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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스포츠

프로 스포츠 잉여 (참치)

필자, 나름 야매 스포츠 전문가다. 글질을 처음 시작한 것도 스포츠 미디어였고, 지금도 반쯤은 스포츠 덕분에 잉여로운 목숨 연명하고 있다. 그러다 몇 달 전 잉집장을 우연히 만나 잉담을 나누던 중에 스포츠 잉여라는 소재로 글을 써보자는 생각이 들었고, 이에 잉집장은 크게 기뻐했다.(그날 새끼손가락을 걸며 약속을 받아내던 잉집장의 표정은 돈 갚지 못하면 이 손가락을 자르겠다는 야쿠자 간부의 그것과 흡사했다.)


여기서 말하는 스포츠 잉여는 흔히 말하는 먹튀의 사전적 의미와 같다. 비싼 몸값 못하는 돈 먹는 잉여되겠다. 그 비싼 돈이 얼마나 비싼가 하면, 우리 같은 소시민 잉여들은 부르마불에서 서울 걸려야 구경해볼 정도다. 미국 프로스포츠를 바로미터로 삼자면 A급 스타플레이어의 경우 연봉이 천만 달러 단위를 가볍게 넘어간다.(각종 광고, 스폰서, 로열티 등은 빼고 말이다)



프로 스포츠 잉여의 탄생

이런 잉여의 탄생에는 여러 복합적인 원인이 작용한다. 물론 순수하게 본인이 자초하는 경우술 처먹고 약 빨다가 몸 망친다든가는 별로 복잡하고 자시고 할 게 없다. 제일 흔한 케이스는 역시 부상잉여다. 원래 고질적인 부상이란 게 그렇다. 한 번 다친데 또 다치고, 그게 쌓이다 보면 소위 말하는 유리몸이 된다. 오죽하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등에서 뛰었던 오웬 하그리브스는 별명이 축구하는 환자. 스타급 선수들은 대체로 5년 이상의 다년계약을 하게 마련이니, 이들이 기약 없는 장기 환자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면 팀 입장에서는 울고 싶어진다. 해마다 생돈 빠져나가지, 팔아치우고 싶어도 연봉 깎아먹는 환자를 누가 사가려고 들 리 없지, 재활시키는데 돈 들지, 사실상 얻는 게 전무하다. 자선사업이 아니고서야 누가 좋아하겠느냐 말이다.


필자의 전공분야인 농구에서 사례를 찾아보자. 앤퍼니 하더웨이와 그랜트 힐의 이름을 들으면, 2000년대 초중반부터 미국프로농구(NBA)를 접한 꼬꼬마들은 혀를 끌끌 찰 것이다. 비싼 연봉 까먹으면서 몇 경기 뛰지도 못하는 쓸모없는 늙다리라고 말이다. 반면 80년대나 90년대 초반부터 농구를 본 어르신들이라면 어린 것들이 뭘 모른다고 통탄할 것이다. 필자는 후자 쪽이지만 전자도 이해는 된다. 이들이 부상으로 날려먹은 세월이 워낙 길었기 때문에 세대 간의 갭이 커질 만도 한 것이다. 결국 하더웨이는 한때 마이클 조던과 1:1 다이다이를 떴던 천재라는 명패가 달린 과거의 화석으로 사라졌고, 힐은 초인적인 근성으로 복귀해서 아직도(그는 72년생이다) 뛰고 있다. 그러나 옥구슬처럼 섬세한 그의 발목을 아는 사람들은 힐이 욕실에서 비누만 밟아도 심장이 내려앉는다.





앤퍼니 하더웨이(출처: 모름)




그랜트 힐(출처: 위키백과)




국내에서는 몇 년 전 은퇴한 SK의 방성윤이 잉여의 전설을 썼다. 그래프를 그려보면 그의 데뷔에서 은퇴까지의 시기는 소속팀 SK의 흑역사와 사이좋게 방향을 같이 한다. 그는 머리어깨무릎발무릎발이었다. 온몸을 돌아가면서 디테일하게도 다쳤다. 잔부상은 기본사양, 중상은 옵션이었다. 그런 식으로 해마다 시즌을 반 이상 말아먹던 그는 결국 서른 살도 못 채우고 농구화를 벗었다.





