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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여논단

페이스북이 잘못했나? (김정현)

0. 페이스북에 중독된다고 걱정할 필요 없다. 페이스북을 하는 것은 침팬지가 동료들의 머리털을 골라주는 것과 본질적으로 같은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 글의 끝에서 여러분은 이것이 무슨 뜻인지를 이해하게 될 것이고, 페이스북을 열심히 해야 할 핑계를 찾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당신의 시간낭비를 막아줄 것이라는 뜻은 아니다. 언제나, 페이스북을 하는 것보다는 지금 당장 당신이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 옳다.

 

1. 우리는 깨어 있는 시간 가운데 많은 시간을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에 할애하고 전체 대화의 팔십 퍼센트는 일대일 대화이다. 게다가 이 일대일 대화의 대부분은 아무런 시사성도 없고 생산성도 없는 시시껄렁한 잡담이다. 게다가 각자가 하는 이야길 들어보면 그 가운데 절반은 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이다. 살이 쪘다느니 어디에 놀러가기로 했다느니 며칠 전에 교수가 재수 없게 굴었다든지 하는 상대방과는 별로 상관도 없는 자기 이야기만 떠들어대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시시껄렁한 대화에서 삶의 의미를 찾고 요즘 유행하는 패션을 파악하고 이번에 한 병신짓이 새누리당 몫인지 민주당 몫인지를 확인한다. 인류는바로 침팬지와 갈라져나온 바로 그 시기부터정밀한 음성언어를 사용하면서 생존에 필요한 적응방식의 하나로 그것에 크게 의존해왔는데, 여기에는 세련된 문법이나 새로운 어휘의 개발과 같이 침팬지는 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지만 본질적으로 그것은 침팬지와 인간의 같은 조상이 서로의 털을 골라주는 행위의 연장선상에 있다.

 

2. 침팬지는 서로의 털을 골라주면서, 즉 하나마나한 행위를 통해 상대방에게 시간과 노력을 투여하는 과정을 통해 집단을 유지시켰다. 쉽게 말해 너와 내가 한 집단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과정이 털 고르기였고 이 털 고르기야말로 다른 집단이나 종의 침입에 대항해 함께 싸우게 하는 소속감을 제공하는 가장 중요한 행위로 기능해 왔다. 침팬지 집단에서의 영향력의 크기는 털 고르기에 들이는 시간과 비례한다. 가장 많은 동료들에게, 가장 많은 시간을 들여 털을 고르는 사람은 곧 리더인 것이다.




Rise of the Planet of the Apes , 2011



 

잡담이 침팬지가 털을 고르는 행위와 닮아 있다고 한다면, 이 네 명이라는 숫자는 의미심장하다. 침팬지는 일대일로 털을 고르고, 인간은 최대 네 사람이 모여 잡담을 나눈다. 털 고르기는 손을 써야 하기 때문에 한 명에게만 해 줄 수 있지만, 잡담은 말하는 입과 듣는 귀만 있으면 되기 때문에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동시에 할 수 있다. 물론 여기에도 숫자의 제한은 있다.

 

3. 잡담을 나눌 때 서로가 서로에게 지속적으로 주의를 기울일 수 있는 그룹의 크기는 네 명이다. 다시 말해 다섯 명이나 혹은 그 이상의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면 그룹이 저절로 나눠지게 된다는 뜻이다. 이것은 아마도 인간의 사회적 지능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대화를 나누는 그룹이 커질수록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일대일 관계를 파악하기가 어려워지는데, 이는 분명 그룹 내에서 대화를 나눌 때 큰 영향을 미친다. 두 명 사이에는 일대일 관계가 하나만 존재한다. 세 명일 때는 세 가지 일대일 관계가 존재한다. 네 명일 때는 여섯 개가 존재한다. 다섯 명 사이에는 열 개의 일대일 관계가 존재한다. 따라서 네 명이 대화할 때, 나머지 세 사람과 내가 맺고 있는 세 개의 일대일 관계를 제외하고 세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세 가지의 일대일 관계만 파악하고 있으면 맥락을 좇아갈 수 있다. 그러나 대화에 참여하는 그룹원의 숫자가 다섯 명이 되면 나와 나머지 네 사람의 관계를 제외한 여섯 개의 일대일 관계를 파악해야만 대화를 좇아갈 수 있다. 아마도 이 지점에서 뇌는 피곤함을 느끼는 듯하다. 그래서 다섯 명이 모이면 침묵하는 한 명이 있거나, 세 사람이 떠드는 동안 구석에서 마음이 맞은 두 사람이 조용히 대화를 나누는 것을 흔히 목격하게 된다. 만약 다섯 명이 대화를 나누는 것 같은 상황이 연출된다면, 그것은 분명 연설가적 기질을 가진 사람이 일종의 카리스마로 나머지 네 사람을 압도하는 장면일 것이다. 그것은 대화라기보다는 연극 관람이나 영화 감상에 가깝다.

