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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내가 독립 선언은 왜 해가지고 (이수영)

스무 살에서 스물 한 살로 바뀌는 그 즈음 겨울이었다. 더 이상 신입생이 아니라는 사실은 생경하기도 했고 어른이 되어 간다는 느낌도 들었다. 나름 어른 테를 내고 싶다는 마음은 갑작스러운 독립 선언으로 이어졌다. 부모님께 말씀 드렸다. 앞으로 나도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벌 테니 이젠 용돈을 보내주지 않으셔도 괜찮다고. 이 선언의 발단은 며칠 전 읽은 기사였다. 다른 나라 대학생들의 경제적 독립을 다룬 기사는 부모님께 용돈 받으며 놀고먹는 대학생인 나의 양심을 콕콕 찌르고 있었다. 경제 = 숫자라고 생각했던 난 아무것도 모른 채 경제적 자립을 시작했다.

 

본격적인 자취생활도 시작되었다. 혼자 하는 자취는 시작부터가 고역이었다. 집을 구하면서 부동산 아저씨의 말을 몇 번이나 되물었다. 내 상식으로썬 말 그대로 코딱지만한 방이 관리비를 포함해 55만 원 정도 일리가 없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방도 성하지 않았다) 기껏 마음에 든 방은 한 달에 80만원 꼴이었다. 말도 되지 않은 가격이라고 혀를 내두르고 있을 때, 다른 학생 하나가 와서 그 자리에서 바로 계약을 마치는 걸 눈으로 보기도 했다. 합리적이면서 좋은 집을 구하기 위해 거의 2주일 동안 보러 다닌 끝에야 겨우 그나마합리적인 가격에 집을 구할 수 있었고, 자취는 뭇사람들의 환상처럼 그렇게 아름다운 게 아님을 깨달아갔다. 아르바이트 월급은 벌어오기 무섭게 게 눈 감추듯 없어졌다. 관리비와 공과금, 생활비와 식비까지. 꼭 샴푸와 화장지는 통장 잔고가 바닥을 보일 때쯤 떨어졌고, 모든 돈을 다 쓴 후엔 어김없이 공과금 고지서가 날아왔다.

 

식비를 줄이기 위해 집에서 직접 요리를 만들어보자 했건만 대형마트에는 가난한 1인 대학생 가구를 위한 상품은 없었다. 심지어 한 번 장을 볼 때마다 계산대에는 5만원이 넘는 금액이 매번 찍혀있었다. 어느 날은 낙지볶음을 만들려고 현금 3만원을 가지고 장을 보러 갔다 다시 집으로 돌아와 더 많은 돈을 챙겨야 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학교에 가까운 집을 구했어도 교통비는 여전했고, 시험을 보거나 고향에 내려가야 하는 등 여러 가지 부수적인 지출은 한번씩 내 목을 졸랐다. 당연히 옷을 사거나 문화생활을 즐길 여유는 줄어만 갔다. 거기다 난 유럽여행 비용까지 마련해야 해서 거의 8개월 동안은 하루도 쉬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했다. 심지어 그렇게 아르바이트를 했는데도 돈이 모자라 부모님께 손을 벌렸다. 거의 여행비용의 절반을 부모님이 대주신 채로 유럽으로 떠났던 난, 그곳에서 정말 우리와는 다른 사람들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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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일 동안 여행을 하며 각국에서 온 사람들과 워크캠프를 함께하기도 하고 카우치서핑(Couch surfing)’을 하며 현지인들을 만나고 호스텔에서 여행자들을 만나는 등 계속해서 사람들과 함께하는 여행을 했다. 특히 워크캠프에서는 꽤 오랜 시간을 팀원들과 함께 지내기도 했었다.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고, 보통 만나면 오랜 시간을 함께 했기 때문에 다양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워크캠프에서 일하러 가는 중






프랑스의 마르세유에서도 노르웨이와 호주 친구를 만나 밥을 함께 먹던 참이었다. 호주 친구 미카엘라가 내게 물었다.





 

마르세유에서 만난 두 친구

 

 



너도 네가 직접 벌어서 여행 다니는 거야?”. 일 진짜 많이 해서 돈을 모았지.”

나도 마찬가지야, 여행 하려고 풀타임 알바를 했다니까? 정말 힘들어 죽는 지 알았어.”나돈데! 너 학교 다닌다고 하지 않았어? 휴학하고 풀타임 알바를 한거야?”

아니, 학교 다니지! 주말에만 7-8시간씩 아르바이트를 했어.”

그럼 용돈은? 부모님께 용돈 받아?”

아니, 기숙사비까지 내가 다 벌어야지. 22살이잖아.”

