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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통령이 취준생에게 (존슨)

취업만 되면 소원이 없겠다.’

취업을 준비하는 친구들(a.k.a 취준생)이 염불처럼 주워섬기는 말이다. 어느 순간부터 모두의 소원이 같아졌을까. 이제 취업은 우리의 소원은 통일급의 시대적 과업이 된 듯하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회사원이 되리라는 생각조차 해 본 적이 없던 내가, 지금은 취업학개론이라는 이름부터 냄새나는 인터넷 방송을 진행하고 있으니.


사실은 취업을 밀어 붙이는 세태와, 또 확신 없이 그것에 매달리는 안타까운 청춘들을 비웃어주기 위해 시작하기 시작한 방송이, 어이 없게도 우리 자신들이 더 열심히 취업에 매진하도록 만드는 촉매제가 되었다. 방송을 위해 내키지도 않는 자소서를 쓰느라 밤을 샜으며, 상식풀이 코너를 위해 눈이 벌개질 때까지 인터넷을 뒤졌다. 그렇게 애초 의도와는 달리 건실한 코너들과 유익한 정보들로 가득한 전문취업방송으로 거듭난 철수와 존슨의 취업학개론’. 그러니 방송에서 난무하는 욕설들은 그에 대한 격렬한 자아비판이자 세상에 대한 최소한의 투쟁으로 양해를 부탁하는 바이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눈이 취업이라는 괴물에 집중돼 있는 이 시점에, 또 그를 이용해 방송을 팔아먹고 있는 내가,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그 너머의 것을 얘기해보고자 한다. 취업, 그 너머의 것.

 

'취통령'(취업계의 대통령)이란 사주를 타고 세상에 나온 나는 여러 군데의 기업에 찰떡 같이 붙었고, 덕분에 길지 않은 기간 동안 다양한 조직을 경험했다.


하지만 내가 이다지도 거시적인 인간이었던가. 조직에 속할 때마다 느꼈던 건 그 자리에서 보내야 할 20, 30년이란 세월의 무게였다. 내게 허락된 한 평 남짓한 공간에서, 목적성이 분명한 어설픈 관계들 속에서, 복사와 커피 제조 따위의 일들과 크게 다를 것 없는 반복적인 작업들 속에서 견뎌야 할 20, 30년이라는 시간 앞에, 나는 너무도 작았고, 무력했다. 그렇게, 미안한 말이지만, 그 조직들 속에서 난 에게, 그러니까 그 조직 속의 나에게 심한 환멸을 느꼈었다. 그리고 나무랄 데 없이 조직에 녹아드는 타인들이 불편했다. 그들의 긍정이 수십 년 인생 따위 어찌되든 상관없다는 냉소로만 보였기 때문이다.


그런 연유로 몸 담았던 여러 조직들에서 나와 조금은 늦은 방황을 시작했다. 미흡하지만 사업에 살포시 손대보기도 하고, 반 년 동안 방 안에 틀어박혀 소설을 써보기도 하고, 밴드에 미쳐 보기도 하고. 한 번은 추위가 절정이었을 겨울 무렵 배낭에 감자와 소주만 우겨 넣고 기차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기차가 고작 한 시간을 달렸을 뿐인데, 빌딩 숲이 사라지고 붉은 흙이 가득 보이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지는 것을 보곤, 아등바등 살아왔던 28년 인생의 반경이 고작 한 시간이면 벗어날 수 있는 거리였다는 것에 피식 웃음도 났었다.

 

그렇게 2년 여 간의 긴 방황-아무런 금전적 이익을 만들지 못했으니 통념상 낭비였을 뿐인 그 시간-을 마치고, 그래, 또 취업에 성공했다. 2년의 방황 동안 어떠한 대답에 도달했느냐라고 묻는다면. 아니다. 그저 취업이라는 것도, 직장생활이라는 것도, 지루하게 긴 인생의 한 과정에 불과할 뿐이라는 사실을 어떻게든 이해하기 시작했을 뿐이다. 그렇기에 내가 결승선을 통과한 듯 얘기하지 않으련다. 취업은 골인 지점이 아닐지며, 그렇기에 롹스타, 억만장자, 세계정복 등의 꿈을 취업과 맞바꿈할 필요는 없는 일이다.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막막하게만 보이는 그 책상 앞의 시간도 앞으로 있을 2, 30년 인생의 전부는 아닐 거라고. 꿈을 가지고 있는 한, 꿈이 그 지리한 시간 사이의 틈새를 벌려 내 인생에 되돌려 줄 것이라고.

 

그렇다. 달리 자랑스러울 것도 없는 개인사까지 들춰가며 말하고자 하는 취업 너머의 것. 바로 이라는 그것.


언제부턴가 꿈을 말한다는 것은 촌스러운 일이 되었다. 왠진 모르겠지만 은 우리의 손발을 오그라들게 하고(이 짧은 글을 읽는 와중에도 이미 손발이 퇴화된 쿨가이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이불을 발로 차게 하는 그런 단어가 되어 버렸다. 시니컬한 패배주의, ‘머나먼 길을 찾아 여기에, 꿈을 찾아 여기에보다는 아마 우린 안 될 거야.’라는 쿨한 체념이 각광받는 지금 이 시대.


나는 가끔 우리들이 의도적으로 꿈이라는 것을 무시하고 있는 건 아닌가 생각한다. 취업이라는 너무나도 거대하고 두터운 벽에 가로막혀 시야에는 온통 그 벽뿐이니 이 벽만 넘으면, 이 벽만 넘으면이란 초라한 자기연민만 남는 것은 아닌지.






벽 앞에 선 60m 거인(애니메이션 진격의 거인 중)




그 벽 앞에 선 친구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이젠 취업이라는 미몽에서 깨라고. 취업이 종착지 마냥, 행복을 보장해주는 하이패스 마냥 믿고 있다간, 취업 후에 맞이할 가슴 뛰지 않는 현실에 절망할 수 있음이다. 대신 '꿈이라는 꿈'에 잠기길 바란다. 당신의 인생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아라. 우리는 분명 꿈이라는 다른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부디 꿈을 꾼답시고 냄새나는 자기계발서 따위를 탐하는 일은 없기를 바란다. 장담컨대 대기업 취업이 꿈인 당신에겐 기적 같은 책이란 따위의 책은 당신의 꿈에도, 당신의 취업에도 하등 도움 될 것이 없다. 대기업 취업이 꿈인 당신에게라니? 부탁이니 굳이 애써 당신을 남들과 같은 사람으로 만들지 말라.


그럴 시간에 철수와 존슨의 취업학개론이나 반복해서 들어달라. 사실 이게 다 취업 잘 되라고 해주는 말이다. 취업 만세.





음악하는 존슨, 그리고 철수의 다리 한 짝








※ 월간잉여 1월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