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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여논단

그렇게 기레기가 되어간다 (기레기24601호)

1352. 입사하고 4개월 간 내 이름으로 나간 기사 수다. 참 많이도 썼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취재해서 쓴 기사는 절반도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4개월 간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나는 한 인터넷 스포츠·연예 매체에 인턴공채 지원을 냈다. 논술 시험이 없을 정도로 간단한 공채 전형이 눈에 띄었다. 3개월 뒤 평가를 거쳐 정규직 전환 조건이 걸려 있었다. 이렇게 좋은 조건이 있을까 싶었다. 당연히 공채 지원을 냈다. 합격했다.

 


기사 개수의 압박

작년은 스포츠의 해였다. 2월에 소치 동계올림픽이 있었고, 6월에는 브라질 월드컵, 9월에는 인천 아시아게임이 있다. 스포츠 인턴을 뽑은 이유다.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이 회사는 연예부분을 주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연예 부분에서는 5년차 이상 경력 기자도 몇 명 있었다. 반면 스포츠 쪽은 경력 기자가 단 한명도 없었다. 그나마 데스크(부장)이 스포츠를 조금 경험한 적 있었다. 사실 그 때만 해도 어떤 문제의식을 크게 느끼지는 않았다. 회사는 초반 (인턴에게)기자교육을 시켜줄 정도로 의욕적이었고, 우리들은 설 연휴를 반납할 정도로 의욕적이었다. 회사 내 전체적으로 분위기도 좋았다.

 

2월부터 본격적인 기사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기본적으로는 우라까이였다. 우라까이는 우라가에스라는 일본어가 변형된 말이다. 우라가에스는 바꾸다 뒤집다 라는 뜻. 다른 기사를 조금씩 바꾸고 뒤집어서 내 이름을 달고 출고하는 것이다. 이 또한 훈련의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현장에 바로 투입될 수는 없었고, 어디 가서 취재를 해 올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소치 올림픽이 열렸다. 모든 한국 경기의 생방송을 보면서 동시에 처리했다. ‘우라까이가 아니라는 점이 기뻤다. 낮에는 주 해외외신 번역 기사를 작성했다. 국장은 그때부터 인턴들을 향해 하루에 최소 기사 20개를 작성해야 한다고 압박을 주기 시작했다. 오전·저녁·새벽 조로 나누어 로테이션을 돌며 기사를 작성해 불면증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결과물을 보며 뿌듯했다.

 


검색어 대응외부일정 없으면 하루종일 우라까이 + 검색어

모든 문제는 4월에 본격적으로 검색어에 대응하면서 시작됐다. 네티즌의 클릭 수는 광고, 즉 회사 수입과 연결된다. 문제는 타 매체는 검색어 전담팀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정규직 기자를 바라보고 있음에도 하루 종일 검색어의 노예가 됐다. 국장의 압박은 더욱 심해졌다. 어느 순간부터 국장은 좋은 기사를 썼냐고 물어보지 않았다. 국장에게는 몇 개를 썼는지, 조회 수 1만 넘은 기사는 몇 개인지가 중요했다. 심지어는 제목을 좀 자극적으로 지으라고 웃으면서 말하기도 했다. 세월호 침몰 사건 때는 최악이었다. 이 당시 모든 연예 일정은 취소됐다. 그리고 그때부터는 세월호 관련 기사도 작성하게 됐는데, 국장은 세월호라는 단어가 많이 들어간 기사를 쓰라고 지시했다. 사실 언론계의 현실은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바로 앞에서 보고 있자니 말 그대로 ’, ‘충격의 연속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연예 쪽은 기자들이 다시 외부일정 취재를 나가기 시작했다. 국장은 연예 쪽은 가끔 기획기사도 지시했다. 이에 반해 스포츠는 사실상 무방비였다. 국장이 스포츠에 아예 관심 없는 것은 아니다. 다만 추신수, 류현진, 월드컵 정도만 관심을 보였다. 비인기 종목은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조회 수가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현장에 나가질 않으니 기사가 밋밋할 수밖에 없었고, 기사 개수의 압박은 기획기사를 쓸 수 있는 틈을 앗아가 버렸다.

 

데스크는 없고 스포츠부가 드라마를 쓰고

가끔씩 국장은 스포츠팀에도 드라마 리뷰 혹은 드라마 분석 기사를 쓰라고 지시한다. 정말 웃기는 일이지만, 지금까지 드라마 관한 기사를 쓰면서 드라마를 보고 쓴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을 고백한다. 드라마를 보지 않아도 기사를 작성할 수 있다는 사실을 회사를 통해 처음 알았다. 다만 타 매체에서도 이렇게 스포츠와 연예를 동시에 하는 경우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설상가상으로 유일하게 한 명 있던 데스크(부장)는 갑작스럽게 이직했다. 그리고 회사는 당분간 데스크를 뽑을 생각이 없다. 그럼 그 이후는? 상상 그대로다. 기사를 쓴 기자가 직접 기사를 표출한다. 갓 입사한 초짜 오브 더 초짜가 말이다. 데스크가 없으니 내가 기사를 잘 썼는지 못 썼는지 알 길이 없다. 그때 알았다. 회사는 지금 우리에게 퀄리티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제목만 틀리지 않으면 된다는 것을. 내가 입사한 후 5년 이상 경력 차 기자 2명이 이직했다. 이제 1년 이상 경력 기자는 단 한 명밖에 없다.

 

입사 3개월 뒤 나는 정규직이 됐다. 그러나 바뀐 것은 별로 없다. 스포츠부끼리 농담으로 하는 말이 있다. ‘가끔씩 현장에 나가는 알바생이다. 물론 장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웬만해서는 주말과 휴일에는 당직만 없으면 100% 휴식이 보장된다. 남들은 꼬박꼬박 저녁마다 현장에 나갈 때 우린 쉴 수 있다. (?)

 

물론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것은 안다. 그러나 이 예측불허의 상황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없다. 앞으로 회사가 어떤 방식으로 흘러갈지는 모르겠다. 하루하루 불안할 수밖에 없다.



기레기24601 kjlf2005@naver.com

글로 먹고 살고 싶은 닝겐






(격)월간잉여 16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