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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트가 필요했음 미리 말을 하지(글_거친남자)

새벽을 향해 가는 시간.

 

페이스북을 하던 중, 문득 20대 초반 남학생이 강남역에서 카페 아르바이트를 구하여, 드디어 까페에서 일하게 되었다는 다소 기대에 부풀어 있는 내용의 글을 봤다. 그의 짤막한 글을 본 순간. 어느새 머릿속은 까페 아르바이트를 구하던 스무살 여름방학 시절로 거슬러 간다.

 

카페 시급이 평균 2,000원 이던 시절.(내가 좀 연식이 된다.)

대학생이 되어 첫번째 맞은 방학에 문득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방학을 맞자마자 번화가 여기저기를 기웃거린다. 아르바이트를 구하기 위해서는 여기저기 발로 뛰어가며 '아르바이르 구함' 이라는 벽보가 붙어있는 카페를 발견하면 주저 없이 들어간 뒤, 간단한 면접을 보고 연락처를 남긴 후에 연락오기를 기다리는 식으로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게 일반적인 방법이던 시절인지라 친구와 함께 번화가를 순회하며 아르바이트를 구하기 위해 분주히 뛰어다닌다. 서비스업과는 거리가 먼 사나운 인상 때문인지, 처음 본 사람과는 어색해서 소극적으로 대화하는 성격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일주일 동안 수십 곳의 카페를 드나들며 연락처를 남겨봐도 연락 오는 곳이 한 곳도 없자 '내 외모는 서비스업에서 선호하는 외모가 아닌가?' 라는 생각과 함께 처음에 들었던 카페 아르바이트를 어려움 없이 구할 수 있을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은 점차 자괴감으로 변해갔다.

 




이런 애들만 카페에서 일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가 집에 가져다 둔 벼룩시장 무가지를 우연히 펼쳐보다, 구인광고란을 발견했다. 혹시나 하는 기대에 세세하게 살펴봤다. 수많은 구인광고를 조목조목 살펴보다가 문득 다음과 같은 구인광고를 발견한다.

 


레스토랑 서빙 아르바이트. 시급 3,000

 


일반적인 카페 시급보다 50%나 높은 금액은 주저 없이 수화기를 들어 구인광고란에 적힌 전화번호를 누르게 했다. 한 남자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아르바이트 공고 보고 전화드렸는데요, 아직 구하시나요?"

", 왕십리역 근처에 있으니 근처에 도착해서 다시 전화주세요."

 

수화기 속 무심한 듯한 남성의 목소리는 아르바이트할 사람을 빨리 구해야겠다는 간절함보다 오히려 귀찮아하는 뉘앙스를 풍겨냈다. 그 뒤 몇 마디 대화를 더 주고받으며, 다음날 레스토랑에 방문하기로 약속한 뒤 전화를 끊었다.

 

왕십리. 2호선 아랫쪽에 살던 내가 가기에는 꽤 먼 곳 인지라, 채용될 지 안 될 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 먼 곳까지 가야하는 지에 대한 망설임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시급이 보통의 카페보다 높은데다 다음날 가기로 전화상으로 약속을 한 것도 양심에 걸려서 잠깐 동안 고민하다 가보기로 결심했다.

 

다음날 고등학교 친구를 만나 함께 왕십리로 향했다. 스무 살 청년에게 왕십리는 혼자 가기 너무 먼 곳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2호선을 탄 지 한참의 시간이 지나자 이윽고 왕십리역에 도착하게 되고, 근처 공중전화에서 레스토랑에 다시 전화를 걸었다. 어제 전화 받은 무심한 듯 시크한 남성의 설명을 따라 친구와 함께 설명한 장소를 찾아갔다. 남성이 설명한 장소로 가까이 갈수록 번화한 지역에서는 점점 멀어지고, 이윽고 설명한 장소에 도착하자 눈앞에 어느 주택가 한 귀퉁이에 있는 허름한 건물을 마주하게 됐다.

 

어딜 봐도 레스토랑 같지 않는 건물인지라, 여기가 맞나 라는 의구심이 들던 중, 전화 속 남성이 건물에 달린 철창문을 열고 지하계단으로 내려오라고 한 게 떠오른다. 혹시나 하고 철장문을 찾아보니 간판하나 없는 허름한 건물 측면에 녹슨 철창문이 하나 있는 것을 찾아낸다. 잠깐 동안 망설이다 조심스럽게 철창문을 밀어보니 지하로 향하는 어둡고 좁은 계단이 펼쳐졌다. 뭔가 이상하다는 의혹은 점점 커져만 가고, 친구와 함께 여길 내려가야 하나 말아야하나 잠깐 동안 철창문 앞에서 고민하다가 2호선 반을 돌아 왕십리까지 온 수고가 아까워서 일단 내려가 보기로 결심했다. 친구에게 철창문 앞에서 기다리게 한 뒤 내려가면서 비장하게 한마디 건냈다.

