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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기고] 한 현직기자가 네팔의 잉여를 보고_글 이현탁



세계의 잉여 문화에 대해 써야할 것 같았다. 직업이 기자, 그것도 국제부 기자인데 세계의 잉여들을 탐방하지 않을쏘냐!!! 출장 건이 들어온 네팔로 떠났다. 본래는 다른 취재 일정이 잔뜩 있지만, 한 번 월간 잉여의 지면에 실린 재미를 맛 본 필자, 네팔의 잉여들을 찾느라 눈알이 반들반들 거린다.






네팔은 두 말 할 필요 없이, 잉여들의 천국이다. 일단 실업률이 엄청나다. 체감 실업률 이런 수치 들여다 볼 필요도 없다. 그냥 일자리 자체가 없다. 수출은커녕 제조업 기반도 없다. 대부분이 수입이다. 국민들은 그저 에베레스트만 본다. 관광이나 트레킹으로 돈을 버는 사람은 인구의 1%도 안 된다. 그래도 그저 에베레스트만 본다. 술 이름도 에베레스트, 호텔 이름도 에베레스트다. 그럼 뭐하나. 인구의 절반이 하루 1달러 이하로 연명하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얼굴을 돌리면, 수많은 특급호텔이 있다. 필자가 가본 곳 중에는 태국에서 매일 해산물을 공수해 스시를 만들어주는 일본계 호텔도 있었다. 분명히 네팔 사람도 꽤 온다. 엄청난 빈부격차가 외국인을 압도한다. 일부 수입품은 한국보다 비싸다. 치약 하나에 3500원 수준이다. 여기는 뉴욕인가 카트만두인가.
그나마 행세 좀 하는 사람들은 정부, 군 등에 일하는 공무원들(후진국에서는 항상 공무원이 갑이다. 이런 점에서는 아직 우리나라도 후진국인 것이다), 외국계 기업이나 외국대사관에서 일하는 사람 정도다.
이 때문에 대다수 히말라야의 젊은 잉여들은 그저 외국만 바라본다. 해외 취업을 해서 돈을 벌어오는 것이 정말 유일한 대안이다. 오죽하면 해외송출국이 주요 정부부처일까. 그 중에서도 한국은 인기가 좋다. 한국에서 노동자 하려면 필요한 한국어 능력시험을 보기 위해 매년 수천 곳의 학원이 난립했다가 사라지고는 할 정도다. 제대로 임금 주고, 기술 배울 수 있는 유일한 나라라고 한다. 대한민국, 이런 점은 자랑스러워 해도 된다. 으쓱. 한국에서 ‘껌 좀 씹다’ 오신 네팔 형님들은 하나같이 한국인의 근면성을 칭찬한다. 그리고는 네팔의 문화를 비난한다. 이럴 때는 한국 사람들이 ‘혹사’시키는 패러다임을 네팔에 옮기는거 아닌가 하는 두려움도 있다. 어쩌겠나, 이게 자본주의인걸.

가끔씩 한국 사람들 중에 일부는 이렇게 말한다. 네팔이 가난하지만 행복한 나라라고. 힌두교 문화 때문에 내세를 기원하는 사람이 많고, 현세의 돈에 집착을 안한다고 한다. 그래서 근면하지 않다나. 미안하지만 철저히 선진국 위주의 시각이다. 이 나라에서 좀 배웠다는 사람들 중에는 그런 말 하면 기겁하는 사람 많다. 네팔 사람들도 돈 많이 벌고 싶단다. 그게 솔직한 심정이지. 어떤 사람들은 네팔인들이 가난해도 집도 있고, 먹을 것도 있어서 그리 불행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정말 그럴까. 그러면 왜 대학교수 하다가 한국에 와서 막노동 뛰는 걸까. 네팔 사람도 돈 많이 벌고 싶은데, 해먹을 게 없다고 보면 대충 맞겠다.

그렇다면 네팔의 잉여란 어떤 사람들일까. 학교 졸업하고 멍하니 있는 사람이라고 정의하면 될까. 사실 2차례 밖에 되지 않는 일천한 경험으로 정의를 하기는 어렵다. 근데 괜찮은 사례가 있다. 20대 초반의 젊은 여성인데. 2년전에 분명 한국어 시험 통과해서 한국 오겠다, 엄마 아빠 한국 화이팅 이러더니, 얼마 전 가보니 시집갔다. 이 가난한 농촌국가에서도 농촌 지역에 ‘취집’한거다. 대충 감 올라나. 뭘 해보려고 해도 해볼 기회가 전혀 없는 것, 그것이 네팔의 잉여다. 그거 보면 한국의 잉여들은 그래도 행복할거다. 사다리를 치우든, 유리 천장이 있든, 옆에서 편법 쓰는 놈이 있든 간에 어쨌든 기회라는 게 있지 않나. 잡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월간 잉여>에 기고한 글이 “행복한 줄 알고 빡세게 구직해”라는 주제로 끝난다니 어째 죄스러움을 느낀다. 미안하다...



※ 월간잉여 3월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