 

4. 권력과 상징이 동시에 출현했다는 것은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더 정확히는 체계적 권력은 언제나 문자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상징은, 문자는, 음성언어의 가장 큰 한계인 시공을 극복하게 해 준다. 한마디로 집단적인털 고르기를 가능하게 해 준 것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누가 집단적 털 고르기를 할 권한을 얻느냐는 점이다.

 

5. 예컨대 선거는 누가누가 털 고르기를 잘 했는지를 정기적으로 판단하는 자리가 된다. 지난 선거에서 국정원과 국방부는 자신들은 보통 침팬지인 척 열심히 유권자들의 털을 고르려고 했다. 그것이 불법인 것은 명백하지만 실제로 그 털 고르기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쳤는지는 사실 불확실하다.

 

6. 조선일보가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비판하는 기사를 발행했다. 그들은 점점 털을 고를 사람들을 잃어가고 있고, 특히 젊은 사람들은 저희들끼리 털을 고르면서 조선일보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털을 고를 수 있었던 자신들의 영역을 침범한다고 느끼고 있다.

 

7. 분명한 것은 털고르기의 양상과 판세가 뒤바뀌고 있다는 것이며 이는 선거 같은 정치행위에서보다 우리의 일상에서 더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 아들이 이만큼 컸다고 자랑하는 것이나, 어제 먹은 브런치의 메뉴에 대해 떠들어대는 것은 우리가 늘 하는 일이다. 이 모든 것들에 대해 페이스북에 공유하는 우리의 행위는 지난 수십 년 간의 진화의 역사를 되돌아볼 때 아주 정당한 것이다. 우리는 늘 그렇게 살아 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8. 페이스북은 털고르기가 언어라는 매개를 통해 네 명이서 나누는 잡담으로 진화한 이후 가장 획기적인 커뮤니케이션의 변화일 지도 모른다. 우리는 여전히 민주주의인 척하는 과두정 체제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그 전까지 종교경전, 정치체제, 신문, 라디오, 텔레비전 등의 도구를 통해 우리가 원하지도 않는 주제와 이야기들로 우리의 털을 골라온 독재자들에 대항할 조그만 도구가 생긴 것이다. 우리는 이제 그들에게 꺼지라고 말하는 동시에 우리끼리 열심히 털을 골라줄 수 있는 개방적이면서 상호적인 공간을 갖게 된 것이다. 물론 페이스북을 비롯한 SNS와 인터넷 공간이 또 다른 빅브라더의 통제를 받고 있다는 사실 또한 명확해지고 있다. 우리가 기존의 털고르기 체제로부터 탈출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확신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







 

9. 다만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우리가 페이스북에 중독된다는 말은 우리가 잡담에 중독되거나 사회집단에 중독된다는 말처럼 아이러니를 담고 있다는 뜻이다. 컴퓨터를 너무 많이 해서 척추가 휜다거나, 스마트폰을 너무 많이 들여다봐서 눈이 나빠진다는 말은 성립될지 몰라도, 우리가 서로 지나치게 잡담을 많이 해서 뭔가 문제가 생긴다는 것은만약 당신이 대기업의 인사관리 중역이 아니라면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뜻이다.

 

물론 이 글을 읽는 당신이 고3이라면 지금 당장 페이스북을 끄세요

 

김정현 대학생. 글쓰는 잉여. 하라는 졸업은 안 하고 8년 동안 학교를 다니고 있다.

소설과 잡글을 생산하며 인생의 출구전략을 모색 중.

페이스북 : facebook.com/jakga.kim 블로그 : redpine.hol.es





(격)월간잉여 16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