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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스포츠

인터넷 밈의 흥망성쇠 (최원택)

다음은 내가 잉여들이 잉여력을 마음껏 뿜어내는 공간 잉터넷에서 밈(Meme)을 접하게 된 사연과 그 속성에 대한 나름의 통찰이다.  

 


수년 전에 한 공영 방송국에 5분짜리 패러디 뉴스를 제공하는 회사에서 일했다. 패러디 뉴스 대본을 쓰는 작가들 중 막내작가 였다. 하지만 그 패러디 뉴스가 높으신 분들의 심기를 건드려(궁금하신 분은 KBS '시사투나잇' 패러디 코너, 이달말 폐지키로라는 제목의 2005년 프레시안 기사를 읽어보세요~) 패러디 뉴스 납품일이 끊기게 되었다. 꽤 짭잘한 수입원이었는데 갑자기 그렇게 예상치 않게 일이 끊기니 회사는 다른 프로그램을 제작하여 납품하는 것으로 그 공백을 메꾸려했다. 나는 패러디 뉴스 작가팀과는 별개로 방송국에서 활동해온 작가분들과 함께 이른바 프로그램의 파일럿을 제작하게 됐다. 입사 전까지 인터넷에서 검색질로 잉여력길러온 그래서 검달(검색의 달인)’이라 자처해온 나도 여러 아이템들을 내놓았다. 잉여력 절륜한 일명 춘브라더쓰라는 두 젊은이가 루이스의 노래 중화반점에 맞춰 춤을 추는 코믹한 영상이 유튜브에서 ‘chin2’라는 제목으로 전세계에서 유행하고 있다는 아이템이었다. 일단 춘브라더쓰의 오리지널 영상과 그 둘을 따라하는 세계 각지의 여러 인간군상들의 영상을 보여주니 왕작가언니님이 바로 오케이했다. 구성은 그렇게 오리지널 영상과 패러디 영상들을 보여주고 두 사람을 직접 인터뷰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다. 메일과 전화로 섭외한 결과 두 사람은 군 제대후  <불멸의 이순신> 촬영지인 부안에서 보조출연 즉 수군으로 출연하고 있었다. 야 이거 그림 나오겠다 싶어 촬영담당자와 함께 부안으로 내려가 인터뷰를 땄다. 두 사람에게 세계인들의 패러디 영상을 보여주고 반응을 촬영하여 썩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고 서울로 돌아왔다.  

 


그런데 chin2라는 제목으로 구글을 주유하니 meme이라는 단어가 자주 보였다. 이제는 한국어 위키피디아에도 밈 항목이 있지만 당시 내겐 생소한 개념이어서 영문 위키피디아를 통해 대충 개념을 잡았다. 그리고 영미권에서 밈이라고 분류한 여러 인터넷 영상이나 이미지를 보고 확실히 깨달았다. “이거 디시인사이드의 필수요소잖아!” 디시인사이드 엽기갤러리에서 시작해서 2008년을 강타한 빠삐놈이나 여전히 여기저기서 인용되는 고자아저씨 심영 같은 것 말이다. 돈 안 되는 일은 곧 쓸데없는 일로 취급되는 이 나라에서 오로지 재미만을 위해 시간과 힘이 남아도는 잉여들이 자신의 잉여력을 바쳐 만든 무언가가 주는 즐거움은 한국 잉여뿐 아니라 해외 잉여들에게도 똑같이 먹혀들어간다는 것을 확인하며 얻은 감동과 함께 나는 밈에 빠져들었다.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ytmnd.com 사이트를 통해 미국의 밈들은 무엇인지 파악하기도 하고, 2008년에는 (이제는 싸이의 강남스타일도 등재된) ‘노우유어밈(knowyourmeme.com)’같은 밈 데이터베이스도 즐겨봤다. 춘브라더쓰 역시 이 곳에 등재되어 있다. (knowyourmeme.com/memes/chin2) 공신력 있는 위키로서는 문제제기를 받고 있지만 밈 부분에서는 리그베다위키(rigvedawiki.net, 구 엔하위키)도 국내외 밈에 대한 상당한 정보를 자랑한다. 리그베다위키의 밈 문서에는 ytmnd.com을 비롯 많은 외국 밈 목록이 정리되어 있다.







