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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여논단

매춘하고 있습니다 (잉싹)

 

여러분은 못 이룬 꿈이 있으신가요? 어떤 분들은 꿈이 없으셨을 수도 있고, 어떤 분들은 꿈을 이루셨을 수도 있고, 어떤 분들은 저처럼 못 이룬 꿈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사실 저의 꿈은 꿈이라 하기 참 부끄럽습니다. 그냥 모 대학교 심리학과 학생’. 그것이 전부였거든요. 그래도 저 이름을 따기위해 나름대로 열심히 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월간잉여 12월호를 보신 분은 이미 아시다시피) 저 목표에 다다르지 못했죠. 분명 완전히 실패한 삶은 아닐 겁니다. 아직 남아있는 날도 많고, 일어날 여지도 어느 정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분명 첫 발을 잘 내디디는 데에는 실패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왜 실패했을까요? 혹은 못 이룬 꿈이 있으신 분들은 왜 이루지 못하셨을까요? 운이 없어서? 환경이 받쳐주지 않아서?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가장 듣기 쉽고, 동시에 듣기 싫지만 들어야만 하는 말은 노력이 부족해서라는 말 일겁니다.


얼마나 간단한가요? 우리의 실패 이유는 우리의 노력과 정성이 부족해서라고, 그러니까 더 열심히 노력하면 목표에 다다를 수 있다는 말은. 우리가 그간 쏟아온 노력이 부정되는 듯 싶어 마음이 아리고, 듣기 싫지만, 동시에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말일지도 모릅니다. 정말 노력하면 될 것만 같거든요. 하지만 월잉 독자분들은 이런 생각을 한번 쯤 해보셨을 겁니다. ‘언제까지 노력해야하지?’


바야흐로 꿈과 도전의 시대입니다. 사람들은 꿈을 이루고, 도전하기 위해 수 없이 노력하죠. ‘~미쳐라로 제목이 끝나는 책들이 수도 없이 나옵니다. 그 만큼 노력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을 신화화하기 바쁘고, 다른 사람들은 그런 신격화된 사람들을 쫓아가기에 바쁩니다. 그러나 우리는 압니다. 우리가 바라는 성공은 아무리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투입돼도, 단지 몇 사람만이 가져 갈 수 있다는 걸요. 그것이 경쟁이니까요. 이렇게 모두가 같은 것만 바라보며 달리는 상황에서는 노력으로 안 되는 것이 당연히 존재하지 않을까요?







미쳐가는 대한민국.jpg




개인의 타고난 능력과 운에 따라 성공 도달에 필요한 노력의 양은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성공에 다다르려면 어마어마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합니다. 절대다수가 극소수의 신화를 바라보며 삽니다. 입시생이라면 소위말하는 명문대가, 취준생이라면 대기업입사가 이런 신화가 될 수 있겠죠. 그래서 다들 자신을 성공으로 이끌어 줄 멘토를 찾고, 책상 앞에 격언을 써 붙이며 자신의 청춘을 팔아가며 노력합니다. 이게 바로 대한민국의 매춘이죠.


경쟁을 통한 발전, 좋습니다. 하지만 톡 까놓고 말해서 얼마나 많은 부작용이 생겼나요? 자살률은 OECD1위를 넘어서, 세계1위를 다투고 있습니다. 대입은 교육적 문제를 넘어, 수도권에 자원에 집중되는 한 요인이 되기도 합니다.


경쟁이 지속되면 필연적으로 도태되는 사람들이 있죠. 이런 사람들을 위해서 힐링이라는 아름다운 문화도 탄생했습니다! 본래 치료란 아픈 곳을 낫게 해 주는 것이지만, 힐링은 치료와 달리 근본적인 회복이 아닙니다. 모르핀처럼 단순히 아픈 것을 잊게 해 주고, 더 많이 매춘하기 위해 행해지는 것일 뿐이죠. 휴식으로 행해지는 힐링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휴식을 취하는 이유는 삶의 여유를 찾거나, 재충전을 하기 위함입니다. 하지만 요새 얘기되는 힐링에는 삶의 여유를 찾는다는 목적은 상실됐고 다시 경쟁을 하기위한 재충전의 의미만을 담고 있는 걸로 보입니다. 저는 단언합니다. ‘힐링에 열풍하는 사회적 분위기 역시 경쟁을 위해 존재한다고.


웃긴 건 저 역시 매춘한다는 것입니다. 더 좋은 대학에 가겠다고 재수를 한 바 있고, 앞으로도 더 좋은 직장을 구하겠다고 휴학, 9학기 수강 등 난리법석을 피우며 청춘을 팔겠죠. 저와 같은 사람들을 위해 약간의 변명을 하자면. 제 젊음을 팔지 않고는 뭘 해야 할지 알 수 없습니다. 삶에 주체성이 빠졌다고, 수동적인 삶이라고 욕하셔도 좋습니다. 12년이라는 장기간에 걸쳐 저는 집요하고도 은밀하게 꿈에 관한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 꿈은 학교, 직업, 직위 같은 명사로 끝나는 꿈이었습니다. 결국 제 삶은 명사 그 자체가 되었고, 명사가 곧 제 삶의 목표가 되었습니다.


삶이 명사로 끝날 수 있을까요? 우리가 특정 직업을 얻는다면 행복해질까요? 아닐 겁니다. 분명 그 뒤에도 우리의 삶은 지속될 겁니다. 하지만 장기간의 꿈팔이 장사는 우리에게 명사만을 안겨줬을 뿐, 그 뒤의 삶에 대한 논의는 없었습니다.


이런 삶의 명사화를 막기 위해선 분명 잉여짓이 필요합니다. 인간이면 분명 단순히 먹고, 사는 것만을 넘어 사람과의 관계, 그 사이의 소통, 주변 환경과의 조화, 또 개인이 가진 기호 등 다양한 것을 고려하며 살아야겠죠. 잉여짓은 획일화된 삶에서 좀 더 다양한 경험을 제공해줍니다. 단순히 먹고, 자고, 일하는 삶에서 다양한 경험이 끼어든다는 건 분명 아름다운 일입니다.


하지만 이미 개인의 모든 생각과 행동이 경쟁에 집중되고, 사회적 분위기 역시 그렇게 흘러가고 있는 상황에서 나는 잉여다!”라며 진성잉여로서 '잉밍아웃' 하기는 쉽지 않겠죠. 그래서 결국 대다수의 사람들은 계속해서 매춘할 수밖에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매춘을 하느냐와 하지 않느냐는 소득의 격차로 이어지고, 이는 생활의 격차, 기회의 격차로 이어질 테니까요.


어쨌든 이렇듯 글쓴이는 지나친 청춘팔이와, 꿈팔이에 분노하지만 정작 맨 앞에 서서 누구보다도 열심히 자신의 청춘과 꿈을 팔아넘기고 있는 모순된 인물에 불과합니다. 부끄럽네요. 젊음이 젊음다워 질 수 있길, 꿈이 꿈다워 질 수 있길 바라며 오늘도 잉여짓과 매춘의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습니다.

 

 









(격)월간잉여 12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