방성윤 (출처: www.kbl.or.kr)




이건 사견임을 전제로 하는 말이지만, 거액의 돈을 받는 환자잉여들의 경우 본인의 복귀의지가 높으면 높을수록 독이 되지 않는다고는 말 못하겠다. 빨리 뛰고 싶은 초조한 마음에 성치 않은 몸 무리해서 굴리다가 아예 골로 가는 일도 적지 않은 것이다. 희망고문이란 스스로든 남에게든 큰 민폐다.


아비다스 사보니스는 지지리 재수 없었던 잉여다. 농구에 문외한인 잉여들을 위해 간단히 말하자면, 구 소련 출신인 그는 키가 223cm였고, 빠르고 힘 좋고 머리까지 좋았다. 한마디로 사람새끼가 아니라 괴물단지였다. 19세의 사보니스에게 홀딱 반한 NBA의 애틀란타 호크스는 나이제한에 걸려서 데려올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를 찜했다. 그런데 3년이 지나 그를 영입할 수 있는 시기가 되자, 이번엔 소련 정부가 미국에 자국선수들 못 보내겠다고 뗑깡을 부렸다. 결국 애틀란타는 그를 포기했고, 사보니스를 드래프트할 수 있는 권리는 포틀랜드 트레일 블레이저스에게 넘어갔다. 이때가 1986년이었고, 사보니스가 발목부상을 당한 것도 그 즈음이었다. 이 부상의 여파는 상당히 심각했다. 그리고 1987, 사보니스는 입원해있던 병원 계단에서 구르는 바람에 중상을 입었고, 전처럼 뛰거나 점프할 수 없는 몸이 되었다. 게다가 약물치료의 부작용으로 몸도 불어나고 두상도 커져버렸다. 곡절 끝에 10년 만에 NBA에 입문했을 때, 그는 마인 부우나 삽립호빵, 연배 좀 되는 잉여에게는 <고스트 바스터즈>에 나오는 마시멜로 맨을 연상시키는 몰골이 되어 있었다. 그나마 그렇게라도 뛰게(사실 걸어 다녔다) 된 건 천지사방 용하다는 의원들을 다 찾아다닌 포틀랜드 덕분이었다. 미국인들에게 매국노 소리 들어가면서 말이다. 물론 그는 워낙 기본이 되어 있었고 머리가 팽팽 돌아갔기 때문에 그 몸뚱이로도 그럭저럭 잘했다. 그러나 한창 때 상대팀을 떡치던 사보니스의 포스는 장판교에서 장팔사모를 휘두르는 장비와도 같았다. 포틀랜드 쪽 사람들은 옛날 생각 떠오를 때마다 허공에 하이 킥을 할지도 모를 일이다.




아비다스 사보니스(출처: 모름)



물론 잉여라는 게 꼭 본인의 탓, 혹은 불운 때문에 생기는 건 아니다. 돈 주는 쪽이 멍청해서 헛짓거리를 하는 일도 있다. 가격경쟁 하다가 거품만 잔뜩 일으켜 놓거나, 아니면 애초에 끗발 낮은 패를 잘못보고 베팅을 하거나. 몇 해 전 국내 프로농구에서 있었던 일이다. 모 팀에서 이력서 좀 되는모 외국인선수를 영입했는데, 막상 뛰어보니 이건 뭐 농구 잘하는 옆집 고딩보다 딱히 나을 게 없었다. 그럼에도 모 팀은 모 선수를 시즌 끝까지 교체하지 않았다.(프로농구는 부상 및 기량미달 등으로 외국인선수를 교체할 수 있다) 나중에 주워들은 이유인즉, 모 선수를 데려오느라 거액의 뒷돈을 일시불로 줬다는 것이다. 나라도 아까워서 못 바꿨을 거다. 주려면 무이자 할부로 하든가. 교환환불 안 되는 기스난 명품 부여잡고 우는 기분이 그럴까.


