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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개팅 이야기(글 김진수)

계절학기도 마치고 토익공부라는 비생산적인 활동을 하고 있던 7월 말, 지인으로부터 소개팅 제의가 왔다. “회사 동료이자 너랑 동갑인데 야구를 좋아하니 너랑 코드가 잘 맞을 것 같아. 오호호야구를 좋아하니 서로 코드가 맞을 거라는 논리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나는 롯데팬, 그녀는 삼성팬이다) 5백만 년에 들어온 제의라 기꺼이 마다하지 않기로 했다. 거기다가 야구광인 나로서는 머릿속에 야구장에서 키키스타임 은 좀 오버겠지만 커플석이라도 앉을 가능성의 문을 열어보자는 생각을 가지고 바로 오케잉(OK)를 외쳤다.

21살 때 딱 한번 소개팅을 해 봤으니, 소개팅이 뭔가도 싶었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보기로 했다. 홍대거리 근처에서 서식하는 친구에게 소개팅 패션코디를 받아 1년여 만에 옷 한 벌을 장만했다. 부농(커플을 의미) 중인 지인은 소개팅에서 처음 3초가 모든 걸 좌우한다.” 라며 3초 기선 제압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첫 만남은 종각역 인근에서 갖기로 결정했다. 사실 저녁에 식사를 하고 아메리카노 한잔과 함께 청계천을 걸으려고 했지만, 문자에서 그녀는 저녁에는 선약이 있어요라며 낮에 만나면 안 되냐고 물었다. 뭐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뜨거운 햇빛이 내려치는 낮에 종각에서 그녀와 만나기로 결정했다.

 


첫 만남 in 종각

날씨는 맑았다. 약속시간 10분전. 함께 점심식사를 할 식당을 확인한 후 약속장소인 종각역 앞에서 그녀를 기다렸다. 내 앞에서 인상이 좋아 보이시네요.” 라며 바싹 달라붙은 사람들의 시선마저 따뜻하게 느껴졌다. (물론 거부했다.) 5분 전. 문자가 왔다.

 

아 좀 늦겠네요. 죄송해요ㅠㅠ」

괜찮아요 ^^ 천천히 오세요!

 

그래. 삼국지에서 유비는 남자인 제갈량의 마음을 얻기 위해 그 먼 거리를 삼고초려 했는데 고작 몇 분 더 못 기다리겠는가. 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25분 뒤 (진짜 천천히 왔나보다) 그녀가 종각역에 모습을 나타냈다. 첫인상은? “. 괜찮은데?” 였다.





영화 [다만, 널 사랑하고 있어](2006) 중



 

그녀는 야구와 날씨를 좋아하는 날씨 관련 한 언론매체 기자였다. 그녀는 대화하기를 무척 좋아하는 것처럼 보였다. 덕분에 나는 그냥 이야기를 들어주며 때때로 손발 오그라드는 리액션을 선보이며 우린 공통분모가 있다.’ 라는 인상을 줬다.

첫 소개팅 자리에서는 세트메뉴를 시켜야 한다는 지인의 조언에 따라 주말 런치라 할인도 되지 않는 파스타+피자 세트를 시켰다. 다행히 그녀는 만족하는 것 같았다아니 그래야만 했다. ‘이런 레스토랑은 어떻게 아셨어요?’ 라고 물었다면 열심히 블로깅을 해서 찾았습니다.’ 라고 말해야 할 판국이었지만, 다행히 그녀는 묻지 않았다.

우리는 삼성 라이온즈와 롯데 자이언츠의 경남 야구 라이벌의 역사부터 올 시즌 포스트시즌 전망까지 고() 퀄리티의 야구토론을 했고, 지구 온난화로 인해 기상이변이 잦다는 친 날씨적인 이야기까지 끊임없이 먹고 이야기하며 하하, 호호거렸다. 식사 후, 우리는 인근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그녀는 아메리카노 두 잔을 샀다. 평소에 먹지도 않는 쓴 맛의 아메리카노였지만 공통분모를 위해 당연히 커피는 아메리카노 아닌가요?” 라는 드립을 쳤다. (대신 시럽을 엄청 넣어서 먹었다.)

