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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여논단

투표와 투표사이(이지성)


내용은 전혀 관련 없지만 제목이 비슷하니까



훗날 역사적인 대통령 선거로 남게 될 16대 대선을 참혹했던 수험생 시절로 보낸 나는(전설의 2002년에 입시를 치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랬으리라) 200712월 비로소 처음으로 대통령 선거에 한 표를 행사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그 시기는 대통령 후보자들의 심각한 도덕적 부정에 대한 논란이 지속됨에 따라 도덕성과 정치적 능력의 상호 우위에 관한 논쟁이 정점에 이른 때. 정치에 특히 관심이 많으셨던 어머님께서는 주변 친구 분들과 오프라인과 전화상으로 활발한 배틀을 벌이고 계셨고 나 또한 하라는 게임은 안 하고 게임 내에서 친구들과 키배를 뜨거나 정치에 관심 많은 게이머들의 싸움구경을 해야만 했다.



하라는 게임은 안 하고!




그렇게 배틀로 시작된 17대 대통령 선거는 '능력 있는 후보'(?)의 압승으로 마무리 되었다. 나는 문국현 후보에게 한 표를 행사했다. 당시 문국현 후보의 득표율은 5.8%로 내가 기대했던 것 보다 상당히 낮은 득표율이였다.(여권에서 득표율 2위였던 이회창 후보의 15.1%1/3을 겨우 넘는 미미한 수치였다.) '인터넷에선 문국현이 대통령이더라.' 하는 비아냥거림을 보고 있노라면 차라리 당선 될 가능성이 있는 다른 후보에 투표를 하는 것이 옳은 일이었는지, 아니면 내 소신에 따라 투표를 했던 그 선택이 옳았던 것인지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그래도 내 내면의 목소리에 솔직히 따르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 때문에 후회는 하지 않는다. 다만 당시 현 대통령이 도덕성에 관한 심각한 의혹을 받았음에도 그렇게 압도적인 지지율을 얻어 당선된 사실은(직선제 실시 이후 '최다 득표 차'였다) 다른 사람들의 투표율과 그 방향성에 관해 의문을 가지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매번 큰 선거가 있기까지 단골로 나오는 레퍼토리를 한 번 떠올려보자. 선거철이 다가오면 각계각층 잉여들의 SNS가 투표를 독려하는 수많은 메시지로 도배되고, 여기에 인터넷 이곳저곳에 퍼진 능력자 잉여들의 UCC가 더해져 한층 투표 분위기가 달아오르고 나면(보통 인격모독과 각종 개드립이 난무하는 싸움질이 벌어진다.) 우리는 결전의 날을 맞이하게 된다. 한바탕 성전이 치러진 후에는 민중의 승리를 외치거나 특정 연령층이나 특정 지역의 투표율이나 투표 성향을 안주거리 삼아 씹어대며 석연찮은 패배를 받아들이는 것이 우리가 매번 하는 일 아니던가? 이게 매번 반복된다면 이건 뭔가가 잘못된 것이다. 생각해보라, 선거철에 아무리 용을 써도 결과가 저모양이라면 애당초 투표율이나 투표 성향을 결정하는 요인은 투표하는데 걸리는 시간보다 수백 배는 많을 투표와 투표 사이의 엄청 긴 시간, 즉 인생 대부분에 걸쳐 성립되어 가는 유권자의 인성人性(사람의 성품, 조인성 아님.) 속에서 찾는 게 맞지 않을까?


우리나라가 민주주의 국가인 이상 이성적으로 납득이 안 되는 아주 뭣 같은 선거 결과가 나오더라도 다음 선거 때 까지는 그 현실을 감내해야만 한다. 어떤 선거의 결과로 한동안 사는 게 매우 어려워 졌다고 하면 다음 선거 때도 올바르게 투표를 하게 만들 힘인 우리의 '인성'이 꺾이지 않도록 유지하면서 버텨내야 한다는 말이다. 이번 선거가 망했다고 해서 '아 투표해봐야 뭣도 없네.' 하고 클럽이나 게임에만 인생을 불태우면 인성도 같이 하얗게 타버리는 결과만 나올 뿐이다. (여기서 이 글을 읽던 독자의 대부분이 월간잉여를 덮고 싶을 만큼 진부한 소리라는 것도, 또 삶 전체를 저렇게 사는 건 불가능하다는 건 나도 안다.)


또한 선거 결과가 흡족하게 나왔다고 해서 당장 즐겁게 복지국가 라이프를 즐겨 볼 생각이라면 그건 마린 하나로 울트라 잡는 생각이라고 말하고 싶다. 접어두자. 정부와 대통령은 우리를 구원해 줄 하느님이나 구세주가 아니고, 삶의 질이라는 것도 그렇게 단기간에 나아지는 것도 아니다. 제대로 된 대통령이라면 우리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수많은 노력을 마다하지 않을 테지만 다른 계층의 반대로 말미암아 어떤 정책이 좌초될 수 있고, 그들도 인간이기에 때론 실수 할 수도 있다. 이럴 때 그것이 단지 실수인지, 아니면 현재 정부의 성향이 우리의 이익을 대변하지 않는 것인지를 판단하고 언론께서 각종 흔들기 혹은 빨아주기를 시전하실 때 그것이 페이크임을 간파하는 매의 눈을 키워 주는 것은 무엇이겠는가? 단지 투표에 한 표를 행사하는 것이나 우리가 원하는 정당을 찍는 것이 다가 아니다. 중요한 건 투표와 투표 사이를 보내며 형성된 인성과 관점이 올바르게 확립되어 가고 있느냐다.


잠깐 내 이야기를 해보자. 논어에는 서()라는 말이 있다. 의미는 번역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내가 가진 미야자키 이치사다의 해석본에 의하면 '곧 남의 입장이 되어 보는 것, 남의 입장이 되어 보면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남에게 시키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한단다.





물론 논어 원본을 본 건 아니다...





나는 이걸 내 신념이라고 부끄럽게 말하고 싶다. 나는 원하는 공부를 하면 할수록 잉여가 되어갈 뿐인 지옥 같은 나날과 어처구니없이 비싼 등록금을 내려고 값을 능력도 없는 학자금 대출을 빌려 써야만 되는 내가 미치도록 싫어했던 그 현실을 우리 뒤의 세대에게 강요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난 현실을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는 길이 있다면 나름대로 발버둥 쳐보고 싶다. 이것이 투표에 대한 내 입장을 결정할 당위성이다.


다른 잉여들에게도 각자의 인성에 따라 가장 중요한 가치가 있을 거다. 그것이 한 가지가 아니어도 상관없고, 또 없어도 좋다. 단지 그것이 진짜로 옳은 것인지, 내가 정말 그것을 위해 살고 있는지 좀 진지 빨고 고민해 나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투표의 이유와 그 방향성은 확립되지 않을까. 그리고 그런 과정 속에서 세상은 좀 더 살기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 월간잉여 12월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