헌데 신기한 건 잉여로 고생한 팀은 계속 잉여양성소가 된다는 거다. 앞서 말한 SK나 포틀랜드가 그랬다. SK는 팀 창단 이후 선수 없어서 농구 못한 적은 거의 없었다. 다만 늘 배가 산꼭대기로 올라갔고, 잉여들이 부상으로 꽃잎처럼 스러져갔을 뿐이다. 심지어 외국인선수가 경기 중에 머리 부딪혀서 기억상실 걸리는 역사적인 해프닝도 있었다.(며칠 뒤에 회복되긴 했지만) 온갖 연쇄적인 악재, 팀을 통제 못한 코칭스태프와 경영진의 무능함 등등이 총체적으로 작용한 결과라 할 것이다. 그래도 다행이랄지 SK는 이번 시즌 조짐이 매우 좋으니, 한번 두고 볼 일이다.


포틀랜드는 바로 최근에 사건이 한 번 있었다. 지난 3월 그렉 오든이라는 한 마리 잉여를 팀에서 방출한 것이다. 잉여가 되기 전 오든은 샤킬 오닐 이후 가장 싹수 있는 거인으로 불렸다. 그는 극강의 노안이었다. 88년생 루키의 얼굴이 마치 은퇴 30년 후 명예의 전당에 오르기 직전 같았다. 얼굴값 하려고 그랬는지 그는 포틀랜드에 입단하자마자 골골대더니 양쪽 무릎이 차례로 아작 났고, 5년 동안 5번의 수술을 받으며 유니폼보다 환자복이 더 맵시가 나게 되었다. 포틀랜드는 5년 간 수술비 내주다가 끝난 셈이다.




그렉 오든(출처: 위키백과)



참고로 포틀랜드의 구단주는 빌 게이츠와 함께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했던 폴 알렌이다. 원정 때마다 전용기를 타고 다니는데, 그 시설이 에어 포스 원(Air Force One : 대통령 전용기)에 필적할 정도라고 알려질 만큼 부자팀이다. 그러니 오든에게 들인 돈 때문에 심각한 재정적 타격을 입지는 않았겠지만, 그동안 잉여 보고 놀란 가슴 쓸어내린 전력이 워낙 많았다. 돈보다는 인내심이 바닥난 것이다. 프로스포츠에서 잉여는 용서받지 못한다는 걸 입증하는 사례라 하겠다. 어쨌든 오든을 과감하게 정리한 포틀랜드는 대대적으로 팀을 개편하면서, 최근 몇 년 동안의 행보는 썩 괜찮은 편이다.



그들에게 조소를 퍼붓지 말자

두서가 없지만 정리해보자. 사실 이 글에서는 스포츠 잉여들을 좀 희화화를 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그렇지만 처음의 의도대로 잘 되지 않은 것 같다. 왜냐, 기본적으로 잉여가 존재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세계가 프로스포츠이기 때문이다. 그곳에 발을 담그는 순간부터 잉여로 있을 수 없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프로스포츠는 자본주의의 장남까지는 아니더라도 사랑 받는 적자다. 그들은 건강해지려고 운동하는 게 아니라 몸 망치려고 운동한다. 이건 과장이 아니다. 연골이 다 닳아 없어질 때까지 점프하고, 어깨가 박살날 때까지 던진다. 부러지면 붙이고, 끊어지면 이어서 다시 뛴다. 육체를 한계에 가깝게 깎아내면 깎아낼수록 더 잘할 수 있는 세계인 것이다. 온갖 수술자국으로 너덜너덜해진 선수의 무릎을 본 적이 있는가. 프랑켄슈타인이 따로 없다.


가치로 교환되는 잉여는 진정한 잉여가 아니라는 게 개인적인 생각인데, 그 기준에서 보면 프로스포츠 선수들은 잉여가 아니라 불타 없어지는 휘발유와 다를 바 없다. 몸을 한계까지 깎고, 그것으로 가치를 창출하고, 팔아먹어야 하는 세계다. 박민규가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통해 우리에게 요긴한 걸 알려주지 않았던가. 누군가는 말했다. 그들이 왜 그렇게 절박하게 뛰는지 이유를 알게 되면, 특정선수를 응원할 수가 없게 된다고. 따지고 보면 스포츠는 무섭고 슬픈 구석이 많다. 그러니 그들의 사연이 어떠하든 간에, 스포츠 잉여들에게 너무 참담한 조소를 퍼붓지는 말자. 그 잉여들의 심정은 오죽하겠는가.







※ 월간잉여 12월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