 

 

유럽에서 만났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모님에게 원조를 받지 않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호주에서 태어났지만 영국으로 교환학생을 온 미카엘라는 학기 중에 주말 풀타임 아르바이트를 해 자신의 생활비와 여행 자금까지 마련할 수 있었다. 주말 풀타임 아르바이트도 길어야 8시간, 주당 16시간 정도였다. 거기다가 미카엘라는 주말을 온전히 쉬는 데 쓰지 못했다며 학기 시작 전까지 두 달 동안 푹 쉬며 여행 할 것이라 말했다. 여유 자금이 많이 남아 마음 가는 데로 여행하고 있다는 말까지 덧붙이며. 나와는 너무 달랐다. 아니 우리나라의 대학생들의 상황과도 많이 달랐다. 장기 유럽 여행을 가기 위해서 한 학기를 휴학하고 여행 자금을 모으는 친구들도 많이 봤었다. 나도 마찬가지로 학교를 다니면서 일주일 내내 아르바이트를 했어도 모을 수 있는 돈에는 한계가 있었고, 집세 같은 경우에는 너무 부담스러워 결국 부모님께 손을 벌려야 했다. 내가 한국에서 주당 50-60시간을 일할 때, 미카엘라는 주당 16시간 정도를 일하면서 자신의 기숙사비와 용돈, 여행자금 등 모든 돈을 마련할 수 있었다.

 

또한 덴마크에서 워킹홀리데이를 했다던 언니의 말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언니는 하루에 4시간씩 일주일에 세 번, 한 주에 12시간을 일을 하면서 집세와 생활비, 여행비용을 모두 마련했다고 말했다.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나는 과외와 함께 아르바이트를 병행해서 상대적으로 덜 힘들었고, 휴학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온전히 파트타임 아르바이트를 한다면 두 달 동안의 여행자금(800만원)을 모으기 위해선 1500시간에 가깝게 일을 해야 한다. 시급 5500원을 받는다고 쳤을 때 하루에 8시간씩, 휴일 없이 6개월을 꼬박 일해야 한다는 뜻이다. , 물론 이 수치에는 다른 용돈 같은 사항은 포함되지 않았다.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대학생들이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는 시간은 굉장히 제한적이어서 미카엘라나 덴마크에서 워홀을 했던 언니처럼 자신의 생활비용과 여행 자금을 모두 부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해도 생활비용을 마련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아르바이트의 시급이 터무니 없이 낮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처지에 놓여있는 학생들을 위해 한국장학재단 등의 단체에서는 생활비 대출이라는 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금액에 제한이 있고, 정해진 기간에만 신청 가능하다. 또한 절차가 복잡하거나 조건을 충족시키기가 꽤 어려워 이용을 할 수 없는 사례도 존재한다. 그래서 조건이 없고 고금리인 대부업체의 소액대출을 이용하는 대학생의 비율이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 나도 여행을 준비하며 역시 생활비 대출을 이용하려 했지만 조건이 맞지 않아 이용을 하지 못했고, 빠듯하게 한 학기를 보내야 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오스트리아에서 만난 독일 친구 카를로에게 이야기 하던 중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돈을 아끼느라 보고 싶던 전시회를 못 갔다고? 너 너무 불쌍해.”

그러게 말야, 카를로 너도 여행비용을 모으느라 힘들지 않았어?”

그렇지, 근데 부모님도 조금 지원해 주셨고 바푁을 받고 있기 때문에 괜찮아.”

바푁? 그게 뭔데? 장학금 말하는 거야?”

, 일종의 장학금이라면 장학금이지. 너희도 있을걸? 정부가 학생들을 위해서 주는 보조금 같은 거 말이야! 독일어로는 바푁이라 그래.”

 



