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잉여논단

한국어가 잉여어는 아니잖아요(글 하이킥)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순간은 여러 가지가 있다. 날씨의 변화, 갑작스런 장애물의 발생 혹은 길에서 배우 신민아와 같은 연예인을 만났을 때. 이런 예기치 못한 일에 우린 순간적으로 발걸음을 멈춘다.

나는 2년차 기자다. 현재 증권분야 취재를 담당하고 있고 부서에서는 아직 막내다. 2주전 한국에서 개최하는 한 포럼에 선배를 도와 취재하라는 지령을 받았다. 행사장소인 서울의 한 호텔에 들어서면서 난 발걸음을 멈췄다. 영어로 가득한 플래카드와 행사안내문, 이놈들이 예상하지 못한 장애물이었다. 나는 몰랐었다. 그 행사가 전부 영어로 진행될 줄은.










하필 평소보다 30분이나 일찍 도착했다. 어색하게 혼자 있는 상황에서 사람들과 인사라도 나눠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쉽게 다가갈 수 없었다. 한국회사의 명찰을 달고 있는 사람들도 영어로 대화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게 인사하는 한국 사람도 영어로, 한국어로 대답해도 영어로. 여긴 한국이 아니라고 생각되는 상황이 연이어 연출됐다.

한국인데, 여긴 한국인데 한국인도 영어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아침부터 도통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기로 가득했다. 그렇다고 행사장을 뛰쳐나갈 수는 없었다. '즐길 수 없다면 피해라'는 현대판 속담이 취재현장에서는 적용되지 않는다. 길은 적응을 하는 방법뿐이다. 발표자가 농담을 던져 모두가 웃으면 이해하지 못해도 따라 웃는 액션을 취했다. 두 박자 늦게 따라 웃는 과장되고 어색한 웃음이 내 입가에 지어졌다. 한 시간이 지나고 두 시간이 지났다. 서서히 알 수 없는 이상한 감정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나는 이곳에서 잉여라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늘 그랬다. 영어를 만나면 나는 발걸음을 멈췄다. 영어의 등장은 늘 예상하지 못한 순간이었다. 내가 사는 곳은 한국이니까 당연한 것인데 난 그럴 때 마다 잉여가 됐다.

 

 

중학교 시절 'buy'라는 영어단어를 '버이'라고 읽은 뒤 나의 별명은 '뻐이'가 됐다. '로스앤젤레스''라스베가스'라고 읽은 뒤 수업시간이 웃음판이 된 적도 있다. 학창시절 이런 에피소드는 웃고 넘어가는 것에 불과했지만 대학시절에는 영어가 인생의 발목을 잡기 시작했다.


입사시험을 준비할 당시 나의 토익성적은 700점대 초반. 가뜩이나 좁은 언론사 취업문에 토익성적 미달로 서류조차 내지 못한 곳이 여러 개다. 어쩌다 올라간 면접에서 토익만점 지원자, 미국대학 석사출신 지원자와 같은 조에 편성됐던 기억도 떠오른다. 면접관이 내게 던진 첫 질문은 "영어점수가 왜 이렇게 형편없죠?"였다. 물론 이 질문을 받고 멘탈붕괴에 이르러 보기 좋게 고배를 마셨다.

내가 잘하는 것도 있는데,.. 영어가 아니면 다른 것에서 점수를 더 얻으면 되겠지만 그럴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었다. 내가 가장 자신 없었던 영어는 대한민국에서 잉여를 벗어나기 위한 기본 중에 기본이었다.



이 죽일 놈의 영어. 지금까지 내 발걸음을 묶어 놓고 앞으로도 계속 멈추게 하려나 보다. 까짓것 공부하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그러다가 문득 소극적인 반란을 일으키고 싶은 생각도 든다.

우리나라 사람들 해외에 나가서는 적응이라는 이름으로 그 나라 언어를 습득한다. 한국에서는? 외국인에 대한 배려와 글로벌화라는 이름으로 한국어와 영어를 공용으로 사용해야 되는 상황이라면 주저 없이 영어를 사용한다.



해외에서도 심지어 국내에서도 한국어는 주류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다. 영어를 배우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그저 이런 현실에 약간의 반감이 생길 뿐이다. 적어도 이 땅에서는 영어에 익숙하지 않다는 이유로 잉여감을 느끼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언어가 잉여언어는 아니니까.









※ 월간잉여 8월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