 


이런 사이트들에서 밈을 소비하는 것으로 잉여시절을 보내면서 밈들이 잉터넷을 넘어 대중매체에 포착되고 수용되는 과정들을 종종 보게되었다. 빠삐놈 리믹스에 인용되었던 전진이 일명 전삐놈 덕에 <무한도전>에 합류하게 된 것이나 홍진호의 별명 과 숫자2에 대한 밈들이 <SNL 코리아>에서 인용되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런 과정들을 보노라면 "문명은 잉여로부터도 나온다"는 개인적인 가설에 심중이 굳어진다. 후손들에게도 부끄럽지 않을 찬란하고 위대한 무언가를 남기겠다는 의도로 만든 유산만큼이나 시간도 남아돌고 인력도 남아도는데 재밌는 거나 만들어보자는 의도로 만들어져 지금까지 이어진 유산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 결과 예상 밖의 명예와 부를 얻게 된 잉여들도 있고 그렇게 잉여력과 우연이 빚어낸 밈을 억지로 상업적인 용도로 끌어 쓰려다 헛발질 하는 사례들도 있다. 유행이 그렇듯 급기야는 너무 남용되어 본연의 재미를 잃고 지겨워져 자연스럽게 소멸되기도 한다. 문명이 그렇듯 밈 역시 흥망성쇠를 겪는 것이다. 이런 밈의 흥망성쇠를 영미권에서는 이렇게 잉여력을 동원하여 아래의 차트로 정리하였다. 원본 주소는 (cracked.com/article_19240_the-rise-fall-internet-meme-5Bchart5D.html)이다. 순전히 글쓴이의 편의를 위해 의역했고 능력의 한계에 따른 오역도 있으니 감수할 것을 부탁드리며. 혹시 자신의 잉여력을 밈으로 승화하고 싶은 잉여들은 그 밈이 겪게 될 운명을 미리 염두에 두는 것도 좋겠다. 메멘토 모리.

 


 

 

인터넷 밈의 흥망성쇠 (The Rise And Fall Of An Internet Meme)

 

진화의 단계

예를 들어

()

Rise

농담 원본

풍자적이거나 아이러닉하거나 아주 영리하다.

스탠드업 코미디

밈 확산

같은 소재에 대한 새로운 농담들

훌륭한 시트콤 에피소드

영리한 재반복

같은 소재에 대한 똑똑한 비틀기

재치 있는 영화

()

Decline

인터넷에 대량으로 범람

이미 재미있는 농담이 충분하지만 모든 이들이 농담을 만들고 싶어한다.

즉석 집단 난교

농담들의 반복

우리 이거 본 적 있지 않아?

기내식에 무슨 문제 있어?”  

-미국의 스탠드 업 코미디언 제리 사인펠드가 90년대 유행시킨 유행어.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다. 여전히 재미있어하는 이들도 있고 지겨워하는 이들도 있다.

자기 참조형 농담

만약 아이러니가 충분하다면 사람들이 웃긴 한다.

몬티 파이선 인용

-몬티 파이선은 영국의 코미디 그룹으로 여러 전설적인 스케치(꽁트)와 영화 <몬티 파이선과 성배> 등으로 유명하다.

()

Fall

원본 농담의 상실

뉴비들이 지도(=개념없이 참여한다.   

13살 아이가 밥 호프의 농담 말하는 것

-밥 호프(1903~2003)는 미국의 전설적인 코미디언이다.

밈 재반복

아직도 이 밈에서 몇 개의 농담을 끄집어낼 수는  있다.

돈 벌기 위한 영화 속편

다른 밈들과 섞기

이건 마치 농담의 그레이티스트 히트 시디!

쓰레기 시트콤의 리유니온 에피소드

-리유니온 에피소드는 종영된 인기 드라마나 유명 시트콤의 종영 후 특별편. 80년대의 인기드라마 <다이너스티>91년도에 리유니온 특별편이 방송되었다.

실생활에서 사용하기

TV에까지 이 농담이 소개되다니 너무 지나치군.

페이스북에 할머니가 친구 신청하는 것

 

 

 

 

 


, 춘브라더쓰 아이템은 파일럿 제작이 취소되면서 자연스럽게 소멸했다. TV까지 소개될 뻔 했지만 인터넷 밈이 공중파에서 소개되는 것은 아래 차트에 따르면 망에 해당하니 우주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는가 라는 생각을 한다. 혹시 춘브라더쓰 두 분이 이 글을 읽으신다면 당시 인터뷰에 응해준 것에 대한 감사를, 그 수고가 결실을 맺지 못한 것에 대해  사과를 드리고 싶다





춘브라더쓰


 



최원택 crylow@hotmail.com

드라마 잡지 <드라마틱>과 장르소설 잡지 <판타스틱>의 기자를 거쳐 책 만드는 일을 했다.





(격)월간잉여 16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