그녀의 지각과 선약으로 인해 만남은 짧았고, 그녀에게서 날씨별 옷 코디하는 법까지 배우고서 우리는 헤어졌다.



두 번째 만남 in 신도림

첫 번째 만남은 꽤 만족스러웠던 나는 두 번째 만남을 준비했다. 그녀가 평일은 업무가 바쁘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주말에 만나는 게 어떠냐고 제의했다. 그러자 그녀는 이번 주 주말은 가족과 휴가를 간다고 한다고 했다. ? 소개팅이라는게 원래 이런가 싶었다. (아니 이때 그냥 그만뒀어야 했다...) 그래서 나는 평일에 만나자고 제의를 했고, 그녀의 회사 근처에서 만나는 것을 조건(?)으로 했다. 그러나 그녀는 흔쾌히 수락(?)했다. 그리고 우리는 신도림에 위치한 디큐브 시티에서 만나기로 했다. 신도림 쪽은 아예 가 본적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다시 블로깅을 열심히 해야 했다.

당일 날 약속 20분전에 도착한 나는 깜짝 놀랐다.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았다. 내가 가려고 했던 음식점은 한 시간이나 기다려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급한 나머지, 그 층에 있는 음식점 다섯 군데 예약명단에 내 이름을 써 버렸다. 뭐 그녀가 오기 전에 한군데는 되겠지. 라는 생각을 했고 그녀 앞에서는 원래 가려고 했던 음식점인 척 하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곧 그녀가 도착했고, 마침 처음에 가려고 했던 음식점에 들어갈 수 있었다. 다행이다. 라는 안도감과 함께 그녀는 자신이 자주 왔던 음식점이라며 김을 새게 만들었다. 이 날은 2000년대 초반 국내 대중가요부터 최근 아이돌 현상 분석과 예전에 방영했던 만화 이야기를 하며 함께 추억에 잠겼다. 이 날도 터진 그녀의 말문 덕에 나도 편하게 이야기 할 수 있었고, 분위기는 좋게좋게 흘러갔다. 적어도 내 생각에는 그랬다는 거다.

식사 후, 갈 곳 없는 남녀청춘은 시나리오 때로 자연스럽게 카페로 이동했다. 그녀는 회사에서 글 쓰는 것이 어렵다고 이야기 했다. 나는 글쓰기란 누구나 어려워하는 것이니 시간이 지나면 실력이 좋아질 것이라고 따뜻한 시선으로 쳐다보며 자연스레 가방에서 월간잉여 8월호를 꺼내들었다.









마침 8월호부터 독자위원회 활동을 시작했고 내가 이런 유수한 국내 종합 월간지의 일원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300잉 클럽 회원모집 실적을 올리기 위한 것은 절대 아니었음을 밝힌다.) 그녀는 웃으면서 잘 읽겠다고 말했다...그리고 그녀는 이틀 뒤 연락이 두절됐다.




소개팅녀는 홀연히 사라졌다. 내가 건네준 월간잉여 8월호와 함께

설마! 월잉 때문이었나? 아마 아닐거야. 아마 그녀는 8월호 표지를 보고 무인도로 휴가를 떠나서 돌아오지 않았거나, 방구석에서 월잉을 읽으면서 월잉의 매력에 퐁당 빠져 깔깔 대고 있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이틀 동안 답장이 없는 스마트폰을 보며 나는 번호를 지웠고, 한여름 밤의 소개팅은 그렇게 땀과 함께 빠잉빠잉했다. 혹시 이 글을 본다면 월잉을 돌려주길이 아니라 300잉클럽에 가입하기를 바란다. 소개팅녀 보고 있나?

 










※ 월간잉여 11월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