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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터뷰

세월호 이후의 시민 활동 - <희망제작소> 연구원 송하진

시민단체 <희망제작소>에서 일하고 계시다. 어떤 계기로 이 일을 하게 됐나?

당시 아는 선배가 (희망제장소 출신의) 박원순 시장 선거 캠프에 들어갔다. 희망제작소에 일하던 선배였다. 그 때 선배의 빈자리를 메운다는 생각으로 들어갔다. 3개월 정도 일하고 그만 둘 줄 알았는데 아직까지 일하게 됐다.

 






첫 업무는 무엇이었나?

수원시민창안대회를 담당했다. 시민들의 아이디어를 내면 그것을 시민 스스로 행동할 수 있게 도와드리는 역할이었다. 마을 만들려는 사람들, 지역 홍보하려는 대학생들을 지원했다. 그때 정말 시민이라는 주체를 만났다. 감동했고, 이 일을 더 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말 그대로 더 좋은 사회를 만들려고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는 분들이었다. 일 자체가 재밌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도 좋았다.


<희망제작소>에서 주관한 행사 노란테이블의 담당 연구원이셨다.

노란테이블은 시민들을 모아 안전한 한국사회에 대해 토론을 진행한 프로젝트였다. 처음에는 문제를 발견하고, 그 뒤로는 대안을 발견하며 진행됐다.

내부에서 토론회를 두고 논란이 있었다. ‘희망제작소에서 오랜 시간 동안 지역 이슈에 집중했고, 국가 이슈에 대한 얘기를 냈던 것은 오래 전 일이었다. ‘노란테이블이 우리가 잘 할 수 있는 일일까? 잘 할 수 있는 일일까? 그동안 했던 일들의 연장선에 있는가? 준비하면서도 이게 이 세상에 어떤 도움이 될까? 의문은 끊이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세월호 이후에 희망제작소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이 깊었고, 디자이너 분이 많이 도와주셔서 작년 718일에 300인 토론회를 열 수 있었다. 참여자들이 그 과정에서 작은 희망을 가져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 심경은 복잡했다. 사람들이 무언가를 가슴에 새기고 집에 들어가지만 이것이 계속될까? 잊어버리고 각자의 삶을 사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이 활동을 얼마나 지속해서 가져갈까. 그날 그런 생각을 하며 주변을 두 시간 동안 계속 걸었다.

 

토론 때 나왔던 대안으로 무릎을 탁 치셨던 것이 있는가?

그런 것 없다. 두 시간 남짓한 짧은 시간에 무릎을 탁 칠 대안이 나오기란 쉽지 않았다. 토론회가 나의 요구’, ‘나의 약속을 쓰는 걸로 귀결되는데, 정말 자기가 지켜야 할 것이라고 하니까 갑자기 확 축소되는 지점이 있었다. 예를 들어, 갑자기 교통 신호를 잘 지키겠다”, “안전규약을 지키겠다와 같은 도덕책 답안이 나오는 것이다.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에 대해 생각 않고 즉자적인 해결책만 투입을 하면서 임기응변식으로 대응했던 것 때문에로 세월호 참사가 벌어졌다. 토론회의 귀결은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에 대한 의견으로 뻗어나갔어야 했는데 그렇게 되지 못했다. 토론툴킷을 버전2를 낸다면, 툴킷을 대안이나 결론을 내기 보다는 담론을 확장하는 도구로 사용하게끔 개량하고 싶다.

 

홈페이지(makehope.org)를 통해 노란테이블에서 활용했던 토론 툴킷(tool kit)을 판매 · 배포했다.

여러 자리에서 우리사회 전반적인 안전의 문제들을 얘기하는 계기를 가졌으면 하는 마음에 판매 · 배포했다. 툴킷의 특징은 이야기를 시각화하는 것이다. 시각화된 자료 없이 얘기 하다보면 토론의 주도권이 진행자에게 가는 느낌을 받게 된다. 참가자들도 진행자와 같은 지각을 갖기를 바라서 생각의 지도를 그릴 수 있기를 바라며 토론 툴킷을 제작했다. 처음에는 사각형 카드로 만들었다가 카탄이라는 보드게임을 알게 됐다. 영토를 넓히는 게임인데 거기 등장하는 카드가 육각형이다. 거기서 영감을 얻어서 토론 카드도 육각형으로 제작했다. 영토를 넓히듯 생각의 지평을 넓히길 바라며.


 

 


토론키트 구성품 중 하나인 문제 발견 카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토론 툴킷을 활용했을까?

