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화, 스포츠

5월의 잉반(글_설까치)


부활 [기억상실] (1993)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까지의 김태원은 '레알 잉여'였다. 아끼던 보컬리스트 이승철은 솔로로 독립했고, 자신은 마약 후유증에 빠져있었다. 금단현상을 이기기 위해 "아이스크림을 전자레인지에 돌려 사발로 마시던" 시절이었다. 분신과도 같았던 부활을 잠정적으로 해체하고 게임(Game)이라는 새로운 밴드를 만들며 재기를 모색하기도 했지만 시장에서 철저하게 실패했다. 완벽한 잉여의 날들이었다. 그때, 김재기가 나타났다. 그는 놀라운 목소리를 가지고 김태원을 갱생의 길로 이끌었다. 김재기의 미성에 흠뻑 취한 김태원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 그와 함께 부활의 재건을 꿈꿨다. 하지만 그 꿈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하늘은 김재기에게 천부적인 목소리를 줬지만, 그 목소리를 제대로 사용할 기회는 주지 않았다. 1993년 8월 11일, 녹음 도중 김재기는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그래서 이 앨범은 미완성이다. 김재기의 목소리가 들어간 노래는 3곡뿐이다. 하지만, 그래서 이 앨범은 더 절절하다. 김태원은 앨범의 나머지 부분을 김재기에 대한 추모로 채웠다. 그저 '결이 곱다'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김재기의 목소리는 김태원의 음악 안에서 절정을 이룬다. <사랑할수록>으로 완벽한 재기(부활!)를 한 부활은 김재기의 동생인 김재희와 함께 네 번째 앨범 [잡념에 관하여]를 발표한다. 그 앨범 안에는 "보이고 느껴지며 들리어도 만져질 수 없는 그리운 이에게 우리의 네 번째 앨범을 바친다"는 글귀가 쓰여있다. [기억상실]은 바로 그런 앨범이다. 보이고 느껴지며 들리어도 만져질 수는 없는 아련한 그리움 같은 앨범.




디베이스(D.Bace) [Vol. 1] (2001)

디베이스라는 이름을 기억하는가? 디베이스는 듀스(DEUX)의 해체와 김성재의 죽음 이후 이현도가 작정하고 만든 '듀스의 아이들(아이돌)'이었다. 이현도가 음악감독을 맡아 2001년 5월 발표한 디베이스의 첫 앨범은 존재하지 않는 듀스의 4집 같았다. 그만큼 듀스와 흡사한 음악을 담고 있었고, 듀스가 그랬던 것처럼 음악적으로도 나무랄 데가 없었다는 얘기이다. 앨범의 첫 싱글이었던 <모든 것을 너에게>는 영락없는 듀스의 새 노래 같았고, 김성재의 보컬이 인상적이었던 듀스의 <상처>를 커버하며 자신들의 배경을 보여주기도 했다. 한상원과 함께 [D.O. Funk] 시절을 재현하는 훵키 트랙 <Good Life>나 이현도의 색깔이 물씬 묻어나는 1990년대 분위기의 <Shine>, 그리고 자연스레 듀스를 떠올리게 하는 발라드 등 모든 곡들이 듀스와 연결되며 일정 수준 이상의 품격을 갖추고 있었지만, 언제나 그렇듯 좋은 음악이 모두 부와 명예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H.O.T와 젝스 키스(Sechs Kies), 신화 등이 구축해놓은 아이돌 시대에서 이들은 음악, 실력, 외모 모두를 갖고 있었지만 이상하리만치 호응을 얻지 못하며 아이돌의 잉여가 됐다. 처음 5인조에서 2인조로, 그리고 다시 3인조로 꾸준히 명맥을 이어오고 있지만 여전히 반등은 요원해 보인다. 하지만 이런 인기나 잉여력과는 무관하게 디베이스는 가장 괜찮은 앨범을 발표한 아이돌 그룹으로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 앨범이 증명한다.






※ 월간잉여 5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문화, 스포츠' 카테고리의 다른 글

7월의 잉반(글_설까치)  (0) 2012.10.25
6월의 잉반(글_설까치)  (0) 2012.08.02
4월의 잉반(글 설까치)  (0) 2012.04.25
잉여로움이 만든 음반들(글 설까치)  (1) 2012.01.31
잉여 in 개봉영화  (2) 2012.0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