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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서복 특집: 연서복 연대기上 (연서사)



(편집자 주) 한국여성을 대상으로 '김치녀' '된장녀'와 같은 언어를 사용하며 혐오와 비아냥의 정서를 표현하는 남성들이 있다. 이중에는 그렇게나 자국의 젊은 여성을 혐오하면서도, 강한 욕망을 드러내는 모순된 멘탈리티를 가진 이들도 있다. 이런 멘탈은 이들의 '작업' 대상에게 여과 없이 드러나기도 하는데, 특히 군대에서 대학교로 막 복학해 어떻게든 여자를 사귀어보려고 뻐꾸기를 날리는 남학생들일수록 적나라한 행동을 보인다. 상대를 타자화하거나 본인보다 '한 수 아래'의 유아적인 존재로 상정하기에 상대를 '애기'라고 부르며, 틀린 맞춤법으로 끊임없이 말을 걸며 불쾌한 '섹드립'을 친다. 물론 모순된 멘탈리티를 가져서가 아니라, 그저 연애에 서툴러서 그런 행동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작년 말에서 올해 초, 이런 ‘서툰’행태에 대한 농담과 패러디가 유행했다. '연애에 서툰 복학생'(이하 '연서복')이라는 트위터 계정(twitter.com/yonseobok)에서부터 시작됐다.


다음은 <(격)월간잉여>에 원고를 투척한 연서복 당사자의 자기고백이다.








애긔~들, 안녕?^^ㅋ 오빠는, 아니 업바는 이제 졸업한지도 꽤 되어가는, 이제는 연서복이 되려야 될 수 없는 신세의 사회인이야. ‘연서사’랄까? 미안 잼업ㅂ징ㅋ

참고로 업바는 꽤 큰 용기를 내서 이 글을 쓰는 거야. 익명 기고 요청을 했고, 진지 같은 거 정말 쏙 빼놓은 채로 어깨에 힘 다 빼 두서없이 적을 거란다. 업바는 이 글을 읽는 애긔들이 연서복에 대해 이해를 해 준다든지, 동정이나 측은함 따위를 느끼기를 기대하며 쓰는 글이 아니야. 다만 잊을만하면 애긔들의 핸드폰 카톡 푸시를 울리는 찌질한 저 새끼도 엄마 뱃속에서부터 "애긔~ㅎ"하면서 나온 게 아니라는 것만 알아줬으면 해. 이 글에 등장하는 애긔들인 민정과 혜경, 다윤(셋 다 가명)에게는 20대의 한 장을 본의 아니게 흙빛으로 장식시켜주게 되어 미리 미안하다는 말도 전하고 싶네. 그럼, 시작할게. (아, 노파심에 한 마디만 할게. 이 글은 정말 정말 정말 약속한대로 익명으로 기고될 테지만, 혹여나 이 글을 읽은 후 업바한테 개인적으로 찾아와 놀리거나 하면 말야. 죽여버릴 거다. 넝담~ㅎ;)





건축학개론 (2012)




민정
캠퍼스의 3월은 언제나 싱그럽지. 입학 시즌을 맞이했어. 새 학기부터 단과대 학생회에서 한 자리 차고 있었던(업바 이런 사람...ㅋㅋ) 업바는 입학식부터 모꼬지 출발까지 신입생 아이들을 줄을 세우고 밥을 먹이고 버스에 태우기까지 해야 하는 귀찮은 일을 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 때 쯤 눈이 휘둥그레지는 순간을 맞이했어. 신입생 한 명이 너무 예쁜 거야. 어여쁘다 못해 빛이 날 정도인 아이의 명찰을 보니 업바네 과랑 앙숙인 과의 신입생이네. 거기다 숏컷이었음. 업바 숏컷 짱 조아함ㅎ; 당시의 업바는 시건방과 시크 그래프의 정점을 찍던 시절을 구가하고 있었어. 그러나 그 아이를 위해서라면 착하고, 순하고, 배려심 마구 돋는 믿음직스러운 선배 업바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 그 정도로 고운 아이였는데, 모꼬지 장기자랑 때의 사진이나 동영상도 자꾸 돌려볼 정도로 고왔는데(심지어 지금도 가지고 있어^^ㅋ), 도저히 가까이 다가 갈 기회를 잡을 수가 없는 거야. 사람 환장하는 거지.


여기서 업바의 대학생활 배경에 대한 설명이 좀 필요할 것 같아. 업바가 나온 과와 과가 속한 단과대학은 여초현상 쩔어주는 곳이었어. 그래서 어지간히 어여쁘지 않은 여학우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는 것이 우리 과 남학생들의 전통 비슷하게 자리를 잡을 정도였지. 그런 공기에 젖어있던 남학생은 업바 뿐이 아니었는데, 단과대의 모든 남학생들의 시선은 한 명, 그러니까 민정이에게 몰렸다는 소식을 듣는 데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어. 이제 업바는 단과대의 모든 남자들을 상대로 싸워야 하는 신세가 된 거야. 하지만 물꼬를 트는 데 걸린 시간은 생각보다 짧았어. 업바가 술이 떡이 돼서 그 아이의 싸이 사진첩에 댓글을 남겼거든… ^^ 일일 방문자 수 500을 넘나들던 특급루키의 미니홈피 전체공개 사진첩에 걸린 "버블티 좋아하나봐요?ㅋ"라는 리플은 자고 일어난 사이 단과대 최고의 이슈가 되었어. 그리고 그 아이가 남긴 답글 "누구세요?;;"도 그 뒤를 잇는 빅뉴스가 됐지….