원소스는 홈페이지에 공개했고, 1000세트는 인쇄해 제작했다. 많은 분들이 찾아주셔서 900세트정도가 소진됐다. 세월호 1주기 때 특히 찾는 분이 많았다. 사실 시민단체에서 많이 활용할 거라 예상했는데 의외로 중고등학교 선생님들이 많이 찾았다.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토론에 대한 피드백을 받고 있다. 보람을 느낀다. 카드에 여러 단어가 있는데 그 중 희망이라는 단어가 있다. 이런 도덕책스러운단어를 실생활에 쓸 일이 없는데 토론회를 통해 그것을 입 밖으로 말할 수 있었고, 그것을 말하는 경험은 새로운 뭔가를 얻게 했다는 후기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세월호 이후 시민사회에서 세월호를 잊지 마세요라는 구호를 많이들 외쳤다, 나도 당연히 세월호를 잊지 말아야한다고 생각하지만, 아직까지 이런 구호만을 외치며 서명 받는 것이 불편하다. 그런 구호를 반복하며 사람들의 죄책감을 지속적으로 자극하면 오히려 반감을 사지 않을까 걱정도 되고, 거기에 서명 하면 어떤 효력이 있을지도 의심스럽다. 물론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시민단체에서 좀 더 전략적으로 행동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청소년 00 실험실이란 프로젝트의 참가하는 한 친구가 학교 가는 시간 빼고는 계속 광장에서 지내고 있다. 유가족은 아니다. 세월호 사건이 그 친구에게 큰 충격을 준 것 같다. 그래서 프로젝트에 참여할 때마다 기성의 시민단체 간사들의 언어로 세월호 관련 이야기를 한다. 나도 그것을 보며 조금 우려했다. 듣는 이들의 냉담한 반응에 그 학생이 상처라도 입을까봐. 하지만 거기 있던 청소년들은 그 아픔을 같이 느끼고 공감하고 눈물 흘렸다. 거기 모인 다른 청소년 친구들은 어른들보다 그 사건에 더 깊이 공감했고 그 사건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는 것 같다. 그걸 보고 기억하자고 말하는 구호가 소용없는 것은 아닐 것이라 느꼈다.


개인적으로는 시민단체에서 세월호를 기억하고, 00을 하자라고, 좀 더 명확하게 행동을 유도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많은 시민들이 세월호 사건과 관련해 뭐라도 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뭐라도가 실효성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질 테고. 나 역시 그 응축된 것을 어떻게 세상에 풀 수 있을까 고민이다. 장기적인 미션으로 삼게 된다. 세월호로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계속 관통하는 한국사회의 문제점에 대해 겨냥하고 싶다.

 

정치에 참여하고 싶어도 일반 시민들의 목소리가 국가 운영에 반영 되지 않는 구조다. 던진 표의 상당수가 사표가 되는 선거 제도 역시 문제라고 생각한다. 구조의 변화도 필요할 것 같다.

희망제작소는 정치와 관련해 두 차원의 접근을 하고 있다. 시민의 목소리를 모으고 거기서 시민들이 이야기하는 좋은 정치인의 덕목이나 내용을 가지고 성명, 언론 배포 등으로 여론화하고 압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좋은 국회의원을 찾습니다이다. 시민 100분을 모시고 세미나와 토론회를 열 것이다.

다른 차원의 문제는 일상에서의 민주화. 원래는 좋은 동대표 운동도 하려 했다(웃음). 그런데 그게 동네의 갈등을 더 심화시키는 기제가 되지 않을까 걱정됐다. 동대표는 국회의원과 달리 계속 일상에서 맞부딪히는 존재다. 좋은 동대표를 뽑는다는 명목으로 동대표들에 대해 씹고 뜯고 맛보면 그 이후에 어색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일상에서의 민주화를 위해 마을 공동체의 민주적 소통을 북돋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작은 도서관 프로젝트. 현행법상 500세대 이상 아파트는 작은 도서관이 있어야 한다. 이 작은 도서관이 공동체 소통의 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입주자 대표대회를 통해서 도서관 예산을 받게 되어 있는데, 자기가 도서관을 안 가니까 관리비에서 도서관 예산이 빠지는 것을 아까워하는 사람이 있다. 그래서 일부 입주자 대표회의에서 일방적인 통보로 (도서관) 대표를 교체하려고 한다든지, 돈을 끊어버리려고 하는 일들이 벌어진다. 아파트라는 작은 공간 안에서도 정치적인 알력이 있는 것이다. ‘희망제작소는 직접 소통의 중재자로 나서지는 않지만 같이 그런 고민을 나누며 도움이 되는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진행한다.


최초로 사회 문제를 자각한 계기는 무엇이었나?

최초의 기억이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몇 가지 강렬한 기억은 있다. 대학교 때 네팔에서 5개월 정도 살았다. 지인이 네팔의 어린이 노동자를 위한 단체에서 일하고 있어서 지인을 볼 겸 갔다. 당시가 2006년이었는데, 네팔에서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다. 계엄 상태라 거기 갇혀 두세 달씩 있게 됐다. 꽤 강렬한 기억이다. 당시에 우리나라도 그런 것이 필요한 게 아닐까 생각했다.