카를로의 설명에 따르면 독일 학생들은 "바푁(BAföG)"이란 생활비 보조금 개념의 돈을 정부로부터 받을 수 있다고 한다. 또한 바푁을 제외하고도 여러 제도들이 마련되어 있어 무려 87%의 학생들이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지원받고 있었다. 그리고 이에 대해 부모의 소득도 고려되지만 전반적으로 학생의 경제적 상태에 대한 고려가 우선된다고도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독일에서 공부 하는 학생들은 아르바이트를 조금만 하거나 아예 하지 않고도 생활을 꾸려 나갈 수 있으며 보다 더 학업에 집중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또한 기숙사가 잘 되어 있어 거주지에 대한 고민도 거의 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혼자 살고 있는 날 부러워하긴 했지만 좋은 시설에서 싼 가격에 머물 수 있다며 흡족해 했다. 독일과 다르게 우리나라는 2014년 현재 수도권 지역 대학들의 기숙사 수용률이 17%에 그쳤다. 그 말은 수도권에 거주하지 않는 다수의 학생들은 자신이 살 집을 구해야 한다는 뜻이다. 수도권 지역의 월세는 보통 4-50만원 선에서 책정되어 있는데, 직장인에게도 물론이지만 대학생에게도 특히 부담스러운 돈이다. 다른 나라는 어떨까. 물론 다른 나라의 집세도 높은 편이다. 하지만 집세를 내기 어려운 형편을 가진 사람들(특히 학생들)을 위해 다양한 대비책이 준비되어 있다. 예를 들면 프랑스에서는 알로까시옹이라는 제도가 마련되어있다. 알로까시옹은 주택 보조금의 개념인데, 알로까시옹을 받으면 한 달 15만원 선에서 집세를 해결 가능하다. 그리고 자국민뿐만 아니라 외국인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어 활발히 이용되고 있다. 프랑스로 유학을 간 지인들도, 프랑스인이 월등하게 많았던 워크캠프에서도 절반이 넘는 사람들이 알로까시옹 제도를 이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밖의 많은 나라에서 학생들을 위한 지원 제도가 탄탄하게 마련되어 있고, 정비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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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는 학생이라는 신분으로 누릴 수 있는 혜택이 정말 많았다. 뮤지컬이나 공연을 절반 가격에 가까운 가격으로 볼 수 있는 기회는 물론이고, 박물관이나 미술관도 무료로 이용할 수 있었다. 기차표나 버스 등도 할인 받을 수 있었고,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도 호의를 받을 수 있었다. 유럽에서는 대학생도, 혹은 나이가 어린 대학원생도 ‘Youth’라는 범위에 묶여있었다. (보통 Youth의 범위는 26세까지이다.) 종종 나보다 나이가 많았던 백팩커들은 학생이라는 신분을 무척이나 부러워했다. 그 신분을 마음껏 누려야 한다고도 몇 번이나 강조하고 떠났던 노르웨이 친구도 있었다. 여행 내내 단지 학생이라는 이유만으로 우대를 받으면서, 우리나라에서는 어디까지가 과연 학생인지에 대해 궁금해졌다. 대학생도 학생의 범위 안에 속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에서 학생 할인은 고등학생까지만 적용되고 있다. 또한 공부를 하기 위해 학자금 대출을 마다하지 않고, 이미 사회생활을 시작하기 전부터 마이너스 통장부터 시작하는 우리의 모습 등은 우리가 정말 학생일까 라는 의문을 들게 한다. 유럽의 대학생 잡지와 우리나라의 학생 잡지의 설문조사는 물음은 꽤 다른 부분이 많다. 우리나라의 잡지에서는 학자금은 어디서 충당하는가?’ 따위의 물음이 빈번하게 등장하는데 반해 유럽의 잡지에서는 한 달에 어떤 사치를 하는가?’ 혹은 문화생활 등을 묻는 설문조사가 훨씬 많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생각하는 학생의 덕목은 다채로운 경험과 문화생활이라는 것임을 다시 한 번 증명하는 일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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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으로 경제적 자립이란, 자립을 하는 대상이 경제 활동을 원만히 할 수 있다는 전제 조건이 마련되어야 한다. 그리고 물론 대학생에게 경제적 자립은 의무가 아닌 선택이다. 그렇지만 용돈 받는 대학생이라 했을 때, 도끼눈으로 바라보지 않을 시선이 몇 이나 있겠는가. 사실. “내가 용돈 벌어.”라고 말하는 사람이 조금 쿨해보이기도 하다. 하지만 대학생들의 경제적 자립은 아직까지는 로망으로만 존재 가능하다. 한국 사회 안에서는 원론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등록금 문제는 제외하고서라도 우리가 벌 수 있는 돈과 써야만 하는 돈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고, 그 간극을 좁힐 수 있는 방법 역시 없다. 변명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이번 달에도 부모님으로부터 내게 상당한 액수가 송금되었다. 난 어렸을 적의 괜한 호기가 죄송스러워 부모님께 제대로 고맙다는 말도 하지 못했다. 차라리 그 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더라면, 하는 생각도 종종 든다. 괜히 마음이 헛헛해질 땐 서울 물가가 너무 비싸다며 볼 멘 변명을 늘어놓을 뿐이다. 프랑스어로 탕기(Tanguy)’라는 속어가 있다. 어른이 되어서도 부모님의 원조를 받는 사람을 일컫는 말인데, 서울로 올라오면서 내 꿈은 탕기가 되지 않는 것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난 탕기로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이런 삶이 언제까지 계속될 지도 확신 할 수 없는 상태이다. 탕기가 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은 여전히 공과금 지로용지와 각종 요금들에 무너지고 말기 때문이다. 아기들이 자립(自立), 스스로 일어서기 위해선 몇 만 번을 넘어지고 다시 일어서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경제적 자립도 수많은 실패가 있어야 이뤄질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 대학생들에겐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조차 과연 남아 있을까 의문이 든다. 당장 월세나 관리비가 밀리면 우리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게 사실이므로. 언젠간 부모님께 그 불편한 용돈을 그만 받을 수 있겠지, 그리고 그 시절이 조금 빨리 오길 희망하며, 오늘도 난 통장 잔고를 확인하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여행하면서 만나서 친해진 사람들의 좌우명





이수영 seeknouveaute@hanmail.net

좋아하는 것. 웹툰에 별점을 줄 때 10점으로 바뀌는 순간,

찡하고 울리는 글귀들, 계절의 초입 냄새, 웨스 앤더슨, 막걸리, 갑자기 혼자 떠나는 여행.




(격)월간잉여 17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