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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즈음에 (관남헤잉)


 

서른이 되면 어른이 되는 건 줄 알았다. 이제는 잘 기억도 안 나는 어린 시절, 내가 센 아빠의 첫 나이는 서른둘이었다. 아내와 자식 둘 달린 한 가정이 있었고, 차도 있었고, 팔뚝에 울퉁불퉁 튀어나온 힘줄도 있었다. 아빠는 당시 나에게 너무도 큰 존재였고 그래서 어른이었다. 아빠를 보며 나는 언제쯤 어른이 될까 생각을 했고, 서른 즈음 되면 나도 그렇게 될 거라 믿었다.


여섯 밤을 자면 나는 그 바라지마지 않던 서른이 된다. 또다시 겨울이 찾아왔고 봄이 멀지 않았고 한 살을 더 먹게 됐고 본의 아니게 나이의 앞자리가 바뀌게 되는 때가 다가왔다. 하지만 그저 황망하다. 서른이 되면 어른이 돼야 하는데 어른은 안 되고 서른만 됐다. 나에게는 가정도, 차도 없고, 울퉁불퉁 힘줄도 없다. 어깨엔 무한한 책임감 대신 백팩이 매어져 있을 뿐. 가족의 대사를 결정하기는커녕 점심으로 무엇을 먹을지도 하나 결정하지 못한 내가 서른이라니 그저 놀랍기만 하다. 그나마 운 좋게 밥벌이라도 하고 있는 게 위안이라면 위안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내가 나이 서른에 어른이 되지 못한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본다. 나름 서른 됐다고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따라 부르지만 여전히 가사 뜻을 음미하지 못하는 나를 보며 이거는 뭔가 아니다 싶다. 판단은 미숙하고, 예상은 빗나간다. 무엇 하나 두렵지 않은 것이 없고, 무엇 하나 쉬운 것이 없다. 내가 21세기를 살아가며 무엇을 잘못했길래 나이든 청소년으로 남아 있게 된 것일까.





김광석 '나의 노래' BOX SET(2012)









언제인가부터 우리는 아이가 되기 시작했다. 사회에 나가 홀로 서지 못하고, 취업과 결혼, 출산 등의 단계를 계속 유예하며 곧 간다, 곧 간다 속으로만 되뇌인다. 생각해보면 내 탓도 아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남들 가는 대학 들어가 때 돼서 군대 갔다가, 복학해 빵꾸난 학점을 메우다가, 잘 되면 졸업과 함께 취업을 하거나, 잘 안 되면 졸업을 하고 여기 쑤시고 저기 쑤시고 좌절하고, 다시 마음 굳게 먹고 힘내 어딘가에서 밥벌이를 하다보면 벌써 서른이다. 아니면 그렇게 밥벌이를 할 것 찾다보면 서른이다.

 

밥벌이를 하면 뭐 하겠나, 집세 내고 옷 사 입고 밥 먹으면 언제 돈 모아서 가정을 꾸릴지 걱정이다. 그저 한 해, 두 해 미루고 또 미루니 서른도 훌쩍 넘어 어른아이가 돼 있다. 또 이런 경제적 미충족은 정신을 규정하기까지 한다. 밥벌이에 초탈해 자신의 영혼을 지키며 자존적 판단을 해나가는 위인이 아니라면 경제적 귀속은 곧 정신의 귀속으로 귀결한다. 나에게 돈을 대주는 그 누군가는 나에게 그만큼의 지분이 있다. 아빠 집에 살면 아빠 잔소리 들을 의무가 있고 아빠는 그럴 권리가 있다. 회사가 나에게 돈을 주면 나는 은연중에 윗분들의 생각에 맞춰가기 마련이다. 이것이 망할 세상이다. 싫으면 나가서 자유롭게 살면 그만이지만 그 자유의 대가를 치러내야 한다.


나를 서른 살의 청소년으로 만든 것은 이 사회지만, 내가 잘못한 대목도 바로 여기다. 진짜 어른이 되고 싶었다면, 나는 나를 안아주는 보금자리를 한번쯤 떠나 독립할 자유가 있었다. 이것저것을 경험해보고 실패도 해보고 이뤄보고 하면서 상처도 입고 치유도 하고 어른이 됐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그저 보금자리 안에 머무르며 사회에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무려 27년간 부모님의 품안에서 의식주를 해결하며 책상 앞에 잘 앉았었다. 그런 내가 나이 서른 됐다고 어른이길 바라면 염치가 없는 것은 아닐까. 도대체 뭘 했다고 어른이길 바라는 겐가.


한 해가 다시 시작된다. 올해는 어른에 더 다가가기 위해 몇 가지 목표를 정했다. 그 중 한 가지가 뜬금없지만 취재원이나 윗사람과 대판 싸워보기다. 품안에서 살다보니 야성성이 사라진 사자마냥 뭘 하든 싱글벙글 살아왔다. 이해심은 또 어찌나 많은지 그럴 수 있지, 저럴 수 있지 하다 보니 신념 하나 없는 사람이 됐다. 올해는 아닌 건 아니다는 마음으로 투쟁을 선포해본다. 서른 살, 이제야 어른이 될 준비를 시작한다.







※ 월간잉여 1월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