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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여논단

국가보안법 나빠요(글_진공)

하나의 유령이 대한민국을 배회하고 있다. 바로 '종북'이라는 유령이. 대한민국 기득권의 모든 세력들, 즉 검찰과 경찰, 새누리당과 거대 보수언론들이 이 유령을 사냥하려고 굳건한 동맹을 맺었다. 작년 검찰총장에 취임한 한상대 총장이 취임사를 통해 "종북좌익세력 척결"에 가장 역점을 두겠다고 호기를 부린 이후, 호시탐탐 기회만 노리던 이 동맹세력들은 통합진보당 내부 경선 부정 논란을 순식간에 종북논란으로 몰아갔다. 종북 신드롬은 늘상 있어왔던 극우 논객들의 진부한 레퍼토리를 넘어서서, 이제는 연일 공중파TV와 포털 사이트 메인화면을 장식하게 되었다. "종북세력 국회입성 논란,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공중파TV토론회의 제목. 어버이연합 어르신들이 간절히 바랐을 공중파 방송의 뉴데일리화,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다.

 

종북 신드롬을 타고 탄생한 새로운 스타들도 있다. 전원책 변호사는 공중파 토론방송에서 "김정일, 김정은 개갞기 해봐! 못하면 종북!"이라고 외치며 인터넷의 스타로 떠올랐다. 한 시민은 다른 공중파 토론방송에 패널로 나와 통합진보당 의원을 상대로 "북한인권, 북핵, 3대 세습에 대한 입장을 밝혀라"라는 질문을 통해 '돌직구녀'라는 별명을 얻었다. 종북 열풍은 진보세력도 분열시키고 있다. 위와 같은 프로그램에서 우리 나라의 대표적 진보논객이라는 진중권과 김종철 진보신당 대변인은 "국가보안법 나쁘다, 사상의 자유 조으다, 근데 국회의원은 공인이니 머릿속을 까발리셈ㅇㅇ" 이라고 한술 더 떠 사상검증의 공세에 동참한다. 한마디로 돌직구녀가 "너 엿머겅"하니, 진보논객이라는 작자들이 "두번 머겅"하는 셈이다.

 





그림 잉집장





종북 열풍은 흔한 반도의 국회의원 한명을 창의력 대장으로 만들었다. 새누리당 한기호 의원은 "천주교도들 십자가 밟게 했듯 종북 국회의원들을 색출해야 한다"며 사상검증의 구체적 방안을 제시했다. 국회 본관 앞 계단에 김부자 사진이라도 깔아놓을 심산인가? 함정은 바로 저 발언을 카톨릭 방송에서 했다는 것. 한기호 의원. ,좋은 패드립이다...... 한편 딱 봐도 만만해보이는 13석의 조그마한 진보야당은 순식간에 종북정당으로 낙인 찍혀 연일 사상검증 공세에 시달린다. 검찰은 심지어 이 꼬마정당의 당원명부를 통째로 압수하는 패기를 부린다. 국방부는 이 명단을 넘겨받아 통합진보당 당원인 군인들을 색출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127석의 거대 야당인 민주당 역시 종북 논란을 피해갈 수 없다. 한겨레의 보도에 따르면 최근 군부대에서는 통합진보당과 민주당에는 종북세력들이 숨어있다는 안보강연이 한창이라고 한다.

 


이렇게 종북 색출에 혈안이 되어있지만 정작 실적은 보잘 것 없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 참여정부 시절에 비해 국가보안법 검거자 수는 2.5배 이상 늘었지만 기소율은 겨우 절반 이하로 떨어졌고, 검거자들 중 혐의가 인정되어 구속된 비율 역시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종북 척결을 외치며 녹슨 국가보안법의 칼날을 열심히 휘둘러댔지만, 한마디로 대부분 뻘타를 날린 셈. 그리고 이 뻘타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온 사회가 몇 달째 논란에 휩싸여 있지만 정작 드러나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 이 종북 신드롬의 실체이다. 이번 종북 논란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총선 직전이었다. 그리고 이 논란은 올해 말 대선을 앞두고 급격히 확대재생산 되고 있다. 시기적으로 군사 독재 시절부터 보수 정당이 선거 때마다 써먹어왔던 전형적인 색깔론이자 북풍이라는 의심을 거두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종북이란 김일성 3대 부자와 조선노동당, 그리고 그 지도사상이라는 주체사상을 신봉하고 추종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런데 최근 종북 국회의원이라 손가락질 받는 통합진보당 의원들이 진정 주체사상과 김부자를 추종한다는 증거가 있는가? 어딘가에 김부자 사진이라도 걸어 놓고 머리를 조아리는 현장을 포착했다거나, 아니면 김부자에게 쓴 충성서약문이라도 발견했나? 단지 북한이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문제에 대한 직접적 비난을 삼가한다거나, 김정은 개갞기를 외치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이들을 종북이라 몰아붙인다면 이것은 합당하지 못하다.



