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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림에서 강남 가는 지옥철 안에서 (김잡초) 올 가을 제주도에 다녀왔다. 거기서는 모든 게 좋았다. 서울 와서야 그 이유를 알았다. 서울은 여백이 없다. 하늘도, 거리도, 그리고 지하철도 모든 공간이 빽빽하다. 사무실을 포함, 어딜 가도 바쁘고 우글우글 미어터지는 사람들이 내 귀에 대고 이렇게 속삭이는 것만 같다. “자네가 지금 여기에 있어야 하는 존재의 이유를 증명해 보게. 그럼 잠깐이라도 자리를 내 주지.” 제주도에서는 바람이든 바다든 내게 방문의 이유를 묻지 않았는데…. 그래서였을까. 휴가를 마치고 출근하는 날 아침, 신림에서 강남 가는 지하철 2호선 출근길 구간에서 나는 문득 서러워졌다. 출근 첫날. 지하철 한 대를 그냥 보냈다. 무서웠다. 까만 머리들로 바퀴벌레처럼 가득 찬 사람들 사이로 끼어들 엄두가 나지 않았다.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어.. 더보기
내가 독립 선언은 왜 해가지고 (이수영) 스무 살에서 스물 한 살로 바뀌는 그 즈음 겨울이었다. 더 이상 신입생이 아니라는 사실은 생경하기도 했고 어른이 되어 간다는 느낌도 들었다. 나름 어른 테를 내고 싶다는 마음은 갑작스러운 독립 선언으로 이어졌다. 부모님께 말씀 드렸다. 앞으로 나도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벌 테니 이젠 용돈을 보내주지 않으셔도 괜찮다고. 이 선언의 발단은 며칠 전 읽은 기사였다. 다른 나라 대학생들의 경제적 독립을 다룬 기사는 부모님께 용돈 받으며 놀고먹는 대학생인 나의 양심을 콕콕 찌르고 있었다. 경제 = 숫자라고 생각했던 난 아무것도 모른 채 경제적 자립을 시작했다. 본격적인 자취생활도 시작되었다. 혼자 하는 자취는 시작부터가 고역이었다. 집을 구하면서 부동산 아저씨의 말을 몇 번이나 되물었다. 내 상식으로썬 말 .. 더보기
실손보험에 들지 않기로 결심했다(김잡초) ‘잉여 총량의 법칙’이 있기는 있는가 보다. 남매 잉여가 기적적으로 취업한 지 세 달째, 엄마가 기다렸단 듯이 잉여 타이틀을 물려받았다. 엄마는 이제 아프다. 삼류 드라마 욕하지 않기로 함설 마지막 날 새벽, 우리는 응급실에 있었다. 엄마는 머리가 어지럽다 했다. 몸이 얼음장 같이 차가웠다. 응급실 의사는 단순한 저혈압이라 했다. 문제는 그 다음날이었다. 엄마가 다니고 있던 회사에 처방전을 제출하기 위해 병원을 다시 찾았더니, 의사가 심각한 병명을 이야기했다. 10만 명 중에 1명이 걸리는 희귀질환이란다. 원인도 모르고 약도 없는데다가 발병하면 급속도로 증상이 악화된다고 했다. 그다음은 글로 옮기기도 싫다. 정밀 검사를 받아봐야 알겠지만 CT상으로는 충분히 의심이 가는 상황. 예상치 못한 전개에 우리 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