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각잉각색

잉여님들께 호주를 추천합니다.(노현우)


잉집장 주: 호주 워킹홀리데이는 만 18세에서 만 30세까지만 신청할 수 있다ㅠㅠ 이점 미리 참고하고 읽어주시길...






어릴 적 사람들은 말했다.


공부해라.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을 가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


대학을 가니 사람들은 말했다.


공부해라.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직장을 다니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


좋은 직장을 가니 사람들은 말했다.


참아라. 열심히 일하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

 


하지만 직장인이 되고 나서야 비로소 깨달은 것은 정말 신기하게도 그 와중에 한 번도 인생을 어떻게 살면 '더 나은 삶'을 살게 되는 건지 고민해 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름 고민을 많이 하고 책도 많이 읽었던 대학 시절에도 진정으로 내가 원하던 삶에 대해 심도 깊은 고민을 해 본 적이 없었다. 인생의 본질을 위한 고민도 없이 남이 세워 놓은 레일 위를 달려갈 뿐이었다. 이런저런 자아성찰의 필요성을 깨닫고 2년간의 직장 생활을 접게되었다.

 

사실 직장을 그만 두고 난 직후, 바빴던 그간의 생활의 공로로 내 자신에게 당분간이라도 잉여로운 삶을 주고 싶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한민국 안에서 잉여의 삶은 녹록치 않았다. 나 스스로를 잉여라고 자부하고 싶었으나, 사람들은 어째서 내 나이에 아무것도 하지않는 것인지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다. 또한 '잉여'라는 존재들이 언제부터 나의 뇌리 속에 부정적인 단어로 들어앉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조차 과감히 부정적인 내용까지 받아들여 잉여로운 삶을 살기에 죄책감마저 들었다.


이것은 뭔가 잘못되었다. '잉여'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닌데. '잉여'의 시간은 남아버린 찌꺼기 같은 느낌이 드는 게 사실이지만, 무언가를 스타트업 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시간이 아닌가? 날 좀 내버려 두라고!!

 

나는 나를 재는 사람들의 관념에 사로잡히고 그에 시달리는 내 자신에게 실망하기 시작했다. 물론 나도 알고 있다. 나는 이 사회에서 태어나 자랐고 초인이 아닌 이상 이 사회의 관념에 동조하며 살아가는 개체일 뿐이다.


그렇다면 나에겐 닥친 두 가지 시간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필요했다.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이냐라는 고민을 할 시간지금까지 힘들었던 삶을 치유할 힐링의 시간.


내가 선택한 것은 잉여의 삶을 보장해주는 공간으로의 이동이었다.


일말의 고민 없이 호주로의 워킹 홀리데이를 떠났다. 호주를 선택한 이유는 대자연, 그리고 선진국으로서의 암암한 기대감이랄까?


별 고민 없었던 선택 치곤 꽤나 좋았다. 호주에서의 삶은 생각했던 것보다 느렸고 풍족했으며 즐거웠다.


호주에 가기 전에 나는 내가 즐길 수 있는 일이 무언가를 항상 고민했었다. 어떤 일을 하면 행복할까? 하지만 호주에서는 그런 고민을 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하루 8시간의 내 일만 끝나면 언제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 되기 때문이다. 물론 주말은 온전히 나만의 시간이다. 미래에 대한 불안함에 더 나은 인맥을 쌓으려 주말마다 뛰어다니며 발버둥 치지 않아도 좋다. 게나 잡고 낚시를 다니거나 파티를 다닌다. 자기 시간이 넘쳐나기에 꼭 하는 일에 많은 의미를 담을 필요가 없다. 매니저와 불화가 생기면 그만두면 그 뿐이었다. 직업 구하는데 노하우가 생기고 나선 매니저가 심기를 건드리면 바로 다음 날 사의를 표하곤 했다.






호주에서 절대 캥거루를 놀라게 해선 안돼!




호주를 배경으로 한 영화 [캥거루 잭](2003)






'직업'이라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아도 되는 삶. 이게 바로 사람 사는 곳이다. 바쁘고 하루가 긴 한국 사회에 익숙한 나는 하루하루 일을 하는 나날이 마치 쉬는 날 같았다. 일년에 유급휴가는 자그마치 한 달. 어마어마한 세상이다. 최저 임금이 우리나라의 네 배가 넘기 때문에 어지간한 일을 해도 우리나라 어지간한 기업체 다니는 만큼의 돈을 세이빙 할 수 있었다. 워킹 비자로는 한 회사에서 육 개월 이상 한회사에서 보낼 수 없기에 잡스러운 일을 주로 했다. 정신 건강상 농장이나 공장은 아니고 리조트나 호텔일 혹은 레스토랑이나 청소 일을 주로 했다. 그 결과  이 년 동안 번 돈이 억을 넘었다. 세금을 제하고 여행을 다니고 일상 생활비를 제하고도 번 돈의 반 이상은 남겨 가지고 한국에 올 수도 있었다. 그러면서도 내가 그토록 원했던 힐링의 시간은 넘쳐났고,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았다. 덕분에 앞으로 남은 인생의 방향성을 차고 넘치게 생각한 2년이 될 수 있었다.


다만 외국인 노동자로서 힘든 일을 할 수도 있다는 각오는 필요하다. 하지만 전문가(경험자)와 상의 후 전략만 잘 짜간다면 정말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독보적인 잉여의 삶을 즐길 수 있고 남들의 생각 따윈 조금도 의식하지 않으며 집 안에 돈이 차고 넘치는 잉여라면 굳이 갈 필요는 없다. 어차피 그들에겐 한국이 호주이고 호주가 한국일테니. (여기서 돈이 잉여와 뭔 상관이냐는 독자들이 있다면 오해하지 마시라. 호주에서 벌어 온 돈이 한국에 돌아와 스타트업을 하기까지의 새로운 잉여생활에 커다란 힘을 준다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자 그럼 아직 생각할 것이 많이 남아있는 잉여들이여 공간의 전환을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 꼭 호주가 아니더라도 잉여들을 반기는 공간은 꼭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영화 [오스트레일리아](2008) 中














※ 월간잉여 11월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