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손창섭이 있었다. 1958년 그가 발표한 단편 ‘잉여인간’을 포함한 단편집 <잉여인간>을, 네이버는 ‘불구적 사회를 살아가는 소외된 인간 군상들의 내면 풍경을 잘 나타낸 손창섭의 대표작품 모음집’으로 소개한다. 이를 참고하면 잉여인간을 ‘불구적 사회를 살아가는 소외된 인간’이라고 정의할 수 있겠다. 야호! 뭔가 잉여인간이란 존재가 멋있게 느껴진다!
주로 문학사 및 수능 언어 영역에서만 얘기되던 ‘잉여인간’이란 단어는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2004)에서 주인공 현수(권상우 분)의 아버지(천호진 분)의 일갈("너 대학 못가면 뭔 줄 알아? 잉여인간이야, 잉여인간! 잉여인간 알아? 인간 떨거지 되는 거야 이 새끼야!")이후 새로운 지위를 얻는다. ‘디시 인 사이드’나 ‘웃긴 대학’ 등 통상적으로 잉여인간이 많다고 여겨지는 곳에서 영화의 저 장면을 딴 ‘플짤’이 유행하기 시작했고, ‘잉여인간’이라는 단어도 덩달아 유행어가 된 것이다. 아니, 이제는 유행어를 넘어 일상어로 정착한 것 같다.
요새는 잉여인간을 줄여서 그냥 '잉여'라고 부르는 경향이 우세하다. 이제 '잉여'라는 단어는 ‘쓰고 난 나머지’라는 본래 뜻으로 쓰이는 경우보다 ‘잉여인간’이라는 뜻으로 쓰이는 빈도수가 더 많은 것 같다. 아, 경제학과 사람들은 빼고 얘기하자. 소비자 잉여, 생산자 잉여를 당해낼 재간이 없다.
바흐가 음악의 아버지라면 손창섭은 잉여의 아버지이다. 헨델이 음악의 어머니라면 천호진은 잉여의 어머니이다. 두 분이 없었다면 <월간잉여>도 없었을지 모른다. 오늘 같은 밤, 왠지 두 분을 기리고 싶어져 이 글을 쓴다. 두 분에게 이 글을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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