통합진보당과 민주당은 공멸의 비극을 초래할 전쟁이나 극한대립을 지양하고, 대화와 협력을 통한 평화통일을 지향한다. 생각해보자. 치고 박고 싸우기 직전의 상대가 관계 개선을 하자면서, 뒤에서는 다 들리도록 "너 이 자식 개갞기!"를 외친다면 당신은 그 상대와 화해하고 싶겠는가? 따라서 국회의원(공직자)이기에 북한에 대해 마구 비판해야 한다는 이야기 역시 마찬가지로 합당하지 못하다. 오히려 일반인들이 김정은 개갞기를 마음껏 외치더라도, 국회의원들은 언사를 신중히 해야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지 않은가?

 


다른 측면에서 이야기하자면, 애초에 '강제적인 방식'을 통해 누군가의 머릿속을 낱낱이 들여다본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불순한 생각이다. 예를 들자면 당신이 정치색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싶지 않은데 누구에게 투표했는지 까발려진다거나, 혹은 주변의 이성을 상대로 변태로운 상상을 한 것이 원치 않게 밝혀는 것과 다를바가 없다.



만약 지금의 정부 여당과 보수언론들이 정녕 종북주의자들의 커밍아웃을 바란다면, 그 방안은 단 하나밖에 없다. 강제가 아니라 자유로이 자신의 사상과 입장을 밝힐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그것은 바로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는 것이다. 국가보안법이 사라진다면 설령 종북주의자들이 실재한다 하더라도 그들이 지하로 꽁꽁 숨어들어갈 필요가 없을 것이다. 자신들의 신념을 전파하려든다면, 자신의 의사를 공개적으로 당당하게 표출하게 될 것이다. 북한에 대한 정보 통제가 사라지고, 모든 국민들이 북한의 실상에 대해 더 자유로이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북한과의 극한 대립을 멈추고 정부와 민간 양차원으로 다시 교류와 협력이 확대될 것이다. 그러다가 혹시 우리 자유대한마저도 적화될까봐 두려운가? 평소에는 북한을 봉건 왕조니, 세계 최악의 후진국이니 무시하고, 주체사상에 대해서는 철학이 아니라 종교라고 비아냥대면서도 무엇이 그렇게 무서운지 모르겠다. 지금 우리 국민 수준 무시하는 거임? 도대체 장군님이 축지법을 쓰시고, 솔방울로 수류탄을 만드셨다는 영상을 보며 장군님의 위대함에 눈물 흘릴만한 사람이 남한 땅에 대체 얼마나 되겠는가? 더군다나 만약 정부를 타도하기 위한 불법조직을 만들어 내란을 선동한다면 내란죄로 다스리면 되고, 국가의 기밀을 북한(뿐 아니라 다른 국가도 마찬가지)에 넘긴다면 간첩죄로 다스리면 될 일이다.

 


설령 모든 것이 허용되는 자유로운 사회가 되어 당당한 주체사상가들이 등장한다고 해도, 우리는 그들이 억압과 처벌의 대상이 되는 것에는 단호히 반대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사상과 양심의 자유가 있다. 우리가 친잉여사상을 갖고 잉집장을 찬양한다고 해서 그것이 죄가 될 수는 없다. 미국의 수많은 인기 래퍼들이 연쇄 살인마나 마피아 두목을 추종하여 그 이름을 따서 자신의 가명으로 사용하지만, 그 래퍼들이 뭔가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한 이들을 처벌할 수는 없는 일이다. , 주체사상은 사상이 아니라 종교라고? 하지만 우리에게는 종교의 자유도 보장되어 있다. 아무리 근본 없는 사이비 종교라도 그들이 범법 행위를 벌이지 않는 이상, 우리는 그들에게도 종교의 자유를 보장해주어야 한다. UN 인권위원회와 국제 엠네스티는 매년 '국가보안법 폐지'를 한국 정부에 권고하고 있다. 국가보안법이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고, 정치적으로 악용될 소지가 다분한 반인권적인 법이라는 이유에서다. 지금의 인민재판식으로 따지자면 UN도 종북세력에서 벗어날 수 없다.

 


선거 때만 되면 60여 년째 똑같이 계속되는 종북 논란, 이제 지긋지긋하지 않나? 문제의 해결을 위해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때이다. 국가보안법은 소위 '종북'을 탄압하는 무기이기도 하지만, 그래서 동시에 '종북'을 수면 아래에 숨겨주는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백번 양보해서 종북이 곧 곰팡이라 치자. 그런데 곰팡이는 햇볕에 말려죽어야 한다지 않나?

 




고추장 표면에 하얀 곰팡이가 피어날 때 식초를 조금 바른 뒤 햇볕을 쬐면 곰팡이가 많이 없어진다.

-조선일보 리빙포인트-
















※잉여논단의 글은 본지의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월간잉여 7월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