대학 졸업 뒤에는 공군장교로 3년 복무했다. 그 뒤 3개월간 여행을 했다. 독일, 영국, 스페인,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네팔, 인도네시아 등. 팔레스타인에 가기 위해서는 이스라엘을 통과해야 했는데, 남자 둘이 이스라엘로 가서 그런지 엄청 질문 공세를 받았다. 알몸 수색을 했고 별도의 방에 데리고 가서 짐 수색을 했다. 이스라엘이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사회구나 싶었고, 그런 사회에서 인권이 지켜지기 어렵겠구나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우리 사회를 떠올렸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굉장히 관념적이었다. 그 때의 나를 생각하니 좀 부끄럽다. 그때 사귄 여자친구의 소비에 대해 자본주의와 노동의 현실을 말하며 일장연설하기도 했다. 심지어 내게 선물을 사줬는데도 쓸데없는 소비 했다고 무안 줬다. 이 일을 하면서 좀 더 구체적이면서 유연해졌다고 생각한다. 이론적인 토대는 있어야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실용적이어야 한다는 쪽이다.

 

메갈리아도 일종의 시민운동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메갈리아에 대한 생각이 궁금하다.

사실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는 안 해서 잘 모른다. 포털(다음)로 뉴스 보고, 음지에서 블로그 활동을 한다. 페이스북은 그만뒀다. 그래서 깊게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메갈리아도 담론활동이라고 생각한다. 방식적인 부분은 절박함 때문일 거라 생각한다. 무기가 없기 때문에 강한 표현을 하는 거라 생각하고, 절박함을 가진 사람들의 표현은 존중받아야 한다고 본다. 세월호 유족분들의 목소리도 마찬가지로 생각하고. 절박한 사람들은 예의를 차릴 여유가 없다. 성숙한 사회는 그런 불편을 감수해야한다고 본다.

 

이번 잡지의 테마가 흑역사. 송하진 씨의 흑역사는 무엇이었는지 궁금하다.

네팔에서 만난 동성의 한국인과 일주일간 여행을 같이했다. 어느 날 밤, 그가 나를 만지는 느낌을 받았다. 성추행이었다. 성추행을 당한 게 흑역사가 아니라, 내가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게 흑역사다. “그래, 이해해.” 뭐 이런 식으로 대화를 시도했더니 그걸 오해했다. 내가 이해해주니까 사실 너도 그걸 원했던 것 아냐?’ 라는 식으로. 당시에는 그것을 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는데 그것이 오만이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나의 경험으로 누군가를 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부분들. 상대는 문제가 있고 나는 문제가 없다는 위치설정을 통한 포용과 이해. 오만하기도 하고, 위험하기도 하다.

요즘에 나이가 들면서 나이가 적거나 경력이 적은 사람 앞에서 말을 적게 하자이런 생각이 들고 있다. ‘중년병에 대한 경계다. 예전보다 말이 많아지고 있다는 자각이 든다. ‘내가 뭔데라는 생각, 내가 이 얘기를 하는 이유를 잊지 않으려고 한다. 나이가 많다는 것을 앞세우지 않고 동등한 상황에서의 상호토론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흑역사를 늘리는 거겠지.

 

앞으로의 계획은?

서울시 사회투자기금 제도를 활용한 협동주택에 입주할 예정이다. 남가좌동에 함께 사는 협동주택이라는 곳인데 지금 건축 중이다. 일단 각자 출자금으로 천만 원을 내고 매달 빌린 돈의 이자를 내는 식이다. 서울시 사회투자기금 제도를 활용하면 이자는 분양가의 2퍼센트라 부담이 적은 편이다. 가족을 염두에 놓은 협동주택이라 1인 가구인 내가 가는 것은 조금 이질적이긴 한데, 마을 공동체에 대한 고민을 해오던 터라 협동주택에서 살아보고 싶었다. 말과 삶의 간극을 줄이려는 시도다. 지금은 부모님과 함께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마지막으로 <월간잉여>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은?

항상 스스로 잉여라고 생각하며 활동하는 사람들의 힘을 믿어왔다. 덕후도 잉여와 비슷한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올해 초에 기획했던 것 하나가 덕후들의 능력을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프로젝트였다. 킥스타터를 패러디해서 긱스타터라 명명했는데, 긱한 사람들이 공격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세상도 이를 이해하는 프로젝트다. 사실 아주 기초적인 아이디어만 있고 구체적인 생각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덕후도 그렇고, 잉여도 그렇고 이미 세상의 주류인데 주류대접을 못 받는 것이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1인가구도 마찬가지다. 이미 서울시 전체 가구 중 1인 가구 30%에 육박한다. 그러나 아직도 이들을 위한 정책이나 사회적 고민이 부족한 현상이다. 수적으로는 이미 다수인데 소수자 대접을 받는 역설에 관심이 많다.

세상은 불안을 해결해주지 않고 그것을 이용한다. 항구적인 평화나 우리 사회 안정과 안녕에 대해 지도층은 원치 않지만, 시민들은 그걸 계속 얘기해야 한다. 사람들이 팩트주의에 매몰돼 있는데, 정보도 중요하지만 스토리나 감정도 중요하다. 결국에는 세상을 바꾼다는 게 대단한 사실이나 팩트가 아니라 감정과 에너지 보이지 않는 가치추구인 것 같다. 시민들이 그런 이야기를 계속 해나가길 바란다




(격)월간잉여 18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