하니까 뜯는 거다. 우리의 슬로건 중 하나가 “일베가 자보를 붙이는 그날까지”이다. 대신 ‘복붙’(다른 말로 ‘ctrl c+ ctrl v’)금지, 익명 금지.


‘애국보수’ 페이지나 경북대학생의 대자보 같은, 일베와는 약간 다른 모습으로 보수적 입장을 보이는 사람들을 보면 어떤가?

그건 좋다. ‘자기 정치’를 하는 거니까. 남이 한 걸 찢거나부수는 게 아닌, 자기 이름을 걸고 자기 언어로 말하는 자기정치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대리 민주주의’와 같은 것으로 보는데, 대리해서 누가 정치하는 것이 당연하게 생각하는 문제점, 이걸 깨야 한다. 남의 얘길 대신 전달하는 것의 한계를 지적하고 싶다.


불편할 질문일 수 있는데, ‘고대생이 한 일이라 화제가 된 거 아님? 우리가 했다면 누가 관심 줬음?’같은 비명문대생이나 지방대생의 무력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당연한 물음이고, 그 물음이 보여주는 구조가 있다. 오히려 그걸 드러낼 거다. 학벌체계 문제를 보여주고, 그 학벌에서 나름 유리한 위치에 있는 고대생도 취업이 안 된다는 것, 그렇다면 대학이 쓸모없는 것 아니냐는 것. 그런 구조를 그대로 보여줄 계획이다.


경영학과 학생이시다. 경험상 경영학과 학생들분들은 사회적 관심이나 참여가 없는 것 같고, 친기업적 친여당적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은 것 같던데, 과에서 아웃사이더일 수 있을 것 같다.
경영학과 내에서 좀 특이하다고 보는 시선은 있었는데… 난 내가 말 하는 건 항상 실천했다. 그래서 경영학과 학생들도 "저 사람은 말하면 그걸 한다"는 존중은 있는 것 같다. 문자나 카톡으로  "항상 보며 응원하고 있다" "내가 겁쟁이라 함께 못해 미안하다" 그런 얘기를 자주 들어 외롭지는 않다.








응원문자





그 사람들은 님보고 어떤 성격이라고 함?
특이하다는 얘기는 많이 들은 편이다. ‘또라이’는 아니고 상식적 차원의 일들을 하는데 튀게 보는 시선이 있다. 가만있지 않고 뭘 하니까... 뭘 하는 걸 주저하게 하는 구조에서 리스크를 감내하고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는 성격이다. 객기라고도 할 수 있는데, 객기를 지금 안 부리면 언제 부리겠어. 중심이 확고한 사람이 되고 싶다. ‘어떻게’ ‘왜’ 라는 것에 대한 주관을 계속 갖고 살고 싶다. 그런 사람은 (직업적으로) 뭘 하든지 문제가 없다. 거기에 기자를 입히든 회사원을 입히든, 어디서 뭘 하든 자기 주관대로 할 테니까.


기업에 가시면 노조위원장을 하실 수도....
내가 기업에 들어갈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걱정한다. “너 이제 얼굴 팔렸는데 좆됐다.” 이게 되게 적나라하다고 생각한다. 거기에 더 크게 반문하고 싶다. “이런 상황이 마음에 드세요?” 날 걱정해서 물어보는 사람들은 기왕 걱정할 거라면 대안을 마련해 준다든지 일자리를 주는 것도 좋겠다.(웃음) 그런데 대부분 그걸 물어보는 사람들도 (일자리에 대한) 결정권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다.


5년, 10년 뒤 미래에 대한 전망이 있는가?
그런 거 없다. 당장 앞날도 깝깝한데…. 


‘잉여’라는 코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이전에 잉여들은 자기 파괴적인 측면이 강했다면 “이제는 뭐라도 해보자, 나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다”
고 생각을 정리하는 단계인 것 같다. 지금의 잉여는 뭔가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과도기라고 본다.


님도 잉여짓 해본 적 있음?
나의 삶에 어떤 긍정적이거나 생산적인 결과물로 나타나는 것이 없어도 하는 게 잉여짓이라면, 대자보 쓰는 일도 잉여짓이 될 수 있겠다. 최근 아이디어 회의 때 ‘손으로 (질문을 담은) 연하장 10장씩 쓰기’같은 것도 나왔다. 손으로, 느린 호흡으로 소통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지금 대화의 양은 늘어났으나 질과 진정성은 떨어지는 것 같다. 종이글과 손으로 쓴 글은 보는 사람의 태도가 달라진다. 예를 들어 카톡 보내놓고 빨리 확인 한 하면 짜증내고 빡치는 세상인데, 손 편지는 한 템포 늦추고 호흡을 늦춰 대기시간을 만들 수 있다. 그 시간동안 고민하고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대학생들이 대자보를 쓰는 것을 통해 자신의 삶을 서사화하고 거기서 자신이 발 딛고 선 사회 구조를 인식하게 된 것, 파편화됐던 이들이 공감과 연대를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것이 대자보 운동의 긍정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월간잉여>도 지난 2년간 그런 기능을 했던 측면이 있다고 자평한다. 요즘은 여기서 더 나아간 무언가를 해야 할 때가 아닌가, 라는 고민을 하고 있다. 서로를 발견하고 공감하는 서술 작업에서 더 나아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난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니다. 나 말고 다른 대단한 사람이 비평이나 전망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지금 상황에서 말 할 수 있는 것은, 세부적으로 치는 것과 큰 틀에서 치는 것, 두 개를 같이 가져가겠다는 것이다. 앞으로도 안녕치 못한다는 물음을 큰 틀로 가져가되 작은 틀에서는 세부적으로 가고 싶다. 이번에는 대자보에 내용이 철도내용이 들어있고 시급한 문제기에 그것을 주요 의제로 했지만 앞으로 내부의 사람들이 의견을 내면 그걸 수렴해나갈 것이다. 의견을 내고 수렴하는 방법으로는 만민공동회를 상상한다. 경복궁 내에 사람 모으고 거수하는 방식으로 . 그렇게 해서 내가 나의 정치를 한다는 체험을 할 수 있었으면 한다. 그런데 이건 어디까지나 내 입장일 뿐 ‘안녕들하십니까’ 전부의 입장은 아니다.
어쨌든 ‘사람들이 쳐다보고 있는데 뭘할까?’라는 생각은 하지 않으려 한다. “우리를 쳐다보니까 우리는 잘해야 해”가 아니라 “우리를 보는 이들이 스스로를 바라보게 하자”이다. 그걸 고민하고 있다. 







(격)월간잉여 15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