이실직고하고 정면돌파를 하는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어. 업바 남자거든ㅋ 그래서 그 아이, 민정에게 싸이월드 쪽지를 보내 여차저차 설명을 하고(그 쪽지 내용도 아직 보관하고 있지 ^^), 얼레벌레, 얼렁뚱땅, 다시 여차저차 하다보니 단과대 1층 카페에서 약속까지 잡았네? 헐렝ㅋ 단과대 건물 1층 카페는 강남역 지오다노 앞 같은 곳이라 모두의 이목이 집중될 수밖에 없었어. 아무튼 만났어. 그리고 내 모든 역량과 온 우주의 기운을 발휘하고 끌어내어 그 아이를 웃게 만들고, 이야기를 이어가고, 웃으면서 헤어지고, 어느덧 주말 약속까지 잡아버렸네? 업바는 그 때 세계를 정ㅋ벅ㅋ한 줄 알았는데 세상 일이 그렇게 잘 풀리지만은 않더라. 금요일에 약속 취소 통보와 함께 "정말 좋은 오빠인줄은 알겠고 호감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못 만나겠다"는 말을 듣기 전까지는 말야.


사건의 배후에는 그 아이의 과 선배들, 그 중에서도 업바랑 동년배인 예비역 놈들이 있었어. 그 다음날 그 아이가 속한 과의 학회실 컴퓨터에 업바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배경화면으로 설정되었대. 사진 중앙에는 '민정이한테 작업친 놈ㅋㅋㅋ'이라는 저렴한 카피가 수놓아져 있었다고 하더라. 이 이야기는 사건으로부터 약 1년 후 민정이의 과 선배, 그러니까 업바와 친분이 있던 친구가 술자리에서 해 줬지. 담담히 "그런 일이 있었군, 지난 이야기이니 관계없어^^" 라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면 얼마나 멋있었을까. 전후사정에 대해 들었던 시점에 이미 연서복화된 업바는 앞뒤 없이 분개하여 민정이를 웃게 했던 내 모든 역량과 온 우주의 기운을 발휘하고 끌어내어 그 과 예비역들을 전부 박살내겠다고 울부짖었단다. 씨팔.


혜경
민정이와의 짧은 썸이 학기 초 늘상 벌어지는 해프닝이 되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캠퍼스는 새로운 봄을 맞았어. 업바는 다시 단과대 학생회의 한 자리를 차지했어. 나 완죤 권력남인 듯ㅋ 민정과의 일 이후 우리는 우연히 마주쳐도 어색하게 인사만 하는 사이가 됐고, 주변의 CC들이 헤어지는 과정을 관전할 때마다 내 억장이 다 무너지는 듯한 감상이 거듭되자 업바는 대학생활에 대한 스스로의 철칙을 만들고 이를 이행하기로 했어. 그것은 바로 "내 사전에 CC란 업ㅂ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학기 초를 지나, 벚꽃이 흐드러지는 시절을 보내면 대학생활의 꽃인 대동제가 기다리고 있었지. 대동제의 그 첫 밤, 어떻게 하면 학교 측 어용 집단 총학 아이들과 안 마주치고 평화롭게 남은 축제기간을 보낼 수 있을까에 대하여 단과대 계단 앞에 앉아, 맨 정신은 아닌 상태에서 고민 같지 않은 고민을 하던 찰나였어. 새로 생긴 과의 학회장이 딱 봐도 술이 좀 된 여자아이. 그러니까 혜경을 질질 끌며 나에게로 오더라. 아, 학회장 걔도 술이 좀 됐었지. 사실 나도 살짝 그랬고, 우리 모두가 취해있던 순간이었어.

"형, 얘가 학기 초부터 형 좋아했다는데 자꾸 용기가 안 난다고 해서 제가 고백하라고 데려왔어요. 잘 했죠?"
"어… 응?(야 이 미친놈아ㅋㅋ)"
"제가, 옆에 앉혀 드릴 테니까요. 잘 해보셔야 돼요"
"응?(니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르는 것 같다, 고 형은 생각한다….)"


얼떨결에 내 옆에 앉아버린, 새빨간 얼굴은 술 탓인지, 부끄러움 탓인지 모를 신입생 혜경이는 정말 아무 말도 못 하더라. 어색한건 죽는 것만큼 싫어하는 나는 어떻게든 이 상황을 타파해야 했고, 민망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어. 작고 예쁘장하면서 그 때 처음 마주친 혜경에게 호감을 느꼈던 건 사실인데, 당시의 업바는 아직 덜 영근 연서복이었기에 원색적인 선택이나 단타에 쇼부를 보는 방향으로는 마음이 기울지 않더라. 덜 영근 연서복이었던 업바는 대충 세 가지의 길을 염두에 두고 잠시 고민했어.

1. 친한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데려가 즐겁게 술을 마시며 이 어색한 분위기를 타파한다.
2. 조용하고 외진 곳으로 산책을 가서 이야기를 나누며 이 어색한 분위기를 타파한다.
3. 번호를 딴다.

1번을 선택했다면 업바는 시건방지고 시크한 캐릭터를 유지하며 업바가 스스로 세운 철칙을 깨지 않고 대학생활을 마무리 할 수 있었을까. 2번을 선택했다면 초여름의 싱그러움과 함께 시작된 연애담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을까…


- 다음회에 계속-


연서사: 이제 졸업한지도 꽤 되어가는, 이제는 연서복이 되려야 될 수 없는 신세의 사회인.
동물 사료를 팔고 있다. munaeng@gmail.com로 메일 보낼 애긔들은 프로필 사진도 같이 보내주렴 ( ͡°͜ʖ͡°)




(격)월간잉여 16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