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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여논단

자발적 잉여와 비자발적 잉여. 올바른 사회라면 (김준수)


잉여인간도 두 종류로 구분될 수 있다. 자발적 잉여와 비자발적 잉여. 명칭에서 드러나듯이 두 잉여 간의 차이는 잉여됨의 시발점이 본인의 의지였냐 아니냐에 달려있다. 굳이 잉여를 이렇게 학술적으로 구분할 필요가 있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을 것인데, 이러한 구분의 의미에 대한 물음은 역사의 판단에 맡기면 될거라고 생각한다. 혹시 아는가. 훗날 나의 이런 시도가 구국의 혁신이었다고 학계에 보고될는지 말이다.



비자발적 잉여,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사회구조와 주위환경에 떠 밀려서 잉여신세가 된 경우를 뜻한다. 예를 들면, 구직활동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며 스펙을 쌓았음에도 백수라는 신분으로 집안에서 눈칫밥을 먹으며, 등록금 대출 등으로 잔뜩 쌓인 빚을 상환하느라 알바하며 오늘 하루도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 청년들이 전형적이다.



이 경우 대부분은 본인은 원하지 않았음에도 꿈꾸던 바와는 다르게 잉여로 지내게 된 사례가 허다하다. 기업들이 일자리를 창출하지 못하고, 스펙쌓기만 과열된 분위기에 어느새인가 경쟁의 대열 바깥으로 밀려나 버린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는데, 경쟁체제를 부추기는 요즘 대한민국에서는 이런 것들이 개인의 문제라고 치부해버리기에 더욱 씁쓸할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구조에 대한 정당한 비판마저도 열폭이라 저평가받고 비웃음을 사게 된다. 물론 개인의 노력도 필요하겠지만, 각박해진 사회구조와 불평등의 심화는 사회 지도층이 적극적으로 해결하려 노력해야 마땅한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 정부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던가.



반면에 자발적 잉여, 비자발적 잉여와는 조금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들은 어느정도는 본인의 의지로 잉여가 된 사람들인데, 비자발적 잉여들이 '환경적 요인에 의해 주류에서 벗어난' 사람들을 뜻하는 것이었다면, 자발적 잉여들은 '본인이 추구하는 가치관에 따라, 일반적이라 불리는 무리에서 벗어나 독특한 길을 가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음악성이 있음에도 감성어린 진지함을 벗어던지고 육갑정신으로 무장하여 전 세계를 말춤추게 만든 싸이라든가, 인터넷언론 <딴지일보>에 이어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를 히트시킨 김어준 총수라든가, 본격적자잡지인 <월간 잉여>를 창간한 잉집장 역시도 이러한 자발적 잉여에 속하는 인물들이라 할 수 있겠다.

 


병맛의 정도를 떠나서 새로운 길을 개척한, 혹은 개척하기를 시도한 사람들은 어느 정도의 잉여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본다. 물론 용기도 필요한 일이다. 어쩌면 그 두 가지를 합쳐놓은 것을 우리는 '도전정신'이라 부르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도전을 위한 용기와 잉여력은 양념반/후라이드반의 쫄깃한 치킨처럼, 적절한 균형을 이루어야만 할 것이다.

 


필자가 자발적/비자발적 잉여를 학술적으로 구분하고 이러한 설명을 덧붙인 이유는, 그 둘의 비율이 사회의 상태를 보여주는 척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비자발적 잉여들의 범람은 그 사회가 병들어있다는 증거라고 봐도 무방하다. 실직자의 수는 늘어가고, 물가는 오르는데 임금과 일자리는 제자리걸음이고, 기업들은 노동자를 배려하지 않고 주주와 경영진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상황에서 정부는 방관하거나 손쓰지 못하는 현실. 부의 양극화, 계층 간의 갈등은 심화되고 서민과 소외계층을 위한 사회안전망은 부족한 상태. 누군가는 '문제는 경제야'랬지만, 단순한 경제관련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삶의 문제이기도 하다. 먹고살기 힘들고, 삶이 팍팍해져서 비자발적 잉여들이 대량으로 양산되는 오늘날 대한민국의 모습은 안타까울 따름이다. 출산률 저하와 OECD 국가중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치솟은 자살률, 그리고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경제민주화나 반값등록금같은 구호를 외치는 목소리가 더 커지는 것은 이러한 이유들이 배경요인으로 작용했기 때문일 것이다.



반면 자발적 잉여들이 늘어나는 사회는 그만큼 건강하다는 뜻이 아닐까. 잘나가는 직업군이라고 흔히 불리는 일을 해나가지 않아도 먹고사는 것에 지장없고, 더불어 남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자신이 원하는 분야에서 다양성을 추구하며 살아갈 수 있는 세상 말이다. 싸이가 글로벌하게 공연을 다니며 말춤을 추는 것처럼 월드잉여가 될 수도 있고, 굳이 그런 거창한 일이 아니더라도 문화산업이나 각계각층에서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드러낼 수 있는 사회야말로 진정 살만한 세상이지 않을까. 따지고보면 일본의 애니메이션 산업 역시도, 특이한 발상과 소재들로 무장한 특정분야의 문화가 건강하게 자라나서 발전된 형태이지 않은가.



"우리나라에서는 왜 닌텐도 같은 게 안 나오냐"고 말하면서 옆구리 푹푹 찌른다고 어느날 게임기 하나 뚝딱 나오는 게 아니다. 그런 식으로는 아무리 기발한 무언가가 개발된다고 해도 요즘 대한민국에선 금세 묻혀버리고 말 것이다. 최소한 그런 걸 바랄 거면, 그런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혹여 실패하더라도 재기할 수 있는 사회구조를 만들어놓은 뒤에 바라는 게 맞다. 잉여들에게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주지는 못하고, 되레 그 잉여들이 누군가의 성공을 위해 뜯어먹힐 먹잇감이 되는 사회구조가 '동물의 왕국'과 뭐가 다르단 말인가.





언론에서 아무리 포장 해봤자


잉여에게 현실은 이렇단 말이다!





필자는 대한민국이 더욱 올바르고 건강한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것은, 비자발적 잉여들이 줄어들고 자발적 잉여들이 응축되어 있었던 잉여력을 굶어죽을 걱정 없이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세상을 뜻한다. 등록금대출을 갚느라 20대 청춘을 다 보내야만 하고, 일자리 구하느라 스펙경쟁에 매달려 목표와 꿈은 미루어야만 하는 현실이 바뀌는 그 날이 오기를. 그래서 잉여들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대한민국이 되는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꿈꾼다.









※ 월간잉여 12월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