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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연재] 역사 속 잉여: 강잉여 편(글_은랑)


역사속에서 찾아볼 수 있는 절정의 잉여들을 찾아보고, 그들의 잉여시대와 잉여짓의 엄청난 결과를 재조명해보는 '역사 속의 잉여' 꼭지입니다. 뭐랄까, 참 주변에도 많이 볼 수 있는 잉여님들을 굳이 역사에서 찾아본다는 것이 잉여스럽지만 항상 잉여스러운 글을 받아주는 월간잉여이기에 잉집장님을 찬송합니다.(잉?)

오늘 조명해 볼 잉여는 강잉여 입니다. 뭐랄까, 이만한 잉여는 500년에 한 번 날까말까한 잉여분이시죠. 이 잉여의 찬란한 잉여짓들을 조명해 보도록 하죠.

A. 강잉여씨의 잉여이력
1.    남다른 무직기간
-  강잉여씨에 대한 기록 중 서로 엇갈리는 기록이 많지만 길게는 55년, 짧게는 30년 가까이 잉여를 한 장기 무직 기록의 최강자 중 한 분이십니다. 허, 55년이라면 어떤분에게는 평생의 길이보다 긴 기간인데요. 강잉여씨의 잉여스러운 일생에 대해 대충 정리해보면 아래 두 설이 존재합니다.

    ㄱ) 집안도 좋고 학벌도 되고 나름 머리도 좋았는데, 공부하는 것을 좋아해 작은 장사도 해봤지만 망하고, 점쳐주기 알바나 과외알바 등 변변한 직업없이 백수로 연명함.
    ㄴ) 머리가 좋아 일찌감치 공무원이 되었지만(즉, 관직에 올랐지만), 정권에    대한 불만과 소신으로 그만두고 그 이후로 별다른 직업 없이 백수로 일관

결론적으로 정리해보면 두 기록이 서로 어느정도 차이는 있지만 굉장히 무직 백수 잉여로 지낸 기간이 깁니다. 대한민국 평균 1인당 잉여기간인 1.5년의 최고 20배를 혼자 잉여로이 지내신 분이십니다. 참 쉽죠?

2.  현실감각 제로
-  강잉여씨는 현실감각이 없는 사람인 것으로 보입니다. 강잉여씨에 대한 기록이 분분해 어떻게 살았는지 파악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임에도 굉장히 유명한 일화가 있는데, 오랜 백수생활에도 불구하고 돈을 충분히 벌어오지도 취직을 하지도 못하는 강잉여씨에게 신물이 난 아내는 강잉여씨를 버리고 친정으로 도망갑니다.
아마도 강잉여씨는 여기에 굉장히 좌절감을 느꼈나 봅니다. 나중에 결국 취직을 하긴 하는데, 이때 아내가 찾아와 같이 살자고 하자 물을 흙땅에 쏟으며 '님하 됐어염 이 물을 다시 컵에 담을 수 있으면 님하랑 다시 살래염' 이라고 하는 드립을 날렸죠. 이것이 강잉여님의 드립 중 가장 유명한 드립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3.   밀덕
- 강잉여씨와 동시대의 인물 중, 밀덕(밀리터리 덕후)은 보통 좀 귀족이나 왕족출신이거나, 힘깨나 써서 거느리는 떡대들이 많거나 했었습니다. 그런데 강잉여씨는 역시 잉여력 킹왕짱. 백수인데다가 돈도 없는 주제에 밀덕 책을 세 권이나 씁니다. 물론 출판할 돈이 없어서 책은 취직한 후에 출판했고, 나중에서야 유명해지긴 합니다만... 역사에서는 그를 '밀덕의 시초'라고 이르곤 합니다.  또한 낚시가 취미인 것으로 유명하기도 하죠.

B. 잉여의 시대
많은 경우 잉여는 시대가 낳곤 하죠. 강잉여씨가 살던 시대를 한번 살펴볼까요.

1.    레임덕 - 왕조말기
- 강잉여씨가 살던 시대는 왕조 말기입니다. 잘난 왕이 나타나 국민(백성)을 찍어누르던 시대죠. 당시 왕은 처음에는 이런 저런 업적을 남기지만, 곧 미모의 여친에게 빠져 막나가기 시작합니다. 서민에 대한 엄청난 증세, 친한 가신들과 벌이는 주지육림의 파티, 쓴소리를 하는 신하를 잔인한 방법으로 죽이기 등.
농업이 주였던 당시 사회에 가혹한 세금, 그리고 부역으로 사회가 위축되었을 것은 자명합니다. 자연 사회에 불만이 가득차게 되었습니다만, 레임덕임에도 불구하고 반대파를 무도하게 숙청하고 모든 권한과 군/검/경을 장악한(왕이니 당연하겠죠) 왕의 집권은 공고했습니다.

2. 반대세력의 결집
- 강잉여씨는 이런 시대의 가혹함을 몸으로 가장 쓰디쓰게 체험한 사람 중 하나였습니다. 농사는 땅이 있어야 할 것이오, 장사는 밑천이 있어야 할 것인데 이도 저도 없는 강잉여씨는 배운 것 밖에 없어 쫄쫄 굶는 일이 다반사였겠죠. 그런데 이런 불만은 강잉여씨만 가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당시로서는 지금의 야당이나 재야에 해당하는 수많은 뜻있는 영주, 제후들이 이런 왕에 대해 불만을 가지게 되었죠. 그리고 그중 가장 덕망이 높은 한 사람에게 그 뜻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C. 역사에 길이 남은 잉여 - 태공망 여상
여기까지 읽으시고 이미 눈치 챘을 분은 눈치채셨을 강잉여는, 흔히 강태공이라 불리는 주왕의 참모, 태공이 기다리던 불세출의 인재, 태공망 여상입니다. 밀덕이었던 그는 알렉산드로스보다 최소 100년가까이 앞서 병법서 '육도 삼략'을 씁니다. 이후시대의 모든 사상(유교는 제외한다지요)에서 선조가 되는 인물이라 여겨져 백가의 종사로 불리기도 합니다. 은주왕의 천부왕권에 대해 주무왕의 역성혁명론의 기반을 마련한 사람이기도 하죠. 중국이 현재까지 국가로서 정체성을 가지는 수많은 사상의 시조인 그가, 잉여생활을 청산하고 주 무왕과 함께 '세상낚시'를 시작한 것은 70세(!!) 라고 합니다. (130(!!!)까지 살았다고 하네요)


위키피디아에 강태공 검색하니 뜨는 사진


고대의 신비와 과장을 걷어내고 보더라도, 그의 평생의 답답함과 잉여짓이 견뎌내기 쉬웠던 것은 아닐테지요. 결국은 살아남아, 수천년동안 이름이 남아있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어쩌면, 당신의 오늘 잉여짓과 헛발질도 인류와 역사에 커다란 발자국이 될 태아의 발길질 같은 것 아닐까요.

역사속의 잉여는 글쓴이의 게으름으로 인해 이후 연재가 확실치 않습니다. 댓글 많으면 2 쓸거예요, 아마. 댓글 많이 달아주시고 오늘도 멋진 하루 되세요~ !





※ 월간잉여 3월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