 

"혹시 내가 10분 안에 안 나오면 경찰서에 신고해."

조용한 걸음으로 계단 끝까지 내려가자 건물 안으로 이어지는 철문이 보이고, 살며시 철문을 열자, 그리 넓지 않은 공간과 함께 빈 공간 중앙에 펼쳐진 좁고 긴 복도와 복도 양쪽으로 문 달린 방들이 촘촘히 보인다. 시야에 들어온 공간이 어디서 많이 본 익숙한 공간이라는 생각과 동시에, 노래방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 순간. 짧은 머리의 험상궂고 덩치 큰 한 남성이 복도에서 가장 가까운 문을 열고 나오며 나를 발견하고는 나직하게 말을 건낸다.

 

"어떻게 오셨나요?"

"아르바이트 때문에 전화하고 왔는데요."

"저 쪽 방에 들어가서 기다리세요."

 

남성의 말에 따라 그가 가리킨 노래방 같은 방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노래방보다는 조금 더 넓은 공간 중앙에 직사각형으로 기다랗게 놓여 있는 테이블과, 벽 따라 병풍처럼 놓여 있는 소파, 방 중앙 벽면으로 텔레비전과 함께 놓여있는 노래방 기계, 소파 측면에 남자 두 명이 앉아있는 것이 보인다. 20대 중반처럼 보이는 남성 두 명이 서로 모르는 사이인 듯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말없이 앉아있었다. 나도 그들과 약간의 거리를 둔 채 소파에 앉았다.

그렇게 1분정도 흘렀을까.

이 방으로 안내한 험상궂은 남성이 방 안에 성큼성큼 들어와 소파 중앙에 앉는다.

그리고는 나직하게 입을 연다.

 

"여기 뭐하는 곳인지 다들 알고 왔지요?"

그 말을 들은 먼저 온 남자 둘은 말없이 험상궂은 남성을 바라보기만 하고, 모든 게 의혹투성이인 난 험상궂은 남자에게 되묻는다.

 

"레스토랑 서빙하는 거 아닌가요?"

험상궂은 남성은 무표정한 얼굴로 이어서 말한다.

"여긴 호스트바 입니다."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다른 남자 둘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는 몸짓을 한다.

호스트바라는 단어는 얼핏 들어본 적은 있으나 무얼 하는 곳인지 몰랐던 난 이어서 물었다.

 

"그래서 무슨 일 하는 건데요?"

험상궂은 남성은 무슨 이런 녀석이 다 있냐는 듯한 눈빛으로 마지못해 설명한다.

"보통 여자 손님들 오면 같이 술 마시고 손님들 기분 맞추면서 놀면 되는데, 그러다가 2차 나가기도 합니다. 가끔 남자 손님들도 오는데, 남자손님들과도 같이 놀다가 2차 나가기도 합니다. 같이 놀거나 2차 나가는 것보다 이 일 하다보면 술 마시는 게 제일 힘듭니다. 그래도 짧은 시간에 돈은 많이 벌 수 있으니까, 잘 생각해보세요."







호스트바의 모습을 재현한 영화 <비스티보이즈>




험상궂었지만 꽤 친절한 남성이 설명하는, 태어나서 처음 듣는 호스트바 일에 대한 설명에 속으로는 크게 놀랐으나, 애써 태연한 척 표정관리를 하며 남성의 말이 끝나자 묻는다.

"레스토랑 서빙인줄 알고 왔는데, 안할 거면 지금 가도 되나요?"

 

내 말이 끝나자마자 남성은 얼굴을 살짝 찌푸리더니 고개를 살짝 끄덕인다.

남성의 신호가 끝나자마자 뒤도 안돌아보고 부리나케 철문을 열고 건물 밖으로 나와 계단을 오르던 중 계단을 내려오는 5~6명의 남성들과 마주쳤다. 새하얀 피부에 타이트한 티셔츠 위로 도드라지는 근육이 눈에 띄던 그들을 보며, 여기서 일하는 남성들일 거라는 추측과 함께 스쳐 지나쳤다. 좁은 계단을 따라 1층에 올라와 철문 앞에서 기다리는 친구를 발견하자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쉬고, 부리나케 왕십리를 뒤도 안돌아보고 떠났다.

 

그 뒤, 대학교 졸업할 때까지 다시는 카페 아르바이트를 찾지 않았다.










※ 월간잉여 7월호에 실린 글입니다.